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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마음을 읽는 법

영어의 마음을 읽는 법

: 영어가 세계를 로딩하고 또 다른 세계로 접속하는 방식

리뷰 총점9.6 리뷰 11건 | 판매지수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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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9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572쪽 | 644g | 140*215*35mm
ISBN13 9791190955652
ISBN10 1190955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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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교육과에 진학하면 달라질 줄 알았습니다. 살아 숨 쉬며 펄떡이는 말, 가슴 벅찬 언어를 만나리라 믿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기대는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노엄 촘스키와 동료들을 중심으로 하는 변형생성문법과 교실에서 유용한 학교문법, 의사소통 중심의 교수법 등 새로운 이론을 접하면서 언어교육에 대한 지식은 쌓여갔지만, 영어공부의 중심은 여전히 ‘유용한 표현과 문법의 암기’였습니다. 가르침의 현장에 새로운 교수법을 도입하려 노력했지만 오랜 시간 경험했던 영어수업의 경직성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제가 공부한 영어교육학의 언어로는 삶과 영어를 엮어 배우고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는 마음속 응어리를 해소할 수 없었습니다. 고민은 깊어갔습니다.
---「프롤로그」중에서

인지언어학의 발달은 큰 틀에서 20세기 중반 이후 진행된 ‘인지혁명cognitive revolution’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습니다. 조지 밀러George Miller에 따르면 인지혁명은 심리학과 인류학 그리고 언어학이 학문적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해나가고 전산학과 신경과학이 태동했던 1950년대의 산물입니다. 이는 지성사에서 하나의 혁명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개별 학문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에 동의하고 다양한 학제 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인간을 알기 위해서는 마음을 알아야 하고,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문화를 알아야 하며, 문화의 이해는 언어를 빼놓고는 달성할 수 없는 과업이었죠. 나아가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신체 기관인 인간의 두뇌를 이해해야 했고, 인간의 인지과정을 밝히는 데에는 컴퓨터과학의 기여가 필수적이었습니다. 인간이 복잡한 만큼 인간을 이해하려는 시도 또한 복잡해야 했던 것입니다.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은 이러한 시대정신 속에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Miller, 2003).
---「1장 〈인지언어학, 언어학에 마음을 더하다〉」중에서

몇 해 전, 김밥에 곁들여 먹는 국물을 500원에 판매하는 김밥집을 나오면서 “국물도 없는 집은 진짜 국물도 없다. 다신 안 가”라고중얼거린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번의 ‘국물’이 등장하는데, 첫 번째는 실제로 먹을 수 있는 국물이고 두 번째는 비유적인 의미의 국물입니다. 손님이 음식점 주인에게 진짜로 국물을 건넬 일은 없으니까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완연해지면 “넌 이제 아웃out이야”라고 말하며 점퍼를 옷장 안in에 던져 넣을 수도 있습니다. 옷을 상대로 “아웃이야”라고 말할 때의 ‘아웃’은 더는 사용하지 않겠다, 더는 입을 일이 없다는 뜻을 가진 비유적 용법이지만 ‘옷장 안’은 옷을 보관하는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죠. 이렇게 놓고 보면 ‘아웃’은 비유적인 뜻으로, ‘안’은 물리적인 뜻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옷에 대고 “아웃이니 들어가!”라고 말하는 재미난 상황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언어를 배울 때 우리는 보통 ‘문자적 의미literal meaning’와 ‘비유적 의미figurative meaning’를 구분합니다. 위의 예를 통해 보자면 “김밥 국물”의 ‘국물’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쓰였음에 반해, “국물도 없다”의 ‘국물’은 비유적이죠. 전통적인 언어학 이론에 따르면 이 둘 중에서 의미의 토대를 이루는 것은 문자적 의미이며 은유나 직유, 환유 등의 비유적 표현은 말글을 꾸미는 수사적 장치입니다. 시쳇말로 ‘있어 보이게 만드는 도구’, 장신구라는 것이죠. 결국 문자적 의미가 기본이고 비유적 의미는 부가적으로 따라온다는 견해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상세하게 살펴볼 인지언어학의 관점에서 보면, ‘문자 그대로의 언어’가 먼저 존재하고 ‘비유적인 것’이 뒤따라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언어는 기본적으로 비유적입니다. 언어는 물리적 세계를 넘어 심리적 세계, 추상적 세계, 개념적 세계, 상상의 세계 등을 모두 담기에 비유적인 표현은 언어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자 구성 원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2장 〈생각의 근간, 은유〉」중에서

한국의 문법교육에서 “품사part of speech”는 필수적인 개념입니다. 제가 학교에 다닐 때 문법서의 차례는 대개 품사의 종류를 따랐습니다. 이는 17세기 이후 유럽에서 라틴어 교수를 위해 고안된 문법번역식 교수법Grammar Translation Method의 영향을 받은 구성입니다. 놀랍게도 최근의 문법서 또한 품사 중심의 접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밴드의 노래 가사처럼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이란 말이 절로 나옵니다. 지난 수십 년 영어교육의 뼈대가 바뀌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영어를 어떻게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 속에서 의사소통 및 과업 중심의 언어 학습 이론이 주류가 되었지만, 현장에서 문법 중심 교수요목의 영향은 여전히 막강합니다.

출판계에서도 ‘문법서=품사 중심의 문장 제시 및 해설’이라는 등식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각각의 품사에 대한 개념적 설명은 찾아보기 힘들죠. 저 또한 품사를 중심으로 문법을 공부했지만, ‘조동사’나 ‘명사’, ‘동사’ 등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왜 문법책이 이렇게 쓰인 거지? 왜 이런 개념이 차례를 구성해야만 하는 거지?’라는 질문을 던지지는 못했습니다. 동사 파트에 들어가면 동사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전에 동사의 종류, 예문과 해석을 배웠으니까요. 명사나 가정법, 전치사나 조동사와 같은 파트도 마찬가지였고요.

저는 한국과 같이 영어를 외국어로 사용하는 상황에서 문법교육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청소년기 이후의 영어교육이라면 문법을 전혀 다루지 않는 교수학습으로 원하는 수준의 언어 습득을 달성하긴 힘들지요. 그렇다면 ‘문법을 가르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문법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논의의 주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우리가 기존에 품사를 다루어왔던 방식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출발로 전통적인 품사 중심의 교수에서 놓쳐왔던 것들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3장 〈문법 그리고 품사에 숨겨진 비밀들〉」중에서

본격적으로 관사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두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먼저 정관사 the와 부정관사 a(n)는 한정사determiner의 일종입니다. ‘한정사’는 말 그대로 범위를 한정하는 말을 가리키는데요. 지시사(this, that, these, those)나 양화사(all, many, none 등), 수사(one, two, three . . .) 등을 포함합니다. 이들 단어는 명사 혹은 명사구와 함께 쓰여서 의미를 좁혀주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book’은 ‘세상에서 책이라고 불릴 수 있는 모든 개체’라는 뜻을 담고 있다면 ‘a book’은 그중 한 권을 가리키고, ‘this book’은 화자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책을 가리킵니다. ‘book’에서 ‘a book’으로, 이것이 다시 ‘this book’으로 표현됨에 따라 한정의 범위가 좁아지고 구체성이 높아집니다.

‘books’와 ‘five books’의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자는 책이 여러 권이라는 것 이외에 다른 정보를 전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앞에 수사인 ‘five’를 붙이면 ‘다섯 권의 책’이라는 더욱 구체적인 의미가 되지요. 이번 장은 관사의 개념적 특성과 맥락, 화자의 가정과 의도 등과의 상호작용에 집중합니다만 관사와 한정사를 함께 공부한다면 좀 더 넓은 맥락에서 명사를 수식하는 표현들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아래 이어질 논의와 직결되는 현상입니다. 오랜 시간 학습자들을 만나 오면서 많은 분들로부터 “여기에 a를 써야 하는지, the를 써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a와 the의 구별이 관사학습에서 핵심적인 사항임에 틀림없지만, 사실 관사를 이렇게 a/the 두 개의 체계로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법이 아닙니다. 그런데 영어의 관사가 두 가지가 아니라면 어떤 게 더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영어의 관사는 정관사, 부정관사 외에 무관사를 포함합니다. 관사라는 집합에는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의 원소가 있는 것입니다.
---「4장 〈영어 관사의 원리 이해하기〉」중에서

전통적인 문법체계는 통사부와 어휘부를 엄격히 가릅니다. ‘통사부syntax’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문법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언어학 용어입니다. 통사론은 문장의 구조를 다루는 언어학의 하위 분야고요. 그러니까 통사부와 어휘부를 가른다는 것은 문법은 문법, 어휘는 어휘이지 둘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서로 다른 집단에 소속되어 있으며, 긴밀히 협력할 일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에 따르면 ‘주어+동사+간접목적어+직접목적어’로 구성되는 4형식은 문장의 구조를 말해주지만, 그 의미에 관해서는 어떤 정보도 담고 있지 않습니다. 문법에는 뜻이 없으니까요. 그렇기에 해당 문형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4형식 내부의 각 요소에 단어가 들어가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동사가 쓰이냐 하는 것인데요. 동사의 자리를 give나 bring과 같은 단어가 채우기 전까지는 ‘주어+동사+간접목적어+직접목적어’에서 어떤 의미도 읽어낼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지언어학의 관점에 따르면 문형sentence structure에도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단어에 의미가 담겨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문형과 단어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문형도 단어도 형태와 내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죠. 차이가 있다면 문형은 구조가 있지만 소리 내어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고, 단어는 발음할 수 있다는 정도입니다. 인지언어학자들은 말소리로 표현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형태를 가지고 있고 그 형태가 일정한 뜻을 지닌다는 점에서 문형과 단어를 하나의 집합으로 묶습니다. 그리고 아래에서 상세히 설명할 ‘구문construction’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문법도 단어도 ‘구문’이라고 하는 상자 안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는 문법과 어휘는 서로 관련이 없다고 여기며 이들을 분리해서 보는 관점과는 전혀 다릅니다. 단어 ‘tree’가 상응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듯이, “The woman gave the cat some food”(여성은 그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좀 주었다)와 같은 문장에서 단어를 모두 뺀 뼈대, 즉 4형식 구문 자체에도 상응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죠.
---「5장 〈단어의 의미와 문장에 대한 새로운 시각〉」중에서

세계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언어화됩니다. 그렇기에 언어를 배울 때 중요한 것은 ‘정확한 어휘와 문법’을 넘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문장을 만들 것인가’라는 점입니다. “정확하게 쓰라”는 주문 이전에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동일한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말을 쓰는 데에는 다 이유와 의도가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됩니다. 언어교육에서 이런 이유와 의도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능동태를 수동태로 바꿀 때는 목적어를 주어 위치로 하고, be 동사 다음에 pp(past participle, 과거분사) 쓴 다음에 by+주어를 쓰면 된다”는 식의 암기를 요구할 때, 학습자들은 언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수동태와 능동태를 선택하는 화자의 의도와 그러한 선택의 효과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화살표 놀이’에 집중하다 보면 말과 삶의 고리가 툭 하고 끊길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세계는 인간을 경유하여 언어가 됩니다. 인간은 의도와 관점, 감정과 편견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6장 〈영어와 생각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중에서

영어의 마음을 읽어내고 언어와 삶을 이어내는 소박한 여정을 마무리하는 지금, 동행해주신 여러분과 몇 가지 바람을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언어를 배움에 있어 깊이 생각하는 일의 중요성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말글은 단어 하나하나를 선택하고, 적절한 은유를 불어넣고, 의미구조로서의 문법을 고르는 데서 생겨납니다. 단어를 고를 때 ‘의식의 소우주’가 딸려 오고, 은유를 직조할 때 역사와 사회가 쌓아온 사고의 패턴이 배어들며, 문장의 구조를 지을 때 주인공과 지워진 이들, 전경과 배경, 나아가 화자의 의도와 관점이 드러납니다. 결국 말은 세계를 반영함과 동시에 생산합니다. 이 점을 인식한다면 언어를 공부하는 일이 정보의 습득을 넘어 자신과 시대를 엮어내는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깊이 생각하고, 다르게 생각하고, 뒤집어 생각하는 노동만이 이제와는 다른 삶의 언어를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에필로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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