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났다〉에 대해 많은 분이 비평과 분석을 해주셨다. 아무도 넘지 않은 선을 넘어가 보았던, 결코 쉽지 않았던 과정을 생각해본다. 이제는 많은 시간이 지나 메타버스라는 단어도, 세상을 떠난 가수가 무대에 나오는 것도 흔해졌다. 메타버스 세계가 바로 코앞에 다가온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메타버스, NFT… 그 모든 새로운 기술을 아무리 열심히 들여다보아도 그게 어떤 느낌일지, 어떻게 다가올지 알 수가 없다. 생각해보면 VR이라는 것도 그랬다. 마치 모든 부분에 융합될 것처럼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다시 어떤 콘텐츠로 나와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과정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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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너를 만났다〉를 기획할 때는 막연했다.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방송을 위해 여기저기 연락하며, 한편으로는 VR이라는 기술이 무엇인]지 깊이 알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보면 또 ‘삶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에 빠졌다. 일하기가 싫어져 멍하니 있기도 했다. 해가 질 때, 흡연 구역에서 상암동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며 어린아이처럼 공상에 빠졌다. 갑자기 시간이 멈추고, 너랑 나만 그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그런 상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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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안의 제목을 ‘VR 휴먼 다큐멘터리’로 정했다. VR과 휴먼의 결합은 처음부터 세워놓았다. 사실 교양국 PD가 원래 하는 일이 사람의 이야기를 찍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본격적으로 ‘휴먼 다큐멘터리’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해외 다큐멘터리를 보면,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더라도 그 한 사람은 강렬하게 무언가를 추구했다거나, 강한 매력을 지닌 사람이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의 사연만으로 만드는 장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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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하고 가능성을 보는 것 그리고 놀라워하는 것. 어쩌면 순수하게 재미를 느끼는 능력이 필요한 게 아닐까? 사실 무언가에 놀라워하고 재미를 느끼는 사람은 흔치 않다. 업체와의 회의에서도 ‘이게 가능할까?’라는 의심에 침묵이 흘렀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진 건 이현석 감독의 “전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라는 말 때문이었다. ‘이게 제일 낫다, 신박하다’에 이어 힘이 되는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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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났다〉는 결국 회복에 관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그다음의 이야기, 상실을 기억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감당할 수 없는 어떤 일을 겪은 이후에 꽉 쥘 수도, 놓아 버릴 수도 없는 말랑말랑한 무언가를 손에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인간의 모습을 상상했다. 가족의 죽음을 겪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엄마는 아이들을 키우고, 아이들은 숙제를 하며 살아야 하는 데,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그것 이 갑자기 뜨거워지면 가만히 버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억은 사라진 것 같다가도 갑자기 덮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그런 날들을 조금씩 쌓아 나갔다. 그것만으로도 좋은 이야기였을까 아니면 너무 사적이고 작은, 대중이 공감하기는 힘든 이야기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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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에 관한 이해는 부족할 수밖에 없지만, 인간에 관한 공감이라면 그래도 십몇 년 훈련받았으니 준전문가는 되지 않을까. 방송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끝나는 직종이다. 그게 사람을 웃기는 일이든, 울리는 일이든 마찬가지다. 예술이나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가장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일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너무나 쉽게 해낸다. 그러나 나와 같은 평범한 직업인으로서의 PD 대부분은 굉장히 애써야 하는 일이다. 그동안 마지막 단계에 CG 작업을 의뢰하고, 또 받아서 마음에 안 들면 고치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의사소통도 떨어져서 했다. CG 작업이나 기술 부분은 그냥 ‘잘해주면 고마운’ 일로, 또 PD가 하는 일은 비주얼이나 기술보다는 ‘이야기만 만들면 되는’ 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로 그 두 가지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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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상공간에 나연이라는 존재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도 단 한 번의 만남만 선보일 수 있는 아주 사적인 사람을… 답은 명쾌하다. 아직 아이를 떠나보내지 못한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체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버츄얼 휴먼인 나연이는 최대한 나연엄마의 기억 속 모습과 닮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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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나연이가 “엄마!”하고 부르며 뛰어나온다는 데는 모두 동의했으나, “엄마, 어디 있었어?”라는 한마디로 가기까지는 정말 오래 걸렸다. 놀다가 잠시 엄마가 안 보여서 어디 있었냐는 듯한 그런 말… 지금 돌이켜 보면 사실 녹화 현장에서 두 존재의 대화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현장이 너무 치열해서였는지 모든 게 띄엄띄엄 기억난다. 현장에서 사운드는 나연엄마가 쓴 HMD로만 들어왔고, 모두 숨죽이고 있었기에 고요했다. 그런데 “엄마, 어디 있었어?”라는 아이의 말에, “엄마, 항상…!” 하고 차마 다음 말을 잇지 못하는 순간, 모든 것이 진짜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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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연아, 나연이 잘 있지? 엄마 나연이 보고 싶었어…” 나연엄마는 처음에는 조심히 걸음을 뗐지만, 1분 정도 후에는 그 세계에 몰입해 “한 번 만 안아보고 싶어”라고 말했다.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을 결합하려고 애써도, 결국 두 세계가 나뉘어 있다는 것이 아프게 드러날 때. 엉거주춤하게 아이를 향해 자세를 낮춘 엄마가 허공의 아이를 쓰다듬고 껴안으려 할 때. 이미 우리는 가상 현실 이 아니라 진짜 감정과 기억 속에 들어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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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났다〉의 핵심 기획 의도는, 시간과 기억이다. 우리는 그 두 단어에 관해 다시 깊이 고민해야 했다. 결혼이란 두 남녀가 합쳐서 사는 인생, 둘이서 함께 만들어가는 기억이다. 여기에서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것… 〈너를 만났다〉의 또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우리는 프로젝트를 통해 항상 영원함을 표현하고자 한다. 아이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의 건강한 모습을 넘어서, 더 오래전 가족의 기원을 마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설화처럼 얘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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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일은 힘들면서도 기술적으로 ‘리얼하게’에만 몰두하다가 간과되는 부분이다. 나연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고 나서, ‘그 만남을 보는 것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아름다웠다’라는 평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감동했다고 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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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결과물을 보니, 작은 것들을 조금씩 모아 벽돌 쌓듯이 올려 겨우겨우 구체적인 한 가지의 느낌에, 아주 힘들게 접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사고의 정황 같은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소설처럼 서사를 펼치는 뉴 저널리즘이란 것을 흉내 낸 건가 싶기도 하고, 감정적이기도 하지만 또 구체적이기도 한 현실의 어떤 것이었다. 단 한 가지, 포기할 수 없던 게 있다면 ‘다른 사람의 사정’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아, 너는 그런 사람이었구나. 너에게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그걸 전달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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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에 대해, 가능성에 대해 앞으로 많은 토론과 시도가 있을 것이 다. 그러나 언제나 선 너머를 바라보는 것은 선 안쪽을 바라보는 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메타버스도 결국은 사람의 이야기이지 않을까. 우리가 사는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표현하는 모든 사람이 그곳에서 더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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