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과 ‘무결점’은 유혹적인 말이지만 우리 인생에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무조건 경기장에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 여기서 경기장이란 새로운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 중요한 회의일 수도 있고, 가족과의 껄끄러운 대화일 수도 있고, 창조적인 작업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간에 경기장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참여하려는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관중석에 앉아서 비평과 충고를 쏟아낼 것이 아니라 대담하게 경기장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대담하게 뛰어드는 것, 이것이 바로 취약성을 드러내는 용기다.
---「7쪽, 〈들어가며 - 나를 숨기는 ‘마음 가면’을 벗고 세상에 대담하게 뛰어들어라〉」중에서
‘온 마음을 다하는 삶’이란 자신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세상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용기와 공감 능력을 지니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든, 미처 못 해낸 일이 얼마나 많든 나를 긍정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 나는 불완전하고 취약한 존재야. 때로는 뭔가를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용감한 사람이라는 진실은 바뀌지 않아. 나는 사랑과 인정을 받을 만한 사람이야.’
---「15-16쪽, 〈프롤로그 - 나를 보여주는 용기는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중에서
“내가,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눈을 떠서 맨 처음 하는 생각은 ‘나는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하는 생각은 ‘나에게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라는 것이다.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은 우리가 사실 여부를 확인하거나 의문을 품기도 전에 자동으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우리는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뭔가를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을 듣고, 설명하고, 불평하고, 걱정하면서 흘려보낸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발이 방바닥에 닿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문제가 있고, 남보다 못하고, 뭔가를 갖지 못한 사람이 된다. 잠자리에 들 때도 머릿속은 그날 하루 동안 얻지 못한 것들과 끝내지 못한 일들로 뒤죽박죽이다.
우리는 이런 생각들을 짐처럼 짊어진 채 잠이 들고, 그 부족한 느낌의 잔상과 함께 깨어난다. (…) 이러한 ‘내적 결핍’은 우리의 질투심, 욕심, 편견, 삶과의 투쟁 한가운데서 생명을 유지한다.”
---「35-36쪽, 〈Chapter 1 - 헤어날 수 없는 결핍감의 근원〉」중에서
흔히들 취약성을 ‘나약함’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가장 큰 오해다. (…) 취약성은 그 자체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취약하다는 것은 이른바 ‘어두운 감정’은 아니지만 마냥 가볍고 긍정적인 경험도 아니다. 취약성은 모든 감정과 느낌의 핵이다. 무엇을 느낀다는 것은 곧 취약해지는 것이다.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는 걱정 때문에 생활 속 감정들을 차단하는 것은 우리에게 삶의 목표와 의미를 주는 유일한 것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지는 일이다.
우리가 취약성을 싫어하는 이유는 취약성을 공포, 수치, 슬픔, 걱정, 실망 따위의 어두운 감정과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두운 감정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두운 감정 역시 삶과 사랑, 일과 리더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아직 잘 모르지만, 십여 년간의 연구를 통해 나는 취약성이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감정과 경험의 요람임을 알아냈다. 취약성은 사랑, 소속감, 기쁨, 용기, 공감, 창의력의 원천이다. 취약성은 희망과 공감, 책임감과 진정성을 잉태한다. 삶의 목표를 더 분명히 하고 싶다면, 정신세계를 더 심오하고 의미 있게 만들고 싶다면 취약성에 그 답이 있다.
---「45-46쪽, 〈Chapter 2 - 취약성에 대하여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중에서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경험인지는 누구나 안다.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은, 남에게 수치심을 유발하는 것도 똑같이 고통스러운 일이며 배우자와 부모야말로 우리의 수치심을 가장 정확하게 자극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배우자와 부모는 우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며 우리의 취약점과 두려움을 목격한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수치스럽게 만들었을 때 사과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솔직히 수치심을 유발한 말들은 오래도록 상처로 남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취약한 지점을 들춰내 수치심을 유발하는 것은 관계의 안정을 심각하게 파괴하는 일이다. 사과를 한다 해도 신뢰는 크게 손상된다. 서로만 아는 정보를 무기로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139쪽, 〈Chapter 3 - 수치심을 다루는 법〉」중에서
지금부터 나는 ‘보편적인 취약성 무기’라는 이름으로 세 가지 갑옷 유형을 소개하겠다.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갑옷을 장착하고 있다. 그 갑옷 중 하나가 기쁨 차단하기, 즉 순간적인 기쁨을 억누르는 아이러니한 공포감이다. 다른 하나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면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완벽주의이며, 마지막 갑옷은 고통과 불편을 없애준다면 뭐든 받아들이도록 자신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나는 이 세 가지 보호막을 하나씩 살펴본 후 각각의 보호막에 맞서는 대담한 전략을 제시하려 한다. 이 전략들은 모두 ‘나는 충분해’라는 마음을 변형한 것으로, 세 가지 마음의 갑옷에서 해방되는 데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었다.
---「154쪽, 〈Chapter 4 - 마음의 갑옷 벗어 던지기〉」중에서
우리는 지금의 모습과 앞으로 되고 싶은 모습 사이의 간극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문화에서 중요하게 내세우는 가치들을 몸소 실천해야 한다. 간극을 의식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취약성을 끌어안고 수치심 회복탄력성을 키워야 한다. 앞으로 리더로서, 부모로서, 교육자로서 낯설고 불편한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드러내라는 요구를 받을 것이다. 완벽해질 필요는 없다. 우리의 가치와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노력하면 된다. 또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렘린들이 역량을 총동원해서 우리를 공격할 테니까. 우리가 경기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취약성을 끌어안고 기회를 포착하려는 바로 그 순간에 그렘린들은 슬금슬금 기어 나오기를 좋아한다.
---「236-237쪽, 〈Chapter 5 - 현실과 이상의 간극 의식하기〉」중에서
수치심은 두려움을 낳는다. 수치심은 취약성을 견뎌내는 능력을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참여와 혁신, 창의성과 생산성, 신뢰를 파괴한다. 더 나쁜 것도 있다. 무엇을 찾고 있는지 자기 자신도 모를 경우에는 문제의 징후가 발견되기도 전에 수치심이 조직을 망가뜨릴지도 모른다. 수치심은 집 안의 흰개미 떼처럼 활동한다. 벽 뒤의 어두운 곳에 숨어 살면서 집의 토대를 조금씩 갉아먹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계단이 부서진다. 그제야 우리는 벽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집 안 이곳저곳을 별생각 없이 걸어 다니기만 해서는 흰개미가 눈에 띄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사무실이나 학교를 한 바퀴 돌아본다고 해서 수치심 문제가 발견된다는 보장은 없다. 사실 우리는 문제가 그 정도로 명백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관리자가 직원을 호되게 꾸짖는 모습이나 교사가 학생에게 창피를 주는 장면이 금방 눈에 띈다면 그 조직에는 이미 문제가 심각하며 오래전부터 문제가 있었을 확률이 높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는 조직을 점검하면서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수치심 문제의 징후를 찾아봐야 한다.
---「246-247쪽, 〈Chapter 6 - 대담하게 뛰어드는 리더가 되려면〉」중에서
부모로서 우리는 생각만큼 기질과 성격을 잘 통제하지 못한다.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메시지에 대해서도 우리가 원하는 만큼 잘 대응하지 못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좋은 부모가 될 기회가 있다. 아이들이 자신의 타고난 성격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며 감사한 마음을 느끼게 해주면 된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메시지 속에서 아이들의 회복탄력성을 길러주면 된다.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메시지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대담하게 세상에 뛰어들라고 가르치고 싶다면,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나는 부모 역할을 잘하고 있는가?”가 아니다. “내 아이가 나중에 자라서 지금의 나와 같은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284쪽, 〈Chapter 7 - 내 아이가 어떤 어른이 되길 바라는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