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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참 좋아

이은소 | 새움 | 2023년 02월 16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8 리뷰 21건 | 판매지수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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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2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228쪽 | 260g | 127*196*20mm
ISBN13 9791192684444
ISBN10 119268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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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탔다.
준영이의 머리가 내 어깨 위로 힘없이 떨어졌다.
준영이가 눈을 감았다. 김준영. 내 친구. 내 소중한 친구 김준영.
내 소중한 게이 친구 김준영은
그렇게 내게 짠한 가슴이 되었다.
-
누군가의 목소리가 우리의 발목을 붙잡았다. 차마 그 사이를 뚫고 나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형, 저 새끼 호모라면서요? 와 대박!”
“야, 말도 마. 날 좋아한대. 아 토 나와.”
하건우의 목소리였다. 준영이의 눈과 얼굴이 붉어졌다.
“진짜 역겹다.”
“더러운 새끼, 그 새끼 눈길만 와도 역겨워.”
“그 새끼 안 되겠네. 그런 새끼하고 몇 년을 한동네서 같이 살고, 한 학교에 같이 다니고, 한 교회에 같이 다녔잖아요.”
“나는 그 새끼하고 운동하고, 샤워까지 같이 할 뻔했잖아.”
“아 토 쏠려.”
“어쩐지 그 새끼가 나를 보던 눈빛이 끈적끈적하더라니까, 아 더러워!”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 더 이상 준영이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어서, 나는 본당 문을 세게 밀고 나왔다.
-
너 혹시 하건우를 좋아하는 거 아니야,라고 묻고 싶었지만 물을 수 없었다.
“응……. 그렇지만 좋아하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해. 그 사람 입장에서는 끔찍이 여길 만큼 나쁜 일일 테니까.”
“좋아하는 마음이 뭐가 나빠? 싫어하는 마음이 나쁜 거지.”
준영이가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고마워. 난 네가 나를 피하고 멀리할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준영이의 이마에 초승달처럼 주름이 졌다가 사라졌다. 준영이는 안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준영이의 미소가, 준영이의 안도가 나를 더 슬프게 했다.
준영이는 왜 타인에게 이해를 구하며 살아야 할까.
준영이는 왜 타인의 이해에 고마워해야 할까. 준영이는 나처럼, 보통 사람들처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뿐인데.
-
“네가 게이인 게 괜찮냐고!”
“괜찮지 않아.”
“…….”
괜한 걸 물어봤다. 내가 대화를 잇지 못하고 미적거리고 있을 때, 준영이가 말했다.
“부모님도 걱정되고, 누나들도 걱정되고……. 또 내가 아우팅, 그러니까 게이라는 사실을 들키게 될까 봐 불안하고, 또 내가 게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부모님이며 친구들이며 선생님이며 또 나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무서워.”
준영이에게 미안했다. 준영이는 늘 웃는 얼굴로 이렇게 불안해 하고 있었는데 무서워하고 있었는데,
나는 한 번도 준영이의 두려움을 눈치채지 못했다.
-
소주야, 나는 여전히 여리고, 약하고, 불안해. 실수하고, 좌절하고, 상처받기도 해. 여전히 내 맘대로 안 되는 것들 투성이야. 하지만 살아 있기를 잘 했어. 지난 주말에는 내 남자인 친구들, 애럼과 라저가 결혼했어. 두 사람은 이제 법 앞에서 부부로 인정받았어. 살아 있으면, 살아가다 보면 나도 그들처럼 내 존엄을 인정받는 날이 올거야. 살아서 그날을 꼭 볼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믿어.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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