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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워커들 … 007
제2장. 습지 공원 … 041 제3장. 치즈태비 … 077 제4장. 사막과 흑점 어드벤처 … 109 제5장. 트라움 … 149 제6장. 흰쥐의 세계 … 187 해설 | 인아영(문학평론가) 연약함에 대하여 … 208 작가노트 … 222 |
예소연의 다른 상품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도망쳐야 한다. 그들은 정의 말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전쟁이 끝난 몇 년 전부터는 워커들만이 사막에 남겨졌다. 그들은 끔찍한 적막을 가르며 생존하기 위해 하루하루 버텨냈다. 하지만 여전히 이명처럼 들려오는 포탄과 비명, 기계음과 무전 소리에 괴로워했다. 휴전 협정은 3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각 나라에 소속된 군대는 전부 철수했고 팔려 온 군인들만 남았다.
--- p.9 이내 치즈 두 마리가 창의 새로운 신체가 될 그것을 가져왔다. 그것은 발목을 잘라낸 자리에 끼울 수 있도록 알맞은 사이즈로 제작되었다. 도색까진 바라지도 마. 치즈가 말했다. 치즈의 노란 줄무늬가 그대로 남아 있는 의족은 단단한 합금 발목과 탄력성이 있는 발바닥으로 세밀하게 개조되어 있었다. --- p.88 “네가 생각하는 대로야.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네 인생은 늘 불확실할 거야. 게다가 지금 이 순간 날 부숴버린다면 더 아득해질 거고.” --- p.102 그때 말리가 가장 인상 깊었던 기사는 한 생명공학자의 짧은 칼럼이었다. 사실상 고양이는 멸종했으며, 지구에서 고양이의 생명주기가 완전히 끝난 것으로 봐야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바이러스는 늘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 방식을 최적화하므로 언제고 인간에게 또한 치명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에서 생명공학자는 손깍지를 낀 채로 테이블에 두 팔꿈치를 대고 있었다. 생명공학자의 모습은 전문가답게 자연스러운 모습이었고 그가 앉아 있는 연구실은 안전하고 아늑해 보였다. --- p.129 “내가 일곱 살 때 온 가족이 이렇게 사막을 건넜어. 척박한 땅에서 더 척박한 땅으로 이주해야 했거든. 그때 아버지가 대추야자 열매를 따다 줬어. 너무 달콤해서 순식간에 먹어치웠는데, 엄청 혼났어.” “너무 많이 먹어서요?” “독이 들었으면 어떡할 거냐고.” --- p.138 내가 평생 깨닫지 못하는 건 무엇일까. 말리는 희미해져 가는 별빛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 p.147 “너희들은 인간에게 왜 그렇게 잘해주는 거야?” 그러자 치즈는 귀를 탈탈 긁으며 대답했다. “그게 바로 치즈의 오류지.” --- p.172 “말리. 우린 지옥을 물려받았어.” --- p.179 아샤는 묵직한 미사일을 힘겹게 어깨에 맸다. 그리고 조종실 문을 향해 조준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묵직한 기계 파편이 아샤의 머리를 때렸다. 뜨겁고 끈적한 것이 아샤의 관자놀이를 적셨다. 상관없었다. 말리를 데리고 이곳을 탈출할 수만 있다면. 어깨에 맨 미사일을 장전하고 적막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정의 말을 되새겼다. 한 가지 사물을 고른 다음, 그 사물을 눈이 시릴 때까지 노려봐. 그러면 소음은 찬찬히 멎고 이곳이 다름 아닌 전쟁터라는 걸 적군보다 빠르게 인식하게 돼. --- p.186 고양이가 상대를 감각하는 방식은 인간보다 훨씬 풍부해서, 인간은 천천히 깜빡거리는 고양이의 눈 동작을 보고만 있어도 쉽게 마음을 내어주게 되는 것이다. 러비도 마찬가지였다. 러비는 무심함과 사랑 그 어디쯤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창을 대했다. 그리고 창은 그 애정을 매우 숭고하게 받아들였다. 분명한 건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은 닮았으면서도 몹시 달랐고 두 마음으로 기인한 행동이 미묘하게 다른 방향을 띠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 p.193 창은 앞질러가는 치즈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무수한 데이터가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비석을 상상했다. 유언과도 같은 기도문이 위령탑처럼 세워져 있는 가상의 비석은 모든 존재의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유보하는, 압도적인 상징물처럼 느껴졌다. --- p.201 창은 자신이 한편으로 자신을 착취한 이들의 방식대로 살아남았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샤와 말리의 빈자리를 실감할 수 있었다. 창은 결심했다. 이 일을 평생 잊지 않겠다고. 잊는다는 건, 후회하는 것보다 질이 나쁘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 p.202 |
제1장 워커들
40년간의 전쟁 끝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사막에 남겨진 용병 할머니 창, 아샤, 말리는 워커 커뮤니티를 나와 안식처를 찾아 떠난다. 제2장 습지 공원 로봇 고양이들과 할머니 용병들의 만남! 클라우드로 기억을 공유하는 고양이들은 용병들을 자신들의 안식처인 동굴로 이끈다. 제3장 치즈태비 의료용 로봇을 해킹해 납치한 치즈가, 발목 절단의 위기에 이른 할머니 용병 창을 치료한다. 창은 치즈태비 무늬가 새겨진 합금 발목을 가지게 되면서 치즈들과 기억을 공유하게 된다. 제4장 사막과 흑점 어드벤처 할머니 용병 중 유일하게 머리가 세지 않은 말리가 사막의 흑점에서 그 누구도 믿지 않는 훈련을 하며 살아남고, 영원한 젊음을 얻게 된 전말이 밝혀진다. 제5장 트라움 오염된 사막과 달리 안온하고 풍요로운 요새 트라움의 실체에 주인공 일행은 큰 충격을 받는다. 할머니 용병들은 치즈와 애니멀노이드 두더지와 함께 바리케이드를 해제해 착취당하는 로봇들을 해방시키려 한다. 제6장 흰쥐의 세계 창은 치즈들의 기억 데이터를 통해 이 세계의 모든 기도를 상상하며 망가진 세계에서도 자매들과 함께 의연하게 살아남기로 한다. |
망가진 세계의 비가시권을 질주하는 할머니 용병을 그린 SF
사랑과 의심 사이를 오가는 인간 본성을 그린 예소연 첫 장편소설 “한 사람의 머리에서 상상 불가한 스케일” _예스24 크레마클럽 독자평 2021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에서 경이로운 노인 여행 서사를 탄생시킨 작가로 찬사받으며 한국 문단에 등장한 예소연. 그가 2022년 겨울 《현대문학》에 발표한 「사랑과 결함」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랑의 계보학으로 《문학동네》 계간평(2023년 봄호), 《문학과사회》 이 계절의 소설(2023 봄), 《문학사상》 이달의 문제작에 오르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사랑과 결함」이 수록된 『소설 보다 : 봄 2023』은 올봄 전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2023 제13회 문지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된 사실만으로도 차기작이 가장 기대되는 작가 중 한 명인 예소연. 인간관계의 다면성에서 비롯한 균열을 치열하게 탐구해온 그가 이번에 허블에서 출간하는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은 인간 바깥까지 소설의 경계를 확장한다. 비인간 주체 로봇 고양이 치즈는 인간보다 먼저 이 세계의 종말을 예견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가장 고군분투하는 존재다. 농업용 로봇 고양이었지만 살아 있는 고양이의 기억을 이식받게 된 치즈는 모든 동물이 멸종된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에는 전쟁으로 초토화가 된 척박한 사막과, 한정된 자원을 점유하여 풍요롭고 안락한 환경을 유지하는 요새 트라움이 공존하고 있다. 사막과 요새의 이러한 공존은 위험한 세계는 안전한 세계를 위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무서운 진실을 각성시킨다. 사회인류학 박사이자 작가로서 기후 위기와 픽션의 관계성을 연구한 아미타브 고시는 소설가들이 기후 위기에 대한 에세이 등은 진보적인 이미지 관리를 위해 다수 발표하면서도, 전문 분야인 소설에서 인류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인 기후 위기를 다루는 것은 경원시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기후 위기를 픽션의 단순한 배경으로서뿐만 아니라 주연의 비중으로 다뤄줄 것을 호소하는 환경권의 절박한 주문에,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은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있다.포화 속 할머니 용병들과 로봇 고양이의 연대로 이뤄진 작은 군대의 박력 넘치는 질주는, 모래폭풍 등의 위기와 함께 어우러지며 기후 SF로서의 압도적인 스케일을 보여준다. 기후 위기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반영한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은 올 여름 독자들을 사로잡을 극한의 다크투어로 예스24 전자책 플랫폼 크레마클럽에 오리지널 콘텐츠로 연재될 당시 트위터 등의 SNS에서 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언급되며 신선한 반향을 이끌어 냈다. “잿빛 미래에서 위트와 존중을 잃지 않는 소설” _최진영(소설가) “의심과 믿음의 경계를 부수고 재접합하면서 만들어내는 드라마” _인아영(문학평론가) 작은 존재들의 반격, 멸망으로 치닫는 세계의 모래시계를 뒤집는 여성서사 최진영 작가의 대표작 『해가 지는 곳으로』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미소는 에필로그에서 우리가 싸움을 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일생에서 영원히 아물지 않는 환부인 죽음과 사랑의 영역을 극단까지 탐구해온 최진영 작가. 그는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을 읽는 동안 모든 예측이 빗나갔다고 말하며, “그 빗나감이 신선하고 반가웠다”는 추천사를 썼다. 최진영 작가는 또한 “인류 멸망이 상상에 불과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 그것은 상상보다 예언”에 가까우며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이 이에 대한 “냉철하고도 따뜻한 이야기”라고 천명한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의 주요 캐릭터들이 가진 의연함과 냉철함 사이에서 빛나는 것은 ‘강함’이 아닌 ‘연약한’ 면모다. 이들은 서로를 지키기 위해 싸우며 상처입어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은 휴전 협정 후 사막에 남겨진 할머니 용병들과 로봇 고양이의 여정을 다루는데, 이들이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방식도 증오가 아닌 서로에 대한 사랑이다. 폭력성이 인간의 고유한 본성인지,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에서 입장이 뒤집히며 갑론을박이 이어져 왔다. 인류학자 리처드 랭엄은 인간의 사회화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야생 동물들처럼 일상에서 분노하는 즉시 서로를 죽일 수 없게 되었지만, 억압된 폭력성이 전쟁과 같은 대규모 살상으로 분출되며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의 주인공인 용병 창, 아샤, 말리는 전쟁터에서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겪어내며 몸에 지울 수 없는 폭력의 상흔을 새겼기에, 인간과 비인간의 공생 자체가 인간중심주의라는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음을 견지한다. 폭력으로 구성된 세계에서 사랑은 타인에 대한 무장해제를 의미하는 가장 위험한 수위의 감정이면서, 서로를 엄호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우린 지옥을 물려받았어.” _예소연,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 인아영 평론가는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 해설에서 지옥과 유사한 디스토피아 세계의 생존 키워드를 유년시절 징집되어 이제는 할머니가 된 용병들의 ‘연약함’과, 로봇 고양이나 애니멀노이드(로봇의 물성과 동물의 신체 조직이 유기적으로 혼합된 존재) 두더지 등의 ‘비인간’적인 면모에서 찾았다. 케빈 랠런드에 따르면 많은 진화생물학자들이 교활한 폭력성 등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결함 때문에 인류가 머지않아 절멸하게 될 것이라 예상한다. “너는 아직도 인간적이라는 말을 쓰는 거야?” “그럼 인간적이지 않은 곳을 찾아가자.” _예소연,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 예소연의 저력은 인아영 평론가의 말처럼 이 소설이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경계뿐만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의심과 믿음이라는 경계를 끊임없이 부수고 재접합하면서 만들어 내는 드라마”라는 것에 있다. 오래된 부상의 흔적과 노화로 인해 온몸이 전쟁터 그 자체인 할머니 용병들과 폐기물 더미에서 스스로 부품을 찾아 데이터 마이닝을 거듭하며 살아남은 고양이 로봇 치즈는 서로를 선택했으나 무조건적으로 다정하지 않으며, 전적으로 신뢰하는 순진한 관계가 아니다. 인아영 평론가는 이들의 사이를 “아무리 가까워져도 서로에 대한 의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관계성을 가진 것으로 읽어냈다. 또한 이들이 “스스로가 세계라는 체스판에서 가장 약한 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자만이 세계의 연약함도 이해할 수 있으며 앞으로 나아갈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약한 말이라는 걸 부정하지 않게 되었어.” 전쟁이라는 기울어진 게임의 판을 거슬러 끝까지 가는 여성 서바이벌 전쟁으로 연결된 다양한 여성들의 인터뷰를 엮은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에서 우크라이나 여성 군인 타냐 코브자르가 전쟁터에서 알게된 사실은 뜻밖이다. “무기 사용법은 보르시(비트로 만드는 붉은 수프로 우크라이나의 전통 음식)를 만드는 것보다” 쉽다는 것이다. 세월에 풍화되어서가 아니라 대문자 역사가 의도적으로 지워왔기에 잊혀진 여성 군인들의 존재는 기원전 4세기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군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양차 세계대전에서 200만명 이상의 여성들이 병종을 가리지 않고 활약했으며, 이러한 양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지상전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보여지고 있다. 인아영 평론가는 SF 대담에서 제1세계의 이성애자 비장애인 남성은 세계와 자신의 일체감을 겪어내지만, 페미니즘 독법은 그 세계의 틈을 읽어내는 작업이며, 틈을 어떻게 변형하거나 인식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고 이야기한다. 문학에서는 익숙한 남성 인물이 아니라 젠더 하나만 바꿔도 독자가 그 틈을 인지하게 하는데 큰 효과를 가진다는 것이다. 참혹한 전쟁사를 신화화하는 전쟁 SF에서 배제된 여성 군인들을 이 소설을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상상해야 하는 이유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간의 원죄에 생태적 죄를 추가했다. 인간은 살아 있는 것만으로 이 푸른 행성과 생명을 포식하는 폭력을 행사한다. 이는 인간이 가진 절대 권력이나 강함이 아니라 다른 생명과의 공생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취약함을 상기시킨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에서 인간은 마침내 모든 짐승과 식물을 먹어치우고 말았다. 이 이야기의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 중 하나인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의 멸종은 최진영 작가의 추천사에 언급되었든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닌 예언이며, 그것은 곧 인간의 절멸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의 망가진 세계에 더 가라앉을 바닥이 있다는 것을 기민하게 인지하는 것은 기술 자원을 선점한 트라움의 기득권층이 아닌, 할머니 용병과 고양이 로봇이다. 인간이 자신의 생존 조건인 생태계를 초토화하는 데서 벌어지는 에코사이드(생태 학살)와 인간을 말살하는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는 순환적인 관계다. 인권이 악화되면 환경 악화는 심화되며, 환경이 파괴된 국가일수록 인권이 심각한 수준으로 저해되게 된다는 것이 유엔환경총회 보고서 등의 많은 연구 사례를 통해 검증되었다. 조효제 교수는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에서 “환경이 악화되면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가 많이 발생한다. 특히 기상 이변과 장기적 기후변화로 젠더에 기반한 폭력이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하며 전쟁으로 인한 환경과 인프라 파괴는 여성에게 더 큰 피해가 돌아가게 하는 생존 차원의 위기를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한다. 이는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의 강렬한 포문 “제1장 워커들”에서도 잘 나타나있다. 사막에서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이제는 할머니가 된 주인공 일행뿐만 아니라 여성 용병들은 같은 용병들에게조차 성범죄의 표적이 된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워커 커뮤니티를 떠나 고달픈 도망자를 자처하게 된다. “제4장 사막과 흑점 어드벤처”에서 밝혀지듯 이들이 여간해선 사람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수십 년간 아무도 쉽게 믿지 않는 훈련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서로의 뺨을 때리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속 쌍둥이의 훈련을 떠올리게도 한다. 미래라곤 없는 비참한 현실속에서 우리의 존재를 달콤하게 현혹시키는 사랑과 멀어지기 위한 훈련. 사랑하고 사랑받기에 할머니 집에 유기된 쌍둥이들은 너무나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의 자매들은 처음부터 자매가 아니었다. 각기 다른 국가에서 각자의 이유로 팔려왔고, 서로에게 고단한 삶에 대한 위로를 건넬 마음 한 자락의 여유도 없이 신의 체스판을 가로질렀다. 지친 이들에게 사랑을 다시 가르치는 이는 인간이 아닌 고양이 로봇 치즈다. 그들은 척박한 사막 아래 동굴을 신비한 수경재배 공간으로 꾸며 생강 농사를 짓고, 산딸기를 재배하여 용병 자매들에게 베푼다. 영화 〈듄〉을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모래폭풍과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해 보이지만 방사능 수치가 치솟는 대지에서 약한 주인공 일행은 서로의 기억을 영양분처럼 교환하며 결말부까지 생존한다. 모래폭풍이 지나가고 난 후, 할머니 용병들과 고양이 로봇 치즈는 서로와 함께 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랑에 대한 면역을 최대화한 상태에서, 다시 사랑하기. 이들의 만남과 여정은 이 세상 무수한 만남과 여행이 그렇듯 또 하나의 기적이자 기도였다. |
인류 멸망이 상상에 불과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 그것은 상상보다 예언에 가까울 것이다. 도래하는 각종 재난에서 인류는 얼마나 생존할 수 있을까? 이 행성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존재는 무엇일까? 인류 멸망의 세계에서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에 대한 냉철하고도 따뜻한 이야기가 여기 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의 예측은 계속 빗나갔다. 그 빗나감이 신선하고 반가웠다. 잿빛 미래를 그리면서도 위트와 존중을 잃지 않는 소설이다. 오래도록 간직하며 되새기고 싶은 ‘고양이의 마음’을 알려준 작가에게 감사를 전한다. - 최진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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