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나르시시스트로 인해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현재의 이 고통이 자신의 잘못이나 나약함으로 인해 생긴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동안 나는 많은 내담자들이 상담과 치료를 통하여 갈등 상황의 본질을 깨닫는 순간, 안도감과 자유함을 경험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들은 나아가 인생의 모든 관계를 돌아보며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변화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당신에게 이 책이 그것은 절대 당신 탓이 아니라고, 이제 더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으로 나아가라고 안내하는 통로가 되길 바란다.
--- pp.10~11
반면에 수치심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됐을 때 느끼는 창피함이다. 열등한 위치에서 남들에게 발각될 때 느끼는 감정이며, 스스로 잘못을 느껴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이는 매우 원시적인 단계의 감정으로 성숙의 과정을 통해 죄책감으로 변형된다. 이러한 수치심은 대개 우울감, 불안감, 자괴감 등의 불편한 감정으로 이어지는데, 보통 사람들은 많은 경우 자신의 잘못으로 발생한 감정이니만큼 이를 수용하고 견디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나르시시스트는 불안정한 자존감으로 인해 그러한 불편한 감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폭발적인 분노감으로 변형시켜 표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여 수치심을 자극시키는 상대에게 엄청난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 p.31
그들은 왜 이렇게 함부로 타인의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것일까? 첫 번째, 그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과대 사고와 자신은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된다는 특권 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은 조심하며 지키는 타인의 바운더리를 자신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이 타인을 불편하게 하더라도 상대방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르시시스트는 충동 조절이 잘 되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이 있으면 참지 못한다. 상대방이 불편하든 말든 자신이 하고 싶기에 그냥 선을 넘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이 합쳐져 나르시시스트는 다른 사람과 마땅히 지켜야 할 거리 조절을 하지 못하며 다른 이의 바운더리에 대한 존중이 없다.
--- pp.39~40
나르시시스트 부모 아래 자녀들의 역할은 크게 스케이프고트, 골든 차일드, 인비저블 차일드 또는 로스트 차일드, 트루스 텔러유형들이 존재한다. 자녀들은 여러 개의 역할을 중복해서 맡기도 하고 성장 과정에서 역할이 바뀌기도 한다. 성인이 되어 본인이 나르시시스트가 된 당사자도 어린 시절 나르시시스트 부모 아래에서 성장한 경우, 이 역할 중 하나를 맡았을 것이다. 어린 시절 맡겨진 암묵적인 역할이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 맺는 중요한 관계 안에서 재현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나르시시스트적 가족 구조 내에서 주로 스케이프고트 역할을 맡았던 자녀는, 나중에 부부 관계 안에서도 스케이프고트 배우자 역할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내가 어떤 자녀 유형이었는지, 그로 인해 어떤 무의식적인 심리들이 형성되었는지 알아야지만, 현재 나의 생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나 자신의 특성들을 변화시킬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 pp.143~144
또한 러브바밍은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의 과대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어이기도 하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 자체가 완벽하다고 여겨지면, 그 안에 있는 자신도 덩달아 완벽하다고 느낄 수 있기에, 지금의 관계를 완벽한 관계로 이상화한다. 그런데 완벽한 관계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더군다나 짧은 시간 내에는 의미 있는 관계가 형성되기란 더욱 어렵다. 그래서 아직 미숙한 관계를 마치 영화 속에서만 있을 법한 이벤트의 연속으로 포장하여 완벽한 관계인 것처럼 비추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즉, 평소 스스로에 대해 지닌 과대성을 연인 관계에 투영시키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는 결핍감으로 인해 거절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물밑에 지니고 있는데, 러브바밍은 그런 두려움에 대한 방어이기도 하다.
--- p.194
그들과의 관계에 최대한 끌려들어 가지 않으려면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이 원하는 서플라이를 하게끔 강력한 신호를 보내도 이를 무시하고 잘 버텨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회색돌(gray rock) 기법이다. 이는 서플라이 역할에 대한 무언의 압박을 주는 나르시시스트에게 감정의 동요 없이 무미건조한 무반응으로 일관되게 대처하는 기술이다. 즉, 정말 그 사람에게 하나의 돌처럼 반응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주양육자에게 미러링을 제대로 받지 못한 나르시시스트는 성인이 되어서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자신의 과대한 모습을 그대로 비춰서 반사해주는 대상을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보고, 만지고, 던져도 반응이 없으며, 상대의 모습이 비춰지지도 않는 돌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의 공급원 역할을 해줄 것을 압박하지 않을 수 있다.
--- pp.226~227
이처럼 ‘왜 나는 마음을 나눌 사람이 이렇게도 없지?’라는 생각이 자주 드는 경우 원가족인 부모나 형제도 나르시시스트적 성향이 강할 때가 많다. 이전에는 너무 어렸거나, 또 이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원가족 내에 정서적 교류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가, 나르시시스트 배우자를 경험하면서 원가족을 돌아보면 그들 가운데도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육 환경에서 자랐다 보니 이후 만나는 친구, 직장 동료, 지인들과 표면적으로는 잘 지냈지만, 막상 깊은 교제로는 나아가지 못했다. 어렸을 때 이런 교감을 한 경험이 없다 보니 하는 방법도 모르고 필요성도 못 느꼈던 것이다.
--- p.258
나르시시스트는 상대가 자신에게 이미 넘어왔다는 생각이 들면, 상대에게 주는 관심과 노력을 줄여가면서, 나중에는 그 관계가 유지만 될 수 있을 정도로 최소한의 호의만을 간간이 상대에게 베푼다. 나르시시스트의 이런 행위를 브레드크럼빙(breadcrumbing)이라고 칭하는데, 이는 ‘빵 부스러기를 찔끔찔끔 던져주다’라는 뜻이다. 진실된 관계 안에서 상대에게 제공하는 공감과 배려, 존중, 다정함, 상호 교류 등의 요소가 식빵 한 덩이라면, 상대방이 관계를 떠나지만 않도록 보여주기식으로 행하는 의미 없고 하찮은 호의들이 빵 부스러기이다.
--- p.267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이런 반추와 집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의 왜곡된 언행에 대해서 아무리 혼자 고심한다고 해도, 이 관계를 개선시킬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히려 이런 반추는 나르시시스트에게 받은 상처에 집착하면서 스스로에게 이차 가해를 가하는 격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더 이상 나르시시스트에게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런 집착과 반추를 할 시간에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일들을 더 시도하자. 나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편안하고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거나 평소 좋아하는 활동을 하는 등 나 자신을 위해서 그 시간을 온전히 사용하는 것이다. 그동안 나르시시스트에게 당한 것도 억울한데 그 사람에 대해 반추하면서 스스로를 계속 괴롭히지는 말자.
--- pp.282~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