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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2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404g | 124*188*20mm
ISBN13 9788932042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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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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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다. 공기의 압력과 흐름이 달라지고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하강의 과정. 나는 늘 이 순간이 미묘하게 불쾌하다. 죽을 것 같은 두려움과 새로 태어나는 설렘이 좁디좁은 내 안에서 앞다투어 날갯짓하는 느낌이다. 마침내 기체가 땅에 닿고 우리는 한반도 남쪽의 작은 섬에 도착한다. 소프트 랜딩을 하는 것으로 보아 기장은 한국 사람인 것 같다. 살았다는 안도 속에서 한 자리 건너 옆자리를 돌아보니 휴대폰을 든 조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저 마음을 알 것 같다. 더블린에서 엄마가 죽었다는 이메일을 열던 순간의 나도 비슷했다. 문자나 댓글, 이메일이나 DM으로 누군가의 부고를 전할 수 있게 된 세계란 얼마나 잔인한가.
--- 「에어 메이드 바이오그래피」중에서

현은 그들의 대화가 뭔가 인터뷰 같으면서도 뻔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유명했던 어떤 영화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소년이 배우의 꿈을 갖게 되고, 그 꿈을 외면하며 이런저런 다른 길을 모색하고 도망치려다가 결국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험한 길을 걷게 된다? 그런 이야기는 사실이라 해도 가짜 같았다. 현은 자신의 인생 영화 「블레이드 러너」부터 이야기하려다가 길을 바꾸어 들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다 쓸모가 있을까요?”
여자는 고개를 돌려 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일단 입력을 주는 거니까요. 우리는 일종의 데이터만 제공하는 거예요. 말뭉치를 주면 알아서 단어와 문장을 조합하는 건 얘가 할 일이죠. 소설은 우리가 아니라 이 친구가 쓰는 거예요.”
“이 대화도 녹음되는 건가요?”
“당연하죠.”
“이게 소설이 된다고요?”
“안 될 이유가 있나요? 소설이 뭔데요?”
--- 「고잉 홈」중에서

유학을 온 뒤 영이 느꼈던 주된 감정은 혼란이었다. 이 길이 맞나? 보이지 않는 미래의 길도 맨해튼의 도로처럼 헷갈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의 타임라인에서 영을 위한 구글맵은 존재하지 않았다. 주변의 다른 동기나 친구 들, 마치 올바른 앞날로 인도하는 내비게이션을 손에 든 것처럼 자신 있고 거침없는 그들의 모습을 엿볼 때마다 영은 열등감과 자괴감을 느꼈다. 그녀가 저널리즘을 공부하는 이유는 사명감이나 헌신 때문이 아니었다. 해결하고 싶은 사회의 부조리나 시스템의 허점도 딱히 없었다. 영은 그냥 『뉴욕타임스』 기자가 되고 싶었다.
--- 「골드 브라스 세탁소」중에서

곧 여름이 되겠구나. 늘봄은 이 봄이 가는 게 여전히 아쉽고 두려웠지만, 어제만큼은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있다. 밤이 모든 계절에 공평하듯이. 여름이 와도 바뀌지 않는 게 있을 것이다.

“룩 앳 댓!”
아이의 목소리에 모두가 정원 가운데를 바라보았다. 거기엔 어디선가 나타난 반딧불이 한 무리가 빛을 내고 있었다. 천천히 움직이는, 작지만 분명한 발광. 미지근하게 식어가는 둥굴레차를 마시던 늘봄에게 점멸하는 반딧불이의 소화宵火는 마치 암호처럼 느껴졌다. 무의미로 가득 찬, 무엇도 알 수 없고 누구도 볼 수 없는 이 칠흑 같은 우주에 보내는 고결한 모스부호.
--- 「뜰 안의 볕」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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