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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로마 바로크 - 혼돈 속에서 새로운 미술이 피어나다
01 바티칸, 강렬하고 뜨거운 바로크 세계의 중심 02 로마의 영광과 좌절 03 빛과 어둠으로 현실을 겨눈 카라바조 04 환상의 세계를 열어젖힌 카라치 05 천재의 대결, 베르니니와 보로미니 II 북유럽 바로크 - 비로소 쟁취한 평화를 새기다 01 북유럽 바로크를 이끈 루벤스 02 암스테르담에 떠오른 금빛 태양 03 풍요가 빚어낸 새로운 일상과 풍경 04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의 ‘르네상스’ III 스페인 바로크 - 화려함의 극치로 몰락한 제국을 위로하다 01 스페인 미술의 시작, 엘 그레코 02 스페인 바로크의 정수, 벨라스케스 03 세계를 물들인 바로크 미술 - 울트라 바로크와 아시아 바로크 |
저양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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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다리는 고된 여정을 거쳐 바티칸을 찾은 순례객이나 여행객을 환영하는 적극적인 시각 장치였습니다. 베르니니는 환상적인 천사 조각상으로 바티칸에 막 들어선 이들에게 당신은 이제 천국의 세계에 들어왔음을 축복하려던 겁니다.
---「1부 1장 바티칸, 강렬하고 뜨거운 바로크 세계의 중심」중에서 후대 비평가들은 바로크 미술을 난잡하고 일그러진 양식이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16세기 가톨릭 세계가 겪은 위기를 떠올리면 17세기 바로크 미술이 왜 그렇게 과장된 표현에 집착했는지 이해됩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화려함의 배경에는 위기와 도전의 시간이 있었던 거죠. 그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가 바로크 미술이 연출한 아름다운 세계입니다. ---「1부 1장 바티칸, 강렬하고 뜨거운 바로크 세계의 중심」중에서 그림을 통해 카라바조는 돈 많고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이 예수의 마지막을 함께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정도가 아니라 삶이 어려울 정도로 궁핍해 보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성인과 성녀로 등장시켰으니 가톨릭 종교화의 맥락에서는 확실히 혁명적인 표현이죠. ---「1부 3장 빛과 어둠으로 현실을 겨눈 카라바조」중에서 사실 교황청 사람인 추기경이 비기독교적인 신들과 그들의 육체적 사랑을 천장화 주제로 의뢰했다니 앞뒤가 안 맞아 보입니다. 그러나 파르네세 갤러리는 파티나 연회가 열리는 축제 공간이었습니다. 엄격한 종교적 기준을 상대적으로 완화한 사각지대랄까요? ---「1부 4장 환상의 세계를 열어젖힌 카라치」중에서 이렇게 바로크 천장화는 천장을 하늘 높이 열린 창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창 너머에 있는 천국 같은 세계를 우리에게 생생히 보여주려 애썼던 거죠. 이런 자신감 넘치는 시각 효과가 이전 르네상스 미술의 정적인 세계와는 확연히 다른 예술적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1부 4장 환상의 세계를 열어젖힌 카라치」중에서 사실 바로크를 연극적 예술이라고 하는데, 이 수식어와 아주 잘 어울리는 작품이 성 테레사의 황홀입니다. 베르니니는 예배당 중심에 있는 제대를 무대로 여기고 여기에 성 테레사가 영적 체험을 겪는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양쪽 벽면에는 코르나로 가문의 사람들이 마치 오페라 극장의 객석에 앉은 관객들처럼 신비로운 장면을 목격하고 놀라는 모습들이 나타납니다. 놀라운 건 이 모든 게 조각이라는 겁니다. ---「1부 5장 천재의 대결, 베르니니와 보로미니」중에서 루벤스는 빛나는 머릿결부터 옷의 질감까지, 모든 요소를 세밀하게 표현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리심은 감각적이면서도 이상적인 인체 표현, 웅장한 조형적 구도, 섬세한 세부 묘사를 두루 갖춘 작품입니다. 고대 미술,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 플랑드르 미술의 강점을 골고루 섞은 루벤스만의 세계가 완성된 거죠. ---「2부 1장 북유럽 바로크를 이끈 루벤스」중에서 그림의 대상이 일상적인 소재에서 점점 사치품으로 바뀝니다. 이처럼 16세기에는 소시민의 소박한 삶을 나타내는 정물화가 대부분이었다면, 17세기에 들어서 정물화는 부유층의 고급스러운 삶을 우아하게 보여줍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정물화를 ‘바니타스’라고도 불렀습니다. 바니타스는 라틴어로 삶의 덧없음을 의미하는데, 성경의 경우 전도서에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구절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2부 2장 암스테르담에 떠오른 금빛 태양」중에서 당시 네덜란드는 시민들의 힘과 지혜로 지탱한 시민사회였습니다. 성공한 시민들은 민병대원, 양로원, 병원 등의 운영위원으로 자신만의 역할을 수행했죠.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동료들과 함께 봉사하는 자신을 담은 단체 초상화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2부 4장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의 ‘르네상스’」중에서 무엇보다 톨레도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위에 보이는 톨레도 대성당입니다. 500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는 물론 규모나 화려함에서 중세 이후 스페인 가톨릭의 권위를 대변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엘 그레코가 톨레도에 정착하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텃세를 겪었다고 할까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이른바 ‘스페인의 정서’를 터득해냅니다. 엘 그레코가 톨레도에서 남긴 첫 작품은 톨레도 대성당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3부 1장 스페인 미술의 시작, 엘 그레코」중에서 1628년 시대의 거장 루벤스는 외교관 자격으로 마드리드를 다시 찾습니다. 이때 루벤스는 자신보다 22살 어린 벨라스케스를 만나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벨라스케스는 초기에 하층민의 일상을 주로 그렸는데요. 루벤스는 그의 작품을 보고 ‘시골풍’이라는 짧은 평을 남깁니다. 루벤스는 냉철한 조언자였습니다. 그는 벨라스케스에게 미술의 중심 로마에서 그림을 더 공부하라고 권했습니다. 그의 애정 섞인 조언을 귀담아들은 벨라스케스는 1629년 로마로 향합니다. ---「3부 2장 스페인 바로크의 정수, 벨라스케스」중에서 빈민 문제가 큰 사회 문제가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때부터 무리요는 가난한 사람들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거리에서 음식을 주워 먹는 거지, 가난한 아이들의 비참한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냅니다. 붓으로 어루만진 듯 온화한 느낌을 주는 그의 그림은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던 세비야 사람들에게 위로의 손길로 다가갔을 겁니다. ---「3부 3장 세계를 물들인 바로크 미술」중에서 극도의 아름다움과 붕괴하는 제국이 강한 대조를 일으키죠. 이 같은 화려함은 어쩌면 스페인 제국이 몰락하면서 들려주는 백조의 노래일지도 모릅니다. 침몰 직전 최후의 외침이라고 할까요. ---「3부 3장 세계를 물들인 바로크 미술」중에서 당시 중국에 사신으로 파견된 조선 사람들은 중국에 들어온 서양 문물을 마주하고 감탄했나 봅니다. 귀국길에 서양화 한 점씩 사와서 집에 걸어둔 거죠. 눈앞에 펼쳐진 사실적인 서양화를 한옥 대청마루에 걸어 놓고 집을 방문한 손님과 신기한 경험을 나눈 겁니다. 동양화에서 볼 수 없는 원근감과 화려한 색채, 그리고 실물을 보는 듯한 생생함에 감동받았겠죠. 서양화를 마주한 옛 기록을 보면 참 재미있는데요. 『열하일기』의 주인공 연암 박지원만큼 바로크 천장화를 제대로 묘사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3부 3장 세계를 물들인 바로크 미술」중에서 |
* 르네상스 3부작 그 이후, 새롭게 등장한 바로크 시대! 깊어지는 고난에 맞서 화려함의 극치를 향해 달려가는 바로크 미술!
* 역대 『난처한 미술 이야기』시리즈 중 가장 화려하고 눈부신 여정! 유럽에서 시작해 아시아에 닿다! * 악마적 재능의 카라바조, 빛과 어둠을 삼킨 렘브란트, 그림에 숨을 불어넣은 벨라스케스까지 우리에게 친숙한 거장들의 작품을 단 한 권으로 만난다! 시선의 대축제, 찬란했던 미술의 시대 웅장한 성당, 섬세한 조각, 화려한 그림…… 오늘날 미술 하면 떠오르는 거대하고 환상적인 이미지는 17세기 초부터 18세기 전반에 걸쳐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가톨릭 국가에서 발전한 바로크 미술의 영향이 크다. 모든 미술 사조가 그렇듯이 바로크 역시 현실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당시 유럽을 관통한 반종교 개혁운동과 수공업과 상업에 바탕을 둔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은 격렬한 명암대비와 풍요로운 경향으로 상징되는 바로크의 젖줄이었다. 바로크는 ‘작가의 시대’였다. 17세기 초 이탈리아의 카라바조는 바로크 회화의 창시자로 불린다. 불안정한 대각선 구도, 성인(聖人)을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격하’한 그의 그림은 안정적인 구도와 이상적인 표현을 추구했던 르네상스 미술 문법을 완전히 뒤집었다. 그의 영향은 스페인과 북유럽으로 퍼져 ‘카라바지스티’라 불리는 추종자들을 낳았다. 루벤스와 렘브란트를 낳은 플랑드르와 네덜란드도 바로크의 중심지였다. 북유럽 바로크를 대표하는 렘브란트는 네덜란드의 평화를 수호하는 민병대원을 화폭에 담았다. 단조로운 인물 구성에 그친 당시 화단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 움직이는 역동성을 화폭에 담은 렘브란트의 단체 초상화는 시대 미학의 절정이었다. 이처럼 바로크 시대는 국가별로 미술의 성격이 또렷했다. 이탈리아 바로크는 구도와 움직임과 명암을 대담하게 사용하여 연극적인 성격을 띤다.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부와 독립을 이룬 북부 미술의 발전 양상이 서로 달랐다. 남부 네덜란드 바로크는 가톨릭 영향으로 종교 미술을 중요시했지만, 북부 네덜란드 바로크는 탈종교와 탈이념을 지향하며 세속적인 메시지를 전파했다. 벨라스케스와 수르바란으로 상징되는 스페인 바로크는 강력한 가톨릭 이념을 바탕으로 엄격하고 절제된 미술이 발달했다. 동시에 이슬람 미술과 중세 미술의 영향으로 강렬한 장식성을 드러내며 바로크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찬란함 이면의 위태로움 바로크(Baroque)는 포르투갈어로 ‘일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바로코(Barroco)에서 유래했다. 처음 이 단어를 사용했을 때는 르네상스의 단정하고 우아한 고전양식에 비하여 지나치게 과장된 건축과 조각을 경멸하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미술사적 관점에서 바로크 미술의 등장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종교개혁으로 가톨릭의 권세가 휘청거리면서 종교미술은 엄격한 검열에 갇히게 되었다. 미술의 내용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유일한 돌파구는 형식의 극적인 변화뿐이었다. 미술가들은 균형 대신 불균형을, 우아함 대신 평범함을, 이성 대신 감정을, 환상 대신 현실을 추구하며 위기를 극복했다. 바로크 미술은 어떻게든 새로운 길을 찾아내어 예술 활동을 이어가고자 했던 미술가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이었다. 그 결과, 바로크는 17세기 유럽의 시대정신을 드러낸 핵심 사조로 꼽힌다. 바로크 예술가들은 교회의 권위와 신앙을 강조하기 위해 연극적인 요소를 즐겨 사용했다. 그 중심에는 베르니니의 조각 [성 테레사의 황홀]이 있다. 베르니니는 예배당 중앙에 성 테레사가 영적 체험을 겪는 순간을 빚었고, 이 모습을 지켜보는 인물상을 양쪽에 도열해 예배당을 연극 무대처럼 활용했다. 또한 성 테레사의 조각상 위로 창을 내고 빛줄기를 재현함으로써 조명 효과를 더했다. 강렬한 시각적 체험으로 시선을 붙들어 두는 바로크 미술의 집대성이었다. 마침내 시작된 시선의 대축제 바로크 미술의 키워드는 ‘시선’이다.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의 구도를 고려하여 착시 효과를 만들어내고, 시선을 압도할 만큼 과장된 표현을 활용하고, 참신함이 깃든 새로운 시선을 창안했다. 카라바조와 함께 17세기 로마 화단을 이끈 안니발레 카라치는 착시 효과를 즐겨 사용했다. 그가 이탈리아의 명문가 파르네세 가문의 저택에 남긴 천장화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꼽힌다. 크고 작은 회화가 금빛 액자와 대리석 조각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이곳에 액자나 조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안니발레 카라치는 이 모든 요소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각도를 치밀하게 계산해 천장화를 구성했다. 베르니니는 ‘과장’을 키워드로 삼았다. 미용실에서 갓 나온 듯한 곱슬머리와 잔뜩 구겨진 옷자락. 그의 역동적이고 과장된 표현은 바로크를 상징하는 특징이다. 벨라스케스의 역작인 [시녀들]은 거울로 ‘시선’을 확장하여 보는 맛을 더한다. 그림의 주인공처럼 보이는 공주의 왼편에 한 남성이 붓을 들고 있다. 벨라스케스 자신이다. 그는 맞은편에 있는 대상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린다. 그는 누구를 그리고 있는 것일까? 자신을 바라보는 ‘관람객’을 그리는 것일까? 공주의 뒤에 걸린 거울에 비친 국왕 부부가 보이는가? 관람객, 즉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그림 속 국왕 부부의 자리인 셈이다. 이처럼 벨라스케스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뛰어넘어 관람객과 국왕 부부를 동시에 조명한다. 다양한 시각적 장치로 숱한 해석의 여지를 담고 있는 [시녀들]. 이를 소장한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다. 위기를 기회로 1부 로마 바로크 성 베드로 대성당은 로마 가톨릭의 중심으로서 오늘날까지 수많은 관광객의 사랑을 받는다. 17세기 이곳은 어떠했을까? 성 베드로 대성당을 향해 성지 순례를 떠난 가톨릭 신도들은 맨발로 몇 날 며칠을 걸어야 했다.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순간을 이겨내고 마침내 바티칸에 도착한 이들을 반긴 것은 구름 위 천사들이었다. 마치 천국에 닿은 듯 황홀한 모습의 천사상. 바로크 미술은 고난을 이겨낸 자들을 위한 승리의 찬사였다. 더불어 카라바조와 안니발레, 베르니니와 보로미니가 펼쳐내는 두 쌍의 라이벌 이야기는 로마 바로크의 하이라이트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 함께 누리는 평화와 번영 2부 북유럽 바로크 튤립과 풍차의 땅. 네덜란드 공화국은 스페인의 종교적 탄압에서 벗어나 자유와 관용을 큰 가치로 내세웠다. 80년 동안 계속된 전쟁 끝에 평화의 시대를 맞이한 이곳에서 시민들은 풍요로운 삶을 누리며 미술을 즐겼다. 풍족하고 자유로운 삶은 정물화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스스로 지켜낸 땅에 대한 자부심은 집단 초상화, 풍속화, 풍경화에 담겼다. 북유럽 미술을 대표하는 루벤스, 렘브란트,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통해 바라본 17세기 네덜란드의 일상과 풍경은 스스로의 힘으로 거머쥔 자유와 평화에 대한 예찬이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부르는 백조의 노래 3부 스페인 바로크 스페인은 광활한 영토를 손에 넣은 제국이기에 국가적 차원에서 미술의 범위를 상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스페인 정신을 대표하는 엘 그레코는 깊은 영적 감동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미술의 정점에 선 화가다. 벨라스케스의 죽음 이후 별다른 예술적 성과를 내지 못하던 스페인 미술은 세비야에서 다시 일어선다. 아이러니하게도 극심한 경제난으로 제국의 뒤안길에서 미술은 찬란히 피어난다.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가장 빛나는 방식으로 이겨낸 미술 이야기. 그 눈부신 시절로 당신을 초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