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1998년 11월 30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689쪽 | 682g | 120*195*35mm |
ISBN13 | 9788971842195 |
ISBN10 | 8971842199 |
발행일 | 1998년 11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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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689쪽 | 682g | 120*195*35mm |
ISBN13 | 9788971842195 |
ISBN10 | 8971842199 |
생각이 너무 많은 어른들을 위한 심리학 (10만부 돌파 기념 스페셜 에디션)
16,020원 (10%)
책의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는 거장 <발자크>를 tv 프로그램'인간 극장' 다큐멘터리처럼 바로 옆에 있는 듯 그리고 있다. 음~ 한 100편 쯤 되려나. 방대하다. 덤덤하게.... 그러면서도 저자 특유의 치밀한 심리묘사를 곁들인 나레이션도 넣었다고나 할까. 저자의 평전 작품에서 크게 구분한 부분에서 다시 작은 장으로 구분된 작품은 없었다. 총 6부 26장의 목차로 정리된 대작이며, 저자의 대표작이라 하겠다. 먼저 말을 꺼내자면 자살한 저자가 죽기 전까지 완전히 매듭을 짓지 못했던 이 작품을 친구 프리덴탈(전기 작가, 독일)이 그의 사후 1945년 구상만 남은 마지막 장을 고쳐 세상에 내었다.
말했듯이 <발자크>를 옆에서 보고 있듯 책은 생생하다. 평전이 재미가 있다. 심리묘사에 탁월한 저자인 데다가 딱딱한 연대순이라기보다는 <발자크>의 굵직한 체험의 에피소드와 그의 심리 변화를 중심으로 발표한 작품과 연결해서 그를 파헤치고 있다. 무거워지기 쉬운 평전이 재미있는 이유는 또 있다. 전개 속도가 역시나 빠른 것. 그의 짧고 간결한 문장에서 독서가 지루할 틈이 없다. ( 열 문장을 밤새 두 문장으로 줄여지면 전개 속도가 더 빨라졌다고 좋아했던 츠바이크였다.-자서전 『어제의 세계』 ) 항상 빚쟁이를 피해 도망갈 뒷문이 중요했다는 유머러스한 묘사들..... 뒤죽박죽 그의 여인들의 이야기......
<발자크>. 1799~1850년은 그의 생애는 막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시대였고, 정치적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시대였다. 격변의 프랑스였지만, 200년이 지난 우리의 또 다른 눈으로는 '다이나믹 프랑스'일 수 있다. 신흥 부르주아지가 권력을 쥐고서 그들이 다시 부를 축적하는 시대. 돈이 곧 사회 권력이었던 시대. <발자크>도 이런 시대를 살았다. 끝없이 돈을 추구했고, 틈만 나면 사업을 벌였으며, 예외 없이 실패했다. 그래서 평생 채무자로 살았다. 그 때문에 여인을 만나면서도 제대로 된 돈 많은 과부를 만나기를 갈구했던 발자크였다. 그의 집에 뒷문은 빚쟁이를 피하는 문이었고 여인들이 드나들었던 문이기도 했다. 꾸미는 사치로 인해 돈이 궁했던 발자크는 작품 출간 전에 미리 출판업자로부터 돈을 받았다. 그야말로 글 감옥이요 글 노동이다. 생활이 철저해야 했고 밤낮이 바뀌어야 했다. 그의 또렷한 정신을 지켜주는 것은 돈을 향한 갈망이요, 커피( 커피와 부족한 잠으로 사망 )였다. 막상 노동하게 되면 철저한 노동이었다. 작품에 대한 철저함은 7번이 넘는 교정쇄가 있을 정도였고 낮은 쓴 원문을 고치는 시간이었다.
츠바이크는 끝이 없는 듯 <발자크>의 많은 작품을 소개한다. 발자크를 그의 작품에서 묘사한 인물에서 찾기 때문이다. 평소 독서 방법이 '연결 독서'라고 불리는 것을 하는 나로서는 처음 몇 개의 <발자크> 작품을 검색하고 적곤 하다가 포기했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평하는 츠바이크도 물리적인 시간과 그 시간에 발표한 작품 수를 나열하며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한다. 천재다. 기억력의 천재요, 상상의 천재다. 천재가 보는 천재의 머리는 파고 파고 또 파고, 가고 가고 또 가고 결국 그의 작품 전집 『인간 희극』으로 귀결된다.
『인간 희극』은 발자크 작품 총서를 일컫는 이름이다. 그의 소설과 산문 97편에 등장인물만도 2천 명이 넘는다. 우리 삶이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듯이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유기적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다. 연결과 통일성을 위해 죽을 때까지 발자크는 다듬어야 했다. 다음 작품도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그 자체가 미완일 수밖에 없는 전집이었다. 16쪽에 이르는 『인간 희극』 긴 서문을 소개하며 발자크 속으로 들어가는 츠바이크다. 책 속에 담긴 『인간 희극』의 마지막 서문을 보자.
사회의 역사와 비판, 사회적 악의 분석과 사회적 원칙의 언급을 포함하는 이 엄청난 계획은 내 작품에 지금 주어진 『인간 희극』이라는 제목을 주기에 무리가 없다고 생각된다. 이 제목이 주제넘은 것인가? 그것은 정당한 것인가? 전집이 완결되고 나면 여론이 그것을 판정할 일이다. (563쪽)
비록 이 작품이 오늘날 더 높은 이상의, 몸통같은 의미가 더 크게 남았지만, 결코 주제넘은 것이 아니라고 츠바이크는 덧붙인다. 발자크는 죽기 전까지 『인간 희극』에 매진했다. 평소 습관처럼 미리 출간 어음을 발행하며 3, 4천명의 인물을 언급했고 137편을 담고자 했다. 오늘날 미완성으로 남은 『인간 희극』 97편에 겨우 ㅡ츠바이크는 '겨우'에 부끄러워 한다ㅡ 2천명의 인물만 담았다. 발자크의 생이 5년만 더 길었다면 그가 구상한 다양하고 구체적이었던 뛰어난 거대한 건축물을 볼 수 있었음을 안타까워한다.
작업의 끝을 보지 못한, 미완의 『발자크 평전』은
미완의 『인간 희곡』을 그대로 닮았다.
꼭 발자크( 책을 들기 전에 몰랐다)를 주목하기 위해 손에 든 책이 아니었다. 저자가 <슈테판 츠바이크>이기 때문에 이유가 없었다. 츠바이크에게 발자크가 끝판 대장이었던 것처럼 나 또한 이 책이 끝판 대장처럼 남았다. 불과 얼마 전 까지 품절이었고 중고는 비쌌다. 그의 작품을 다 읽어보는 사이 재출간 되었고 이렇게 리뷰를 쓰게 되었다. 게임 속 끝판 대장 ㅡ다양한 졸병과 온갖 방해, 때려도 때려도 줄지 않는 에너지, 며칠이고 몇 달이고 도전해서 넘어야 하는 ㅡ 처럼 수년 전부터 시작했던 발자크 작업은 깨기 힘든 상황이었을 법하다. 연구하고 연구해도 발자크의 작품과 인물은 광범위했으며 망명길 또한 이 작업을 어렵게 했겠다. 하지만 나의 끝판 대장은 너무나 쉬웠다. 천재 끝판 대장을 그를 넘을 만한 천재가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웃기고 재미있고 빠르고........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잡았을 때는 끈질기게 깊다. 자기가 경탄한 다른 작가의 창작과정의 추적, 작가가 이해한 다른 작가의 창작과정. 때가 되면 『인간 희극』이라는 몸통에서 하나둘 떼어내어 읽어보리라.
암울했던 시대, 길지 않은 시간, 지상에서 연약했던 츠바이크,
그의 좌절, 그럼에도 품었던 인간애와 그 따뜻한 연민을 느끼며.
불멸을 꿈꾸었던 위대한 속물의 삶 - 천재가 기록한 천재의 초상
삶이 지나치게 문학적이면 그 사람의 문학은 가난하다. 한 인간이 지닌 열정의 양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고 그것을 삶 속에서 소진한 자는 글을 제대로 쓸 수가 없다. 그것이 소설이라면, 자기 연민이 어린 수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의 삶과 글은 줄곧 이 사이에서 오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다. 발자크의 삶과 문학은 이 명료한 진실을 배반한다. 발자크의 삶은 ‘치열한 모순’의 연속이었으며 치열한 모순은 극단적인 편집증으로 이어졌다. 극단적인 편집증은 상상을 초월하는 글쓰기로 폭발했으며 발자크에게 많은 부와 명성을 안겨주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끝내 불행했다. 그의 삶을 관통하는 ‘치열한 모순’과 분열, 그로인한 편집증은 바로 상처와 욕망에 기인했기 때문에.
부모에게 버림받고 기숙사를 전전하면서 보냈던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그는 자유롭지 못했다. 연상의 여인에게 매달리는 맹목적인 연정은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던 발자크의 어린 시절의 기억과 맞닿아있다. 그에게는 언제나 ‘작업의 대상’이 존재했지만 그것은 대상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일그러진 결핍에서 비롯된, 일종의 몸부림이었다. 스무 살부터 글쓰기를 시작한 발자크는 19세기 중반 시민세력의 성장이 두드러졌던 프랑스의 사회상을 당대의 어떤 작가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해냈지만 그는 자신의 소설과는 달리 평생 귀족을 숭배했으며 자신의 이름에 귀족의 상징인 ‘드(de)'를 집어넣고자 고심했다. 오노레 발자크가 아니라 오노레 ‘드’ 발자크임을 강조하면서 그는 언제나 귀족의 안락한 삶을 꿈꾼다. 그 뿐인가. 사실적이며 흥미 넘치는 소설을 통해서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지만 발자크는 늘 무모한 사업을 벌여서 채권자들에게 평생을 쫓기며 살았다. 하찮은 미술품과 골동품을 사들이는데 엄청난 돈을 낭비하는가 하면, 귀족의 상징인 터키옥이 달린 지팡이를 고가에 구입하여 허세를 부렸고, 사업이 망하면 빚을 갚아줄 귀족부인들을 유혹하기 위해서 연정이 담긴 편지를 쓰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돈이 떨어지면 그것을 갚기 위해 ‘순식간에’ 소설을 써서 넘겼고, 소설의 인세들은 또다시 어이없는 낭비와 사랑놀이에 투입되는 악순환. 이런 인물에게 ‘전기’의 형식을 띤 평전이라니. 이것은 또 얼마나 어이없는 낭비인가.
하지만 츠바이크의 응시는 위대한 작가의 감춰진 비리와 사생활의 추적에 머물지 않는다. 츠바이크는 발자크의 삶을 관통하는 모순과 분열이 글쓰기에 어떠한 도움이 되었는지를 응시한다. 실제로 발자크의 걸작들은 대부분 가장 ‘몰린’ 시기에 창작되었다.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거나 사업이 망했을 때, 사랑에 실패했을 때, 발자크라는 전대미문의 ‘속물’은 게걸스럽게 책을 썼다. 때로는 16시간이 넘게 글에 매달리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으며 보통 작가의 10배가 넘는 원고를 단시일 내에 끝마치는 등 삶의 고비마다 천재성이 작열하며 스스로를 구원한다. 그러나 자신의 숙원대로 귀족인 한스카 부인과 결혼하자마자 발자크는 50세를 갓 넘긴 채 사망한다. 발자크의 문학은 천재성의 절정을 보였지만 그는 결국 한 여인의 사랑도 얻지 못했으며, 평생을 결핍감과 강박증에 시달린 불행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굴곡지고 모순된 발자크의 생애와 문학은 이 평전의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의 삶과도 겹쳐진다. 불행한 시대를 살다가 조국을 등지고 망명해야 했으며 2차 대전의 와중에 망명지에서 자살한 슈테판 츠바이크. 그는 자살하기 전 마지막 작품으로 <발자크 평전>을 남겼다. 츠바이크가 동일시했던 것은 발자크의 속물스러움이 아니라 모순과 억압, 그리고 아픈 기억이 한 인간에게 가하는 고통이 어떻게 글쓰기로 이어지는가, 라는 통찰이었으리라. 아픈 진실이지만 문학은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자양분으로 삼는다. 어쩌면 이 평전은 아픈 삶을 살았던 한 작가가 자신보다 한 세대 앞서 살았던 한 애정결핍증 환자(작가)에게 보내는 따뜻한 응시이자 자신의 삶에게 보내는 처방전이 아니었을까.
슈테판 츠바이크 과도한 상상력의 천재 발자크 를 평전 하다
이건 소설이에요. 평전이라니요? 소설처럼 읽고 말았는 걸요.
왜냐고 묻지 말아요. 이러저러한 발자크를 츠바이크는 그렇게밖에 그릴 수 없었을 테니까요.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푸른숲 펴냄
이상한 부모는 어느 시대에나 있게 마련인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나는 한 번도 어머니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대체 어느 정도여야 자녀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까? 결국 발자크는 나이 들어 주름이 자글자글해진 후에도 어릴 적 어머니에게 당한 냉대를 떨쳐내지 못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그냥 나쁜 사람... 나의 어머니는 내 삶에서 모든 불행의 원인입니다." 지상에서 한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잔혹한 어린 시절부터 감수성 예민한 나이에 겪은 어머니로부터 기인한 수많은 은밀한 고통은 발자크를 다혈질에 쉽게 흥분하는 성격을 갖게 했고 그로써 그는 더더욱 고통의 순간을 겪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자신의 어느 순간을 어머니에게 몹시 의존했다. 그리고 다행이게도 그는 천재... 천재였다! 진짜냐!
과도한 상상력의 힘으로 지상 세계와 나란히
또 다른 우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천재성을 지닌 사람, 발자크
불우한 어린 시절은 어쩌면 발자크에게 땔감이었을지 몰랐다. 불우하지 않았다면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돌고돌아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려고 급급했을까? 그는 마치 글을 써야만 겨우 그 가치를 인정받는 노예처럼 종일 글을 써댔다. 글을 쓰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소설의 구상이 펼쳐졌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지? 아마 그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구상하고 사고하고 다듬다가 상상하고 환상을 보고 급기야 모든 게 자신의 생각대로 이루어지리라는 착각과 망상에 아주 풍덩 빠져버렸기에 가능했을 테지.
그가 칼로 시작한 일을 나는 펜으로 완성하련다.
극단적인 것을 감행하고 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람에게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경고를 눈앞에 둔 채 비로소 진짜 싸움의 시작을 시작한 스물아홉의 발자크. 그는 열아홉 시절의 자신이 몰랐던 것, 즉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았고 자기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도 알았다. 그는 자신의 힘을 알아챘고 동시에 성공을 쟁취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전제조건, 즉 의지력을 단호하게 하나의 목적 단 하나의 방향으로 집중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 이전의 사업들로 깨달은 사업 실패의 오류와 원인을 딛고 정열적이고 힘찬 방식으로 문학을 시도하면 되었다. 이미 사흘이면 잉크 병이 하나씩 비고 펜이 열 개나 닳아 없어지는 노동을 해오지 않았던가! 이 수업은 끝났고 지금은 모든 의지를 다 작품에 쏟아부어 대가가 될 일만 남은 셈이었다. 여태 감추어야 했던 자신의 이름 오노레 발자크를 단 책들이 나올 것이었다. 그는 당시 역사 소설가로 가장 유명한 작가 월터 스콧을 능가하기로 마음먹었다. 싸구려 소설공장에서 벗어나 예술가의 책임감을 가지게 된 사실주의자 발자크. 그의 소설에서 뒷계단 문학의 뻔뻔스러움,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음, 심각한 감상주의는 여전했으나 타락의 한가운데서 어쨌든 새로운 걸음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 자기 주변의 모든 힘을 빨아들였다. 나폴레옹이 칼로 시작한 일을 발자크 자신이 펜으로 완성하기란 너무 쉬워 보였다.
하지만 인생사 그리 녹록하랴. 건방지지만 천재였기에 이해받을 수 있던 몽상가 발자크는 숱한 노동을 통해 미친 듯한 자기 희생, 광적인 포기,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빚 등을 '얻어냈다!' 이로써 약간의 명성도 얻었겠지만 시기와 역겨움이 뒤따랐다. 그리고 박하기도 하여라,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 가장 본질적인 것, 가장 갈망하는 것, 곧 자유와 독립은 주어지지 않았으니... 서른일곱의 나이가 되어서야 발자크는 비로소 여태 자신이 잘못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적게 즐겼고, 자신의 가장 열렬한 소망도 이루지 못하는 일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삶을 배신한 것이었다. 다르게 살자! 그의 내면의 목소리가 경고하고 독촉하였다...만! 그는 정말 달라질까? 아이고... 에로틱한 발자크가 본격적으로 깨어났다!
발자크에게 있어서 바라보는 것은 곧 꿰뚫는 것이며,
배우지 않고도 알고, 마법을 통해 알게 된다는 사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우리가 운명이나 운명의 시련이라고 부르는 그 모든 것에 대해서 무서울 정도의 태연함에서 나온 무관심을 보였다. 이런 무신경함이 어쩌면 그가 "인간희극"을 펴내는 데 크게 영향을 미친 건 아닌가 싶다. "인간 희극"의 귀결을 보자면 마치 BTS의 뮤직비디오들이 모조리 연결되어 있다는 천재적 기획까지 생각이 미친다. 어쨌든 귀도 얇고 고집이 세고 상상력이 과도해 때론 망상이 아닐까 싶을 때까지 치닫는 발자크(아... 나도 그런다만 왜 나는 천재가 아닌가...). 좋게 말하면 몰입이 잘되는 스타일이 혹시 천재적 자질인가!
발자크의 소설을 특징짓는 것은 위대한 장면들이 아니라, 인물들이 천천히 변화하는 과정이며, 그들이 환경 및 풍경과 연결되는 과정에 있었다. 그의 모든 일상은 소설로 탄생했으니, 오히려 소설을 쓰기 위해 그리 행보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가져본다^^ 어쨌든 이 불운한 천재는 자르디 건축, 누라의 은광산, 희곡 생산이라는 엄청난 멍청이 짓을 함으로써 세상사에는 순진하기 짝이 없음을 만천하에 알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가 불복했을까? 천만에 말씀 만만의 콩떡. 나 발자크야! 그의 멍청한 짓들은 작품과 마찬가지로 오히려 차원이 더 커지고, 더욱 환상적이고, 충동적이고 우스꽝스럽고 악마적이 되었을 뿐이다. 그가 삶을 진행할수록, 생존이 그를 가혹하게 뒤흔들수록 발자크는 점점 사실주의자가 되어가니 하아... 발자크의 대작 "인간희극"의 탄생 과정이 이리 지난했을 줄이야! 그는 한 세계를 만들어냈지만 세상은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자연에서 동물종들이 주변 상황에 맞게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듯이 인간도 사회 안에서 다양하게 발전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해내겠다는 듯 발자크는 3천에서 4천 명의 사람을 동원해 각자의 이야기들과 인물들을 아주 잘 결합시켜서 완전한 이야기를 만들고자 하였으니 바로 "신곡"에 필적할 만한 대작이라고 스스로 일컬은 "인간희극"이다. 구상은 4천 명이었으나 2천 여 명의 이야기에서 그치고 만 "인간희극". 그것을 이룬 각각의 장이 하나의 소설이어야 했고, 각각의 소설이 하나의 에피소드를 이루도록 만들어야 했으니 예술가의 창의력이 얼마나 요구되었겠는가. 발자크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그의 구상은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는 지쳤고 그의 육신은 고장을 일으켰으며 영혼은 내적으로 거의 붕괴되었다.
뚱뚱하고 못생긴 천재 발자크는 자기 인생의 오랜 시간 동안 끊임없이 저질렀고 실패했다. 평전 문학의 대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발자크에게는 무척 불운인 그 실패들 덕분에 우리가 그의 노동으로 탄생시킨 작품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야누스적이게도 행운이라고 말한다. 발자크의 소설 속 인간들은 냉혹하고 천박하고 추악한 욕망으로 똘똘 뭉친 채 '돈'만을 추구하니 이건 그 시대의 자화상이겠다. 이것들을 얼마나 제대로 그려냈으면 그에게 19세기 풍속화가라는 별칭이 붙었을까나. 발자크의 어린 시절부터 최후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멱살을 잡아 흔들어서라도 정신차리라고 소리치고 싶던 순간들. 츠바이크는 내가 이럴 걸 예상했겠지.
그 당시 작가들이 대부분 그러했듯 나폴레옹 숭배자였던, 사실주의의 선구자 오노레 드 발자크. 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애정 때문인지 돈 있고 계급 있는 여인들 즉 귀족들에게 끊임없이 구애했던 프랑스의 소설가. "올빼미당원" 이후의 모든 소설에서 이 작품 저 작품마다 인물들을 재등장시켜 거대한 하나의 이야기처럼 만들어낸 불세출의 천재 작가. 머릿속 사상들을 소설로 고스란히 드러낸 발자크의 일생 이야기. 소설 못지않게 흡입력 있어 쭉쭉 읽어버린 "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