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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전쟁 50년의 점령
중동 테러리즘의 불씨를 지핀

6일 전쟁 50년의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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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3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640쪽 | 774g | 148*215*33mm
ISBN13 9788994361383
ISBN10 899436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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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까지 그곳 팔레스타인 마을의 삶은 얄루 출신 80세 노인 아이셰가 회상하듯이 소박하면서도 평범했다.

마을 사람들은 사이좋게 살았지요.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마을 한가운데에는 광장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하루 일을 끝내고 집에 가는 길에 그곳에 모여 설탕 넣은 커피를 마시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나그네가 광장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그를 데리고 가서 식사를 대접했죠. 이따금 점심때 양을 잡아서 광장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대접하는 이도 있었어요.

1967년 얄루와 같은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당시 이스라엘 군인으로 복무했다가 뒷날 유명한 작가가 된 아모스 케난은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 소대장은 이 살인자들의 소굴을 단죄하고 …… 장래에 침투 근거지로 이용될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 이 마을들을 날려버리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 p.55

서안 지구 농업에 무엇보다도 큰 타격을 입힌 것은 상수도를 군정 당국이 관리하도록 한 1967년 8월의 조치였다(이 조치는 1968년 3월 골란고원에, 1974년 12월에는 가자 지구에도 적용되었다). 이 조치로 새로 우물을 파는 것이 대단히 어려워졌다. 허가 제도가 적용되었고, 지루하고 복잡한 요식 절차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발목을 잡았다. 풍부한 물을 간절히 원하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신청은 대부분 거부되었다. 가정 용수만 소수에게 허락되었을 뿐이다.
1975년 이스라엘의 압박이 더욱 심해졌다. 기존 우물에서 퍼낼 물에 할당량을 정하고, 이 할당량을 준수하도록 미터기까지 설치했다. 이로써 팔레스타인 농업은 심각한 물 부족을 겪으며 활기를 잃어갔다. --- pp.123-124

이스라엘은 서안 지구 주민들이 이스라엘 경제를 보완하는 업종에 주로 종사하도록 유도했다. 이를테면 의류 산업에서 이스라엘 업체들은 직물과 디자인 등 원료를 제공하고, 재봉틀 앞에서 하는 노동은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저임금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에게 넘겼다. 서안 지구 산업 구조를 이스라엘의 필요에 따라 재편하고 이스라엘 산업과 경쟁하지 못하게 하는 데도 역시 허가 제도가 이용되었다. --- p.124

이스라엘인들은 새로 획득한 땅에 원주민이 딸려 있다는 사실이 불쾌하다는 걸 숨기지 않았다. 전쟁 직후 에슈콜 총리는 솔직하게 말했다.
“[전쟁의 결과로] 우리는 지참금을 얻었습니다[에슈콜이 말한 지참금은 새로운 땅을 의미한다]. 문제는 지참금과 함께 신부[아랍인 주민]가 왔는데, 우리는 이 신부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에슈콜은 종종 가자 지구를 ‘가시투성이 장미’라고 표현했다. 이 지역의 주민 대부분이 아랍인이기 때문이었다. 1967년 11월 12일 에슈콜은 “우리는 아랍인들이 가자에서 떠날 수 있게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대단히 현실적인 사람이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스스로 떠나도록 유인하지 않으면 절대로 떠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에슈콜은 아다 세레니라는 여성에게, 가자 주민이 자발적으로 가자 지구를 떠날 경우 그 대가로 수백 달러를 지급하는 계획을 추진하도록 지시했다. 가자 주민 모두가 ‘달에라도’ 가버리면 좋겠다고 그는 세레니에게 말했다. 이따금 그는 그녀에게 전화로 이렇게 물었다.
“오늘은 아랍인을 얼마나 많이 쫓아냈소?” --- pp.142-143

어느 날 샤론은 가자의 과수원들 사이를 걷다가, 이스라엘 농민들과 달리 팔레스타인 농민들은 가지치기와 솎아베기를 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샤론이 보기에 팔레스타인 농민들은 과수나무가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내버려 두는 것 같았다. 샤론은 이렇게 말했다.
“그들의 과수나무는 언뜻 보기에 아름답지만 매우 촘촘하고 무성하게 자랐다. 그래서 부대원들이 뚫고 들어가기가 아주 어려운 반면 테러리스트들이 숨기에는 무척 좋아 보였다.”
그는 부대원들의 시야를 넓히고 잠재적 은신처를 제거하기 위해 가자 지구 전체의 팔레스타인 농민에게 모든 나무의 가지를 잘라내라고 명령했다. 당시 가자 지구에는 약 7000헥타르에 이르는 오렌지 과수원이 있었다. 때때로 샤론은 반란군의 은신처를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과수원의 오렌지나무를 모두 뽑아버리라거나 농작물을 통째로 없애버리라는 명령을 내리곤 했다. --- pp.149-150

일부 주민은 멀리 떠나지 않고 들판에서 야영을 하며 마을로 돌아갈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 골란고원에 주둔했던 한 이스라엘 병사는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마을 밖 들판에서 수백 명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안전한 거리를 유지한 채 우리를 지켜보며 ……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파티마 알알리는 주민들이 마을 가까이에 머무르려고 한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추수 때문이죠……. [추수하러] 돌아가고 싶었던 거지요.”
하지만 이스라엘군은 골란 사람들이 마을로 돌아가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며칠이 지난 6월 18일, 이스라엘군 지역 사령관 슈무엘 아드몬 대령은 골란고원 전역을 ‘군사통제구역’으로 선포하는 군령을 내렸다. 군령에 따르면 떠난 사람 누구도 이 지역으로 돌아오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며, 이를 어길 경우 최고 5년 구금형에 처해진다. --- pp.169-170

10월 3일 이스라엘군은 “[점령지인 골란고원으로] 넘어오려고 하던 한 아랍 여성과 아이들에게 사격을 가하고 체포를 시도했지만 놓쳤다”고 한다.
당시 이스라엘군이 민간인을 향해 발포한 사실은 검열 당국에 의해 보도나 발표가 금지되었다. 반면 이스라엘군이 골란고원에서 무장한 민간인이나 무장조직 전투원과 마주친 사건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가까스로 몸을 숨기며 고향 집을 찾아온 골란 사람들 상당수는 이제 돌아갈 집이 남아 있지 않다는 현실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들이 집을 떠난 사이에 이스라엘 군대는 서둘러 마을 전체를 싹 쓸어버렸던 것이다. --- p.171

1972년 초 샤론의 군대는 이 지역을 정리할 셈으로 군사 작전을 펼쳤다.
먼저 ‘안보상의 이유’를 내세워, 베두인족이 경작하던 광대한 땅에 울타리를 둘렀다. 그다음 울타리 안으로 진입해 그곳에 거주하던 베두인족 1540가구를 물리적으로 몰아냈다.
잔혹한 축출 작전이었다. 가옥은 완전히 파괴되고, 과일나무는 뿌리째 뽑혀 나갔다. 밭에 물을 대거나 양 떼에게 먹이려고 베두인족이 파놓은 우물은 전부 메워졌다. 쫓겨난 사람들 대부분은 봉쇄된 구역 인근에 천막을 치고 생활하면서 가끔 울타리를 넘어가 밭을 경작했다.
그들은 이스라엘 대법원에 탄원했다. 법정에서 이스라엘군은 베두인족을 추방하기로 결정한 이유, 그리고 라피아 평원을 시나이반도와 가자 지구 사이의 완충 지대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적극 변론했다. 1973년 5월, 판사들은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라피아 평원을 완충 지대로 만들어야 할 정당한 사유를 군이 최대한 성실하게 제기했음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 이 문제에 관한 한 군인들의 의견이 탄원자들의 소견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결국 탄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베두인족은 자기네 땅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그 땅에는 새로 유대인 정착촌이 들어섰다. --- p.190

이 협상을 통해 이스라엘이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일부 미국 관리들이 ‘기겁할 정도’라고 표현한, 미국의 비밀 원조 약속이었다. 물론 이스라엘이 시나이반도에서 퇴진하는 대가로 받은 것이 백지 수표는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수준이라 할 만했다.
미국은 군사 장비와 방위용 설비 등을 (매년 의회의 승인을 받아서) 이스라엘에 ‘지속적이며 장기적으로’ 지원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영구적인 대규모 군사·재정 지원을 의미하며, 어떤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이스라엘의 군사적 필요를 충족시켜줄 비상 대책으로서, F-15 전투기처럼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최첨단 무기를 제공함으로써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를 굳건히 지켜주겠다는 약속이었다. --- p.204

부역(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협력’)이란 비단 이스라엘 점령 통치뿐 아니라 모든 점령 체제의 주요한 특징이다. 인티파다 이전에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회유해서 탄탄한 정보망을 구축해놓았다.
돈 때문에 점령 통치에 협력한 사람도 있지만, 헤어진 가족의 귀국 허가, 운전면허, 우물을 파거나 건물을 확장하는 데 필요한 허가를 받는 대가로 협력한 사람도 있고, 이스라엘 정보부가 민감한 정보를 쥐고 협박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협력한 사람도 있었다. 부역자는 항상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다.
두라 출신 팔레스타인 언론인 칼리드 아마이레는 이렇게 말했다.
“부역자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암적인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점령 체제의 가장 나쁘고 가장 끔찍한 부산물이다. 부역자에 대한 집단 증오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이유는 부역자들의 존재가 팔레스타인 사회에 공포심을 퍼뜨리고 의심과 분열을 증폭했기 때문이다. 한 팔레스타인인은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밀고자의 존재를 의식했다. 모두가 밀고자 이야기를 했고,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서로 이야기하는 것도 꺼렸다. 밀고자는 어디에나 있다고 여겨졌다. …… 내가 뭔가를 말하면 그 말이 이스라엘인들에게 전해지고, 나는 잡혀가서 벌을 받을지도 몰랐다.

UNLU는 점령군에 협력할 경우 팔레스타인 인민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하고, 적발된 자는 엄하게 처벌한다고 선포했다. 통계를 보면 1988년 초부터 1989년 중반까지 40명이 넘는 부역자가 살해되었다. 군중에게 살해된 경우도 있고, 특수한 집행자가 처형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실상은 많은 사람이 부역자로 오인을 받아서, 또는 정치적 동기가 아니라 개인적인 원한을 산 탓에 죽임을 당했다. --- pp.284-285

이스라엘 측은 몇몇 지역에서 군대를 철수하면서, 유대인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할 지역을 거치지 않고 정착촌끼리 오갈 수 있도록 우회 도로를 건설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우회 도로가 생기면서 유대인 정착민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팔레스타인인 밀집 지역을 통과하지 않는 우회 도로가 생겨 유대인 정착민이 전보다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게 되자, 정착촌 인구가 대폭 늘면서 결과적으로 이 기간에 정착촌 규모가 크게 확대되었다.
그러자 새로 이주해 온 사람들을 위해 새로 정착촌을 건설할 더 넓은 토지와 새 우회 도로-팔레스타인 사람은 사용할 수 없는 유대인 정착민 전용 도로망-를 건설할 땅이 필요해졌다. 필요한 토지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서 거둬들였다.
이리하여 결국 팔레스타인 사람들, 특히 서안 주민들의 생활 터전은 도시나 마을 단위로 동떨어진 채, 새로 들어선 복잡한 도로망과 정착촌, 새로 유입된 수많은 정착민에게 둘러싸여 고립되었다.
이스라엘 점령 체제가 종식되기는커녕 더 깊숙해졌던 것이다. --- pp.344-345

물론 총리는 시리아와 정식으로 평화로운 관계를 맺는 데 따른 전략적 이익을 잘 알았다. 그렇지만 일이 성사되더라도 자신이 열심히 싸웠으며 골란고원을 손쉽게 양보하지는 않았다는 인식을 이스라엘 국민에게 심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워싱턴에 도착한 순간부터 자신이 이스라엘의 이익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기회, 그리고 되도록 시간을 끌어서 협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줄 기회를 찾았다. --- p.387

클린턴은 아라파트를 만나기에 앞서 바라크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선의의 표시로 이스라엘이 구금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 수감자들을 풀어준다면 아라파트에게 정상회담에 나설 의사가 어느 정도 있는지 헤아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일종의 압력을 넣었다. 이스라엘 교도소에 갇혀 있는 팔레스타인 수감자 문제는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언제나 민감한 사안이었으며, 그들의 석방은 언제나 최우선 과제였다.
바라크는 이에 대한 응답으로 팔레스타인인 수감자 1860명 중 단 세 명만을 석방했다. 차라리 단 한 명도 풀어주지 않는 편이 나았을 만큼 아라파트에게 모욕적인 일이었다. --- pp.408-409

“우리 하마스는 자살 공격이야말로 …… 팔레스타인 사람이 점령에 항거해 꺼내 보일 수 있는 카드라고 생각합니다. …… 어차피 우리에게는 아파치 헬리콥터 같은 무기가 없으니까 …… 그래서 우리 나름의 방법을 취하는 겁니다.”
정밀 타격이 가능한 인간 유도 미사일인 자살 폭탄은 주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해서 많은 사상자를 내고, 일상생활을 마비시키며, 전체 이스라엘인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린다. 알아크사 인티파다의 초기 2년 동안 팔레스타인은 무려 145명이나 되는 자살 폭파범을 이스라엘로 보냈다. 첫 번째 인티파다의 상징이 이스라엘군을 향해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이라면, 알아크사 인티파다를 상징하는 것은 자살 폭파범이었다. --- p.496

가자 시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 떨어진 1톤짜리 거대한 폭탄은 셰하데흐는 물론이고 무고한 사람 14명의 목숨까지 앗아 갔다. 희생된 사람 중에는 셰하데흐의 딸과 부인(벤엘리에제르는 “그의 부인 역시 테러리스트였다고 알고 있어요”라고 필자에게 말했다)도 있었다.
무고한 인명 피해가 났는데도 공군 총사령관 단 할루츠 장군은 아무런 후회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전투기를 몰았던 대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군, 오늘 밤에는 편히 잘 수 있네……, 물론 나도……. 제군의 임무 수행은 완벽했네……, 아주 완벽했어.”
이 작전이 전쟁범죄의 구성 요건을 갖췄는지 여부를 가리는 것은 국제법 전문가들이 할 일이다. 다만 그런 엄청난 위력을 지닌 폭탄을 인구 밀집 지역에 투하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판단력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 pp.520-521

국제사법재판소는 2004년 권고 의견을 내면서, 장벽 건설은 “점령된 팔레스타인 영토 내 주민들의 이동할 자유를 침해하여 ……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일할 권리, 건강을 추구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는 물론 적절한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까지 침해한다”고 비난하고, 따라서 “이스라엘은 즉각 장벽 건설을 중단하고 …… 장벽 건설을 목적으로 개인이나 법인에게서 수용한 토지와 과수원, 올리브 농장 등 부동산을 돌려줄 의무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 pp.5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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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에서 두 가지 놀라운 사실에 직면했다. 바로 이스라엘군 장교 출신 역사가에 의해 불편한 진실이 기록되고 증언되었다는 점이다. 자칫 매국노로 취급되기 쉬운 상황에서 참회록 같은 그의 고백은,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가 한 가지 가능성이 되어 언젠가는 세상을 바꾸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던져준다. 둘째는 전공자들조차 접근할 수 없는 일급비밀 문서와 이제껏 공개된 적이 없는 각종 자료를 제공하면서, 지난 50년 동안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뤄진 군사적 점령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완벽한 역사 기록으로 구성하고, 이스라엘의 억지 논리와 명분이 어떻게 생성, 변형되어왔는지를 예리하게 포착, 신선한 관점을 제시한 점이다.”
-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관련자 인터뷰와 새롭게 발굴된 중요한 기록 자료를 바탕으로 치밀한 조사를 거쳐 설득력 있게 쓴, 전략상의 비극에 관한 책이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 점령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깨달았을 때조차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했다.”
- 로렌스 프리드먼 (런던 킹스칼리지 대학 전쟁연구학과 교수, 《전략의 역사》 저자)

이스라엘의 승리는 승자에게도 저주였다. 그로 말미암아 본래 사회주의 성격이 강한 작은 공동체였던 이스라엘이 식민 제국으로 변모했다. ... 브레크먼이 확보한 고위급 정보의 수준은 독보적이다. 덕분에 그는 일반에 공개되기 어려운 일급비밀 메모, 서신, 정보 보고서 등을 직접 인용할 수 있었다. 이 중에는 이스라엘 정보요원이 도청한 빌 클린턴 대통령과 시리아 외교관, 팔레스타인 협상단의 전화 통화 녹취록도 있다. ... 브레크먼은 그 저주받은 승리에서 비롯된 분쟁을 명석하게 설명하면서 상세하고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 ... 가학 행위를 즐기는 군인, 아랍인 수감자에게 가해지는 고문, 제도적인 인권 침해, 통행금지와 지역 봉쇄 등 점령을 당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저자는 직접적인 증언을 통해 보여준다.
아비 쉴레임Avi Shlaim(이라크 태생 영국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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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 절판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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