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야말로 20세기 홀로코스트의 최대 피해자가 21세기 무소불위의 가해자가 되는 역사적 아이러니의 결정판이다.
---「추천의 글: 이스라엘 문제의 본질을 짚어낸 단비 같은 길잡이」중에서
나의 바람은 이 분야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이나 배경지식이 있는 학생들 모두에게 이 책이 유용한 도구가 됐으면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라는 늘 뜨거운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모든 이를 대상으로 한다. 이 책은 균형 잡힌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땅에서 식민지화되고, 점령당하고, 억압받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대신해 권력의 균형을 바로잡으려는 또 하나의 시도다.
---「서문」중에서
결론적으로 팔레스타인은 빈 땅이 아니었다. 19세기 팔레스타인은 근대화와 민족 국가화 과정이 진행 중인 풍요롭고 비옥한 지중해 동쪽 세계의 일부였다. 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사막도 아니었다. 20세기 근대 사회로 접어들기 직전의 유목 국가였으며, 그 변혁에 따르는 이점과 폐해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시온주의 운동에 의한 식민지화로 인해 이 근대화 과정은 팔레스타인 원주민 대부분에게 재앙이 됐다.
---「01. 팔레스타인은 빈 땅이었다」중에서
지금까지 밸푸어 선언을 살펴본 모든 연구의 결론은 이렇다. 영국의 다양한 의사 결정자들이 팔레스타인을 유대인의 고향으로 간주하는 게 그 지역에 대한 영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후, 이 동맹 덕분에 유대인들은 영국 국왕의 총칼로 보호받는 동시에, 영국의 후원하에 유대 국가를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02. 유대 민족에게는 땅이 없었다」중에서
그러나 이러한 종교적 비전 뒤에는 고전적인 반유대주의 정서가 숨어 있었다. 유대인 공동체를 팔레스타인 쪽으로 밀어붙인 것은 종교적 이유만이 아니었다. 유대인 없는 유럽을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는 유럽에서 유대인을 사라지게 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는 일이었다.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하면 메시아의 재림이 일어날 것이었다.
---「03. 시온주의와 유대교는 같다」중에서
누군가가 팔레스타인이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었고, 땅 없는 이스라엘 민족을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스스로를 방어할 논거 자체를 빼앗기게 된다. 팔레스타인인이 자기 땅을 지키기 위해 하는 모든 노력은 정당한 소유자에 대한 근거 없는 폭력 행위가 되어 버린다. 따라서 시온주의를 식민주의로 논의하는 일과, 팔레스타인인을 식민지 원주민으로 논의하는 문제를 분리하기는 어렵다. 이 두 가지는 같은 해석으로 연결되어 있다.
---「04. 시온주의는 식민주의가 아니다」중에서
과거든 현재든 이스라엘의 종족 청소 정책이 시사하는 바를 국제 사회가 인식하고 해결하지 않는 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를 무시하고서는 양측 분쟁 당사자들을 화해시키려는 시도들은 모두 지속적으로 힘을 잃을 것이다. 이것이 ‘1948년 사건’을 종족 청소 작전으로 바라봐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다. 정치적 해결책이 갈등의 근원, 즉 팔레스타인인의 추방을 회피하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거 회피가 이전의 모든 평화 협정이 붕괴된 주요 원인이다.
---「05. 1948년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고향을 떠났다」중에서
1967년 이후 이스라엘의 실제 의도가 무엇인지 판단하는 또 다른 방법은 이 정책들을 팔레스타인인 피해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점령 이후 새 통치자는 서안과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매우 불가능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가두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난민도 아니고, 시민도 아니었다. 시민권 없는 거주민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시민권과 인권이 없고 스스로의 미래에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는 거대한 감옥에 갇힌 수감자이고, 여러 면에서 여전히 그렇다.
---「06. 1967년 6월 전쟁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전쟁이었다」중에서
민주주의를 판별하는 기준은 그 사회에 살고 있는 소수자를 얼마나 포용하는가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은 진정한 민주주의에 훨씬 못 미친다. 그 사례가 있다. 새로운 영토를 얻은 다음에 다수의 우월한 지위를 보장하는 여러 법안이 통과됐다. 시민권에 관한 법, 토지 소유권에 관한 법,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귀환법이 그것이다. 귀환법은 세계 어디에서 태어났더라도 모든 유대인에게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특히 이 법은 노골적으로 비민주적이다. 1948년 유엔 총회 결의안 194를 통해 국제적으로 인정된 팔레스타인인의 귀환권을 전면 거부하기 때문이다.
---「07.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유일한 민주 국가다」중에서
사실 극단적인 압박이 있지 않고서야 원주민 집단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자기 땅을 정착민 집단과 나눌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슬로 협상이 공정하고 평등한 평화 추구의 과정이 아니라 패배하고 식민지화된 민족이 타협에 동의하는 과정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고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해결책을 억지로 모색해야 했다.
---「08. 오슬로 신화」중에서
사실 2009년 ‘캐스트 레드 작전’이 시작된 이후로 나는 이스라엘의 정책을 “점진적 대량 학살”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매우 민감한 용어여서 사용을 망설였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설명할 다른 용어를 찾을 수가 없다.
---「09. 가자 신화」중에서
‘두 국가 해법’은 유대 국가가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즉, 유대인은 다른 곳이 아닌 팔레스타인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 개념은 반유대주의의 핵심에 가깝다. 간접적으로 말하자면, ‘두 국가 해법’은 이스라엘과 유대교가 같다는 가정에 기반해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유대교의 이름으로 하는 일이라 고집하고, 그것이 세계 각국에서 거부당하면 이스라엘뿐 아니라 유대교를 향한 비판이라고 주장한다.
---「10. ‘두 국가 해법’이 유일한 길이다」중에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진정성 있는 시도가 이뤄지려면, 역사의 단면을 깊이 다뤄야 한다. 시오니즘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식민지 프로젝트로 변모할 수 있었다. 문명 사회에서 식민주의를 거부하던 그 시기에 말이다. 유대 국가의 설립이 유럽, 특히 서독 입장에서는 사상 최악의 반유대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쉬운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새로운 독일”을 인정한다고 처음으로 선언한 국가였다. 그 대가로 이스라엘은 많은 돈을 받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팔레스타인 전체를 이스라엘로 바꿀 수 있는 백지 위임장을 받았다는 점이다. 시온주의는 스스로를 반유대주의의 해결책이라고 제안했지만, 반유대주의가 계속 존재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맺음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