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7년 02월 10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160쪽 | 296g | 128*188*20mm |
ISBN13 | 9788932918143 |
ISBN10 | 8932918147 |
발행일 | 2017년 02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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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160쪽 | 296g | 128*188*20mm |
ISBN13 | 9788932918143 |
ISBN10 | 8932918147 |
MD 한마디
[이 책의 결말은 걸작 중에서도 걸작이다] 1930년대 독일을 배경으로 유대인 소년과 독일 귀족 소년의 아름답고 슬픈 우정을 그린 걸작. 나치즘과 홀로코스트의 시대를 다룬 소설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지금까지 널리 읽히는 책 중 하나다. 특히 엄청난 반전이 담긴 결말은 강렬한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 문학MD 김도훈
1977년판 서문 아서 케스틀러 1997년판 서문 장 도르메송 동급생 옮긴이의 말 |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올 때가 있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단지 그 물결에 맡기고 흘러가면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물색할 수 밖에. 파도가 멈출 때까지...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어제의 이웃이, 친구가 어느 순간 적이 되어 돌을 던지고, 충성을 다했던 조국이건만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평범한 어린 소녀들이 위안부로 끌려가 인생을 송두리째 뺏겨버리기도 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대의 물살에 밀리는 상황은 이처럼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기에 솔직히 두렵기도 하다.
독일의 아름다운 도시 슈투트가르트에서 두 소년이 만났다. 유대인 소년 한스와 독일 귀족 소년 콘라딘. 이 소설은 한스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16세 생일이 지나고 이틀 뒤 전학 온 콘라딘을 보는 순간 그의 우아한 모습과 행동 하나하나에 끌리는 한스. 우정의 로맨틱한 이상형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여겨지는 아이가 없었던 한스는 콘라딘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의 관심을 끌기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던 한스는 마침내 콘라딘과 친구가 되기에 이르렀다. 같이 여행도 다니고, 예술,철학,신,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우정을 키워나갔다.
그러는 동안 정치적으로 불안한 기운이 서서히 번지고 있었다.벽에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표식이 나타났다거나 유대계 시민이 괴롭힘을 당했다는 둥. 하지만,그의 고향 슈투트가르트는 언제나처럼 평온할 것이라 생각했지만,아이들만 남아 있던 이웃집에 불이 나서 모두 죽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한스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그렇게 서서히 그들에게도 시대의 거센 물결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스는 콘라딘을 자기 집에도 데려오고 부모님께 인사도 시키고 했다. 반면, 콘라딘은 집으로 초대하지도 않았고,시간이 흘러 초대하기는 했지만 그의 부모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가게 되고 콘라딘 가족을 만나지만,콘라딘은 한스를 모른척 한다. 한스는 며칠 후 따져 물었다.콘라딘의 어머니는 유대인을 혐오하는 사람으로 한스를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콘라딘은 한스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를 그런 두들겨 맞은 개 같은 눈으로 보지마! 내가 우리 부모님 대신 책임 져야해? 그게 뭐 하나라도 내 잘못이야? 세상이 그렇게 돌아간다는 것 때문에 나를 비난하고 싶니? 이제는 우리 둘 모두 꿈 꾸기를 그만두고 성장하면서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 아니니? (중략) 너는 누구에게나 네 이상적인 우정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너무 심하게 세워! 너는 단순한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해. -p120~121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았을 때 거리감이 생겨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알면서 모른척 넘어가기도 한다.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솔직한 상황을 알아버린 그 순간 한스와 콘라딘 사이에 조그만 개울 하나가 생겨버렸다. 그들의 학교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들이 닥치고 한스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콘라딘은 힘이 되어주질 않았고,한스 또한 그를 피하게 되었다.부모님은 한스를 뉴욕 친척들에게 보내고, 그들은 차마 조국을 버릴 수 없었기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미국으로 떠나기 이틀 전에 콘라딘이 보낸 한 통의 편지에는 자신은 히틀러를 선택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한, 한스에 대한 깊은 우정도 ...
미국으로 온 지 30년의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 예전 학교의 인명부와 제 2차 세계대전 때 산화한 동창들을 기리는 추모비 건립에 기부해 달라는 호소문이 날라왔다.
그를 다시는 보지 못할 텐데 그가 죽었건 살았건 거기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문이 열리고 그가 걸어오는 일은 정말로 불가능한 일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지 않은가? -p150
그는 궁금하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콘라딘의 삶에 대해서 알게 된다. 그를 위해서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었고, 처음으로 그가 '안녕,한스'라고 말했던 3월 15일을 언제까지고 기억할거라는 한스가 만난 그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마지막 한 문장에 콘라딘의 가슴 아픈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스가 받았을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1971년에 출간된 이 소설의 1977년판 서문을 쓴 작가 아서 케스틀러는 이 책을 작은 걸작이라고 말했다. 책의 크기가 작고, 주제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인데도 향수 어린 단조 minor로 쓰여졌다는 느낌을 말함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정말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전반부에 펼쳐지는 그들이 나누는 우정은 은근한 미소를 떠올리게 했고,알게 모르게 압박해오는 정치적 상황은 서서히 긴장감을 높여왔다. 작가이기 이전에 화가이기 때문이었을까? 과장됨없이 담백하게 써내려간 글들은 수수한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그들의 영원할 수 없었던 우정이 더 아프게 다가왔는 지도 모르겠다. 나치 정권이 아니었더라면 그들의 우정은,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앞에서 개인의 존재감이 너무 미약해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다. 특히 히틀러의 집권과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시기의 독일이 그 배경이라면 아마도 더욱 그러할 것이다. 독재자의 출현과 거대한 전쟁 속에서 생명은 물론이거니와 사랑, 우정과 같은 개인의 감정은 극도로 배제되거나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러한 점에서 프레드 울만의 <동급생>은 이러한 편견을 극복하는 작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애초에 이 책이 이미 언급한 거대한 역사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의 우정을 다룬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일반적인 전개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어서 출간 이후 나중에 오히려 재평가가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장편이 아니라는 분량적인 측면 때문이었을까? 이야기는 분명 히틀러의 집권과 더불어 점점 2차세계대전으로 향하는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건만 이러한 배경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없이 한스와 콘라딘의 우정에 대하여 이야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한스가 다니던 학교로 전학을 온 콘라딘에 대한 한스의 경외감은 마치 <빨강머리 앤>의 앤 셜리가 다이애나 베리와 친구가 되기를 열망하던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된다. 백작 가문 출신이면서 동시에 한스가 그토록 관심있어 하던 호엔펠스 집안 출신의 콘라딘에 대하여 한스는 어떻게든 그와 친구가 되기를 고대하면서 나름의 열병을 앓게 된다. 콘라딘이 한스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학교에서 유일한 친구가 되는 순간은 앤 셜리와 다이애나가 흐르는 시냇물 앞에서 맹세를 했던 장면을 떠올릴 정도이다.
<동급생>은 제목처럼 한스와 콘라딘의 우정의 형성 과정을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빨강머리 앤>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심어준다. 당시 시대를 감안하였을 때, 나중에 비극으로 흘러가리라 예상되는 장치가 이야기의 초반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한스는 동네에서 저명한 의사를 아버지로 두고 있는 유대인 출신이었고, 콘라딘은 독일의 명망있는 귀족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역사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직접 내세웠다면 이내 이 작품은 곧바로 두 소년의 우정이 아니라 시대의 비극을 먼저 떠올릴 수 있겠지만, 두 소년의 관점에 따라 진행되는 이야기는 밝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는 그들이 살고 있던 슈바벤 지방이 베를린에서 멀리 떨어져있던 지역이었기에 당시의 심각한 분위기가 곧바로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음을 은연중에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인 프레드 울만이 마치 자신의 회고록인 것처럼 나치의 박해를 피하여 떠나온 슈투트가르트의 향수를 배경으로 삼고 있었기에 두 소년의 우정은 그러한 지역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시를 통하여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한스와 콘라딘 뿐만 아니라 읽는 이로 하여금 당시의 무거운 시대적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시적으로 전개된다. 횔덜린이 슈바벤 지방의 튀링겐과 연관이 있는만큼 저자는 자신의 향수를 은연중 횔덜린의 시를 통하여 내비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역시 역사적인 소용돌이는 쉽게 비켜갈 수 없음이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유대인을 극도로 싫어하는 어머니의 존재로 인하여 콘라딘이 자신의 친구인 한스를 어머니에게 소개할 수 없는 상황은 둘의 관계가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을 암시하면서 프로이센 출신의 역사 교사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그의 등장은 그동안 나치의 정책에 노출되지 않았던 슈바벤 지방 역시 히틀러를 지도자로 숭배하기 시작하였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결국 <동급생>의 마지막은 한스와 콘라딘의 아름다운 우정도 역사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비극적인 상황을 잔잔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동급생>은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비극적인 상황과 더불어 두 소년의 아름다운 우정을 극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라 생각이 든다. 처음 언급한 것처럼 시대적인 흐름을 오히려 나중에 배치함으로써 개인의 존재감이 결코 작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저자의 고향에 대한 향수가 두 소년의 우정을 쌓는 과정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 아닐까 생각된다. 또한 마지막에는 결국 상황에 굴복하여 우정이 산산조각난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의 단 한줄로 인하여 극적인 반전을 이끌어냈다는 점은 단편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좀더 들여다본다면 책 속의 인물들을 통하여 거꾸로 당시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가볍게 읽을만한 책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근원 가까이에 깃들인 것은 그곳을 떠나길 꺼려하는 법이니
- p. 139 : 횔덜린의 시 [방랑]의 일부 -
실제 저자는 독일을 탈출하여 결국 영국에 정착하여 거기에서 삶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콘라딘이 떠나는 한스에게 보낸 편지 중 인용된 횔덜린의 시와 같이 고향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그가 떠날 수 밖에 없는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이 바로 프레드 울만으로 하여금 <동급생>을 쓸 수 있게 하였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 너머에서 느낄 수 있는 저자의 향수와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상하리만큼 잔잔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바로 <동급생>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그는 1923년 2월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유대인 의사의 아들 한스 슈바르츠는 그날 가를 알렉산더 김나지움으로 전학 온 그라프 폰 호엔펠스, 콘라딘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친구가 없던 한스는 자신의 세상과 다른 곳에서 온 듯한 그를 친구로 만들기로 결심하고 수업 시간에 돋보이고자 애썼고 자신의 보물로 그 아이의 관심을 받는 데 성공한다.
다음 몇 달 동안은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봄이 와서 온 천지가 벚꽃과 사과꽃, 배꽃과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어우러진 꽃들의 모임이 되었고 미루나무들은 그 나름의 은빛을, 버드나무들은 그 나름의 담황색을 뽐냈다. 슈바벤의 완만하고 평온하고 푸르른 언덕들은 포도밭과 과수원들로 덮이고 성채들로 왕관이 씌워졌다. (p.56)
우리는 그 모든 의문점들을 거의 매일같이 논의했다. 슈투트가르트의 거리들을 엄숙하게 오르내리거나 때로는 밤하늘에 떠 있는 베텔게우스"와 알데바란'을 올려다보기도 하면서. 그러면 그 별들은 수백만 광년 떨어진 곳에서 조롱하듯 차갑게 깜빡이는 뱀의 눈처럼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p.70~71)
둘의 우정은 날로 깊어지고 한스는 콘라딘을 집으로 초대해 부모님께 소개하지만, 콘라딘은 아주 가끔 그의 부모님이 부재중일 때 한스를 집으로 데려간다. 히틀러의 인기가 높아지고 그를 따르며 유대인을 혐오하는 호엔펠스의 어머니의 모습은 앞으로 이 둘의 우정이 예전 같지 않게 될 것을 예견한다. 독일 문화의 꽃을 피운 슈트가르트에서조차 홀로코스트라는 잔혹 범죄는 피해 가지 못하고 십 대들의 우정도 그렇게 끝을 향한다. 한스는 미국 친척 집으로 가게 되고 이곳에 남아 자신이 유대인이기보다 독일인으로 당당하게 살고자 했던 부모님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나는 그에게 손을 내주었지만 차마 그의 눈을 들여다보지는 못했다. 그랬다가는 우리 둘 중 하나가, 아니면 둘 다 울기 시작할 것 같아서였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겨우 열여섯 살짜리 아이들이었으니까. 천천히 콘라딘이 철 대문을, 그의 세상으로부터 나를 갈라놓는 문을 닫았다. 앞으로 내가 그 경계선을 다시는 넘지 못할 것이고 호엔펠스 가문의 저택은 영원히 내게 닫히리라는 것을 나도 알았고 그도 알았다. (p.121)
30년이 지난 후 변호사로 나름 성공한 삶을 산 한스에게 제2차 세계 대전 때 산화한 동창들을 위한 추모비 건립에 기부를 요청하는 호소문과 인명부가 날아온다. 콘라딘의 생사를 확인하기를 주저하다 결국 H로 시작되는 페이지 속에 그의 이름을 마주한다.
마지막 한 문장의 그 강렬함은 이 책을 읽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짧은 한 문장을 통해 그들의 우정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충격과 감동을 담은 이 한 문장으로 프레드 울만은 아름다움과 고결한 이야기를 마무리하지만, 그 여운은 오래도록 남는다. 짧은 이야기에 강렬함을 담은 책이 무엇이지 보여주는 이 작은 책의 힘은 절대 적지 않다. 우정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역사의 아픔을 이 작은 책 속에 우아하고 간결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그 역사적 비극이 많이 알려져 있기에 더 구체적인 상황의 설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홀로코스트의 이야기를 접하면 항상 우리의 아픈 역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의 우리 민족의 아픔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누군가는 그 시대에 대한 반성과 용서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문학적으로 더 많은 접근을 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