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압도되면 몸 안팎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몸은 항상 지쳐있고 인지에 어려움이 생겨 올바른 판단도 내리기 어렵다. 매사에 집중이 안 되고 의욕도 떨어져 삶이 고통스럽게만 여겨진다. 바로 이때가 내면의 대화를 시작하며 글을 써야 할 시점이다
--- p.37~38
내가 인도하는 수업에 여러 번 참석했던 어느 50대 여성은 다음 글(내 이름은 수치심중동/ 앨리스 밀러)을 읽으며 통곡했다. 어린 시절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다는 사실과, 평탄치 않은 결혼 생활 때문에 겪었던 슬픔과 아픔이 겹쳐 그녀는 한참을 울었다. 집에 가서도 며칠이나 앓아눕기까지 했다.
--- p.63
그렇다. 인간에게는 내면에 잠재된 치유능력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치유능력은 인간관계에서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의 내면에 있는 가장 중요한 자존감이나 삶에 대한 열망, 소망, 위로, 사랑, 믿음, 정직 등은 우리를 치유하는 근본적인 힘이 될 수 있다. 자신의 가치를 감사히 여기고 타인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야말로 진실된 삶을 찾는 일 중 하나이다.
--- p.74
릴케의 시를 읽고 나누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우리는 모두 떨어진다. 여기 이 손이 떨어진다’라는 구절에서 자신들이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는 고백을 하곤 했다. ‘떨어지는 모든 것을 붙잡는 손’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삶에 적용시키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러
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들은 다시 그 손안에 들어왔고 힘을 얻어가고 있다고 고백했다.
--- p.82
치유를 위한 글을 쓸 때, 나와 함께 대화할 수 있는 동료나 글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쓴 시 〈이런 친구 보셨나요〉의 구절처럼 ‘묵묵히 가슴의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 ‘내 옆에 앉아 고요히 흐르는 강물처럼 나를 이해하며 감싸줄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 이때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친구는 물론, 나의 단점을 알면서도 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상상 속의 친구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 p.119~120
김선영 씨는 가장 소중한 것을 두 번이나 잃은 30대 후반의 내담자였다. 중학교 진학 직전에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신 뒤 그녀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왔다. 여러 번 죽고 싶었을 정도로 사춘기를 힘들게 보냈으나 홀로 계신 아버지를 두고 그럴 수 없어서, 우울과 분노, 회피 등의 감정들을 겪으며 방황하다가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러다 아버지는 재혼하셨고, 그녀는 직업을 갖기 위해 여기저기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그런 도중에 남자 친구를 만나 사귀다가 육체적인 관계를 맺게 되자, 어린 나이에 준비되지 않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결혼생활도 평탄치 않았다. 남편은 선영을 피해 혼자서 낚시를 가거나 집을 비우는 날이 잦았다. 그녀는 현재의 상황에서 비롯된 외로움과 어린 시절의 고통이 겹쳐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설상가상으로 어렵게 얻은 아이마저 병으로 죽게 되었다.
그 뒤 선영 씨는 깊은 우울과 낙심에 빠져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시시때때로 자살 충동을 느꼈고, 분노와 무기력, 슬픔, 불신, 절망감 등이 자주 그녀를 괴롭혔다.
…
수업에서 그녀는 글을 쓰고 읽으며, 여러 번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자신의 감정 상태를 드러낼 때마다 주위 사람들의 진실한 위로와 지지를 받으면서, 점차 그녀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감정 상태를 조절하게 된 것이다.
--- p.223~224
그녀는 이 글을 쓰면서도, 읽으면서도 아이처럼 많이 울기도 하고 때로 통곡을 하기도 했다. 더욱 많은 글들을 어린 시절로 돌아가 대화체로 쓰면서 그녀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처럼 심각한 감정, 불편하고 고통스런 감정일수록 드러내고, 위로와 지지를 받을 때 우리의 내면은 불편을 벗어나 평정을 찾을 수 있다. 이 과정이 끝난 후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보다 더 고통을 당해 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럴 때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생각을 가다듬는 시간이 필요하다. 동시에 자신과의 대화는 많은 도움이 된다.
그렇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는 것은 큰 불행임이 틀림없지만, 그러나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여겨보자. 아무리 어려운 고통이나 큰 어려움일지라도 그것을 통하여 배울 점은 있으며 나를 유익케 하는 것들이 있다.
--- p.227
내가 상담을 통해 만난 내담자들과 ‘시와 글쓰기 치유반’에 참여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우울, 분노, 불안, 슬픔과 굶주림 등의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자신의 소중함과 가치를 모른 채 방황하고 있는 그들에게 글쓰기는 놀라운 치료 효과를 발휘했다. 특히 배우자나 자녀를 잃고 의사소통 능력이 멈춰버린 사람들에게 언어와 생각, 감정을 열어주는 소중한 창구가 되었다.
치료를 위한 시나 글을 쓰는 것은 그 시작부터 쓰기, 이후의 나눔 과정까지, 대부분이 인간, 삶, 관계 중심적이다. 여기에 문학적 표현요소가 더해지므로 쓰고 읽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
--- p.280
책에 수록된 시들이 이 책은 물론, 많은 집단치료에서 교재로, 도구로 사용되기를 기원한다. 먼저 시를 쓴 다음에 서로 반영해주고, 인정과 지지, 공감해줄 수 있는 집단이면 더욱 좋겠다. 특히 깊은 병을 앓고 있는 분들과 외상으로 고통을 당한 분들, 우울증과 깊은 불안에 시달리는 분들이 이 책을 끝까지 읽어줄 것을 바란다.
--- p.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