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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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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2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134쪽 | 206g | 128*205*20mm
ISBN13 9788932029825
ISBN10 8932029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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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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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다시는 못 올 것이라 생각하니
비가 오기 시작했고, 비를 머금은 공장에서
푸른 연기가 쉬지 않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흰 빨래는 내어놓질 못했다
너의 얼굴을 생각 바깥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그것은
나로 인해서 더러워지고 있었다

이 도시를 둘러싼 바다와 바다가 풍기는 살냄새
무서웠다 버스가 축축한 아스팔트를 감고 돌았다
버스의 진동에 따라 눈을 감고
거의 다 깨버린 잠을 붙잡았다
도착 이후에 끝을 말할 것이다
도시의 복판에 이르러 바다가 내보내는 냄새에
눈을 떴다 멀리 공장이 보이고
그 아래에 시커먼 빨래가 있고
끝이라 생각한 곳에서 다시 바다가 나타나고
길이 나타나고 여수였다

너의 얼굴이 완성되고 있었다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네 얼굴을 닮아버린 해안은
세계를 통틀어 여기뿐이므로

표정이 울상인 너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무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여수」중에서


범인은 벌을 받는다
죄인은 반성한다
반성을 위해서는 기억이 필요하고
똑똑히 기억할수록 성공적인 죄인이 된다
죄인은 질문하는 사람이다
무엇을 잘못했는가 무엇이 나인가 왜 나인가
이유에서부터 삶은 시작한다
지저분한 여행이 될 것이다

동유럽의 다 늙은 사내는 양과 사랑에 빠졌다
그는 그저 양 치는 목동이었는데
양을 겁탈한 순간을 털어놓을 곳이 없다
죄인은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양과 무엇을 했는가 무엇이 사랑인가 왜 양인가
양이 운다 사랑을 나눴던 목소리가 아니다
죄인은 여행을 떠난다 다른 종의 살 속으로
죄인은 반성한다. 하필 두 발로 선 짐승으로 태어난
결정적 이유를 모르겠다는 치명적 결함을
죄인은 받을 벌이 없다
양이 허술하게 뒷모습을 보인다
범인은 벌을 받지만 죄인은 여행을 떠난다
양의 주인인 아버지가 저벅저벅 걸어온다
무슨 벌을 받겠느냐,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물음

너는 아직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수만 마리의 양이 철철 피를 흘리며
나의 반성 속으로 모가지를 드리운다
---「죄인의 사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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