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순순히 작별 인사 하지 마세요, / 늙은이도 하루가 끝날 때 뜨겁게 몸부림치고 소리쳐야 합니다; / 빛의 소멸에 맞서 분노, 분노하십시오. // 현명한 사람들은, 생을 마감하며 어둠을 당연히 받아들일지언정, / 자신의 말들이 번개를 갈라지게 하지 못했기에, / 그냥 순순히 작별 인사 하지 않지요. // 착한 사람들은, 마지막 파도가 지나간 뒤 울부짖습니다 / 푸른 해변에서 춤추지 못했던 나약한 행적을 후회하며, / 빛의 소멸에 맞서 분노, 분노합니다.
-딜런 토머스,「그냥 순순히 작별 인사 하지 마세요」 부분
지금은 아주 독창적인 언어에 음유시인의 전통을 계승한 위대한 목소리로 기억되지만, 살아서 딜런 토머스는 후원자가 빌려준 집에 살며 친구들에게 돈을 구걸해 처자식을 부양하는 문단의 골칫덩이였다. 자신의 삶을 주체하지 못했던 시인이 지겨워질 즈음에, 서울의 어느 카페에서 친구에게 내가 번역 중인 딜런 토머스의 시를 보여주었다.
병상에 누워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보며 쓴 시야.
‘-ight’로 끝나는 행, 그리고 모음 ‘-ay’로 끝나는 행이 엇갈려 배치되어 소리 내어 읽으면 마치 노래처럼 강한 리듬감이 생기지.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처럼 19행에 2운의 시 형태를 ‘비라넬(villanelle)’이라고 해. 토머스는 언어 감각이 뛰어난 시인이었어. 첫 행에 나오는 ‘good night’이나 그 밑에 ‘close of day’ 그리고 ‘dying of the light’도 모두 죽음을 뜻하는 말이지.
---「1부 고통과 시간을 견디게 하는 힘」중에서
당신은 왜 여행을 하셨나요? / 집이 추웠기 때문이지. / 당신은 왜 여행을 하셨나요? / 하루해가 지고 다시 해가 뜨기까지 내가 언제나 해온 일이었으니까. / 당신은 어떤 옷을 입었나요? / 남색 양복, 하얀 셔츠, 노란색 타이, 그리고 노란색 양말. / 당신은 어떤 옷을 입었나요? /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어. 고통의 스카프가 나를 따뜻하게 해줬지. / 누구랑 잤나요? / 매일 밤 다른 여자와 잤지. / 누구랑 잤나요? / 나 혼자 잤어. 난 언제나 혼자 잤지. / 왜 내게 거짓말을 했나요? / 난 내가 항상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했어. / 왜 내게 거짓말을 했나요? / 진실도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니까 그런데 난 진실을 사랑해.
-마크 스트랜드,「아버지를 위한 대답들」 부분
“고통의 스카프가 나를 따뜻하게 해줬지.”
고통을 목에 둘러 늘 따뜻했지.
따뜻한 스카프의 이미지와 고통이라는 어두운 단어가 결합해 인생의 깊이를 담은 시구가 탄생했다. 여운이 길게 남는 행이다. 그만이 겪은 개인적인 고통일 수도 있지만, 시인의 아버지는 유태인이었다. 시대적인 고초도 섞였을 게다. 하긴, 모든 고통은 시
대적이다. …… 매일 밤 다른 여자와 자는 남자는 사실 혼자 자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이 시가 이해 안 된다면, 당신은 행운아이며 축복받은 인생을 산 사람이다. 그토록 단순하게 당신을 낳고 키워준 부모님에게 감사하시기를…….
---「2부 당신의 입에서 듣고 싶은 이야기들」중에서
그대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다른 아무것도 아닌 /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 주세요. / “난 그녀의 미소 때문에, 외모 때문에, / 상냥스러운 말투 때문에, 내 생각과 잘 맞을 거라는 / 재치 있는 생각 때문에, 어느 날 / 즐겁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 그녀를 사랑해”라고 말하지 마세요. / 사랑하는 이여, 이러한 것들은 스스로 변하거나, / 당신 마음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으니, / 그렇게 엮인 사랑은 또 그렇게 풀릴지도 모릅니다.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그대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부분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면, 이 아니라 ‘사랑해야 한다면’이다. 그만큼 절박하고, 아무 사랑이나 받지 않겠다는 결의가 내비치는 대목이다.
대화체에 인용문이 삽입되어 자연스러운 현장감이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사랑’이라는 진부한 단어가 열 번이나 나오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
환자였던 그녀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진실을 보았다. 미소 때문에, 외모 때문에, 상냥스러운 말투 때문에, 재치 있는 말 때문에 나를 사랑하지 마세요.
오로지 사랑만을 위해 나를 사랑해 달라고, 그대에게 이래라 저래라 주문하는 말투에서 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스트의 자의식이 엿보인다.
---「2부 당신의 입에서 듣고 싶은 이야기들」중에서
내가 젊고 대담하고 강했을 때, / 옳은 것은 옳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 나는 깃털 장식을 세우고 깃발 날리며 / 세상을 바로잡으러 달려 나갔다. / “나와라, 개××들아, 싸우자!”고 소리치고, / 나는 울었다.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도로시 파커,「베테랑」 부분
처음 읽을 때는 웃었고, 다시 음미하면서 내 속에 울음이 고였다. 깊은 곳을 찔린 듯, 아픔이 스며든다. 또 읽어도 지루하지 않다. 각 행이 ‘aabbcc-ddeeffgg’로 끝나는 운율도 완벽하다.
마지막 행의 반전이 멋지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가치판단을 유보하는 그런 태도를 사람들은 철학이라고 부르지. 침대에 누워 도로시 파커의 시를 손가락으로 훑으며 나는 철학자가 되었다.
도로시 파커의 시는 우리를 긴장시킨다.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옳은 쪽은 항상 옳고, 잘못된 쪽은 항상 잘못되었다고 믿는 이들에게 이 시는 불편할 수도 있다.
---「3부 예술은 착각이었네. 욕망도 헛것이었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