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하면 떠오르는 그림 하나가 있다. 붉은 망토를 두르고 백마에 올라타 전쟁터를 누비는 모습을 담은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이다. 프랑스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가 그린 이 초상화 덕분에 나폴레옹은 용맹한 장군의 이미지로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알프스 산을 넘을 당시 나폴레옹이 타고 있던 것은 사나운 백마가 아닌 얌전한 노새였으며, 선두에서 군대를 이끌기는커녕 안전이 확인되면 뒤를 쫓았다고 한다.(125쪽) 평생 권력자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호시탐탐 출세의 기회를 엿보던 다비드의 기민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권력의 냄새를 좇은 예술가가 있었는가 하면 돈 냄새를 잘 맡는 예술가도 있었다. 의사 지망생이었다가 캐리커처를 그리는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린 나다르는 사진 기술이 등장하고 얼마 안 있어 사진작가로 전업했다.(279~281쪽) 나다르는 곤충학자 파브르, 오페라 작곡가 로시니, 시인 보들레르 등 유명 인사의 초상사진을 독점했다. 현상 과정에서 얼굴의 잡티를 지워주는 서비스를 제공한 나다르는 고가의 초상사진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회화에 비해 더욱 극명한 사실성과 저렴한 생산비용을 장점으로 앞세우며 세상에 등장했던 사진이 사실에 대한 왜곡(?)과 차별화된 고가 정책을 통해 기술에서 예술로 인정받은 역설적인 순간이다.(284쪽)
자기 얼굴은 그대로 그리지 못한 사실주의 화가-귀스타브 쿠르베 천사를 그려달라는 의뢰인에게 “천사를 데려오면 그려주겠다”고 답할 만큼(269쪽) 사실주의를 추구했던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는 여러 버전의 자화상을 남겼다. 자화상 속 그의 모습들이 일관되지 않다는 점부터가 사실주의 화가로서의 명성을 의심케 하지만, 더 큰 반전은 따로 있다. 바로 그의 초상사진이다. 날렵하고 고상한 인상이 강조된 자화상과 달리 사진 속 그의 모습은 몸집이 크고 펑퍼짐하다.(272쪽) 쿠르베는 자신만큼은 보이는 대로 그리지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