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소설을 써서 먹고살고 있다. 독자에게 “좋았어요” “재미있어요” 하는 말을 들을 때는 그야말로 꿈을 꾸는 듯 행복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아르바이트할 때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맛있어!” 하고 눈이 동그래지는 표정을 본 그 ‘순간’의 ‘기쁜’ 마음은 이길 수 없다. 전혀 종류가 다른 기쁨이란 것은 알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한 그 순간의 유대감을 나는 언제까지나 동경할 것이다. --- p.10
머그잔은 10년 된 것이다. 아버지가 두바이에 단신 부임했을 때 놀러가서 산 스타벅스 두바이. 모래색 낙타 그림이 있다. 점잖다. 한 손으로 들면 덜덜 울리는 무게감, 거기에 찰랑찰랑하게 따른 커피우유의 잘 익은 밤 같은 색을 좋아한다. 정오든 초저녁이든 이곳에서 나의 하루가 시작되는 기분이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맛있어, 하는 탄식이 엉겁결에 나온다. 그리고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건강하다. 살아 있다. 아, 감사해라. --- p.24
1인분의 쌀국수는 3인분으로 불어나, 대접에 다 담지 못하니 조금씩 덜어서 먹는다. 그러면 먹는 동안에 냄비에 남은 쌀국수는 계속 국물을 빨아들이고, 차게 식어서, 세 그릇째가 되면 역시 무언가의 뇌수 상태다. 거기다 레몬을 꾹 짜서 먹는다. 고명 따위 없다. 정말로 뇌수다. 처적, 처적, 처적. 마치 요괴 같다. --- p.46
무리해서 어른인 척하는 것보다 아이처럼 행동하는 편이 그런 가게에서는 멋있는 거라고, 그때 배웠다. 지금은 카페도 레스토랑도 혼자 갈 수 있다. 갑옷도 걸치지 않는다. --- p.66
내 꿈은 남자고등학교의 기숙사 보모가 되어 학생들에게 밥을 지어주는 것이다. 허기져서 돌아온 학생들이 내가 만든 색기 없는 밥, 돈가스나 크로켓, 생강구이나 야키소바를 아구아구 먹는 모습을 보고 싶다. 코스 요리를 즐기는 것도 ‘인생을 즐긴다’는 느낌이 들어서 멋지지만, 나는 ‘생명 그 자체’를 느끼고 싶다. 많은 음식이 무작정 소비되고 누군가의 피와 살‘만’ 돼 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 p.70
만약 ‘여자는 고급스러운 가게에 데려가면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하는 남자가 있다면 물론 오산이고, ‘남자는 야키니쿠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여자가 있다면 그것도 잘못됐다. 부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리길 바란다. --- p.76
따라 해보았지만, 상하레처럼 자연스럽게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족 모두 쩨부젠을 둘러싸고 앉아서 각자 손으로 먹는 모습을 보며 참 부럽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 표현할 수 없지만, 그저 빠르기만 한 나의 메트로놈 생활 속에는 절대로 없는 것이 그곳에는 있을 것이다. --- p.101
완성된 요리를 먹으면서 역시, 하고 생각한다. 굉장히 단순하고 간단하지만 맛있다. 절대 손이 많이 가는 접대용 요리가 아니지만, 맛있는 것을 모두 함께 먹으면 그것만으로 즐겁구나, 마음 편안하구나, 생각한다. 그런 감각을 가진 핀란드인, 역시 멋있어. --- p.113
실제로 외국에 가도 나는 내 허용 범위의 음식만 먹는 다. 하지만 실수로라도 그 나라를 알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우쭐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외국 분, 내게 캥거루 고기를, 원숭이의 뇌수를, 유충을 권하지 말아주세요. --- p.140
흠칫했다. 그의 조국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니 당신의 나라도, 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없었다. 대신 나는 몇 번이 고 이 요리 맛있다, 정말 맛있다는 말을 했다. 주인은 거기 에 대답하듯이 “고마워요” 하고 내내 미소를 지었다. 요리가 맛있는 나라는 좋은 나라다. 분명히 좋은 나라 일 것이다. --- p.148
나는 언제부터 미소시루에 다시를 넣고 끓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까. 처음 아침 식사를 차린 뒤부터 오늘 아침 식사를 만들 때까지, 나는 어떻게 어른이 됐을까. 아니, 아 직 어른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용감한 나는 이제 아득히 멀리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 p.156
어릴 때부터 밥을 먹는다, 이것이 나의 미각, 이란 것을 굉장히 믿어요. 사람을 만난다, 되도록 접촉한다는 것도.
--- p.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