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인 삶의 모습들을 겪으며, 또 한편으로는 이면의 경제적 현상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며 나는 궁금했다. 나는 우리 개인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힘든 상황 속에서도) 행복하게 하고 흡족하게 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것을 극복할까? 인간은 이런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까? 철학자, 종교학자, 심리학자들은 뭐라고 말할까? 이런 경험을 일반화할 수 있을까?
작금의 암울한 세계정세를 볼 때 모두가 우울증에 걸려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우울해하진 않는다. 왜 그럴까? 이런 불공정하고 위험하고 무자비한 세계에서 몇 년 혹은 심지어 몇십 년을 배우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 p.5~6
그런데 무엇이 행복인가? 정신의학은 뇌과학과 상반된 시각으로 행복을 진단한다. 정신의학 면에서 보면, 행복은 중추신경계의 이상 증상으로 진단할 수 있다. 행복한 순간에 우리는 합리성을 잃고, 논리적 사고력을 잃고, 감정의 균형을 잃는다. 그러나 다른 정신 질환들과 달리 그 순간에는 아무튼 행복하다.
자, 다시 생각해보자. 죽음의 고비를 몇 번씩 넘기고 급기야 복권에 당첨된 프라네 셀락의 인생이 행복일까, 아니면 감마파를 생성하는 마티유 리카르의 훈련된 정신이 행복일까? 아니면, 둘 다? 생각이 더 많아지고 복잡해지는 듯하다. 그러면 이런 질문은 어떤가? 행복의 원형이 존재할까? 아니면 여러 유형의 행복이 있을까? --- p.24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남이 나보다 더 행복하고 더 성공했고 더 부유하다는 상상이면 불행해지는 데 충분하다. 사회과학자들은 이것을 ‘지위 경쟁’이라 부르고, 저술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0은 ‘지위불안’이라고 불렀다. 어찌 부르든 간에 우리의 행복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만은 자명하다. 우리는 과연 이런 그물을 피할 수 있을까? 피할 수 있다! 이 그물을 피하고 싶다면, 연못만 제대로 찾아가면 된다. 작은 물고기가 큰 연못에 있는 것보다 큰 물고기가 작은 연못에 있는 게 낫다. 비교하더라도 당신이 비참한 패배자가 될 위험이 없는, 당신과 비슷한 수준의 친구를 찾아라. 높은 곳에서 빛나는 부자, 빼어난 미남미녀, 말 한마디로 수백 명이 머리를 조아리는 권력자와 스스로를 비교하지 마라. 그런 비교는 당신의 행복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 p.39
문화와 유전자 사이의 이런 관계는, 우리가 행복해지는 데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다. 유전자의 영향을 받든, 유전자에 영향을 끼치든, 우리는 행복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반증이 되니까. 물론 유전자연구로 보면 우리 손에는 행복을 만들 거대한 해머가 아니라 작은 가정용 망치가 들렸다. 비극적으로 들리는가?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한 번 생각해보라. 큰 해머로 벽에 못을 박다 실수라도 하면 그 피해가 얼마나 크겠는가? 우리의 유전자는 이것을 방지한다. 인생에 일어나는 일들 대부분은 가정용 망치면 충분하다. --- p.51
간단한 질문으로 한 나라 전체의 만족도를 결정할 수 있다고 정말로 확신할 수 있을까? 무엇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충만하게 하는지 대답에서 걸러낼 수 있을까? 설령 이런 것들이 가능하더라도, 행복에 대한 대답과 다른 측정치를 합치는 단계에서, 무엇이 행복하게 하는지 특정할 수 있을까? 만약 부유한 사람들이 주로 행복하다고 대답했다면, 돈이 행복하게 한다는 뜻일까? 이런 질문들에 경제학자의 대답은 오랫동안 명확하게 ‘아니오’였다. 반면 심리학자들은 약간 머뭇거리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 p.90
행복하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을 어떻게 쓰느냐다. 소비 기술은 어디에 돈을 쓰느냐 뿐만 아니라 얼마를 쓰느냐의 문제기도 하다.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소득 전부를 소비하거나 빚을 지는 것은 좋은 소비 기술이 아니다. 저축과 행복은 쌍방향으로 영향을 준다. 네덜란드 연구가 보여주듯이, 행복한 사람들이 적게 소비하고 많이 저축한다. 이것은 마치 고양이가 제 꼬리를 무는 형세다. 행복한 사람이 저축하고, 저축이 행복하게 한다. 이것을 학술용어로 ‘순환적 인과관계’라고 한다. 원인에 의해 결과가 나오고, 그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어 인과관계가 순환한다. --- p.118
경제학자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는 학술적 표제어 아래에 붙이는 주장은 간단하다. 행복은 제한에 있다. 좋은 것도 과하면 행복을 주지 않는다. 갈증이 났을 때 맥주를 마셔본 사람이라면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첫 잔은 환상적이다. 둘째 잔은 시원하지만, 첫 잔만큼은 아니다. 셋째 잔은 좋지만, 첫 잔과는 비교가 안 되고 둘째 잔보다 못하다. 이것은 모든 소비에 적용된다. 젤리, 초콜릿, 신발, 자동차 등 같은 물건을 많이 소비할수록, 추가되는 효용가치와 행복감은 줄어든다. 경제학자는 이것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_145
자신의 행동과 활동으로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강한 회복탄력성을 가졌고, 그래서 또한 부정적인 사건에 덜 괴로워했다. 약간 선동적으로 표현하면, 통제권을 가졌다고 믿는 사람이 통제권을 갖는다. 그러나 건강한 분량의 낙관주의와 건강에 나쁜 과도한 낙천 사이의 경계는 아주 좁다. 그러나 회복탄력성을 강화하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이른바 ‘쾌락자본’ 그러니까 개인적인 ‘행복자본’도 중요하다.7 사회적 관계, 지위, 자존감, 선망받는 직업 등이 행복자본일 수 있다. 행복자본이라는 용어에 기죽을 필요도, 행복자본을 얻기 위해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는 이미 행복자본을 넉넉히 갖고 있다. 친구, 제대로 기능하는 사회 환경, 그리고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그 무엇을 통한 이런 행복자본이 우리를 운명의 장난으로부터 보호한다. --- p.193
행복은 하루 동안에만 기복이 있는 게 아니다. 당연히 인생 전체에도 기복이 있다. 인생에서의 행복 리듬은 훨씬 더 복잡하다.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인생의 행복 리듬은 서로 다른 모습이다. 최신 연구들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형태의 인생 행복 리듬을 보여준다. 직선형, U자형, 뒤집힌 U자형. 직선형에서는 삶의 만족도가 나이와 함께 꾸준히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말하자면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진다. 어떤 연구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행복이 힘을 잃다가 특정 나이부터 다시 올라간다(만족도가 U자 형태로 변한다). 또 어떤 연구에서는 정확히 그 반대로 진행된다. 그러니까 나이가들수록 행복이 증가하다가 특정 나이부터 다시 감소한다. --- p.203
행복한 사람은 과거의 행복 경험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그저 갈등이 생기지 않는 수준에 만족한다. 그들은 오히려 과거의 추억을 방해할 수 있는 불편한 기억을 삭제한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말을 빌리면, 불편한 기억을 잊는 사람이 행복하다. 불행한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과거와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들은 과거의 일을 고민하고 숙고하고, 좋은 일뿐 아니라 나쁜 일까지 모두 기억한다. 이런 기억들이 행복을 방해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불행한 사람들이 정말로 나쁜 일을 겪었기 때문에 불행한지는 확실치 않다. 과거에 트라우마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현재 더 불행한 건 결코 아니다. --- p.222
민주적인 사회에서는 어떤 고난과 불행에 맞서 싸워야 할지 합의하기가 훨씬 쉽다. 그러나 정치로 인간을 행복하게 할 방법을 합의하려는 시도는 대혼란으로 끝날 것이다. 어떤 길이 행복으로 이끄는지에 대해 저마다 다른 아이디어를 가졌기 때문이다. 설령 상상하는 행복이 일치한다 하더라도, 이 상상을 실현할 도구가 정치에는 없다. 그러므로 포퍼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적 목표로 본다. 강요와 막대한 자유제한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목표다. 멋진 신세계가 손짓한다! 국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고유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신뢰할 만한 틀을 제공하는 것뿐이다.
--- p.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