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한국 우언문학사의 개념
한국 우언문학사는 우언문학을 한국문학사의 관점에서 고찰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한국문학사의 한 부분이 되겠지만 우언을 중심에 놓음으로써 문학사 기술의 영역을 확대하고 문학 현상을 더 깊게 이해하고자 하는 연구 목적을 지닌다. 그러나 우언이 그처럼 문학사를 관통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우언은 역사적 갈래로 보자면 우화와 혼동되기도 하지만 이론적 갈래로 보자면 거의 모든 문학 시대에 존재했던 큰 갈래이다. 설득의 수사법으로서 우언은 궁극적으로 교술에 귀속되겠지만, 그 구현 방식에 있어서는 타 갈래와 혼합하는 가탁성을 주요 특징으로 삼는다. 말하자면 문학 갈래를 좌표 개념으로 이해하자면 우언은 서사, 서정, 희곡 갈래를 활용하면서 교술적 주제를 담아내는 중간 갈래를 대표하고 있다. 그래서 우언은 기존의 관습적 문학 형식을 차용하거나 변형시키는 주변성을 띠기도 하고, 때로는 문학사에서 특정 양식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우언문학사는 갈래, 양식, 수사법, 주제 등의 여러 국면에 얽혀있는 문학사의 복잡한 국면을 효과적으로 고찰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한국 우언문학사의 주체는 한국문학사의 주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언이 발생하는 첫 시기에서부터 근대문학이 이루어진 시기까지의 한국 민족문학사의 담당층이 모두 관련된다. 다만 한국 우언문학은 작가가 알려진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작품에는 구비문학에 속하는 민간 우언과 특정한 작가가 문자로 만든 창작우언이 있다. 또 기존의 것을 모방, 변형한 것도 있고, 구비문학에서 한문문학으로 넘어오거나 한문문학과 국문문학이 번역 혹은 번안 관계에 놓인 것들도 있다. 따라서 한국 우언문학의 담당층은 구비문학, 한문문학, 국문문학의 집단 계층과 한문, 국문을 사용한 개별 작가 혹은 특정 계층이 모두 포함된다.
한국 우언문학사의 대상은 우언이다. 우언은 기존 갈래에 기대어 교술적 주제를 가탁하는 큰 갈래로서 존재했기 때문에 통사적 기술이 가능이다. 여기서 ‘우언’이라 함은 특정한 시대에 성행했던 양식 혹은 역사적 갈래에 한정되지 않고 그를 가능하게 했던 원리로서의 담론방식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동아시아에서 애초 ‘우언(寓言)’이라는 개념은 ??장자(莊子)??에서 비롯되었다.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지칭되던 고대말기의 사상가들이 자신들의 철학적, 정치적 견해를 효과적으로 펴나가기 위해 우언을 애용했다. 이는 플라톤의 ??공화국(Politeia)??, 초기 팔리어 경전 ??자타가(Jataka)??, 고대 유대인의 ??구약??과 예수의 ??신약?? 등에도 우언을 중요한 담론 전략으로 활용했던 것과 비슷하다. 그들의 이름을 비유담(Parable), 우의담(Allegory)이라고 다르게 부른다고 해서 문학사 현상이 크게 달랐던 것은 아니다. 그리스에서 이솝(Aesop)이라는 사람에 의해 짤막한 설화형 우언이 창작되어 우화(Fable)라고 불린 것도 모두 고대 말기의 현상으로서 세계문학사에서 동일한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장자??에서 ‘우언(寓言)’은 ‘중언(重言)’과 ‘치언(?言)’이라는 용어와 함께 언급되고 있어 주목된다. 우언을 다른 담론 방식과 함께 거론하면서 막연하나마 개념 정립의 시원을 열었다. 이들 ‘삼언(三言)’은 다른 무엇보다도 ??장자??라는 저작의 말하기 방식을 스스로 세 가지로 분류하여 특징화한 것으로 이해된다. 물론 동아시아의 후대 저술가들에 의해 이들이 재해석됨으로써 좀 더 분명한 개념으로 정비되어 나갔다. 따라서 본 저술에서도 ‘삼언’에 기대어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우언은 허구적 인물에 의한 담론, 중언은 역사적 인물에 근거한 가상적 담론, 치언은 일상적 체험을 통해 그 이면의 뜻을 찾아가는 담론을 지칭한다고 해석해 보자. 그렇다면 우언은 이계적 존재, 의인화된 존재 등이 등장하여 인간의 문제를 뒤집어 보고, 중언은 역사적 권위를 지닌 고인을 불러내어 당대의 사적을 말하게 함으로써 현실의 문제를 가탁하며, 치언은 현실적 체험 안에 숨어있는 의미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장자?? 전편의 담론은 그 셋의 여러 가지 조합으로 이루어지며, 삼언을 종합하는 담론 방식을 무엇이라 지칭하여 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우언이 열에 아홉이고, 중언이 열에 일곱이며, 치언은 늘 하는 말이라 했다. 여기서 삼언은 셋이나 둘이 겹쳐서 구사되는 담론 형태일 수밖에 없는데, 삼언의 결합 방식을 [허구+가상+우의], [허구+우의], [가상+우의] 등으로 상정할 수 있다. 반면에 어떠한 경우이든 우의를 곁들이지 않고 허구나 가상을 구사하는 담론은 ??장자??의 글쓰기가 아니다. 또 일상에서 발견하는 반어나 역설은 우의만 단독으로 구사되는 것이며 치언에 가깝다. 이같이 삼언을 각기 단독으로 구사하거나 여러 방식으로 조합하는 담론 방식을 총칭하자면 그 또한 우언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 듯하다. 이들은 다른 문명권의 우언 개념과 대비될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고사성어의 배경이 되는 우화 양식을 ‘우언’이라 하거나 이솝(Aesop)이 지었다고 하는 짤막한 이야기와 경구를 ‘페이블’이라 칭하는 것은 가장 좁은 범위의 우언이다. 앞에서 말했던 여러 문명권의 고대 말기 주요 사상가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진실을 에둘러 말하기 위해 비유담을 애용했다. 한국 고전 우언문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장자??와 같은 저술은 그 자체로 우언 글쓰기의 결과물이며 철학우언집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따라서 한국 우언문학이 한문문명권에 속했기 때문에 ‘우언’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적절하다.
우언은 서구의 ‘알레고리’와 동일한 개념이다. 서구에서는 알레고리, 패러블, 페이블을 구분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통괄하는 개념은 알레고리가 맡고 있다. 패러블은 특정한 이야기나 대화에 끼어드는 삽입 비유담의 양식이며, 페이블은 설화적 성격을 띤 단편적인 비유 격언의 양식이다. 이에 비해서 알레고리는 양식에 그치지 않고 알레고리적 수사법이나 담론 방식을 포괄하며 로망스 혹은 픽션이라는 역사적 양식의 유형을 구분하기 위한 기본 개념이다. 그것은 동아시아에서 설화적 속성을 지닌 우화, 일정한 창작 의도를 지닌 역사서 혹은 철학 담론에 삽입된 비유담, 문학사에서 특정한 문학 양식으로 변형을 거듭했던 전기(傳奇) 혹은 우언계 소설과 다르지 않다.
우언은 기본적으로 담론자의 이념을 주장하는 주제적 갈래이면서도 에둘러 말하는 방식으로 인해 다른 갈래와의 혼성적 특징을 띠게 된다. 우언은 교술이라는 큰 갈래에 속하지만 서사, 서정, 희곡 등의 큰 갈래의 하위 양식에 침투하여 실질적으로는 중간 갈래의 좌표에서 움직여 나갔다. 순수한 교술은 근대문학의 실용문에서나 실현될 뿐이며, 고전문학의 교술문학에서는 다른 갈래와의 혼종 양상이 두드러져서 수많은 시문체 형식의 변형과 분화를 촉진시켰다. 우언은 어떠한 특정 시문체가 아니며 오히려 새로운 양식을 개척해 나갔고, 그 와중에 기존의 문체에 어정쩡하게 끼어 있으면서 양식화되지 못한 경우도 많다. 따라서 우언은 교술문학의 혼종 양상 그 자체이며, 글쓰기 방식이자 수사 전략이라고 보아야만 포괄적인 문학사적 전망을 펴 나갈 수 있다.
한편 우화 양식을 설화에서 비롯된 서사 갈래에 소속시키고 우화와 우언은 근본적으로 다른 갈래라고 하면서 그 차별성을 크게 부각하는 것은 오히려 문학사의 실상을 왜곡시킨다. 우언이라는 상위 개념 아래에 우화가 포섭되는 양상을 문학사적 현상으로서 요긴하게 포착할 필요가 있다. 우언은 전래 설화, 체험담, 주변 사물 혹은 사유 방식 그 자체를 대상으로 삼고 기존의 형식과 문체를 활용해서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내기 일쑤이다. 그러한 반의모방(反意模倣)을 통해서 기존 통념의 이면적 의미를 부여하는 말하기, 글쓰기, 예술매체로 표현하기 등등을 시도하는 것이 우언이다. 우언의 사유방식과 표현 영역은 문학 이외에도 도상과 조형, 표제음악과 서사극, 애니메이션과 전자다매체까지 확장될 수 있다. 따라서 가장 넓은 범위의 ‘우언’ 문학은 에둘러 말하는 방식이 문학적 형식과 관습으로 정착된 특정 양식은 물론이고, 상징적 비유체계로 형상화된 문화적 담론까지를 포괄한다. 그 비유체계는 결국 우언적 사고와 표현으로서, 그 특정 양식은 우언문학의 하위 유형과 작품군으로서 범주화하여 고찰할 수 있다.
한국 우언문학사의 시대적 배경은 고대로부터 근대까지의 한국 역사와 문화이다. 우언은 고대 말기에 여러 문명권에서 일제히 생겨나서 근대이행기에 이르기까지 큰 구실을 하다가 근대 문학에 이르러 쇠퇴했다. 고대 우언은 문명권의 중심부에서 성행하여 중세 우언문학의 기준을 제시하고 중세 우언의 모방 대상이 되는 지위를 누렸다. 중세 우언문학은 문명권의 주변 민족들이 고대 우언을 받아들이면서 크게 확산됐지만, 중세 후기에 주변 민족의 민족어가 함께 발달하면서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한 모색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근대 이행기에는 우언이 문학사에서 큰 구실을 했다.
한국 우언문학의 시작도 고대 말기에 시작됐다. 우언적 사유는 고대 사회의 균열과 신화적 세계관에 대한 반성에서 생겨났다고 할 때 한국 문학에서도 그 자취를 찾을 수 있다. 특히 구비문학의 전승에서 구체적 자료가 마련되고, 중세 문헌에 끼어든 변형의 자취까지 자료에 포함시킬 수 있다. 중세 시기에는 문명권 공동문어와 민족어 문학에서 본격적 우언문학이 전개됐다. 중세 전기에는 말과 글의 우언문학이 교체되는 현상이 나타나며, 중세후기에는 문필 작가에 의해 우언문학의 양식이 개척됐다. 또한 중세후기에는 한문 영역을 넘어서 국문 우언이 교술 산문과 교술시에서 나타났다. 근대 이행기에는 우언이 구비 서사시나 소설에까지 침투했으며, 서구의 알레고리 문학이 알려지면서 신·구 우언의 충돌과 습합이 이루어졌다. 재래의 우언 수법을 활용한 작품들을 신문이나 잡지에 실어서 새로운 유통 방식을 꾀하였다. 근대문학에서도 우언이 존재하지만 서구의 알레고리 수법을 활용한 작품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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