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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동어미전

덴동어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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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5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247쪽 | 392g | 153*224*20mm
ISBN13 9788984315839
ISBN10 8984315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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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삼짇날.
강남 갔던 제비가 앙다문 살구꽃 봉오리 새새 숨바꼭질하는 흰 봄날.
햇살이 병아리 솜털처럼 이맛전을 간질이는 노란 봄날.
비봉산 능선 따라 아지랑이 아물아물 춤추는 물비늘빛 봄날.
산자락 진달래 군락지가 꽃불을 놓은 듯 붉은 봄날.
그 고운 봄빛들의 향연 속, 늦가을 마른 낙엽 같은 덴동어미가 시원스런 탁성으로 꽃노래를 부른다.
가루를 반죽하고 솥뚜껑에 기름칠하던 새댁들 일손이 가락에 맞추어 쟀다 느렸다 한다. 파뿌리 같은 흰머리조차 몇 가닥 남지 않은 상노인들이 어깨춤을 춘다. 바둑머리 땋은 아이들은 콧물을 훔치다 제 어미 치맛자락에 얼굴을 묻고, 종종머리 작은 아기들은 허리에 찬 다래끼에 진달래꽃을 따 담다 잔허리를 꼰다. 큰 아기들, 봉긋이 부푼 가슴 들먹거리는 서슬에 숱진 머리채에 물린 노랑, 빨강 댕기가 놀란 들짐승처럼 몸을 뒤친다. ---pp.10-11

“아무것이 어떻다 아무것이 저떻다 그래싸도 일 년에 한 번 화전 놀음이 여자 놀음 중에서는 제일이시더.”
“그렇고마고. 고마 일 년 묵은 체증이 이날 다 날아가잖나.”
“이목구비 오장육부 다 똑같은 사람인데 어예다가 남자 몸으로 못 태이나가 허구한 날, 괭이 앞에 쥐매이로, 수리 앞에 참새매이로 굽죄이고 사는 신세, 다만 오늘 하루라도 네 활개를 쫙 피고 놀아볼라니더. 젊은이들이 쪼매 설치가미 놀아도 오늘은 흉보지 마세이.”
“암만, 맘대로 놀고 멋대로 놀거라.” ---pp.62-63

할 수 없어 허락하고 친정이라고 돌아오니 삼백 장이나 높은 나무는 나를 보고 흐느끼는 듯, 십육 세 요절한 님의 넋은 나를 보고 우니는 듯, 답답하고 애달파서 못 살겠네. 보이느니 서방님 눈빛이요, 들리느니 서방님 말소리라. 나무 뒤에서 불쑥 튀어나와 내 눈을 가릴 것 같고 별안간 뻐꾸기 소리를 낼 것 같아, 나도 몰래 미소 지으며 서방님 장난질을 기다리다가는, 문득 깨닫고 울음을 터뜨리지. 울고 또 울지. 천지신명께 비옵나니, 하루 빨리 이내 목숨을 거두시길. 밥 못 먹고 울고 잠 못 자고 우니 입안이 먼저 헐고 눈자위가 짓무르더라. ---pp.97

“지는 와룡 형님 덕만 본 기 아니고 안동 마님 덕도 참 숱해 보았니더. 순흥 땅에 와서는 두 분 덕을 젤 많이 봤지마는, 그 전부터도 지는 맹 남의 덕으로 살아왔니더. 벌써 죽었을 목숨이 남의 덕으로 안죽꺼정 살아 있는 셈이시더. 그래 비록 내가 가진 거는 없어도 남한테 덕 보일 일 있으마 뭐라도 할라꼬 나서지요. 지가 오늘 달실 아씨한테 넘사시러번(남우세스런) 줄도 모르고 못난 사람 못난 이박 구구절절 늘어놓는 기 다 그 때문일시더.” ---pp.182

춘삼월 호시절에 화전 놀음 왔거들랑
꽃빛일랑 곱게 보고 새 소리는 좋게 듣고
밝은 달은 예사 보며 맑은 바람 시원하다
좋은 동무 좋은 놀음에 서로 웃고 놀다 가소
고운 꽃도 새겨 보면 눈이 캄캄 안 보이고
귀도 또한 별일이지 그대로 들으면 괜찮은 걸
새 소리도 고쳐 들으면 슬픈 마음 절로 나네
마음 심心자가 제일이라 단단하게 맘잡으면
꽃은 절로 피는 거요 새는 예사 우는 거요
달은 매양 밝은 거요 바람은 일상 부는 거라
마음만 예사 태평하면 예사로 보고 예사로 듣지
보고 듣고 예사로 하면
천하의 고생팔자도 아이구야, 자네한테는 못 이기겠네, 하더라

덴동어미가 달실댁의 손을 잡습니다.
“시집을 가고 안 가고……. 세상천지 그 두 가지 길밖에 길이 없는 기 아니라요. 두 가지 길밖에 없다꼬 생각하마 두 가지 길밖에 안 ?니더. 이짝으로 가마 벼랑 끝이고 저짝으로 가마 깊은 계곡이라, 아이고 나 죽었네, 이래 생각하마 죽는 길밖에 안 ?지요. 딴 길이 있다꼬 믿고 딴 길을 찾어보소. 벼랑도 잘 찾어보마 덜 가파른 비탈길이 있을 게고 계곡도 잘 찾어보마 빙 둘러 니리가는 자드락 길이 있을 끼래요.” ---pp.185-186

“곱든지 더럽든지 어예 된 심판인지 우리는 그래도 안 죽고 살아 있잖애? 어예든지 살아 있으마 산 사람한테는 다 살 구무가 떨피더라고. 그래이께 살아 있는 우리는 저 거미줄 같은 더럽은 넘의 팔자한테 등신같이 웃어줘야 되는 게래. 더럽은 넘의 팔자야, 망할 넘의 팔자야, 날 봐라, 날 한번 보라꼬! 니가 암만 날 낚어채가 잡아먹을라 그래도 나는 이래 펄펄 날러갈 챔이래.”
덴동어미가 서녘 하늘에 돋아 오른 개밥바라기별을 향해 두 팔로 날갯짓을 했다. 덴동어미의 웃음소리가 비봉산을 넘어 온 사방으로 퍼졌다.
팔자야, 나를 보아라.
살아온 이박 하다가 새삼시리 울기도 울었지마는 울 만침 울고 웃는 웃음은 더 달데.
꿀보다 달데.
어와, 좋구나. 좋다.
이 봄날이 좋고 이 화전 놀음이 좋구나.
좋아서 웃음이 절로 나는구나.
하늘을 봐도 웃음이 나고, 참꽃을 봐도 웃음이 나고, 우리 오막집서 날 기다릴 덴동이를 생각해도 웃음이 나는구나. ---pp.205-206

저는 사는 일에 너무 지쳤다 싶을 때마다 옛 책을 들추어 덴동어미의 말을 곱씹는 버릇이 생겼답니다.
왜 살다보면 더러 그런 때가 있잖아요.
소금밭에 한 번 굴렀다 집어넣은 듯 눈알이 아리고 뻑뻑할 때.
온몸의 뼈마디란 뼈마디는 죄다 매가리가 풀려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을 때.
하늘과 땅이 딱 붙어버려서 인간이란 종자가 아주 바짝 말린 오징어 짝 나버렸으면 싶을 때.
피곤에 겨워, 운전한다는 의식조차 없이, 관성적으로 가속기를 밟았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하는, 무지 막히는 퇴근길의 자동차 계기판에서 문득 ‘기름 없음’ 표시가 깜빡거리고 있음을 발견했을 때.
삶이 그렇듯 소진消盡 직전에 있을 때.
그럴 때.
(…)
4ㆍ4조 음률에 맞춰 웅얼웅얼 읽다보면, 희한하지요, 제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하루인 오늘, 오늘을 ‘꽃빛일랑 곱게 보고 새소릴랑 좋게 들으며’ 즐기려는 마음자리가 슬그머니 생겨난답니다. 오래된 어머니가 전하는 지혜의 말씀이, 마치 마술처럼, 제 마음의 구멍에 대롱을 끼워 다시금 생生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는 거예요.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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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단 한 번, 아내들의 기적 같은 외출이 빚어내는 감동의 하모니를 그린 《덴동어미전》. 아내의 임무, 모성의 의무, 여성의 압박을 모두 벗어던지고 단 하루 그녀들이 해방되는 시간. 남편과 시어머니 ‘뒷담화’도 마음껏 하고, 출산과 육아의 스트레스도 확 날려버리고, 우리가 아내나 엄마이기 이전에 ‘아직도 꿈꾸는 여성’임을 깨닫는 시간. TV도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 364일 고된 노동을 잠시 접고 딱 하루, “춘삼월 호시절의 화전 놀음”에 빠진 아내들의 신명나는 페스티벌. 수퍼맘과 알파걸의 신화에 찌든 우리 현대 여성들에게도, 그녀들의 화전놀이를 멋지게 벤치마킹한, 우리 시대의 새로운 화전놀이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정여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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