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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좋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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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랑한 취향의 공간들

B의 순간이동
김선아 | 미호 | 2019년 04월 19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2 리뷰 55건 | 판매지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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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4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444g | 145*205*20mm
ISBN13 9788952799104
ISBN10 895279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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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란 설계부터 시공이 끝나기까지의 기간도 오래 걸리거니와, 얽혀 있는 사람도 많고 각자 원하고 기대하는 바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컨셉으로 건물이 지어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건축가는 아름답게 짓고 싶고, 시공자는 어렵지 않게 짓고 싶고, 건축주는 저렴한 비용만 투자해서 큰 수익을 얻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다른 목표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 오랜 기간 하나의 방향을 설정하고 함께 그 방향으로 걸어가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 p.42

우리가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린 골목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 폭이 사람에게서 나온 너비이기 때문이다. 왕복 10차선에서 놀기는 힘들어도, 두세 사람 겨우 지나다닐 폭의 골목에서는 쉽게 많은 행위들이 일어난다. 좁은 폭의 길에서는 길이 오로지 통행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마당과 같이 쓰인다. 할아버지들은 골목에서 바둑을 두고 할머니들은 의자를 내어다가 야외 벤치를 만들곤 했다. 아이들은 골목 안에서 수많은 놀이들을 만들었다. --- p.56

솔직히 말하면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이라곤 말할 순 없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은 이것보다 더 단순하고, 치밀하게 나누어지고 강렬한 대비가 있는 공간이다. 그에 비하면 오르에르는 조금 여성스럽고, 유연한 느낌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의 취향은 어느 정도를 넘는 퀄리티 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어떤 스타일이 되었든 정도 이상으로 잘해버리면, 개인의 취향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저것 따지기 전에 감탄사부터 나오는 것이다. “아, 잘했다!”라고. --- p.93

오래 보는 것이 정답이다. 공간이 눈 감아도 훤히 보이도록 익숙한 사람만이 가장 훌륭하게 다시 쓸 수 있을 테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꿔 버리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계절이 지나가면 가지치기를 하듯 공간의 요소를 더하거나 빼면서 바꾼다면 꾸준함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르에르는 그렇게 탄생했다. --- p.103

눅서울은 거듭해서 말한다. 그대로 놔두어도 괜찮다고. 오래된 많은 것들을 조심스레 만지고, 정리했다. 그것은 방치와는 조금 다른 태도일 것이다. 생긴 모양새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로 다가간다. 있던 것을 존중하고 시간을 이해하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은 공간에만 적용되는 삶의 태도는 아닐 것이다. 나 외의 다른 사람과 맺는 모든 관계에서 필요한 태도는 아닐는지. --- p.206

석유 비축기지가 문화 비축기지가 되어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되기 전까지, 무려 41년 동안 일반인들의 접근이 차단됐다. 일반인들의 발길이 끊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딱 하나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다는 뜻. 심지어 비밀리에 존재해 왔으니, 주변엔 아무것도 없다. 주변 환경이라곤 탱크를 감싸고 있는 언덕뿐이다. 건축가에게 이런 프로젝트가 다가왔을 때엔, 딱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 몇 십 년 간 존재했던 그 땅의 기억을 읽어내는 것. 고고학자들이 유물을 발견하듯이 조심스럽게. 제대로 읽어낼 수 있으면, 반절 이상은 성공이다. 나머지는 땅의 기억에서 중요한 것들을 골라 선택적으로 지켜나가는 것이 건축가의 의무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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