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새로운 도전이 중요합니다.” 나는 이 말을 올해에만 적어도 스무 번은 들은 것 같다. 회사의 가장 상층부에 존재하는, 그렇기에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그들이 말하는 단골 멘트. 그것도 무려 10여 년째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사람도 바뀌고 시간도 지났으니 좀 세련되게 바뀔 만도 한데, 이 멘트는 잘 바뀌지 않는다. 멘트를 바꾼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큰 도전이기에 기피하는 걸까?
---- 「‘최대한 오랜 시간 도전하지 않기’에 도전합니다」 중에서
“내가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말이야….”
“아… 이거 진짜 비밀인데….”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
이 세 가지 말만 하지 않아도 세상은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 「세상 쓸데없는 말 세 가지」 중에서
사무실들이 밀집된 식당가 주변 점심시간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부장님을 필두로 해 한 무리가 그를 따라 아무 생각 없이 이동하는 모습들.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은 또 하나의 ‘회식’이 아닐까? 많은 직장인들이 근로 기준법을 매일매일 위반하고 있음은 물론 거기에 더해 스트레스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으로서, 조직의 일원으로서 타인의 반응을 살피고 유연함을 가지고, 타인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사람이길 지향한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법으로 보장된 휴게 시간, 즉 점심시간까지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 「프로 혼밥러」 중에서
평소처럼 일어난 아침. 나는 화장실에 숨어 부장에게 전화를 했다. “아… 어제 위경련으로 응급실을 다녀와서요. 오늘 출근 못할 것 같습니다…. 네네…죄송합니다. 네네… 죄송합니다. 네네네….” 그러고는 말끔하게 씻고 화장실을 나왔다. 오롯이 나만 아는 나만의 휴가를 쓰고 싶었다. 따로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다. 다만 집을 나서며 결심한 것은 단 두 가지였다. ‘걱정 없이 돈 쓰기’와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 여유롭게 즐기기’.
---- 「나를 위한 비밀 휴가」 중에서
이제는 정말 중요한 일에만 에너지를 쓰기로 했다. 오늘 저녁은 드라마를 방영하는 날이다. 맑은 정신에 드라마를 보려면 낮에는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 오늘은 분기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어차피 구라와 눈속임이 가득할 보고서다. 대충 하기로 했다. 사장과 전 임원이 참여하는, 1년에 고작 네 번만 진행하는 분기 보고 따위가 뭐가 중요하다고….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쏟지 않기로 했다.
---- 「내 에너지는 중요한 곳에만 사용합니다」 중에서
“부장님, 낮에 일 안 하고 밤에만 일하는 사수와는 같이 일 못하겠습니다.” 차마 신입사원으로서는 하지 못할, 어쩌면 금기시된 발언을 사수를 뛰어넘어 부장에게 해버렸다. 그 순간 공기의 흐름이 딱 멈추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향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잠시 정적이 지난 후 이내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등줄기에 흐르는 땀 한 방울과 함께 이내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 「다 필요 없다, 직장인은 ‘사수’를 잘 만나야 한다」 중에서
일은 잘해도 문제고, 못해도 문제다. 못하면 못한다고 눈치 보이고 잘하면 잘한다고 고생한다.
일 못하면 못한다고 갈굼당해 야근하고 일 잘하면 잘한다고 일이 몰려 야근한다.
---- 「‘조금만 더 돈 벌고 뜬다, 이 바닥.’」 중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게 주의하시고요, 술 담배 줄이시고요. 혈압 관리를 하셔야겠네요.” 퉁명스러운 그의 목소리는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은 듯했다. 진료실을 나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스트레스도 회사 때문이고 술도 회사 때문에 마시는데, 건강을 위해서라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것일까?
---- 「직장인의 절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중에서
“야, 이렇게 말하면 꼰대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말이야, 회사가 얼마나 따뜻한 곳인데, 밖이 얼마나 추운 줄 알아? 지금 너 잘나가는 것 같지? 그거 다 회사 후광 때문이야.” 그 말을 듣던 박 대리가 말했다. “선배, 꼰대처럼 들리는지 알면 그만 좀 하세요.”
---- 「직장인의 절망은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중에서
회의會議는 말 그대로 ‘모일 회+의논할 의’, 즉 모여서 의논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저 윗사람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자, 회의합시다’가 아니라 ‘자, 통보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옳다.
---- 「결국 닭볶음탕 먹을 거면서 회의는 왜 하는 거죠?」 중에서
“IT 관련이니까 아무래도 공대 출신이 참여하는 게 좋겠어. 김 대리? 김 대리가 공대 출신이지? 이번 TF는 김 대리가 참여하고, 나한테 중간중간 잘 보고해줘. 회의 끝.” 그가 도망치듯 회의실을 나간다. 부서원들이 프로젝트에 대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까봐 미리 내뺀 것이다. 김 대리가 남은 직원들에게 울상을 지으며 말한다. “저 공대 출신은 맞는데… 저 토목과 출신이에요. 제 논문주제가 시멘트의 점성에 따른 굳는 정도에 관한 거라고요. 내가 무슨 IT를 안다고….”
---- 「4차 산업혁명과 벌거숭이 임금님」 중에서
“뭐가 부러워요, 나는 A과장님이 더 부러운데… 회사 생활도 원만하게 잘하시고….” 그는 아주 잠시 생각하더니 긴 문장의 말을 시작했다. “나는 사실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요. 우리 팀장 알죠? 성격 괴팍한 거…. 나 요즘 정신과 진료 받는 거 알아요? 한 1년 되었나? (5초간 공백) 나 연기 되게 잘하죠? 우리 팀장이 화를 낼 때 나는 연기를 해요. ‘지금 상황은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이번 신이 끝나면 다음 신으로 바로 넘어갈 것이다’라고 혼자 생각을 해요.
---- 「사실은 서로를 부러워했습니다」 중에서
‘어떠한 포기 또는 얻음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답도 없거니와 이에 대해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각자의 ‘삶’과 그들만의 ‘가치’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감히 쉽게 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금 분명한 것은 그 누구의 삶일지라도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포기하게끔 만들고, 반대로 무언가를 포기하면 또 무언가를 자신에게 건네준다는 것이다.
---- 「무언가의 ‘얻음’은 무언가의 ‘포기’다」 중에서
혼자 욕 좀 하면 어떤가. 이 세상은 들으면 기분 나쁘고 말 정도가 아니라 피부와 생계로 느낄 수 있는 창의적인 빅엿들을 나에게 선사하는데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나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는가? 혹시 못 풀고 있는 건 아닌가? 이러다 태풍에 뿌리째 뽑히는 아름 드리나무처럼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삶에서 뽑혀버리는 것은 아닌가?
---- 「혼자 욕 좀 하면 어떤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