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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_ 필립 얀시
독자의 증언들 들어가기 전에 저자 서문 제1부 리처드 제2부 브레넌 제3부 나 덧붙이는 말 편지들 감사의 말 주 |
저브레넌 매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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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파도가 휘젓고, 봄 폭풍이 닥쳐오고, 댐이 터지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 같은 경험이었다. 선지자 이사야처럼, 나는 완전히 해체되어 버렸다. “남자는 우는 게 아니야”라는 말을 평생 들어 온 어린아이가 그 순간 주체할 수 없이 흐느끼는 남자가 되었다. 그토록 큰 선물─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내 이름을 부르셨다는 사실!─에 내가 할 수 있는 반응은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았다. 가톨릭교회의 십자가가 마침내 살과 피를 입게 되었다. 그 황금의 순간에 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 뿐 아니라 좋아하신다는, 기쁨의 신학의 파도에 잇따라 두들겨 맞았다. 오래전에 우리가 하나님의 시계를 영원히 감아 버렸다는 확신을 나는 받았다. 내가 그 ‘더’를 찾았다기보다 그 ‘더’가 나를 찾았다. 기독교는 어떤 도덕 규칙이 아니라 연애였고, 나는 그것을 직접 경험했다. --- ‘제1부 리처드’ 중에서
그 세 통의 전화 통화가 내 강연 사역을 재탄생시켰고, 그 일은 그렇게 차례대로 하나씩 일어났다. 그 기회들은 전도자로서 내 깊은 부르심에 대한 확인이었고, 당시에 내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한 방의 주사와도 같은 격려였다. 그것은 또한 로즐린에게도 상당한 확신을 주는 일이었다. 경제적인 의미에서 그런 것은 당연했지만, 그것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의미의 차원이 더 컸다. 맞다, 악한 세대가 계속해서 표적을 구한다. 그러나 이따금씩 주어지는, 하나님이 승인하셨다는 구체적인 표적은, 공과금을 내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한동안 지속되는 용기를 북돋워 준 것은 분명하다. --- ‘제2부 브레넌’ 중에서 환상을 잃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왜냐하면 우리는 환상에 의지해서 살기 때문이라고 나는 수도 없이 말했다. 암이 우리를 쓰러뜨리기 전까지는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기 전까지는 복귀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그 거짓을 다 벗겨 내신다. 왜냐하면 벌거벗은 채 진리 속에서 사는 것이 옷을 입고 환상 속에서 사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은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벗김’의 시간이었다. 내게 남은 것이라고는 이제 누더기밖에 없다. 부랑아 복음을 전한 사람에게 제법 어울리는 모양새라고 하겠다. 전에는 내가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은 확실히 부랑아다. 부랑아에게 하나님의 이름은 자비 그 자체다. 혹은 현재 내 인생의 언어로 말한다면, 도움이다. --- ‘제3부 나’ 중에서 |
내가 은혜의 세계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실패는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내 소식을 한동안 듣지 못했을 겁니다. 내가 살아 있기나 한 것인지 궁금해 한 사람들도 있었지요. 살아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힘들었습니다. 사실 내 계획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뿌리가 뽑혀 익숙하면서도 낯선 땅에 이식되었습니다. 이 말은 문자적이기도 하고 비유적이기도 합니다.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힘들었습니다. 회고록을 쓰겠다고 계약서에 서명을 한 지가 이제 거의 5년입니다. 계약하자마자 바로 그 자리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이 책은 아마 다른 책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미룬 이유는 많은데, 그중 하나는 내 인생에 대한 책을 사람들이 왜 읽고 싶어 할까 하는 문제를 가지고 씨름한 것입니다. 내 친구이자 공저자인 존에게 최근에 그 질문을 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브레넌, 은혜의 부스러기가 떨어질 것을 믿는 거지요.” 나는 웃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은 내가 좋아하는 책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The Diary of a Country Priest)에 나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을 걸어 다닌 지 70년이 족히 넘었고 그중에서 40년을 떠돌이 전도자로 보낸 나는 정말로 그것이 나의 주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 믿음을 붙잡는다기보다는 그 믿음이 나를 붙잡는다고 하겠습니다. 내 인생의 도로 위를 달리면서, 나는 주로 ‘전문적으로 해야 하는 일’과 같은 종류의 목적을 향해 갔습니다.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여행은 끝났습니다. 이제는 다른 감정의 방향에서 살고 있습니다. 딱히 이룬 것도 없이 고향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은혜의 전형입니다. 그런데 은혜란 정확히 무엇일까요? 이 지면들이 그것에 대한 나의 최종발언입니다. 은혜는 모든 것입니다. 나 브레넌이 증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