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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 마을의 꿈

딩씨 마을의 꿈

[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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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6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632쪽 | 708g | 128*188*35mm
ISBN13 9788954439763
ISBN10 8954439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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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안의 정적, 그 진한 정적이 모든 소리와 호흡을 끊어버렸다. 딩씨 마을(丁莊)은 살아 있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너무나 조용하기 때문에, 가을의 끝이기 때문에, 황혼이기 때문에, 마을이 위축되고 사람들도 시들었다. 위축된 상태에서 세월도 따라서 말라버렸다. 마치 땅속에 묻힌 시신 같았다.
세월이 시신 같았다.
평원 위의 풀들도 말라버렸다.
평원 위의 나무도 말라버렸다.
평원 위의 모래흙과 농작물도 피처럼 붉어지더니 이내 시들어버렸다.
--- p.20

나는 토마토를 먹자마자 배 속의 창자를 가위로 잘라내는 것처럼 아파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마을 길가에 쓰러졌다. 달려온 아버지가 나를 안아 집으로 데려가서는 침상 위에 눕혔지만 나는 눕자마자 흰 거품을 토하면서 죽고 말았다.
나는 죽었지만 열병이나 에이즈에 걸려 죽은 것이 아니었다. 십 년 전, 우리 아버지가 딩씨 마을에서 대대적으로 피를 매집했기 때문에 죽었다. 피를 사고팔았던 일 때문에 죽은 것이다.
--- p.25~26

모래사장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물기가 밴 땅을 파서 손에 모래를 움켜쥐고 비벼보더니 모래 밑의 흙을 더 파냈다. 물이 나올 때까지 파냈다. 웅덩이에는 금세 물이 반쯤 차올랐다. 할아버지는 어디선가 주워 온 깨진 사발로 웅덩이의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퍼내고 또 퍼냈다. 한 사발 한 사발 계속 퍼냈다. 웅덩이의 물이 거의 없어지자 잠시 퍼내기를 멈췄다. 그러면 웅덩이에는 금세 물이 차올랐다.
--- p.60

“내가 네게 사람들 피를 팔게 했지!”
“내가 네게 사람들 피를 팔게 했어!”
할아버지는 소리를 지르며 양쪽 엄지손가락으로 아버지의 목을 세게 눌러댔다. (……)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구름이 보이지도 않았는데 천둥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목 졸라 죽이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수습이 불가능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아버지, 그것도 친아버지였다. 우리 아버지는 우리 할아버지의 친아들, 친자식이었다. 두 사람이 이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서로 죽고 죽여서는 안 될 일이었다.
--- p.101

“이봐, 애들 엄마. 나도 피를 팔기 시작했소.”
그의 마누라가 설거지하던 손을 멈추고서 다소 창백해진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는 낯으로 말했다.
“이제 됐네요. 이제야 남자가 된 것 같아요.”
그러고는 그에게 물었다.
“설탕물 마시고 싶지 않아요?”
그는 눈물을 머금은 얼굴로 말을 받았다.
“안 마셔. 반평생 혁명을 했던 나도 이제 피를 팔기 시작했단 말이오.”
이렇게 그는 피를 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씩 팔다가 나중에는 이십 일에 한 번씩 팔았다. 그다음에는 열흘에 한 번씩 팔았다. 그 뒤로는 피를 팔지 않으면 오히려 혈관이 부어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 p.153

아이의 보따리에서 쏟아져 나온 물건은 놀랍게도 금빛 찬란한 금괴와 금덩이들이었다. 땅콩처럼 크고 튼실한 황금 콩도 있었다. 알고 보니 이 평원의 지상에는 꽃이 만발한 반면 지하에서는 금이 잔뜩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리싼런의 손자는 자신의 품에서 빠져나간 황금 콩이 땅 위 여기저기로 흩어지는 것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 할아버지는 다가가 아이를 일으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에게로 손을 뻗는 순간, 할아버지는 꿈에서 깨고 말았다.
--- p.170

그다지 대단치 않은 일이었다. 그저 피가 약간 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삼촌은 피가 난 부분이 아픈 것 외에도 온몸에 통증을 느꼈다. 몸 전체에 뜨거운 땀이 흘렀다. 등골이 으스스하면서 아파왔다. 땅바닥에 넘어진 삼촌은 간신히 몸을 세워 앉았다. 그러고는 손에 묻은 피를 닦으며 말했다.
“링링, 나 온몸이 아파.”
링링은 황급히 삼촌을 부축해 침대에 눕힌 다음, 땀을 닦아주고 몸에 묻은 피도 닦아주었다. 삼촌은 침대에 몸을 구부리고 엎드려 있었다. (……) 온몸이 아파오면서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입술이 파래질 정도로 아팠다.
--- p.456~457

죽은 사람은 죽은 닭이나 죽은 개와 마찬가지였다. 발에 밟혀 죽은 개미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소리 내어 울지도 않았고, 흰 종이로 대련을 써 붙이지도 않았다. 사람이 죽으면 그날을 넘기지 않고 파묻었다. 관은 일찌감치 마련되어 있었다. 무덤 역시 사람들이 죽기 전에 다 파놓았다. 날이 너무 무더워 사람이 죽은 다음에 무덤을 파면 이미 때가 늦기 때문이었다. 하루만 지나면 시신이 부패되어 지독한 냄새가 났기 때문에 미리 관을 준비하고 무덤을 파놓았다가 사람이 죽으면 후다닥 순식간에 매장해버리는 것이었다.
--- p.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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