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는 LA에 500만 쌍의 커플이 살고 있는데, 이 사람이 말한 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확률을 계산하면 1,200만 분의 1이므로, 용의자가 범인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1, 2차 법원에서는 유죄 판결이 났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무죄로 풀려나게 됩니다. 어떻게 풀려날 수 있었을까요?
대법원에서 변호인은 수학자를 증인으로 택했습니다. 검찰 측에서 범인의 인상착의를 모두 만족시킬 확률이 1,200만 분의 1로 낮다고 주장했는데, 그렇다면 이 커플이 범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 묻지요. 그러자 수학자는 그렇게 주장할 수 없으며 그 조건을 만족시킬 다른 커플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합니다. 즉, LA에 사는 500만 쌍의 커플 중 위의 조건을 모두 만족시킬 확률은 1,200만 분의 1이지만, 위 조건을 만족시킬 다른 커플이 존재할 확률은 거의 20%라는 것입니다(‘조건부 확률’의 문제). 따라서 이들을 범인으로 확정할 수 없다고 했고 용의자는 무죄로 풀려나죠. 이렇듯 일상에서 수학이 큰 역할을 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 p.23~24
자연현상을 수학적인 모델로 예측하기는 기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어느 정도는 설명해줄 수 있지만 100% 설명은 못한다는 거죠. 아인슈타인은 “어떤 수학적 법칙이 실재를 언급하는 한 법칙은 확실치 않고, 또한 모델이 확실치 않은 한 실재를 나타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를 불확실성의 정량화라고 하지요. 요즘 응용수학에서 뜨고 있는 분야인데, 불확실성을 어떻게든 이해해보자는 겁니다.
2002년 2월, 9·11 테러 이후 럼스펠트가 기자 간담회를 엽니다. 기자들은 알 카에다와 후세인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질문하며 “테러리스트 집단과 바그다드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없다는 보고서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럼스펠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도 있고,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알고, 또 우리가 모르는 걸 모르는 것도 있다”고 대답합니다. 이는 수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확실성의 정량화란 이렇게 불확실한 현상에서 신뢰할 수 있는 구간을 찾는 것입니다.
수학은 자연을 기술하는 언어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작동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로 쓰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학을 기반으로 미래 산업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지금 4차 산업이 진행 중인데, 4차 산업을 미리 내다보고 준비한 학자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5차, 6차 산업을 준비해야겠지요.
그 결과, 최근에 뜨고 있는 학문 분야가 양자생물학입니다. 이는 양자역학을 세포 수준에 적용해서 그 기저를 이해하려는 학문입니다. 지금까지는 거시적으로 복잡계 시스템의 집단 역학을 살펴봤다면, 이제는 양자 수준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요?
--- p.60~61
위대한 수학자 가우스는 “과학의 여왕은 수학이고, 수학의 여왕은 정수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수론에는 많은 난제들이 있는데, 리만 가설, 쌍둥이 소수 문제, 골드바흐 문제, abc 예상, BSD 추측 등이 있습니다. 아직도 해결이 안 되어 많은 수학자들이 굉장히 수고하고 있지요.
수론의 문제는 각종 수학을 동원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전혀 새로운 개념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고, 굉장히 복잡하지요. 수론의 난제들의 특징은 일단 해결이 잘 안 된다는 거죠.
그중 abc 예상은 2012년에 모치즈키 신이치라는 수학자가 증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증명으로서 검증된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 증명이 맞다고 수학자들이 공감하지 않고 있거든요. 유명한 수학자 숄체도 증명이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아 직 증명으로서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모치즈키 증명이 500페이지는 됩니다. 굉장히 복잡하고, 새로운 수학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연구하고 있고 언제 검증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렇듯 수론은 복잡하고 어렵지요.
--- p.74~75
이렇듯 빅데이터가 다양하게 이용되면서 통계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구글 수석 경제학자 할 베리언은 2009년 에 향후 10년간 가장 섹시한 직업이 통계학자라고 할 정도였지요. 그러다가 ‘데이터과학’이라는 말이 새롭게 등장합니다. 그러자 2013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는 “21세기 가장 섹시한 직업이 데이터과학자”라고 할 정도가 됩니다.
도대체 데이터과학자와 통계학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다지 큰 차이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안타깝게도 통계학자라는 용어는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구글 트렌드를 확인했더니 통계학자는 점점 줄어들고, 데이터과학자라는 말은 점점 늘어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p.105~106
게임 이론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친구들끼리 하는 카드 게임 같은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카드 게임은 서너 명이 모여서 치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숫자가 한정돼 있고, 노력과는 상관 없이 자신이 아무리 잘해도 좋은 패가 안 들어온다든지, 옆 사람이 고수라면 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즉, 옆의 사람에 의해 영향을 받는 상황이지요. 그런데 이런 일이 경제 현실에서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열심히 핸드폰을 만들어도 아이폰이나 엘지전자에서 그보다 더 좋은 걸 만들거나 새로운 방법을 쓰면 잘 팔리지 않을 수 있지요. 그러니 열심히 노력하는 만큼 애플이나 엘지전자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신경 씁니다. 마치 내 패가 이 정도인데 다른 사람 패가 더 좋은지 신경 쓰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를 전략이라고 하는데, 이런 전략적인 상황을 분석하는 것이 게임 이론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 p.164
2007년, 화이자는 PF-670462라는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합니다. 이 약을 쥐에게 주었더니 갑자기 다른 시간에 일어났습니다. 약 농도에 따라 마음껏 생체시계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 약은 하루 중에 언제 먹느냐에 따라 효과가3 배 정도 달라집니다. 생체 시계는 하루 종일 똑같은 상태에 있지 않아서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에, 약도 언제 복용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이 약으로 조절된 생체시계는 빛에 의해서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려고 합니다. 즉, 약의 효과가 빛에 의해 반감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 약을 여름에 먹느냐, 겨울에 먹느냐에 따라, 혹은 평소에 빛 노출 정도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겠지요. 이러한 복잡한 모든 경우를 실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화이자에서 수학 모델을 이용해서 약의 효과를 테스트할 수 있겠느냐고 요청해서 이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정확하고 정밀한 모델이 필요해서 생체시계를 구성하는 모든 분자들을 식으로 담아 250여 개의 미분방정식을 세웠습니다. 이 모델을 가지고 가상 실험을 해봤더니 실제 실험 결과를 잘 구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정한 실험 조건이 아닌 다양한 조건하에서 약의 효과를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즉, 약 먹는 시간이 달라지면 어떻게 되는지, 여름과 겨울에 어떻게 약의 효과가 달라지는지 확인하여, 이를 바탕으로 실험할 수 있는 거죠.
이 약은 환자의 생활 패턴과 환경까지 고려해야 하는 굉장히 복잡한 약입니다. 처방하기가 너무 어렵지요. 그래서 미분방정식을 바탕으로 생활 패턴과 환경을 계산해서 약 먹을 시간을 알려주는 앱을 개발할 계획입니다.
--- p.208~209
새로운 문명, 새로운 문제가 등장하면 새로운 수학이 필요해지곤 합니다. 농경시대에는 땅을 나누는 일이 제일 중요했습니다. 또한 농사를 지으려면 천체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어야 했으니, 기하학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를 풀어주는 도구였습니다. 상업이 발전하고 교류하면서는 돈 계산이 중요해지면서 대수학이 발달했습니다. 고대, 중세를 넘어서 근대에 들어서면서 과학 혁명이 일어났고 물리에 대한 질문이 대두되었습니다. 이때 미분이라는 도구가 등장해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발전시켜왔습니다. 즉, 각 시대에 대두된 문제가 새로운 수학을 만들었지요. 현대에는 컴퓨터와 정보 통신의 발전에 맞춰서 수치해석이나 응용수학이나 통계학 등 응용수학이 발전했습니다.
그런데도 문제는 다 풀리지 않았습니다. 환자 1,000명의 평균적인 뇌 모양이 어떤지, 일반적인 사람 100명과 특이한 5명의 차이를 얼마만큼 규정할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는 수학적으로 다뤄보지 않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 하는 거죠. 더 나아가서 4차 산업혁명의 영상 자료는 새로운 함수 해석, 위상수학이라는 게 필요하고요. 모든 자료가 과거와는 달리 이산적인 비정형화된 자료이므로 이를 해결할 새로운 형태의 수학, 통계학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수학이 필요할까요? 우선 당장 우리가 쓰고 있는 알고리즘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할 필요가 있지요. 고속 병렬 알고리즘이나 과학 계산 이론 등 아직도 풀어야 할 수많은 수학적 문제들이 남아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인공지능처럼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딥러닝의 수학적 이론이 필요할 테고요. 궁극적으로는 과연 튜링기계를 넘어서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수학적 상상력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p.236~237
이는 안드로메다 외계인과 지구인의 관계와 같아요. 이를테면 지구에서 암이 큰 문제인데, 아직 암을 정복하지 못했잖아요.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죠. 그런데 지구인과 같은 유전자를 가진 안드로메다의 외계인이 이미 암을 정복했다고 하면, 암을 어떻게 정복했는지 배워 우리 유전자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겠지요. 타니야마-시무라 추측이 그런 역할을 하는 거죠. 타원 곡선은 지구이고 보형형식은 안드로메다라면, 안드로메다에서 정보를 가져와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는 셈이죠. (물론 정보를 반대 방향으로 보낼 수도 있고요.)
이렇게 정보의 흐름이 일어나면서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할 새로운 실마리가 생기지요. 그게 랭글랜즈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역할이라고 볼 수 있어요. 난제를 해결하는 데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해주고, 때로는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에도 해결의 실마리를 줄 수 있는 거죠. 물론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많은 문제를 해결하였을 뿐 아니라 전에 없던 통찰력을 제공함으로써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랭글랜즈 프로그램은 현재도 계속 발전하고 있고, 여러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중에 주목할 만한 것을 하나 꼽자면, 젊은 독일 수학자 숄체가 최근 굉장히 새로운 기하학을 도입하고 이로써 랭글랜즈 상호법칙에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해서 필즈상 0순위로 여겨지고 있지요. (강연이 있은 후 2018년 국제 수학자 대회에서 숄체 교수가 예상대로 필즈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랭글랜즈의 대통일 이론은 지금까지는 성공적입니다. 다른 수학적 대상에서 오는 유전자가 같은 것을 상호법칙이라 한다면, 그의 상호법칙은 방정식의 유전자를 다른 수학적 대상들의 유전자와 연결지음으로써 통합을 이루어냅니다. 물론 랭글랜즈의 대통일이 수학의 모든, 또는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굉장히 강력한 기반 위에 서서 수학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겠지요.
--- p.257~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