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거친 직업들: 자동판매기용 사탕 배달원, 편의점 야간 근무 점원, 삼류 신문기자. 그리고 서른여섯 살이 되던 해에 사별하고 슬픔과 좌절된 사랑을 가슴 가득 안은 채 그의 조상들을 낳은 바위섬, 그동안 가본 적도 없고 가볼 생각도 안 했던 뉴펀들랜드를 향해 인생의 뱃머리를 돌렸다. 물의 땅. 그러나 코일은 물을 무서워했고 수영도 못했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는 죽을힘을 다해 매달리는 그를 수영장으로, 개울로, 호수로, 바다로 던져넣었다. 그래서 그는 소금물과 물풀의 맛을 안다. 아버지는 개헤엄을 배우는 데 실패한 막내아들의 모습에서 마치 악성 세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듯 다른 실패들이 증식하는 것을 보았다. 말을 똑똑히 하는 것도 실패, 바른 자세로 앉는 것도 실패,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실패, 태도도 실패, 야망도 능력도 실패, 사실상 모든 것이 실패. 그것은 아버지 자신의 실패였다. --- p.12
그에게는 트레일러 안을 돌아다니며 소리 내어 자문하는 습관이 생겼다. “누가 알아?” 그가 말했다. “누가 아냐고.”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앞날에 어떤 일이 닥칠지 그 누가 알겠는가. 모로 세워진 상태로 빙글빙글 돌고 있는 동전은 앞면으로도, 뒷면으로도 넘어질 수 있으니까. --- p.27
“아내를 탓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그녀가 사랑에 굶주렸던 거라고 생각해요. 늘 사랑에 허기졌던 거지요. 그래서 그런 행동을 했던 거예요. 그녀는 가슴 깊은 곳에서 자신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녀가 한 일들은 잠시나마 그녀를 안심시켜줬죠. 전 그녀에게 늘 부족한 존재였어요.” 조카는 그런 뻔한 속임수를 믿는단 말인가? 고모는 기가 막혔다. ‘사랑에 굶주린 페틀’은 조카 자신의 창조물인 듯했다. 고모는 사진 속 페틀의 냉담한 눈과 요염한 포즈만 봐도 하이힐 신은 잡년임을 알 수 있었다. 사진 옆에는 코일이 물잔에 꽂아놓은 장미 한 송이가 있었다. --- p.44
“어젯밤 히틀러의 배에 대한 문의 전화를 네 통이나 받았어. 독자들도 좋아하고, 내 아내도 좋아하고. 나도 직접 그 배를 구경하러 부두로 내려갔는데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서 구경하고 있더군. 물론 자넨 배에 대해 쥐뿔도 모르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어. 그러니까 계속하게. 내가 원하는 기사가 바로 그런 거야. 이제부터 칼럼을 한 편 맡아, 알겠나? 해운 소식란에 항구에 들어온 배를 소개하는 칼럼을 쓰라고. 알았지? 매주 한 편씩이야. 킬릭클로 항구만이 아니라 해안을 오르내리면서 칼럼에 낼 만한 배를 찾아봐. 정기 여객선이든 유람선이든 상관없어. 당장 자네 컴퓨터를 주문해주지. 나가서 터트 카드한테 좀 보잔다고 하고.” 그러나 굳이 전할 필요도 없었다. 터트 카드는 유리 칸막이 너머로 둘의 이야기를 죄다 엿듣고 있었으니까. 코일은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넛빔이 머리 위로 양손을 깍지 껴 흔들어 보였다. 그의 입에서 파이프가 춤을 췄다. 코일은 타자기에 종이를 끼웠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서른여섯 살 먹도록 남에게 잘했다는 칭찬을 들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창밖의 안개가 우유처럼 보였다. --- p.217~218
그의 예리한 시선이 과거를 꿰뚫어보았다. 그는 철새떼 같은 인간 세대들과 유령선이 점점이 흩뿌려진 만과 다시 활기를 되찾은 마을과 생선 비늘로 반짝이는 그물이 드리운 심연의 바다를 보았다. 코일 일가가 세월로 악을 씻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이제 고모는 죽어 땅에 묻힐 것이고 코일과 웨이비는 늙어 꼬부라지고 딸들은 먼 도시로 떠나가리라. 헤리는 머리가 반백이 되어서도 나무 개와 색실에 환희를 느끼며 지붕 밑 다락방이나 계단 아래 작은 방에서 잠을 잘 것이다. 코일은 순수에 대한 감각을 되찾고 떨리는 균형 속에서 세상사를 이해했다. 세상 모든 일이 전조라는 껍질에 싸여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