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멈췄어도 춤추기를 멈출 수 없는 느낌, 그게 바로 무덤을 팔 때의 기분이다. 춤을 멈추면 죽는다는 걸 아니까.
--- p.13
나는 그것을 건너다본다. 구겨진 방수포 둔덕. 그 아래 살과 피부와 뼈와 이가 놓여 있다. 죽은 지 세 시간 반 된 시체가.
아직 따뜻할지 궁금하다. 내 남편. 만져보면 따뜻할 것이다.
--- p.17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나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건 아마도 당신이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 p.18
그와 나는 한 팀이다. 물샐 틈 없다. 안전하다. 세상에는 우리가 있고,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가 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 p.79
“아니, 에린, 아니지, 슬프지만 당신은 매춘부가 아니야. 만약 그랬다면 지금쯤이면 입을 다물고 있을 테니까.”
가슴이 튀어나올 듯이 두근거린다. 젠장. 마크가 사라졌다. 이렇게 쉽게. 지금 내 거실에 낯선 사람이 서 있다.
--- p.94
“착한 사람들은 아니야, 에린.” 이번에는 그가 나를 보며 말한다.
그의 말이 공중에 걸려 있다. 나는 그 뜻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들이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대체 무슨 뜻이야, 마크?”
“그들이 갖고 있던 것들. 저 아래서. 결코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어. 그러니까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거야.”
--- p.185
나는 물속 깊은 곳에 추락해 있는 비행기와 승객들을 떠올리며 마크가 했던 말을 생각한다.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야. 그리고 우리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그렇지? 그래, 맞아, 우리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어 그 생각을 떨쳐버린다.
--- p.240
현재 상황에 나는 확실히 적응했다. 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나는 거울에 비쳐 사방에서 나를 에워싼 그녀의 모습을 본다. 확고하고, 인정사정없는.
아니면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내면은 다르다. 그 안에는 호흡과 침묵만이 있을 뿐이다. 무섭기 때문이다.
--- p.251
내가 그냥 사라져버린다면 어떨까? 제네바에 있는 호텔 방에 마크를 내버려두고. 지금 이대로 손에 가방을 든 채 어딘가로 녹아들어 가버릴 수도 있다. 은행에도 가지 않는 것이다. 아무도 날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이다. 그리워할까? 누군가 그리워하기는 할까? 삶은 계속된다. 인생은 언제나 계속된다. 난 혼자서도 어딘가로 가서 잘 살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들은 나를 절대 찾지 못할 것이다. 마크, 친구들, 비행기에 있던 사람들, 경찰. 그들은 나나 돈, 혹은 태어나지 않은 내 아이를 절대 찾지 못할 것이다.
--- p.252
마크는 내가 가진 전부다. 내가 왜 그에게서 도망을 치겠는가? 만약 도망을 쳐야 한다면, 우리는 함께 갈 것이다. 우리 셋이 함께. 나는 자유로운 손을 아랫배에, 내 자궁에 가져다 댄다. 그 안에 있는 것이, 그것의 안전이, 내가 맞서 싸울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이다. 나는 눈을 질끈 감는다. 이 일은 우리의 미래를, 우리를, 우리 가족을 위한 것이다. 내가 내 안에서 피와 뼈로 만들어내는 이 가족을 위한 것.
--- p.252
제발 그대로 있기를. 제발 그대로 있기를. 하지만 다이아몬드를 숨겨둔 헐거운 단열재 부분에 다가갈수록 그 주문은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른 것으로 바뀌어버린다. 제발 사라졌기를. 제발 사라졌기를.
--- p.339
왜 나쁜 남자는 항상 이렇게 매력적일까?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잘생기지 않았다면 나쁜 남자로 불리고 싶어도 불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냥 깡패라고 불리게 된다.
--- p.358
“하지만 고문은 효과가 없어. 일단 상대를 존중해야 해, 그렇죠, 에린? 아가씨가 존경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돼야 하는 거야. 인간이 약간의 존엄성을 가지고 죽게 해야지. 그들이 존엄성을 가지고 살아왔는지는 그들에게 달린 거지만. 만약 아가씨가 사람들을 존중해준다면, 아무도 당신을 비난할 수는 없을 거예요.”
--- p.364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믿을 수가 없다. 내가 저지른 모든 실수를 생각해본다. 이 상황을 예상했어야 했다. 욕지기가 엄습해온다. 난 죽을 거다. 심장이 천둥처럼 쿵쿵거리고 무릎이 후들거린다.
그리고 내가 쓰러질 때, 그가 나를 향해 비틀거리며 다가온다.
나는 의식을 잃는다.
--- p.445
이 이야기는 결코 내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이것이 내가 다루어야만 하는 이야기고, 내가 선택한 서사다. 그리고 경찰이 믿을 만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 p.480
나는 알았다. 어떤 면에서 나는 항상 알고 있었다. 정확히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당신이라면 뭘 할 수 있었을 것 같은가? 누구도 세상 전부를 구할 수는 없다. 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해야 한다.
--- p.4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