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워, 제이!” 아강이 소리쳤다. “그 고아자식을 죽여!”
얼굴을 가린 내 팔에 제이의 주먹이 비 오듯 쏟아졌다. 눈을 맞아 불꽃이 튀었다. 코피가 터지고 입술이 찢어졌다. 얼굴을 가리는 것도 더는 무의미할 정도로 제이는 나를 흠씬 두들겨 팼다. 이윽고 통증이 사라졌다. 결국에는 당황한 아강이 끼어들어 말렸을 정도였다.
“이제 됐어! 됐다고! 제이, 가자. 선생님이 오겠어!”
제이가 공허한 시선을 던졌다. 증오로 일그러진 그 얼굴을 본 순간, 이 녀석은 언젠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강과 제이가 사라진 후에도 나는 한동안 조회대 뒤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제이의 눈을 생각했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 같았는데 바로 기억이 났다. 제이의 눈은 가네다에게 적의를 드러내던 데쓰오의 눈이었다. 바로 그 눈이야, 내 만화에 부족한 게 바로 그 눈이야. 그것을 깨달은 순간 모든 게 바보 같아 웃고 싶어졌다.
--- p.37~38
비열한 웃음을 남기고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뚱보를 나는 노려봤다. 어른이 되면 저런 녀석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저 노려보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제이는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마침 그곳에 도착한 음식물쓰레기를 모은 자전거에 달린 짐차에 돌진하더니 쿵 하고 짐칸에 뛰어 올라갔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와 아강의 눈앞에서 녀석은 더러운 음식물쓰레기통을 안아 올렸다. 음식물쓰레기를 모으는 남자가 뭐라고 호통을 치자 제이도 대만어로 같이 소리쳤다. 짐칸에서 뛰어내린 제이는 넘친 음식물쓰레기에 푹 젖어 있었다.
뚱보는 편의점에서 산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면서 나오던 참이었다. 지독한 냄새를 맡았는지 얼굴을 찡그렸는데 냄새가 나는 것은 제이였다. 나와 아강조차 코를 막았을 정도로 지독한 냄새였다. 음식물쓰레기통을 가지고 돌진해오는 제이를 본 뚱보의 입에서 담배가 떨어졌다.
“이 자식아!” 제이는 울부짖으며 음식물쓰레기통을 힘껏 파이어버드에 내던졌다. “어리다고 얕잡아 봤지, 이 새끼야!”
비명을 지른 뚱보가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도망쳐!” 음식물쓰레기통을 내던진 제이는 웃으면서 우리에게 소리쳤다. “빨리 와!”
나와 아강도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다.
--- p.58
아강의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이틀 뒤였다.
그녀는 완전히 이혼을 결심하고 아강과 다다를 데리고 집을 나가겠다고 아홍 아저씨에게 알렸다. 이후 아강의 집은 이혼 재판의 수렁에 점차 빠지게 되었다. 아홍 아저씨의 변호사는 그의 어릴 적 친구이기도 한 내 아버지였다. 귀국하기 전에 아버지는 국제전화로 아홍 아저씨에게 아내의 부정 증거를 최대한 모아두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훨씬 뒤에 명백히 드러난 것은 아내보다 아홍 아저씨의 부정 증거뿐이었다.
“그만해!” 아홍 아저씨가 아들들을 말렸다. “너희들, 왜 그래? 아강, 왜 손목시계를 부수었니?”
아강은 절대 대답하지 않았고 다다는 피해자 행세를 하며 훌쩍훌쩍 울었다. 아홍 아저씨는 부서진 손목시계를 주웠다.
“이 손목시계, 뭐니?”
형제 모두 입을 다물었다.
“아강, 이 손목시계 뭐니?”
아강은 고개를 돌리고 이를 악물었다.
“다다, 어머니가 이 손목시계를 사줬니?” 다다도 아무 말 하지 않아서 아홍 아저씨는 내게 고개를 돌렸다. “윈, 너 뭐 아니?”
“그건……” 우물거리는 나를 아홍 아저씨는 끈질기게 기다렸다. “그건 아마…… 그 진씨가 다다에 사줬을 거예요.”
“그러니, 다다?”
다다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손목시계가 가지고 싶었니?”
대답은 없었다.
아홍 아저씨는 부서진 손목시계를 테이블에 놓고 한마디 없이 가게를 나가 그대로 밤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 p.130~131
“정말 죽일까?”
그 순간, 마치 물에 떨어진 피 한 방울이 퍼지듯 우리 사이에서 무언가가 다시 공유되는 것 같았다.
“하하하!” 너희에게는 진짜 졌다는 느낌으로 아강이 양팔을 번쩍 들었다. “괜찮네. 해치우자. 뭐로? 권총?”
“하겠다면 돕지.” 목소리가 겹쳤다. “어때, 제이?”
커다랗게 벌어진 제이의 눈을 나는 놓아주지 않았다. 창백한 그 얼굴에 핏기가 돌아왔다. 입을 열었다가 다시 꾹 다물었다. 뭔가를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것 같았고 그 무언가는 살의인 것 같았다.
“뭔가…… 뭔가 생각한 게 있어, 윈?”
“어이! 진심이야? 제이! 윈은 농담이었어.”
“그랬어? 윈…… 농담이야?”
“진심이야.” 내가 말했다. “네가 그럴 마음이면 절대 들키지 않는 방법이 있어.”
그의 눈이 기대로 물들어갔다.
“야, 농담이지?” 아강이 소리쳤다. “너희 둘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이때였다. 현실과 공상을 나누던 부드러운 경계선이 일그러지며 서로의 영역을 침범해 녹아들었다. 마치 자신의 꼬리를 우걱우걱 먹어대는 뱀처럼 우리 안에서 시작과 끝이 하나가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모든 실패와 모든 후회가 탄생한 빛나는 순간이었다. 어차피 우리는 열세 살로, 브레이크댄스와 도둑질의 연장선 위에는 살인도 있었다.
--- p.178~179
“제이…… 제이, 왜…… 아, 왜 이런 일이…….”
“잘 들어, 아강! 너, 아홍 아저씨가 타이베이에 돌아온 걸 알았어?”
아강은 무슨 말을 물어보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중요한 얘기야, 아강. 아홍 아저씨가 타이베이에 있다는 걸 알았어?”
“알 리가 있었겠냐?! 왜 그런 걸 물어?”
“그 뱀은 어떻게 됐어?”
“이미 없었어.”
“네가 여기 왔을 때는 이미 아홍 아저씨는 쓰러져 있었고 뱀은 아무 데도 없었다, 맞아?”
“아, 그랬지.”
“잘 들어. 곧 구급차가 와. 우리에게 질문이 쏟아질 텐데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아, 그게…….”
“나와 학교를 도망쳐 놀기로 약속했잖아. 그건 말해도 돼. 약속에 오기 전에 가게에 들렀더니 아버지가 쓰러져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경찰이 물으면 그렇게 대답해.”
“하지만 아버지가 우리 뱀에 물렸어!”
아홍 아저씨의 공허한 눈이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더위에 수분을 잃은 안구는 바람 빠진 공처럼 수축해 있었다. 오한이 등줄기를 내달려 휙 고개를 돌렸다. 만약 우리가 귀신을 보는 눈이 있다면 뒤에 서 있는 아홍 아저씨의 망령을 봤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건 없었다.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된 현실이 있었을 뿐이다. 나는 아강에게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럼, 윈과 셋이 사이좋게 교도소에 갈까?”
아강이 울어서 퉁퉁 부어오른 눈으로 노려봤다.
“이건 사고야. 우리는 아홍 아저씨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어,
안 그래? 이렇게 생각하자. 누군가가 권총으로 죽였다면 나쁜 사람은 방아쇠를 당긴 놈이야. 우리가 권총을 준비하긴 했지만, 누구에게도 총을 겨누지 않았어.”
“웃기지 마! 아버지는 말이야…….”
“다다와 어머니를 생각해!” 다가오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재빨리 말했다. “잘 들어, 아강. 이건 사고야.
--- p.246~248
“생각해내, 윈.” 나는 거의 명령에 가깝게 말했다. “최소한 추억 속에서만이라도 너와 마지막까지 함께 있게 해줘.”
그가 엄청나게 땀을 흘리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눈이 뒤집혔다고 생각한 다음 순간, 다시 골절한 오른쪽 다리를 개의치 않고 달려들었다.
나는 의자에서 굴러떨어졌고 그 틈에 그는 내가 조금 전까지 사용하던 만년필을 낚아챘다.
“그만해, 윈! 그 펜을 책상에 놔!”
그는 폭포처럼 땀을 흘리며 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흰자위를 드러낸 채 만년필을 얼굴 앞까지 내밀었다. 워스렁싱, 워스렁싱이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콜드 스타, 나는 콜드 스타라고.
--- p.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