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리카에 처음 도착했을 때 궁금하고 복잡했던 퍼즐도, 이곳의 다양한 삶들을 하나씩 경험하면서 맞아 들어갔다. 무엇보다 소유에 대한 관점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단순히 경쟁하듯 돈을 벌고, 더 많이 소유하려는 삶에서 행복을 찾지 않는다. 크기나 규모와 상관없이 자신이 소유한 무언가를 감사히 여길 줄 알고, 심지어 그것을 자기 주변 사람들과 아낌없이 나눈다. 돈을 버는 것보다 얼마를 가졌든 그것을 쓰는 방법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잘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남들과 비교해 덜 가진 것에 집착하고, 지금보다 나은 삶만을 위해 공부하고 일을 하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이런 삶의 태도가 1만 2천 달러의 국민소득으로도 6만 달러가 넘는 국민소득을 자랑하는 이웃나라 미국 사람들보다 훨씬 더 행복한 삶을 누리게 만드는 가장 주된 이유가 아닐까.
--- p.67
행복한 삶은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목표일 것이다. 하지만 그 행복을 내 삶에 끌어들이기 위해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은 너무나 다르다. 누군가는 완벽한 복지국가에서, 누군가는 전쟁 중인 국가에서, 누군가는 굶주림이 당연한 국가에서, 누군가는 무한 경쟁이 강조되는 국가에서, 이렇게 똑같이 행복을 꿈꾸며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간다. 따라서 어쩌면 행복한 삶을 앞에 두고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느 정도 불공평한 게임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바누아투에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을 만난 후, 당장 주어진 환경의 차이를 뛰어넘는, 그 사회와 문화가 가진 특별한 의식의 영향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 p.123~125
당시 내가 만난 거의 대부분의 젊은 친구들은 국가부도라는 극단의 경제 위기 속에서 당장의 금전적인 문제나 취업에 대한 여러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개인과 사회의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은 공통적으로 긍정적이고 낙관적이었다. 혹시 내가 이방인이라서 스스로의 감정을 숨기는 건 아닐까, 아니면 부족함 없이 행복하게 자라온 젊은이들이 자국의 힘든 상황을 낯선 동양인에게 공유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에 대한 질문에 ‘YES’로 일관했다. (중략)
지금 당장은 상황이 좋더라도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언제든 부정적이고 불안한 환경을 다시 맞닥뜨릴 수 있다. 아이슬란드를 방문하고 궁금해진 것은 동일하게 부정적인 환경과 상황을 만났을 때, 서로 다른 태도를 만들어내는 요인이 과연 무엇인가이다.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지만 전혀 다른 해석과 반응이 나타나는 건, 결국 그것을 해석하는, 개인에게 내재된 필터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 p.145~146
이 몇 가지 인터뷰에는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돈에 대한 언급도 찾아볼 수 없다. 그보다 핵심을 찌르는 공통점은 그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통해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가족, 친구, 여자친구, 오늘의 날씨, 자연, 사회제도, 국가처럼 이미 나와 내 주변에 있는 것들 말이다. (중략) 어찌 보면 억울할 정도로 매우 간단한 개념이자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다. 그 누구도 내가 가지지 못한 무언가로부터 지금 행복할 수는 없다. 이렇듯 당연한 개념인데 왜 우리는 가지지 못한 무언가로부터 얻게 될 행복에만 집착해왔을까. 정말 언제 찾아올지 모를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은 이렇게 힘들고 불행하기만 해야 할까.
--- p.200~201
치열하게 투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베네수엘라에서도, 실업률 90%의 나라 바누아투에서도, 그리고 세계 최강 복지 국가로 손꼽히는 덴마크에서조차도, 대부분 자신의 인생 목표를 묻는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꿈을 묻고, 인생 목표가 무엇인지 요구 받고, 매년 초가 되면 올해 계획을 세우는 것이 건설적인 일이라 믿는 우리에게는 참 낯선 모습일지 모르겠다.
--- p.208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서양의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남들의 시선을 크게 개의치 않고 가치관에 따라 개인의 행복을 점수 매긴다. 반면 우리는 그 점수를 다른 누군가로부터 받는 데 익숙하다. 그 결과 남들이 갖지 못한 것과 남들보다 더 나은 것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한경쟁에 뛰어드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남들보다 더 좋은 차를 타고, 남들보다 더 좋은 학교를 나오고, 남들보다 더 좋은 집에 살아야 한다는 강박과 끝없는 비교의 쳇바퀴 속에서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모습 아닌가.
--- p.216~217
대체 우리가 찾아 헤매는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일단 행복이란 건 당신 마음속에는 없다. (중략) 조금 다르게 이야기하면, 행복은 마음속에서 창조되거나 마음속 어딘가에 고이 간직해두었다가 불행하다고 생각될 때마다 꺼내어 쓸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행복은 하나의 감정 상태이므로 결국 마음 어딘가에서 하나의 감정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안다. 행복이라는 화려한 감정은 드라이아이스의 새하얀 연기처럼 금세 사라져버리고, 그 알맹이 역시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말이다. 마음속의 행복이라는 감정은 일시적인 감정 상태일 뿐이다.
--- p.218~219
여기서의 소소하더라도 꾸준하고 자주 일어나는 행복은 소위 말하는 ‘소확행’과는 다름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소확행은 어려운 삶 속에서 행복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소소하더라도 쉽고 확실하게, 개인의 마음을 달래는 소비나 행동을 통해 행복을 쟁취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전혀 다른 개념이다. 소확행이 자기중심적이고, 소비지향적이고, 일종의 허탈감을 동반한다면, 진정한 행복은 정반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 p.220
우리 모두는 행복의 일용직이다. 행복에 관해서만큼은 모두 하루 벌어 하루 행복할 수 있는 일용직으로 살도록 동등한 조건에서 태어났다. 오늘 행복했으니 내일도 분명 행복할 것이라고 그 누구도 보장받지 못했으므로, 행복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도 정규직일 수 없다. 행복에 관해서만큼은 누구나 코스타리카에서 만난 알레한드로가 말했던 ‘YA!’의 개념이 필요하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의 행복’ 말이다. 가끔은 예전에 행복했던 기억이 현재 불행한 상황에 놓인 당신에게 새롭고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 넣어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들이 당신의 고통스러운 현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 p.227~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