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바뀌고 과학기술이 발전했다고 해도 인간과 인간사회의 본질은 별반 차이가 없다. 공동체의 역할,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 흥망성쇠와 같은 거시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인간의 감정이나 성장, 타인과의 관계 맺기, 일의 성공과 실패와 같은 주제들도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이 수많은 사례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이 ‘역사’이고, 과정뿐 아니라 결과까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 p.5~6
마흔은 겉과 속이 다른 나이다.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는 것 같지만, 실은 아직도 내 길이 무엇인지 확신이 없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사회생활에 익숙해지고, 인간관계에도 자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이 갈수록 어렵고 두려워서 머리를 싸맨다. 그런데도 이제는 누구 하나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 마흔 살이나 먹었다는 이유로 실수나 시행착오가 용납되지 않으니, 속으로는 벌벌 떨면서도 겉으로는 강한 척, 능숙한 척 연기를 해야 한다. 바로 이 겉과 속의 간극이 마흔의 흔들림을 만든다.
--- p.16
내 마음의 주인이 되고, 내 마음을 능수능란하게 제어한다는 것은 그저 내 욕망대로 마음을 움직인다는 뜻이 아니다. 올바른 행동과 실천을 이끌어내는 뿌리로서, 올바른 인식과 판단이 이루어지게 하는 기지로서 마음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된다면 감정의 낭비로 인해 마음이 소모되는 일이 훨씬 줄어들 것이고, 내가 가진 창의성과 잠재력이 걸림 없이 표출될 수 있을 것이다. 왕수인은 용장에서 마음의 중요성을 깨달은 후, 40대가 넘어서면서 크게 날개를 펼쳤다. 그러니 마음의 중심을 잡고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일, 아직 늦지 않은 것이다.
--- p.25
일찍이 사마천은 “사람은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터럭보다 가볍다.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치욕도 마찬가지다. 치욕을 당하더라도 어떻게 대응하고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이후의 삶은 태산같이 위대해지기도 하고, 터럭같이 보잘것없어지기도 한다. 지금 큰 실패를 겪어 자포자기한 사람이 있다면 묻는다. 억울한 일을 당해 굴욕감을 맛본 이가 있다면 묻는다. 당신은 아직 이루고 싶은 꿈이 있고 목표가 있는가? 그렇다면 절망에 멈춰 있어서는 안 된다. 치욕을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는 것이다. 내 남은 사명을 위해, 용감하게.
--- p.86~87
인생의 도전에서 늦은 나이란 없다. 기회의 문 하나가 닫혔고 내 진로가 하나 막혔다면 다른 문을 열고 다른 길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당연히 쉽진 않겠지. 처음 걸었던 길보다 몇 배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닫혀버린 문에 미련을 두느라 굳게 닫힌 문고리를 흔들며 시간을 낭비할 것인가? 그보다는 나를 향해 열려 있는 또 다른 문을 찾아 나아가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비록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는 하나 선비가 학문을 닦기에 더 좋은 기회라는 정약용의 말처럼, 시야를 돌리면 그곳에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 p.109~110
혹시 지금 시도조차 하지도 않고 한계를 긋고 있지는 않은가? 제대로 노력해보지도 않고 핑계를 찾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나이를 이만큼 먹었으니 이젠 늦었다고, 노력해봤자 더는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포기하진 않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김득신을 떠올려주기 바란다. 노력하는 사람 앞에 한계란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늦은 나이란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니까.
--- p.124
내 앞에 놓인 길을 정답으로 만들고,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을 성공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에게 달렸다. 길이 나를 이끌어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내가 노력하지 않는데 그 길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줄 수는 없다.
--- p.128
40대, 직장에서든 삶에서든 담판을 지어야 할 일들이 늘어나는 시기다. 젊었을 때와는 다르게 내용의 규모도 위험규모도 훨씬 커져 있다. 그런데 담판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내가 유리한 상황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대등한 상황에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불리한 여건을 딛고 어떻게든 이익을 관철하는 것이 담판이다. 따라서 치밀한 준비와 전략이 필요한데,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흔들어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도 유용한 방법이다. 제갈량의 사례는 그 모범을 보여준다.
--- p.151
설령 끝까지 동의할 수 없을지라도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바로 친구다. 그래야 우정이 존속될 수 있고 서로에게 도움도 될 수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자연히 내 사고의 폭을 넓히고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친구는 차이를 존중하고 다름을 이해하는,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삶의 태도를 ‘자발적으로’ ‘기꺼이’ 갖추게 해주는 고마운 스승인지도 모르겠다. 갈수록 고집이 세어지고 자기도 모르게 ‘꼰대’가 되어가는 40대에게 특히 필요한 스승 말이다.
--- p.224~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