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말이 지당하지 않은가? 원한에 대해서는 그것이 원한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갚아주어야 한다. 그게 진실이고 또 옳은 일이다. 강직함으로, 곧음으로 갚아야 한다. 무엇이 곧음인가? 자신의 신념을 투철하게 관철시키는 것이 곧음이다. 어떤 상대가 내게 원한을 품도록 만든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상대가 나를 굽어지는 사람으로, 굽힐 수 있는 사람, 즉 무른 사람으로 보았다는 뚜렷한 증좌다. 그걸 허용해선 안 된다. 이 눈치 저 눈치 다 보는, 융통성 있는 무골호인으로 보여서는 안 된다. 약자 위치에 제 발로 찾아들어가서는 안 된다.
--- p.36
별들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마치 옹위하듯 흩어져서 자리를 잡고 있다. 별들끼리 충돌하거나 중복되면 안 되며, 그들 각자는 북극성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모든 별들이 바라볼 수는 있으나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자리가 바로 정중앙이다. 그 자리에 당당하게 자리 잡고 함부로 옮기지 말라! 함부로 말 하지도 말라! 그 자리가 이미 리더의 권위와 조직의 희망을 웅변해 주고 있다.
--- p.114
학계는 넓게 배웠다는 박사들로 넘쳐난다. 그러나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박사들은 알고 보면 넓게 공부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전공 영역만을 들이파서 논문들을 생산하고, 그 덕분에 특정 분야에서 명성을 쌓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어떤 영역에 대해서는 매우 자신 있어 하지만, 다른 영역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모르는 분야가 너무 많기에 한없이 겸손해야 될 듯도 한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나 있다. 섣불리 다른 분야를 규정하여 무시하고, 심지어 그 의의를 낮추어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 p.132
문제는 동아시아인들이 가족의 범위를 끝없이 넓혀나갈 수 있었다는 데에 있다. 혈연 가족을 벗어난 직장도 넒은 의미의 한 가족이었고, 동문 모임이나 동향 모임 역시 가족에 버금가는 관계로 생각되곤 했다. 이렇게 가족의 울타리를 넓혀가다 보면, 급기야 다른 민족을 배척하는 국수적 민족주의로까지 번지게 된다. 이렇게 내부의 견제 장치를 잃어버린 사회는 머지않아 타락할 것이고, 심지어 자기 민족의 우월성에 기초를 둔 전체주의 체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
--- p.142
공자는 도덕적 폭력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어질지 못한 것은 당연히 미워해야 하지만, 도가 지나친 도덕적 분노에는 무언가 무의식적인 다른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 그 또는 그녀는 인을 위배한 행동에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지나친 미움을 쏟아 부음으로써 자기 안의 왜곡된 증오심을 배출하고자 한다. 결국 그 지나친 미움은 세상에 혼란을 초래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공자는 어질지 못한 사람을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 미움은 석연치 않은 다른 감정들로 얼룩져 있고, 밑도 끝도 없는 폭력으로 번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 p.173
어차피 자아는 자기보존에 유리한 상대를 선호하여, 그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안전을 도모하도록 진화해 왔다. 도덕 없이 발달해온 자아는 철저한 자기보존 본능의 산물일 따름이다. 따라서 내가 선한지 악한지는 환경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도덕성은 생존에 그렇게 결정적이지 않았으며, 근대 윤리학에서처럼 확고하게 주장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 p.184
나라는 불안한 존재는 스스로는 존재의 의미를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끝없이 남들과 어울리면서 그들로부터 사회적 존재로 인정받을 때에만 제대로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타인은 나의 정체성을 구성해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의 의미를 순식간에 뭉개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의미가 되어주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의 의미를 위협하고 있기도 하다. 한 개인이 사회 속에서 겪는 이 아슬아슬한 존재론적 긴장을 이해하는 사람을 군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p.195
윤기 있는 검은머리를 출렁이며 노래하던 강가, 코발트빛으로 물들던 호주 해변, 낯선 곳에서 외국의 배낭여행자들과 나누었던 짧은 대화, 초병으로 망루에서 바라보던 하얀 산맥, 처음으로 사랑을 잃고 걷던 길고 긴 도로. 우리가 완벽하다고 믿는 이 장면들은 그러나 사실에 기초해 있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의 기억은 욕망이 바라는 대로 수정되거나 뒤섞인다. 그리고 그렇게 내 삶에 유리하게 변형된 기억을 사실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영원한 진실, 변하지 않는 기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p.218
반복을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유한함을 잘 알기에 무한과 겨루지 않는다. 무한을 잠시나마 잡아보려고 무익하게 싸우는 대신 스스로가 무한의 일시적 표현이었다는 데 만족한다. 결국 어진 사람의 즐거움은 지혜로운 사람의 즐거움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지혜로운 사람의 즐거움이 존재의 활달한 움직임으로부터 나온다면, 어진 사람의 즐거움은 존재의 영원성으로부터 나온다. 지혜로운 자가 떠나야겠다고 결심하는 지점에서 어진 자는 멈추어 선다.
--- p.302
삶이 진정으로 의미 있을 때는 그것이 미지수였을 때이다. 완결되지 않아서 미래로 열려 있을 때 인생은 무엇으로든 변화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절실히 다가온다. 우리 인생 전체가 학창 시절일 수만 있다면, 그래서 하루하루가 서로 다른 반복이고, 그 반복이 조금씩 나를 변화시켜줄 수만 있다면.
--- p.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