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배경과 화자를 오가며 매 단편마다 관계에 대한 얘기를 하는 백수린 작가의 이야기들은 보통 소심한 화자가 새로운 인물을 만나며 일어나는 인간관계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갈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단편들이 이 패턴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책을 읽을수록 익숙해져 조금 진부한 느낌도 없진 않지만, 그 진부함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던. 그 이유는 아마도 책 속 모든 등장인물들에게서 나는 익숙한 사람 냄새가, 결국 나한테서도 나기에 그들에게 정이 가고 위로해 주고 싶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사람이기에 할 수밖에 없는 당연한 생각들, 순간순간 머리를 스치는 본능적인 목소리이지만, 그런 생각을 한 나 자신이 싫고, 창피하기도 한 생각들.. 그렇지만 그런 생각들을 통해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되새김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렇게 불완전하고 때론 추할 수도 있다는 것이 나한테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안다. 그렇기에 타인들 - 나와 가깝던 멀던, 잠깐 스치는 사람이든 간에 - 을 경계하기도, 의심하기도, 밀어내기도 한다. 이젠 아무에게나 순수하게 접근할 수 없는 우리이기에, 누군가를 향해 맘을 여는 순간, 우리는 큰 결심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에서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처받을까봐 두렵고, 언젠가 내가 그 사람에게 내 ‘정’을 주었다는 사실을 후회할지도 모르면서도, 그것을 져버릴 권리를 타인에게 허락한다. 믿지 않고서는 가까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와 나 모두 언젠가는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함께 하기를 바라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백수린 작가는 인간관계의 이런 이면을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한다.
이게 곧 사람이란 동물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우리가 고립된 상태로 혼자만으로도 충분히 편하다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완벽히 채워지지 못한 그 형용할 수 없는 외로움의 증거인 듯 하다. 그래서 책 속 등장인물들을 통해, 우린 실패한 관계 속에서 서로 용서하고 또 이해하며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는 거야."라고 말하는 듯한 백수린 작가의 글들을 읽으며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지고 또 동시에 약간 시리기도 한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인간관계란 이상적이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닐까?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고, 아린 기억도, 기쁜 기억도 모두 돌아보면 좋은 추억으로 남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