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연향(燕享, 宴享)에서는 왕과 신하가 음식과 술을 나누는데 연(燕)은 왕이 신하에게 내리는 행주(行酒)를 통하여 자혜를 드러내 보이고, 향(享)은 신하가 왕에게 올리는 헌수주(獻壽酒)를 통해서 공검을 보이는 것이다. 연은 음(陰), 향은 양(陽)에 속한다. 이러한 의례 에는 교만, 독선, 방심, 태만은 풍요로움을 없애는 것으로 항상 겸손하고 순 종해야 한다는 사상적 논리가 깔려 있다.
즉 연향이란 행주례와 헌수주례가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행주로 이루어지는 예를 연례(燕禮)라 했고, 헌수주 로 이루어지는 예를 향례(享禮)라 했다. 여기에 등장하는 것이 술과 술안주이다. 향례는 연회의 주인공인 왕(손님, 賓)을 보살펴 주시는 신(神)께 술과 술안주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신을 위한 술안주상은 온갖 꽃과 새 등의 모양으로 만들어진 상화(床花)로 장식된 가장 화려한 차림 형태이다.
신께 상을 올린 후 상에 있던 술과 술안주로 신하는 왕에게 술을 올리는 헌수주례를 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서 왕에게 공검(恭儉)을 보인다. 그러니까 신하는 신께서 잡수시고 남기신 술과 술안주로 헌수주례를 행하는 것이다. 풍악이 울리는 가운데 신하가 왕에게 술을 올리는데 보통은 다섯 번 올리는 헌수주를 행한다.
향례에 이어 전개되는 것이 연례이다. 왕이 신하에게 술과 음식을 내려주는 행주(行酒)는 5번, 7번, 9번 등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행해지며 각 행주마다 음악이 연주 되는 가운데 술과 안주가 차려지고 정재(呈才, 노래와 춤)가 동원된다. 이른바 풍악(風樂)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다섯 번의 행주가 이루어질 경우, 술안주상은 오미수(五味數)가 차려진다. 첫 번째 행주에서 차려지는 술안주를 초미(初味), 두 번째 행주에서 차려지는 술안주를 이미(二味), 세 번째 행주에서 차려지는 술안주를 삼미(三味), 네 번째 행주에서 차려지는 술안주를 사미(四味), 다섯 번째 행주에서 차려지는 술안주를 오미(五味)라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연례(燕禮)란 손님 접대의 예이다. 주인(君子, 왕)이 겸손한 덕(德)으로 도리를 다하여 손님[신하]을 위해 극진히 대접하는 예이다. (중략)
조선시대에는 사대부에서도 제사를 모시고 손님을 접대하는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고조리서는 사대부가에서 최선을 다하는 봉제사 접빈객을 위하여,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전하고자 쓴 필사본들이 대부분이다. 이를 살펴보아도 조선시대의 손님 접대는 매우 극진했음을 알 수 있다.
궁중연향에서 보여주는 접대음식문화는 2020년 현재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는 궁중음식문화를 공부한 필자조차도 궁중음식을 너무 학문적 차원에서만 다루어 온 책임이 매우 크다.
궁중에서 손님 접대 때 보여주는 비일상성과 예능성, 장식성을 겸비한 너무도 아름다운 문화가 전승되지 않고 사장되어 있다는 것은, 한국음식문화 발전에도 비극이며 후학 들을 위해서도 부끄러운 일이다.
모든 일은 시의성(時宜性)이 있다. 지금이 그 시기라고 본다. 궁중의 접대문화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왕실 찬품, 기용(器用), 기용의 색, 휘건 등등은 어느 정도 궁중문화에 기초하면서 약간의 변형을 가하여 독자들에게 알리는 작업이 지금이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오미수를 접대음식차림의 예로서 제시했지만 독자들은 각자의 사정에 따라 일미수, 이미수, 삼미수, 사미수, 오미수 등 다양한 차림 형태를 택하는 것이 가능하다. 오미수를 차린다면 각 상에 차려지는 음식량은 줄여야 할 것이고, 일미수를 차린다면 음식량은 좀 더 늘려야 할 것이다.
--- 「Ⅰ. 왕실연향과 손님접대」 중에서
1. 시접상
1) 시접(匙?)과 휘건(揮巾)
시저(匙?)는 숟가락 젓가락을 말한다. 격이 있는 상차림일 경우 숟가락 과 젓가락은 은첩(銀貼)이나 자완(磁椀, 사기그릇)에 담아 차려졌다. 수저를 담 은 은첩과 자완을 시접(匙?)이라고도 했다.
시접은 음식상에 올려내는 것이 아니라, 연회에 앞서 휘건(揮巾)과 찬품 단자(饌品單子), 그리고 시접은 음식상과는 별도로 올렸다. 그러니까 시접은 연
회시작 전 상에 차려져 올렸고 이 상이 시접상(匙?床)이다. 음식을 먹는 도구 를 담은 시접을 올릴 때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여 음식을 드시는 주인
공에 대한 건강(장수)의 염원을 담았는데 이 염원을 표상하여 장식한 꽃은 복 숭아꽃일 것이라고 생각된다.(중략)
조선왕실에서 식사할 때나 세수할 때에 두르던 행주치마(行子赤?) 휘
건(揮巾)은 홍색모시로 지어졌다. 조선시대에는 식사를 할 때 의관을 정제하고
바른 자세로 식사를 했기 때문에 의복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로 휘건을 사용 하였다. 상에 올릴 때에는 시접상과는 별도로 휘건함에 담아 올렸다.
2. 초미 7기
1) 랑화(浪花)
랑화(浪花)의 이름을 한자로 풀이하면 ‘물결 랑’, ‘꽃 화’이다. 탕 속의 국수가 마치
꽃이 물결치는 것과 같아 이 찬품을 랑화라 했다. 이 찬품은 밀가루에 달걀을 넣어
반죽하여 만든 국수인데 밀가루를 달걀로 반죽하는 방법은 1670년 안동장씨가 쓴 『음식지미방』의 「난면법」에 처음 나타난다.
랑화의 면발은 밀가루로 만든 칼국수, 즉 전도면(剪刀麵, 切麵)이다. 칼국수는 칼과 도마를 사용하는 문화의 소산인데, 당(唐)시대에 급격히 보급되면서 장수를 바라 는 염원에서 가늘고 길게 만들기 시작하고, 길게 만든 칼국수를 장수면(長壽麵)이 라 했다.
초미에서 랑화가 술안주로 오른 것은 대접하는 사람이 손님의 장수를 바라는 간절
한 마음을 전하기 위함이고 또 밀가루를 주재료로 하여 만든 랑화는 밀이 번열과 조갈을 없애는 성질을 가져 주독(酒毒)을 예방하기 때문이다.
--- 「1. 상차림 일(一)형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