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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_세상을 바꾸는 단초
서문_2016년 11월, 그날 밤 1장 오해 아닌 이해를 위하여 -아메리칸 드림에서 깨어난 미국 -두려움 옹호자와의 대화 -철학은 사회를 구할 수 있는가 -우리는 온전히 이해해야 한다 2장 생애 최초로 마주한 두려움 -인간은 무력하게 태어난다 -두려움이 정치에 이르기까지 -유치한 나르시시즘을 벗어나 -무슬림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고통은 타인의 탓이 아니다 3장 두려움이 낳은 괴물, 분노 -항상 분노하는 나라에서 -부당함이란 뿌리에서 자라난 분노 -분노의 몇 가지 오류들 -보복 없는 저항을 향해 4장 혐오와 배제의 정치학 -하찮은 집단은 없다 -원초적 혐오는 죽음을 향한다 -투사적 혐오와 편 가르기 -우리가 진실로 혐오하는 것 -왜, 지금, 혐오인가 5장 시기심으로 쌓아 올린 제국 -시기는 비판이 될 수 없다 -불확실성에서 태어난 감정 -혁명가들의 선택지 -로마 제국은 재현되지 않는다 6장 성차별주의와 여성 혐오 -유독한 감정들의 혼합 -성차별과 여성 혐오 -여성을 가두려 하는 이들 -두려움이 만든 모든 감정을 넘어서 7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아간다 -감정에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유익한 희망이란 -두려움 뒤에는 희망이 있다 -인간을 포용하는 예술적 발걸음 -철학자들은 항상 말한다 -품위 있는 투쟁 -주로, 사랑이었다 |
저마사 너스바움
관심작가 알림신청Martha C. Nussb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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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인 문제들은 늘 해결하기 어렵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어렵고 기나긴 연구와 협력이 필요하다. 결국 이와 같은 공포와 무력감은 이민자, 소수 인종, 여성들과 같은 외부 집단을 향한 비난, 혹은 ‘타자화othering’로 쉽게 전환된다.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부유한 엘리트들이 나라를 독점했다는 식이다.
--- pp.27~28 아이가 친구를 때렸다고 해서 아이 역시 맞아야 한다며 때리지 않는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이에게 분명히 알려줄 수 있는 전략을 선택한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제안으로 행동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이처럼 자애로운 부모는 아이들 문제에 있어서는 응보 없는 분노만 경험한다.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위한 건설적인 제안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민주 사회에서 우리가 늘 동료 시민들을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데서 두려움을 느낀다. --- p.109 이 진보적 운동에서 중요한 점은 킹이 그랬던 것처럼 행위와 행위자를 구분하는 것이다. 타인의 인간성을 포용하면서 그들이 저질렀을지 모르는 잘못된 행동만을 반대해야 한다. 그래야 동료 시민들의 말과 행동에 찬성하지 않더라도 그들을 친구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두려움과 비난, 보복을 통해서는 타인에게서 어떤 선함도 찾을 수 없다. --- p.129 뮤지컬은 미국 정치에 대한 낙관적인 시선으로 마무리된다. 우리는 시기심 넘치는 경쟁과 파괴적인 외부의 공격에 시달린다. 하지만 진정한 선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바로 조국에 대한 사랑, 민주주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삶도 포기한 많은 이들의 헌신적인 봉사, 형제애와 건강한 노동, 소수자와 이민자들의 포용이 증오보다 더 빛난다는 결심 안에 존재한다. 오늘날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할 수 있는 너무나도 소박한 조언이다. --- p.198 성차별주의는 문제다. 하지만 성차별주의자들의 믿음은 증거로 반박할 수 있다. 실제로도 그랬다. 진짜 문제는 조롱, 혐오 표현, 고용과 선출의 제한,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존중 거부 등의 방법을 써서라도 구시대의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남성들의 결심이다. 여성 혐오는 “빌어먹을 여자들이 못 들어오게 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전적으로 부정적이기 때문에 영리한 전략은 아니다. 이는 아이들이 싫다고 외치며 발로 바닥을 치는 것과 비슷하다. 변화를 거부한다고 여성 혐오자들이 해결하고 싶어 하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 여성 혐오는 순간의 위안일 뿐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다. --- pp.242~243 믿음은 비현실적이거나 이상적일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목표는 빨리 이루어지지도, 우리 시대에 실현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열심히 노력한다면 의미 있는 전진은 기대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인류가 결코 유지할 수 없는 완벽한 정의처럼 목표가 비현실적이어서는 안 된다. 이 같은 희망은 절망과 냉소로 이어지기 쉽다. 진실한 삶이야말로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이다. 결점 많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혹은 실제로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들을 전부 포용하는, 믿음으로 강화된 희망을 품어야 한다. --- p.264 타인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스토아학파의 냉소적인 절망이 희망적인 삶보다 더 그럴듯해 보일 것이다. 그러므로 희망을 품기 전부터 기본적인 수준의 사랑은 필요하다. 희망은 사랑에 의해 유지되고, 타인에게서 최악보다 최선을 기대하는 영혼의 관대함이 사랑을 지탱한다. 킹이 언급했듯이 행동과 행동하는 사람을 분리하는 일이 이 사랑을 돕는다. 악한 행동을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행동 이상으로 성장과 변화가 가능한 존재다. --- p.266 정치에서의 희망은 혐오를 멈추는 것부터 시작된다. 물론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내가 가르치는 많은 학생들이나 동료 교수들도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을 혐오한다. 상대의 온전한 인간성을 상상하지 못하고 그들의 행동과 그 행동 뒤의 인간성을 분리해 생각하지 않는다. 만델라와 킹이 보여주었듯이 우리는 인종 차별주의자들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으면서도 인종 차별주의를 비난할 수 있다. 서로를 악으로 규정하는 한 밝은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고 협력과 인류애를 가능하게 할 사랑도 갖지 못한다. 결국 칸트가 말한 희망을 품지 못하게 된다. --- p.269 |
“정치는 필연적으로 감정적일 수밖에 없다” 철학, 심리학, 고전으로 재발견하는 정치적 감정들
현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 마사 누스바움은 오래도록 ‘정치적 감정’이라는 표현으로 인류 사회에 현미경을 들이대왔다. 그간의 역작인 『정치적 감정』, 『혐오와 수치심』, 『혐오에서 인류애로』의 연장선인 이 책에서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철학자들의 사상과 현대 심리학자들의 언어를 빌려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인 두려움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미지의 생 앞에서 한없이 불안해진 개인이 어떻게 이를 타인에 대한 배제와 증오로 발산하고, 나아가 사회적 분열을 일으키는지 그 내면의 지도를 그려낸다. 또한 기존의 학자적 시선을 확장해, 이 책을 읽는 이들의 실제 행동을 독려하는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저자는 두려움이 어떻게 시기와 분노라는 유독한 감정들로 번져 가는지, 대중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포퓰리즘 정치가 현대 민주주의를 좀먹는 과정을 냉철하게 진단한다. 이 책에서는 미국의 인종 차별,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무슬림 혐오 등의 사례들이 나열된다. 이는 미국의 이야기지만 극심한 기시감을 준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은 과연, 이와 얼마나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가. 두려움, 분노, 혐오가 쌓아 올린 ‘트럼프주의’로부터 우리는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책의 추천의 글을 쓴 홍성수 교수는 “한국은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더욱 취약해지기 시작했다. 개인의 사회적 불안과 두려움이 누스바움이 얘기하는 것처럼 증오, 혐오, 분노로 연결되는 사례들이 무수히 많이 목격되고 있다. (…) 이 미국의 노철학자의 간절한 호소가 한국 사회에도 큰 울림을 주었으면 좋겠다”라고 응답했다. “나의 고통은 결코 타인의 탓이 아니다” 언젠가 연대할 ‘우리’를 위하여 암울한 혐오의 시대를 넘어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서, 저자는 인문학과 예술에서 희망의 실마리를 찾으려 애쓴다. 누군가를 맹렬히 비난하는 일보다, 온전히 이해하는 일이 어렵고 지난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저자이지만 전 세계를 위협하는 정치적 위기 앞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더 나은 함의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그 무엇보다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과 존중을 외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의 원천을 찾기 위해 저자는 독자에게 다양한 예술 작품, 합리적 토론, 사랑을 실천하는 종교 단체, 비폭력주의로 행동하는 연대 단체, 숱한 학자들이 집대성한 ‘정의’에 대한 이론을 실생활에서 접하도록 권유한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인간 내면의 아주 조그마한 감정의 변화로부터 시작됨을 거듭 말한다. 타인에 대한 연민, 인류애에 기반한 연대를 주장하는 냉철한 학자이면서 휴머니스트인 저자의 차갑고도 뜨거운 시선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한 발짝씩 걸어가고 있다는 믿음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우리’였다. |
어느 한 문장 허투루 쓰인 것이 없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누스바움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다른 저작들에서의 누스바움은 학문적 호기심이 가득한 진중한 철학자였지만, 이 책에서의 그는 어느 시민 광장의 발언대에서 마이크를 들고 대중들에게 “여기서 멈춰 서면 안 된다”고 호소하고 있는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한편으로 현대 사회의 암울한 현실을 날카롭게 고발하고 분노하면서도, 다른 한편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단초들을 애써 찾아내고 있었다. 어떻게든 미래의 희망을 찾아보려는 노학자의 간절한 마음이 너무나도 생생히 전달되고 있었다. -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말이 칼이 될 때』, 『법의 이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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