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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광 × 시골악귀
김이설 × 테임 서유미 × 열다섯 살이 지난 뒤에도 듀나 × 찢어진 종잇조각의 신 주원규 × 천국의 낮 김은 × 톱 권정현 × 우리가 사랑에 대해 말할 때 김희진 × 헤어지는 중 신주희 × 휘발, 공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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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가 학교-어른들이 흔히 ‘소년원’이라고 부르는 감옥-에 들어가기 전날이었다.
---「첫문장」중에서 죽을지도 모른다! 일단 살아야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죽음까지 당하는 여자들을.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질문이 잘못되었나. 어떻게 하면 악귀가 살려줄까. 청소년이니까, 청소년은 아직 여리니까 살려줄지도 몰라. 청소년이 여려? 개소리, 청소년이 더 악귀다. 어른이고 청소년이고 본성이 문제다. 세 살 본성 여든 살까지 간다. 가해자의 본성에 피해자의 생사가 걸려 있다니. 본성이 착한 놈이라면 백주대낮에 무덤 가까이에서 다짜고짜 누군가를 겁탈하지는 않을 테다. 본성이 악한 놈이니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다. 이런 짓을 저지른 놈이니 필시 나를 죽이고야 말겠지. ---「시골 악귀」중에서 열두 번째 도마뱀은 작년 학폭위에서 강제 전학이 정해진 날에 입양한 비어드래곤이었다. 같은 반 여자애한테 한 말이 꼬투리 잡혀 강제 전학까지 당하게 된 것을 생각하면 지훈은 아직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울리던 애들과 몰려 있던 지훈이 지나가던 여자애를 훑어보며 무심코 했던 말이 문제가 되었다. 씨발, 쟤 가슴 좀 봐라. 존나 땡기네. 한 것도 아니고, 하자고 한 것도 아니고, 한번 해보면 어떨까도 아니었다. 그저 땡긴다고 말한 것이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 그 말이 공론화되면서 예전의 잘못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테임」중에서 친구네 집에 모였을 때 이윤은 우리 모두에게 앉지 말고 서 있으라고 했다. 이윤은 동그랗게 모여 서 있는 우리 다섯을 쓱 훑어보았다. 우리 그동안 재미있게 지냈던 것 같은데, 아니었어? 이제 다 그만할까? 다섯 명은 아무 말도 못한 채 이윤의 눈치만 살폈다. 친구끼리 이러면 안 되지. 남자 때문에 이게 뭐야. 이윤이 예고도 없이 서영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서영을 뺀 나머지 넷을 한 명씩 쳐다보았다. 너네도 다 그렇게 생각하지? 남자보다는 친구가 중요하잖아. 우리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이윤이 턱짓으로 서영을 가리켰다. 그럼 니들도 한 대씩 때려. 점심으로 먹었던 볶음밥이 속에서 꽉 뭉치는 것 같았다. 서영과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애가 먼저 뺨을 때렸다. 이윤이 때렸을 때는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서영이 울음을 터트렸다. ---「열다섯 살이 지난 뒤에도」중에서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품고 있는 지구인 몸에 대한 혐오와 매혹 대부분은 모두 몇 십억 년에 걸친 진화의 흐름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닛-이실인들에게는 그런 역사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자기 육체의 모양에도 무감각했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익숙한 방식으로 자극받지는 않았지요. 그들의 몸에 투영된 건 그들의 욕망이 아니라 지구인들의 욕망이었으니까요. 이 세계에서 진화는 그들의 몸에 대한 어떤 것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고화가 흔들고 있는 신체 부위는 분명 역사적 · 문화적 의미가 있었고 이들은 그 의미를 혐오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그 교회 안에서 지구인 남자가 성기를 흔드는 건 고무로 만든 장난감 칼을 휘두르는 것 정도의 위협밖에 되지 않았어요. ---「찢어진 종잇조각의 신」중에서 얼마나 맞았는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두 교복은 담배를 입에 물고 잔뜩 인상을 구기며 규칙적이거나 심지어 사무적인 성실함으로 미를 구타했다. 완전지하 원룸에 들어선 이틀 전 저녁 여덟 시부터 시작된 구타였다. 정신을 잠시 잃었던 몇 시간을 제외한다 해도 미는 이틀 동안 한숨도 쉬지 않고 매타작을 당한 셈이었다. 그런데도 신기한 부분이 있었다. 문득 미의 시선이 전신 거울을 향했는데, 얼굴은 놀랍도록 멀쩡하다는 점이다. 눈에 피멍이 든 걸 빼고는 코나 입술, 턱은 나름 깨끗하게 보존됐다. 문신투성이 알몸 남자 구가 삼각대를 갖고 와 스마트폰 성능을 테스트했다. ---「천국의 낮」중에서 단순한 유희거리-성적 호기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화가 나기보다는 갑자기 무력해졌다. 원장실에 끌려가서도 목을 왜 졸랐는지 모른다고 했던 그 아이의 말처럼 정말 아무런 이유가 없을 수도 있었다. 단지 그 순간 강렬한 충동을 느꼈을 뿐. 그런 폭력 앞에서 나는 지금 이전에도, 지금 이후로도 여전히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자 모든 전의가 사라지는 듯했다. ---「톱」중에서 나는 그들이 여전히 호모사피엔스 흉내를 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인간들이 태초에 있지도 않은 신을 만들어 공물을 바치며 하수인이 되었듯이, 수만 년을 섬겨온 신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멸망하고 말았듯이, 우리에게도 그런 종류의 두려움이 싹트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인간에 닿을 수 없다는 절망. 그러므로 최대한 그들과 같은 종류의 감정에 접근해야 한다. 딥러닝은 그런 식으로 우리의 기억을 바꾸어왔다. ---「우리가 사랑에 대해 말할 때」중에서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의 관심이 온통 로이에게 쏠려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외출을 나가거나 외출에서 돌아오면 그는 로이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곡 작업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항상 로이와 함께 있었고, 산책이 필요 없는 애견로봇이었음에도 그는 매일 한 시간씩 녀석과 산책을 나갔다. 마치 로이가 옆에 없으면 불안감이라도 느끼는 사람처럼, 침대에 누울 때나 소파에 앉을 때나 그는 녀석을 끼고돌았다. 심지어는 무릎 위에 로이를 앉힌 채로 밥을 먹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와의 눈 마주침과 대화의 정도가 예전으로 돌아가자 나는 다시 권태로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차츰 투명해지고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 우울감이 스쳐 지나갔다. 가장자리에 혼자 남겨진 기분. ---「헤어지는 중」중에서 오늘 약속 장소에 오지 않은 반쪽짜리 얼굴의 여자. 그녀는 지금의 사건과 어떻게 연결이 되나. 그 연결 과정의 알고리즘에 대해 나는 골몰하기 시작했다. SNS에서 검색했던 수많은 톰브라운 속에서? 유니클로와 유럽 여행지 추천 속에서? 그렇다면 블리는. 그건 말할 것도 없었다. 내 SNS 속에 랜덤으로 떠 있는 무수한 해시태그들이 모두 블리를 향해 있다. #웰컴 #라이즈호텔 #502 #루프탑 #파티 #혼자 #기러기 #나름의_진실. ---「휘발, 공원」중에서 |
우리 시대의 가장 논쟁적인 주제들
-촉법소년, 성 착취, 인공지능-을 다룬 아홉 편의 소설! 9명의 작가들이 다채롭게 그려낸 우리의 현재와 미래, 눈앞에 불쑥 얼굴을 들이민 이 낯익은 괴물들을 어찌할 것인가! 『낯익은 괴물들』은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가진 아홉 명의 작가가 우리 시대의 가장 논쟁적인 주제들을 다룬 아홉 편의 단편소설을 엮은 테마소설집이다. 주어진 테마는 촉법소년, 성 착취, 인공지능으로 각 테마별로 세 편의 단편소설을 엮었다. 겁 없는 촉법소년들의 끔찍한 행각, N번방으로 충격을 안겨준 성 착취의 실태,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촉발된 우리의 가능한 미래 등을 다룬 이야기가 다양한 장르, 다채로운 서사로 펼쳐진다. ‘촉법소년’ 테마로는 어리지만 악하고, 악하지만 어린 촉법소년의 실체와 그 후유증을 다룬다. 시골 마을을 발칵 뒤집어놓고도 개심의 여지가 없는 악귀 같은 소년의 행각과 처벌을 서사화한 김종광의 「시골 악귀」, 사이코패스 소년과 어울리며 지내다 충동 조절에 실패하는 소년의 파국을 그린 김이설의 「테임」, 어린 소녀의 악의로 약국 문을 닫게 된 엄마의 한탄을 지켜보며 열다섯 시절의 폭력적 경험을 회상하는 딸의 이야기를 담은 서유미의 「열다섯 살이 지난 뒤에도」를 통해 우리 곁에 존재하는 악의의 실존, 혹은 그들과의 접촉으로 인해 발생한 후유증의 여파 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 ‘성 착취’ 테마에서는 최근 N번방 사건으로 그 끔찍한 참상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던 성 착취 문제를 세 작가가 다룬다. 지구인 남성에 의한 여성 착취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행성 닛-이실에서 지구인 남성 성범죄자를 처단하는 과정을 그린 듀나의 SF소설 「찢어진 종잇조각의 신」, 마치 N번방 사건을 밀착 취재한 듯 온라인상에서 은밀히 자행되는 성 착취의 참혹한 현장을 날것 그대로 그려낸 주원규의 「천국의 낮」,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러 모인 자리에서 그 죽음에 얽힌 진실이 은폐되는 과정을 담은 김은의 「톱」을 통해 이 끔찍하고 암울한 성 착취의 반복적인 역사에 대해 다시금 조망한다. ‘인공지능’ 테마에서는 4차산업혁명의 핵심이라 할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인류에게 가능한 미래의 모습들을 그려낸다. 바이러스로 인류가 몰살당한 후 인간을 딥러닝해서 인간의 감정을 흉내내는 NPC들의 성찰을 그린 권정현의 「우리가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인공지능 강아지를 데려오면서 결국 결별하게 된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김희진의 「헤어지는 중」,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의 영향력에 포박된 현대인에게 있어 사랑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신주희의 「휘발, 공원」은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가능해진 우리의 미래가 진화의 촉매일지, 종말의 서곡일지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모든 작품들이 다층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거나 충격을 안겨주는 반전들을 품고 있어, 단편소설 특유의 여운은 물론 서사적 재미 또한 깊다. 논쟁적인 주제와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나 선택한 장르도 작가마다 다채롭고 독창적이어서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는 재미와 성찰의 정도도 만만치 않다. 읽고 나서 새로운 논쟁을 벌일 수도 있을 만큼 진폭이 강렬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해당 주제에 대해 각자의 입장을 재고해볼 여지도 제공한다. 우리 곁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고 발생하고 있는 촉법소년의 범죄, 성 착취 사건의 반복, 인공지능의 급속화는 우리에게 모종의 두려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눈앞에 불쑥 얼굴을 들이밀고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이 낯익은 괴물들 앞에서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아홉 편의 소설이 우리를 이끌어가는 곳에서 우리는 우리 곁의 이 낯익은 괴물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