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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으로 사는 인생

덤으로 사는 인생

김진길 | 북랩 | 2021년 02월 0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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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2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198쪽 | 284g | 135*190*20mm
ISBN13 9791165396015
ISBN10 1165396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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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정무근이 석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고 도로 석에게 대들었다. “더러운 놈! 독한 마음 먹고 한다고 했는데… 그놈이 콧기름을 발라 내가 이 지경이 되었으니….” 정무근이 앞뒤가 전혀 통하지 않는 말을 씨부렁거렸다. “무슨 뜻이야?” 석의 눈이 번쩍 띄어졌다. “너에게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보안과장하고 소장 녀석이 말이야…. 이젠 다 틀렸어. 선택의 여지가 없단 말이야. 죽을 수밖에는….” 정무근이 말을 더 잇지 못하고 한숨을 뱉어냈다. 정무근의 육중한 어깨가 약간 흔들렸다. 온통 흰자위로만 덮여있던 그의 눈동자에서 이젠 흰자위는 간 곳이 없었다. 정무근이 이미 다 풀려버린 눈동자를 억지로 모으며 석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같이 죽어… 줄래…?” 갑자기 정무근이 부드러운 말투로 섬뜩한 부탁을 했다. “그러지.” 석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도무지 실감이 가지 않았다. 마치 남의 일처럼, 죽는다는 것에 대하여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삶의 애착을 쉬이 떨쳐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자기가 생각해도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정무근이 오히려 흠칫했다. 석의 입으로부터 그렇게 쉽게 승낙을 얻어 낼 수 있을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한 탓일까….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정무근은 무슨 대단한 결심을 한 듯이 입술을 한 번 지그시 깨물고는, 기계실 안으로 사라졌다.
---「인질」중에서

"설령 보안과장이 지금에 와서 ‘김 주임에게 구두 명령을 했다고 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 하고 ‘양심선언’을 한다 해도 어쨌든 바보같이 도둑놈에게 인질이 되어 사건 발단의 원인 제공을 한 장본인으로서의 죄가 ‘파면’보다 가벼워질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어. 명령을 받았건 받지 않았건 간부라면 당연히 늦게라도 시갑 하지 않은 걸 발견했더라면 감독교사가 뭐라고 하던 원칙대로 시갑을 했어야 했고. 죄목처럼 계호를 철저히 하지 않아 인질을 당하는 바보짓은 하지 말아야 했어.

그 점에 대하여는 나도 할 말이 없어. 지금에 와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에게 붙여진 죄목이 잘못되었다는 것이야.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보안과장이 호송준비 감독명령을 했다고 거짓 경위서를 제출한 덕분이긴 하지만, 구차스럽게 4가지나 나열하지 말고 그냥 ‘감독자로서 우연히 현장에 들렀다가 계호를 소홀히 하여 바보같이 인질이 되어 물의를 일으켰고 교정계의 위상에 흠집을 초래했다. 그래서 자타 경계상 파면시킨다.’ 했으면 나로서도 할 말이 없지. 20여 년간 천직으로 삼고 지내오다가 한순간의 실수로 이렇게 병신까지 되어 보상은커녕 불명예까지 짊어지고 쫓겨나는 내 기구한 운명이 한없이 원망스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칼자루는 높은 양반들이 쥐고 있으니 말이야….”

오랫동안의 말을 마친 석의 음성은 어느새 울음으로 변해있었다. 모두들 숙연한 심정으로 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화장실에 갔던 정 교사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박 교사는 아까부터 꼭 이 한마디를 해주고 싶었다. “김 주임! 덤으로 사는 인생이니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시구려.”라고….
---「덤으로 사는 인생」중에서

“들어갑시다. 이야기해 보시오.” 다그치는 내 말이 의외란 듯 흠칫 몸을 한번 떨더니 고맙다는 눈웃음을 보낸다는 것이 묘한 표정이 되어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띄엄띄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얘기는 대강 이러했다. 그녀의 집은 경북 Y읍에서도 조금 떨어진 시골이라 했다. 이곳에서 수용된 남편을 면회하러 왔다는 거다. 처음 남편이 교통사고를 일으켜 수용된 E시에서 T교도소로 이송되었다는 남편으로부터의 편지를 받고 한동안 T교도소로 면회를 다녔다 한다. 이번에도 그곳에 있겠거니 생각하고 여느 때처럼 몇 됫박의 잡곡과 약간의 푸성귀를 시장에 내다 팔아 영치금과 하루치 여비를 마련하여 면회를 나섰는데 T교도소까지 갔다가 헛걸음을 하고 이곳까지 왔다는 거다. 이곳 M시는 초행길이라 물어물어 오다 보니 여비도 많이 들고 지난밤에는 여관잠도 자버려 이 지경이 되었다는 거다.

“사람을 가둬두면 한군데 가둬 둘 것이지 면회 다니는 가족들 골탕 먹이려고 두 번 세 번 옮기고, 그것도 모자라 이곳까지 천리만리 쫓아 보내는지. 또, 보내면 보낸다고 연락을 해주든지 할 것이지. 이것도 다 무식한 시골 사람이라 얕잡아보고 이러는가요? 이렇게 하는 게 잘하는 것이요? 입이 있으면 대답 좀 해보소.” 처음에는 애원조로 말문을 열더니 마지막 말을 할 때는 입에 거품을 물고 이빨을 깨물면서 마구 윽박지르는 것이 아닌가. 이런 사람에게 이송 근거 규정을 설명한들 무엇 하랴.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당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고…. 한순간 나는 할 말을 잊고 멀거니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비상준비금」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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