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복고 미스터리]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 연재작으로 거품경제가 정점에 달한 1980년대 후반, 돈과 욕망을 둘러싼 호텔 밀실 살인사건을 그렸다. 오드리 햅번을 모티브로 한 주인공 교코와 우직한 옆집 형사 사비타의 통통 튀는 케미가 눈여겨볼만하다. -소설MD 김소정
|
1장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
2장 삼류 소설 같은 죽음 3장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 4장 합동 작전을 펼치자 5장 중요한 할 얘기가 있어 6장 두 남자의 궤적 7장 너와 함께 비틀스를 8장 페이퍼백 라이터 9장 윙크로 건배 역자 후기 |
저히가시노 게이고
관심작가 알림신청Keigo Higashino,ひがしの けいご,東野 圭吾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상품
역양윤옥
관심작가 알림신청양윤옥의 다른 상품
8억 엔은 꿈의 꿈의 꿈같은 일일지라도 800만 엔 정도의 보석은 척척 사들이고 싶다. 죽기 살기로 겨우겨우 사는 게 아니라 채소 한두 개 사듯이 가볍게. 그렇게 좀 안 되려나. 응, 그건 안 돼, 라고 교코는 자각했다. 일단 내 힘으로는 어렵다. 하지만 남의 힘을 빌린다면 희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좋아, 열심히 뛰어보자. 22.76캐럿을 꿈꾸며 교코는 힘주어 걸음을 뗐다. 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긴자 주오도리 길을 왼쪽으로 꺾어 들었다. 그 앞에 그녀가 오늘 일할 곳, 긴자 퀸호텔이 있는 것이다.
--- p.10 파티 초대장이 일종의 상류층 자격처럼 여겨져서 참석하는 여자들은 온몸에 하나야의 보석을 주렁주렁 달고 나온다. 그러면 당연히 여자들 사이에 거센 경쟁의 불꽃이 튄다. ‘이름도 없는 여배우 주제에 에메랄드 반지를 꼈어?’라든가 ‘흥, 주름 자글자글한 아줌마가 화려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해봤자 빛이 안 나지’라든가, 다들 마음속으로 그런 평가를 한다. 그렇게 되면 좋아, 다음에는 좀 더 값비싼 걸로, 라는 식으로 흘러간다. 즉 하나야는 점점 더 장사가 잘된다. 너무 많이 벌어서 그 이익을 환원해드린다는 명목으로 다시 감사파티를 연다. 불꽃이 번쩍번쩍 튀고 다시금 값비싼 보석이 팔려 나간다는 구조인 것이다. 그러니 남편들 쪽에서는 배겨날 수가 없다. 오늘도 아내들은 눈에 핏발을 세우며 남의 보석 가격을 가늠해보고 남편들은 그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는 광경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그런 파티장이 교코를 비롯한 밤비 뱅큇 컴패니언들의 일터였다. --- p.14 “그러면 우리 집으로 가요. 정보 교환도 할 겸 맛있는 거 먹자고요. 하긴 아까 먹고 남은 스파게티뿐이지만.” “엇, 눈물이 날 만큼 반가운 말씀을 해주시네? 아, 근데 내가 가진 정보는 먹고 남은 스파게티만큼의 가치도 없을 텐데, 어쩌죠?” 위아래 추리닝 차림으로 시바타는 교코의 원룸으로 건너왔다. 교코가 시바타를 위해 봉골레를 차리는 동안 그는 교코가 꺼내놓은 카라얀의 레코드 재킷을 보고 있었다. “교코 씨가 클래식 팬이라는 건 예상을 못 했는데요?” 그가 감탄한 듯 말했다. “아니에요, 이제부터 팬이 될 생각이죠.” 교코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건 아까 레코드 대여점에서 빌려온 거예요.” “왜 갑자기 클래식 팬이 될 생각을 하셨을까?” “신데렐라의 조건이거든요. 내가 찍은 왕자님이 클래식을 좋아하셔서.” --- p.70 “자, 문제는 여기서부터예요. 교코 씨라면 이 컵에 독을 어느 정도나 넣을까요?”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어느 정도나 넣어야 죽는지 모르는데. 일단 가지고 있는 독을 다 털어 넣지 않을까요?” “좋아요, 이만큼 먹으면 죽을 것이다, 라고 생각되는 양을 넣었겠죠. 그리고 그걸 넣었다, 자, 여기서 문제.” 시바타는 컵을 손에 들었다. “이 물을 어떻게 마시죠? 단숨에 마실까요, 아니면 조금씩 홀짝홀짝 마실까요?” “물론 단숨에 마시겠죠. 찔끔찔끔 마시면 괜히 더 고통스러울 것 같아요.” “맞아요, 그게 일반적인 생각이겠죠.” 시바타는 컵을 주방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여기서 의문이 생겨요. 자살자의 심리를 살펴보면 대개는 단숨에 마실 수 있는 음료를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에요. 그렇다면 에리 씨가 맥주를 선택한 건 이상하죠. 지난번에 교코 씨에게도 물어봤지만, 에리 씨는 술이 그리 세지 않아서 맥주 한 잔이 적정량이라고 했어요. 즉 그녀에게 맥주는 결코 마시기 쉬운 음료가 아니었어요. 실제로 죽을 생각이었다면 역시 물이나 주스 쪽을 선택하지 않겠어요?” --- p.80 그가 다시 사건에 대한 얘기를 꺼낸 것은 식후의 에스프레소 커피가 나왔을 때였다. “그나저나 지난번에는 깜짝 놀랐죠? 그때도 이렇게 교코 씨와 커피를 마신 뒤였는데.” 다카미는 맛있다는 듯 커피 잔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 에리 씨라는 분도 뭔가 고민거리가 있었던 모양이죠? 교코 씨한테 그런 얘기를 한 적은 없었어요?” “아뇨, 전혀.” “그렇습니까. 에리 씨와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였어요?” “3개월 정도였어요. 에리는 그 전에 로열 뱅큇 소속이었거든요.” 이런저런 제약이 너무 많아 그만뒀다는 것, 나고야 출신이라는 것을 교코는 덧붙였다. “나고야? 역시…….” 슬쩍 내비친 그 말에 교코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역시, 라뇨?” --- p.97 |
호화로운 파티의 밤에 일어난 호텔 밀실 살인사건,
그리고 자살한 무명화가의 숨겨진 메시지! 두 가지 트릭을 풀어나가는 유쾌한 수사 케미의 맛 명품 상점이 즐비한 도쿄 긴자 거리, 화려하게 빛나는 보석점 쇼윈도를 오늘도 ‘교코’는 홀린 듯 바라본다. 교코가 저 아름다운 보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계획’을 짜고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것뿐이다. 애초에 컴패니언(파티나 행사에서 고객을 안내하고 접객하는 직업)이 된 것도 그런 원대한 계획의 일환이다. 어느 날, 하나야 보석점 고객 감사파티가 끝난 뒤, 호텔 밀실에서 직장동료 에리가 죽은 채 발견된다. 경찰에서는 삼각관계를 비관한 자살이라고 추정하지만, 교코는 도무지 이를 믿을 수가 없다. 마침 담당 형사 시바타가 에리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그녀의 고향 나고야로 조사를 떠나려 하기에, ‘옆집 사이’라는 이점을 이용해 행적 조사에 동행한 교코. 그들은 이곳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에리의 전 연인이었던 무명화가 이세가 살인을 저지른 뒤 자살을 했다는 것! 이세와 에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곧이어 교코에게도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는 "800만 엔짜리 보석쯤은 채소 한두 개 사듯 툭툭 사고 싶은" 여주인공 교코와 남들이 뭐라든 뚝심 있게 사건을 수사하는 옆집 형사 시바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면서 살인사건의 전모를 추리해나가는 미스터리소설이다. 피해자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알게 된 과거의 사건, 그리고 이후 벌어지는 미래의 사건이 맞물리며, 연쇄적인 트릭을 풀어나가는 유쾌한 수사 케미가 돋보인다. 부동산 폭등과 주식 열풍의 거품경제를 배경으로 한 돈과 욕망의 판타지 무거움을 가볍게 풀어내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 실험작 소설의 배경이 되는 80년대 후반은 일본의 거품경제가 정점을 찍을 때였다. 당시의 부동산 거품은 국경을 뛰어넘었고, 1989년에 약 2,000억 엔으로 미국의 록펠러센터를 구입한 일은 일본 기업에 의한 국외 부동산 구매의 상징으로 지금까지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 대도시와 지방 소도시,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의 격차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진 것도 그 시절이었다. ‘없는 사람’은 어떻게 움치고 뛸 수도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저마다 원대한 계획을 짜는 것으로 욕망의 탈출구를 찾으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돈과 욕망이란 이 무거운 주제를 유머러스하고 가벼운 터치로 담아내고자 했다. 이 작품은 그의 첫 연재소설인데, 연재작이라는 특성상 태생적으로 엔터테인먼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배경을 파고들면 심각한 사회경제적 부조리라는 음울하고 묵중한 주제가 드러나지만, 오히려 코믹하게 술술 읽어 내려갈 수 있도록 스토리를 풀어나간 실험이 돋보인다. 이 책은 그런 작가의 초기 장편을 국내 최초 소개하는 것으로, 선 굵은 작가의 성장을 목격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햅번을 모티브로 한 여주인공 교코와 80년대의 시대적 배경이 만나 탄생한 몰입도 높은 스토리텔링 히가시노 게이고는 25주년을 기념하며 펴낸 공식 가이드에서, 당시 자신이 푹 빠져 있던 오드리 헵번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의식하며 이 작품을 썼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이야기 곳곳에서 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장면을 쉽게 만날 수 있으며, 상류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열망하면서도 발랄함과 품위를 잃지 않았던 영화 속 오드리 헵번과 책의 주인공 교코의 모습이 여러 차례 오버랩된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이야기 곳곳에 유선 전화, 열쇠, 카세트테이프 등 80년대의 소품과 그 시절의 풍경이 배치되어, 지금은 사라진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삿날 전화선이 아직 연결되지 않아 옆집에 전화기를 빌리러 가는 장면이나, 무심코 놓인 책받침에 인쇄된 내용을 보고 피해자가 과거 일했던 직장의 주소를 추측하고, 외출에서 돌아오면 ‘부재중 메시지’를 재생하는 등 ‘응팔’ 시대의 감성을 물씬 느낄 수 있다. 작가가 새내기 시절에 절치부심하며 공들인 ‘최신작’이 시간이 흘러 풍성하고 몰입도 높은 복고풍 스토리텔링으로 찾아왔다는 게 이 책의 또 다른 묘미가 아닐까. 예전의 기억을 되짚어보고 그 시절의 기술적 한계와 그로 인해 더욱더 풍성했던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보면, 독자의 머릿속에도 어느새 또 다른 복고 미스터리가 그려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