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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essa Moshfe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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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역겨운 인간이 자기 개에게 중성화 수술을 안 해줄까요? 어떤 비뚤어진 인간이……” 사실 순진한 거지, 겨우 서명 하나에 그런 구속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종이에 묻힌 잉크 몇 방울, 휘갈긴 글씨 몇 자, 그냥 내 이름일 뿐인데.
--- p.27 커다란 집이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러밴트의 오두막집이 나타났을 때는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조금 숨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내 정신이 배회할 세계가 좀 작아질 필요가 있었다. --- p.30 내게는 과학에 대한 감성이 없었다. 월터와 그의 이성적인 정신에 시달리다보니 그런 종류의 정신적 야단법석에는 인내력이 바닥났다. 그가 죽은 뒤로 나는 좀더 시적으로 사고하게 됐다. 마법이 차가운 논리에 뭉개져버릴 때가 너무 많았으니까. --- p.37 나는 단순한 일들을 하면서 기쁨을 느꼈다. 개에게 음식을 해 먹였고, 서재 창문 밖으로 아침 햇빛을 받은 고요하고 희끄무레한 물을 바라보았다. --- p.40 시내를 느릿느릿 돌아다니며 진짜 목적도 없으면서 바쁜 척했다. 그게 인생인 것 같았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할일을 찾는 것. 시계를 본 횟수가 적었다면 그 하루를 더 즐겁게 보냈다는 뜻이었다. --- p.42 나는 책을 좋아했다. 책은 조용했다. 내 얼굴에 대고 소리지르지 않았고 읽다가 그만둬도 화내지 않았다. 내용이 맘에 들지 않으면 책을 방 저편으로 내던져도 괜찮았다. 벽난로에 넣고 태워도, 책장을 찢어내 코를 풀거나 화장실에서 사용해도 괜찮았다. 물론 그런 짓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내가 읽은 책 대부분이 도서관에서 빌린 것이었으니까. --- p.44 죽음은 생각만 할 때는 괜찮더라도 지나치게 가까이 가면 내가 어떤 식으로든 감염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이 나를 변화시킬 거라고. --- p.76 알고 보니 지역 주민 중에 경찰이 가장 재수없었다. 그들은 양손을 옆구리에 올리고 문가에 서서, 마치 내가 자기들에게 위협이라도 되는 양 굴었다. 이들은 나를 겁주려고 내 집에 왔구나, 나는 생각했다. --- p.78 죽음은 해묵은 푸석한 레이스 같았다. 섬세한 망사 바탕에서 곧이라도 분리될 듯 너덜거리며 간신히 버티는, 해체 직전의 아름답고 섬세한 아플리케. (…) 생명은 여간해서는 파괴되지 않았다. 인정사정없이 다뤄야만 몸밖으로 몰아낼 수 있었다. --- p.89 여기저기에 조금씩 비밀을 심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면 자기 자신에게 계속 관심을 쏟게 된다. --- p.97 실로 작가의 일이란 이 지구의 기적을 하찮게 만들고, 삶의 무한한 미스터리에서 질문 하나를 떼어내 투덜대는 방식으로 답하는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 p.101 그는 품위 있고, 잘생겼고, 정말이지 준수했다. 외모가 준수한데도 주위 사람들을 매우 불편하게 하는 남자가 있다면 성격이 끔찍이도 가혹할 게 뻔하다. 월터가 못생긴 남자였다면 멸시를 받았을 것이다. --- p.156 그는 삶의 사소한 문제들이 뭔지도 몰랐다. 이미 결혼생활 초기에 그런 문제는 전부 내게 떠넘겼다. 죽을 때까지 삼십 년 동안 그는 한 번도 식료품점에 가본 적이 없을 것이다. --- p.251 존재론적인 문제를 생각하면 우울해졌다. 내가 꿈속에서 살고 있다고 느껴졌고, 내 정신에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는데도 그 정신에 의지해 나를 둘러싼 현실 전부를 상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느껴졌다. 나는 눈앞의 광경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스스로를 탓했다. --- p.252 |
『내 휴식과 이완의 해』 오테사 모시페그 최신작!
뉴욕공립도서관 선정 2020 최고의 책 100 “이토록 기괴한 몸짓과 풍경은 일찍이 본 적 없는 또렷한 존엄이자 숭고다.” 소설가 권여선 추천! 오테사 모시페그는 우리를 다독여 재우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잠에서 깨우고 이렇게 말하려는 것이다. “왜 관심을 갖지 않는 거지? 우리가 놓친 게 뭘까? 이젠 세상의 진짜 모습을 볼 때가 아닌가?” -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이 소설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 관한 철학적 질문들을 상정하고, 예상치 못한 시선으로 고독과 자유를 조명한다. - 워싱턴 포스트 외과의나 연쇄살인범처럼 모시페그는 등장인물과 독자들의 거죽을 벗기고 벗겨 공허만을 남긴다. 이 공허를 둘러싼 즐거운 사색이야말로 그녀 작품의 뒤틀린 아름다움과 유머, 공포에 음울한 흥분을 부여하는 힘이다. - 뉴요커 모시페그는 미스터리의 중심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안주하기에는 너무도 흥미로운 작가다. 그녀는 대답보다 질문하기를 좋아하고, 미스터리 자체에 천착한다. 신선하고, 이상하고, 놀랍고, 재미있는 1인칭 서술에도 일가견이 있다. - 월스트리트 저널 모시페그의 소설들을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히 감싸던 냉소가 『그녀 손안의 죽음』에서 균열한다. 그 틈으로 손을 뻗어 유약한 감정의 핵심부에 닿을 수 있다. 주인공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는 순간에마저 우리는 그 핍진한 마음에 가까이 다가선다. - 허핑턴 포스트 모시페그는 현역 작가 중 가장 뛰어난 인물로 꼽힌다. 고립이 인간의 정신을 왜곡하는 섬뜩함에 대해 그녀의 통찰을 따라올 자가 없다. - 워싱턴 인디펜던트 리뷰 오브 북스 모시페그가 새로운 인물과 함께 돌아왔다. 소외되고, 소외를 자처하는, 여성 화자의 이상하지만 기묘한 보이스를 좀처럼 떨쳐버리기가 힘들다. - 보스턴 글로브 어둠을 직시하는 모시페그의 귀한 재능은 예상 밖으로 흥미롭다. 어차피 예술이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할 수 없다면, 흥미로운 운명 속에 소외된 여성 화자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주는 것도 대단한 위업이다. - 애틀랜틱 모시페그는 『그녀 손안의 죽음』에서 거장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소설은 서스펜스에서 호러로 매끄럽게 나아가는 내내 독자의 주의를 놓치지 않는다. - 마리클레르 탐정보다 소설가를 닮은 주인공이 그려내는 독특한 미스터리 단 한 장의 쪽지로 시작된 사흘간의 죽음의 추적 『그녀 손안의 죽음』은 72세 여성 베스타가 살인과 시신 유기를 암시하는 쪽지를 발견하고 그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사흘간의 행적을 담은 소설이다. 유일한 단서인 쪽지에 적힌 ‘마그다’라는 여성의 이름에서 출발해 베스타는 직감과 상상력을 발휘하는 탐정이 되어 자신만의 추리 지도를 그려나가고자 한다. 그런데 그녀가 주변을 살피고, 이웃을 염탐하고, 도서관 컴퓨터로 검색해서 얻은 추리소설 작법 요령을 따라 마그다의 삶과 죽음을 추리하는 행위는 탐정보다 소설가를 닮은 듯도 하다. 베스타는 그 과정에서 마그다의 주변인물일 법한 사람들을 마주치고, 직접 행동에 나섰다가 크고 작은 사건들에 휘말리면서, 현실과 추정의 혼란한 경계로 스스로를 몰아간다. 시신을 묘사할 표현을 생각해내기가 그렇게 힘들까? 쓰러진 나무 밑 덤불 속에 뒤엉킨 사지, 부드럽고 검은 흙에 반쯤 파묻힌 얼굴, 등뒤로 묶여 있는 양손, 칼에 찔린 상처 곳곳에서 흘러나와 땅으로 배어드는 피, 이런 식으로 말이다. (10p)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바로 남들이 하는 방식을 머릿속에 꽉 채우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재미가 빠져나간다. 아이들에 대해 공부한 뒤에 아이를 낳겠다고 성교하나? 남들의 배설물을 철저히 조사한 뒤에 화장실로 달려가나? 돌아다니며 사람들한테 꿈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 뒤에 자러 가나? 아니다. 미스터리 소설 쓰기는 창의적인 일이지 계산된 절차가 아니다. (101p) 이 소설은 작중의 주인공도 책을 펼친 독자도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게 한다. 따라서 쪽지 한 장만 가지고 사건의 내막을 추리하는 과정이 주인공과 독자의 공동 작업처럼 흘러가는 한편, 오직 주인공의 생각과 시선에 의지해 이야기가 전개되는 와중에 그녀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그 신뢰를 끊임없이 시험당하는 데서 이 소설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팽팽한 긴장과 의구심 속에서 질주한 이야기의 끝에는 예기치 못한 충격적인 사건과 함께 베스타가 손안에 쥔 죽음의 의미를 다시 곱씹어보게 할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기억과 정신이 무너져내릴 때, 인간은 무엇을 붙들고 무엇을 놓을 수 있을까 삶의 마지막만큼은 자기 힘으로 결정하기를 원했던 노년 여성의 심리 드라마 베스타는 남편이 죽은 뒤 터무니없이 크게 느껴지는 집을 떠나 외딴 지역의 작은 오두막집으로 이사했다. 신경을 쏟아야 할 공간을 줄이고, 노년의 느긋한 일상을 즐기고, 결국 자기 삶의 마지막은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그리고 평온했던 날들에 미스터리한 사건이 끼어들면서 그 중심에 한 걸음씩 다가갈 때마다 지난 삶으로 단단히 얽힌 실타래도 점점 풀려나온다. 마그다라는 미지의 인물에 대한 상상을 한 가닥씩 새롭게 감아나가는 동시에 자신의 과거를 마구 풀어헤치며 점점 혼돈한 정신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그녀가 타인의 눈에는 머릿속 세상에 갇혀 이따금 현실로 나오는 나이든 괴짜로 보이기도 한다. 나는 늘 혈액순환 장애와 저혈압에 시달렸는데 남편은 그걸 ‘심약함’이라고 표현했다. (…) 언젠가 이상한 곳에 쓰러져 머리를 부딪히거나 차를 운전하다 사고를 낼지도 모른다. 그러면 끝장이겠지. 내가 앓아눕더라도 보살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시골의 싸구려 병원에서 죽을 테고, 찰리는 동물수용소에서 도살당하겠지. (11p) 허비한 가능성, 놓쳐버린 기회보다 더 가슴 아픈 건 없어. 그런 것들에 대해 나는 잘 알았다. 나도 예전에는 젊었고, 많은 꿈이 내동댕이쳐졌다. 하지만 그걸 내동댕이친 건 바로 나였다. 나는 안전하기를, 완전하기를 바랐고 확실한 미래를 원했다. ‘미래가 있기는 할까’와 ‘원하는 미래가 올까’, 이 두 질문을 혼동할 때 사람은 실수를 저지른다. (145p) 교묘하게 자신을 억압하고 조종했던 남편에 대한 분노, 소심함과 주저함과 자기혐오로 점철됐던 젊은 날에 대한 울분을 베스타는 노년의 나이에 오롯이 혼자가 되어 스스로 택한 고립 속에서 그제야 고백한다. 그렇게 기억과 정신이 폭발하고 무너져가는 와중에 자신이 놓아야 할 일과 끝까지 붙들어야 할 일을 해내고자 하는 베스타의 모습은 독자가 그녀를 온전히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연민과 위로를 자아내게 한다. 그동안 진한 냉소와 블랙유머로 무장한 여성 서사를 그려왔던 모시페그의 전작들과 달리 『그녀 손안의 죽음』은 어쩌면 필연적인 노년의 착란 속에서 무너져가는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 보여주면서 인간의 유약함과 핍진함에 좀더 다가가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