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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소개장
13 소세키 산방의 설날 19 소세키 선생의 내방 23 호랑이 꼬리 28 소세키 축음기 32 소세키 선생의 파지 37 소세키 선생이 남긴 코털 43 아카시의 소세키 선생 51 소세키 단편 54 책상 57 소세키 선생에 대한 추억 보충 59 홍차 62 13호실 71 빈동기 75 소양기 97 소세키 선생 임종기 120 소세키 산방, 밤의 문조 129 소세키 잡담 138 설날의 번개 141 앞치마와 소세키 선생 145 신간 148 「털머위 꽃」에서 193 구일회 200 소세키 하이쿠 감상 228 대작 234 「햣키엔 일기첩」에서 243 「소세키 전집은 일본인의 경전이다」 ─ 추천사 245 「일본인의 교과서」 ─ 추천사 246 「내 문장도의 은인」 ─ 추천사 248 죽장기 276 후난의 부채 281 갓파기 284 멧돼지의 낮잠 290 아쿠타가와 교관의 추억 298 시라하마카이 301 거북이 우는구나 316 편찬 후기 |
內田百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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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괴한 가운데 소세키 선생님이 화를 내듯이 하녀에게 말했다. 소개장이 없으면 만나지 않아. 그래서 하녀는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현관으로 갔다.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가운데 나는 소세키 선생님이 참 밉살스러운 노인네라고 생각했다.
--- p.12 선생님이 자신의 파지를 우리에게 가져가도 좋다고 말했다는 건 좀 이상했다. 선생님은 대체로 그런 것을 싫어한다. 우리가 보기에 선생님의 퇴고 흔적을 그대로 더듬어갈 수 있는 파지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이 보기에는 쓰레기통에 들어가기 직전의 휴지에 지나지 않는다. --- p.33 내가 보관하는 코털은 『한눈팔기』를 쓰던 시절의 것이다. 나와 다른 두세 사람이 그동안 쌓인 『한눈팔기』의 파지를 받아 나눠 가졌다. 집으로 가지고 돌아와 그 초고를 한 장씩 넘기며 퇴고의 흔적을 살피다 보니 그중에는 쓰다 만 여백에 정성껏 직선만 그은 것도 있고 몇 가지 무늬 같은 것이나 잉크가 흩어져 더럽혀진 곳에 테두리를 그은 무늬 등이 있었다. 글이 잘 안 쓰여 괴로워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 p.41 소세키 선생님은 배려심이 있는 친절한 인품을 가졌다. 그런데 그 친절한 마음을 겉으로 표현하는 일은 싫어했던 것 같다. 특히 나 같은 조무래기 입장에서 보면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무뚝뚝한 데가 있고 다가가기 힘들어 허물없이 대할 상대가 아니었다. --- p.179 아사히신문의 연재소설 『명암』을 집필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그 원고지에는 연재 횟수 숫자가 ‘189’라고 적혀 있었다. 다시 말해 188회까지 쓰고 병으로 쓰러진 것이다. 우리는 그 서재에 들어갈 때 책상 앞에 선생님이 있는 것 같아 왠지 모르게 그쪽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 p.190 할머니의 묘지를 조시가야 묘지에서 살 생각이었는데 결국 사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부인이 선생님의 원래 묘지를 주겠다고 했다. 고마웠다. 뭐든지 선생님 흉내를 내는 것을 좋아해서 그 묘지에서 죽어보고 싶다고 농담을 하고 돌아보니 조금은 진심인 것 같아서 어이가 없었다. --- p.242 열일고여덟 살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러 인생을 보는 태도의 밑바닥에는 불변의 무언가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다. 항상 소세키 선생님이 내 안 어딘가에 있어 지도하고 질타한다. 오늘날 내가 쓰는 문장을 퇴고할 때 무엇에 따라 전에 쓴 구절을 첨삭하는지를 생각하면 소세키 선생님이 내 표현의 표지인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 p.243 아쿠타가와가 소세키 선생님 댁에 오기 시작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다. 그곳에서 나는 다시 아쿠타가와와 알게 되었고, 어쩐 일인지 아쿠타가와는 내게 친절했다. 내게는 우정이라기보다 벗의 은혜로 기억하는 일이 더 많았다. --- p.251 아쿠타가와가 죽은 후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일 때 늘 성냥을 흔들었다. 이전에는 그런 버릇이 없었다. 또한 아쿠타가와의 흉내를 낸 기억도 없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죽은 벗을 그리워하는 방편으로 이 버릇을 버리지 말자고 결심했다. --- p.2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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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세키와 류노스케
작가 우치다 햣켄이 각별한 마음으로 돌아보는 소세키와 류노스케에 관한 내밀한 일화 나를 알아봐 주는 스승과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가 있는 것은 얼마나 귀한 복인가. 그런 만큼, 그 두 사람을 잃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슬픔일 것이다. 이 책은 작가 우치다 햣켄이 자신의 문업(文業)의 버팀목이었던 스승 나쓰메 소세키와 벗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추억하며 쓴 수필집이다.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의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모습과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을 만큼 깊은 고뇌를 안고 살았던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속 깊은 일면이, 어처구니없는 듯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햣켄의 글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글의 비중으로는 소세키와의 일화에 더 힘이 실려 있지만, 같은 소세키의 문하였던 류노스케와의 일화들에서는 웃음이 나는 상황에서도 왠지 슬픔이 느껴진다. 명실상부한 일본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와 일본 유수의 문학상 아쿠타가와 상의 주인공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두 사람과 햣켄의 가운데에는 소세키 산방이 있다. 햣켄은 일찍이 중학생 시절 소세키의 작품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동경제국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소세키 선생을 찾아간다. 그 인연으로 매주 목요일 오후에 소세키의 제자들이 모이는 소세키 산방의 고정 멤버가 되었고, 그곳에서 대학 수업 시간에 그 이름을 들었던 류노스케를 다시 만나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된다. 햣켄에게 소세키는 “열일고여덟 살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항상 소세키 선생님이 내 안 어딘가에 있어 지도하고 질타한다”고 느끼는 스승이고, 류노스케는 “요즘에서야 내 글이 다소 세상 사람들의 이해와 감상을 받게 되면서 처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제 아쿠타가와가 없다는 사실이다”라고 생각하는 벗이다. 소세키는 1916년 12월에 지병으로 타계했고 류노스케는 1927년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으니, 1889년 생인 햣켄이 소세키 선생과 함께한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으나 소세키 선생은 햣켄의 마음속에 평생토록 단단한 버팀목으로 존재했다. 내 표현의 표지, 나쓰메 소세키 “나는 선생님의 제자였던 추억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 햣켄에 의하면, 나쓰메 소세키가 세상에 등장한 것은 1905년으로, 당시만 해도 이름 없는 문사였던 그는 하이쿠 잡지 〈호토토기스〉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연재하면서 유명해졌고, 그 직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단행본으로 나오면서 작가로서의 입지가 확실해졌다. 당시 독자들은 소세키의 일수거 일투족에 관심을 보이며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를 잡지사에 투서하고 따라다닐 정도였다고 하니, 그 인기와 기세가 요즘 아이돌 스타만큼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런 작가를 저자는 중학생 시절부터 흠모했다. 시골 중학교 시절, 소세키 선생의 글에 매료되어 소세키 숭배자임을 자임하다가 마침 선생이 그 지방에 강연차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 다자이 세몬과 함께 역 플랫폼까지 나가 기차의 칸마다 혹시 저분일까, 하며 찾았다는 일화에서는 앳된 문청의 열의에 찬 얼굴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 이후 도쿄제국대학 독문과에 입학하며 도쿄로 올라와 당시 병원에 입원 중인 소세키 선생을 처음으로 찾아간 일을 계기로, 햣켄은 매주 목요일에만 허락되는 소세키 자택의 방문을 허락받는다. 그 목요일의, 특히 오후의 모임인 ‘소세키 산방’은 당대 소세키 문하생들이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던 곳으로, 햣켄은 그곳에서 문단의 면면들과 교류하게 되고 도쿄제국대학 동기생이었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다시 만나게 된다. 이후 류노스케의 소개로 해군사관학교의 독일어 담당 문관으로 일하게 되고, 그렇게 두 사람은 소세키 산방을 대표하는 ‘젊은 피’로 돈독한 우정을 나눈다. 소세키 산방에 드나들기 시작하고 나서 햣켄은 『나쓰메 소세키 전집』 교열 작업에 참여한다. 그 역할로 햣켄은 매주 목요일 오후 외에도 수시로 선생을 방문하고 글에 관해 의견을 나눌 수 있었으니, 햣켄은 그런 점에서 산방의 다른 제자들에 비해 소세키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얻었던 듯하다.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선생이 매년 설날이면 찾아오는 젊은이들의 축하주 상대를 했던 일, 선생이 글을 쓰다 버린 파지를 몇몇이 나눠 가졌는데 그 원고지에 선생의 그 유명한 ‘코털’이 붙어 있던 일, 선생을 흉내 내고 싶은 마음에 똑같은 흑단 책상을 제작해서 방에 들였으나 선생 방보다 작아 책상이 방을 온통 차지해버린 일. 선생이 노(能)에 가락을 붙여 노래하는 우타이와 스모를 좋아하는 모습은 왠지 싫었던 일… 등, 가까이에서 쌓은 선생과의 일화들이 흥미롭다. 햣켄은 선생을 하늘처럼 우러르면서도 어쩐지 마음이 가지 않는 선생의 모습이나 생각에 대해서는 주저하지 않고 싫은 기색을 내비친다. 자신이 존경해마지않는 선생님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스승의 이름에 기대어 살지 않으려는 담박함과 그런 기개가 소세키 제자로서 류노스케와 햣켄의 공통점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내 문장도(文章道)의 은인,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햣켄에게 세 살 아래인 아쿠타카와 류노스케는 우정을 넘어 은혜를 입은 벗으로 기억되는 사람이다. 스물넷의 나이에 발표한 〈코〉로 나쓰메 소세키의 격려를 받으며 문단의 총아로 떠오른 류노스케는 서른다섯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10여 년 동안 150편이 넘는 단편을 발표하며 당대 문학청년들의 우상이었던 작가다. 그런 류노스케가 ‘존경하는 선배’였던 햣켄은 “내 글을 돌아보는 사람이 없던 처음부터 칭찬해주고 격려해준 사람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라고 말한다. 류노스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몇 년 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전집』 보급판이 간행되자, 햣켄은 다음과 같은 추천사를 쓴다. “고인의 영혼은 곧 짧은 일생을 의탁했으며 마침내 다른 것을 돌아보지 않았던 그의 글에, 그 행간에 꼬리를 길게 끌 것이다. 대부분의 글을 아껴주시는 여러분은 고인이 생명을 깎아내며 써서 남긴 명문을 읽을 때, 맑고 밝은 풍모가 순식간에 문자 사이에 선명하게 떠올라 가을밤이 한참 남았는데도 멋대로 환하게 빛나는 것을 틀림없이 감탄하게 될 것이다.” 햣켄의 재능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봐 주고 격려하던 류노스케와, 그런 류노스케를 “내 문장도(文章道)의 은인”이라 칭한 햣켄. 도쿄제국대학 4학년 그리스로마문학사 수업에서 담당교수가 그의 이름을 이상하게 발음하는 바람에 기억하게 된 류노스케를 소세키 산방에서 다시 만난 일,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햣켄의 형편을 헤아린 그의 추천으로 해군기관학교 교관 자리를 얻게 된 것, 사관학교에 함께 근무하던 시절의 에피소드들, 그의 집에 자주 드나든 이야기, 늘 약에 취해 있으면서도 속 깊게 친구를 챙기던 류노스케. 햣켄이 그를 만나고 돌아온 지 이틀 후 아침에 전화로 전해 들은 아쿠타가와의 자살 소식… 등, 이 책에는 류노스케의 인간적인 매력과 그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햣켄의 애틋한 마음이 곳곳에 담겨 있다. 으스대는 사람들 모습이 싫고 세상이 시시해 표현을 삼가고 산 햣켄이지만 자신의 문업을 지지해준 친구의 부재에 대한 허전함만은 감추지 못하는 게 그대로 느껴진다. 다른 것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문학에 전념하여, 작품으로 우리의 오늘에 여전히 살아 있는 소세키와 류노스케. 일상의 일화들을 통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우리 앞의 길에는 여전히 어른의 말들이 깔려 있고, 어떤 말을 밟고 지나느냐에 따라 우리 마음의 풍경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들의 단단한 기품이 유머러스하면서도 꼿꼿함이 느껴지는 햣켄의 필치를 타고 풍경처럼 퍼지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