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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2 : 과학자들의 눈에 띄어 새로운 이름을 얻은 개. 못지않게 똑똑했던 무슈카라는 개종들과의 훈련 후, 두 마리만 남은 최종 후보에서 결국은 홀로 선발된 개 4, 3, 2, 1 라이카. 무중력 상태가 미칠 영향을 테스트하기 위해 20일 동안 몸이 묶인 채, 아주 좁은 공간 안에서 가속도 적응 훈련을 한 개. 인내력, 지구력, 지능, 체력도 뛰어났는데, 덕망까지 있었던 개. 잡종 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우주로 우주로, 우주로 가 버린 개. 지구에서도 우주에서도 떠도는 삶을 살았던 개. 쿠드랴프카. 라이카는 그저 그 개가 속한 종의 이름이었을 뿐. 실제 그 잡종 개의 이름은 쿠드랴프카. 우주로 나간 뒤 지구를 네 번이나 돌면서 고온, 고음, 고진동을 견디지 못해 일곱 시간 만에 죽었던 개. 조금만 견딜 수 있었다면 일주일 후, 자동 독약 주사가 투여돼 죽었을 개. 어차피 일주일치 식량도 함께 실려 있었을 테니까. 아니오. 애초에, 지구로 돌아오지 못했을 개. 대기권으로의 다시 진입 애초 불가능했으니까.
--- p.26~27 비둘기 : 돌아오는 길. 오늘처럼 비바람이 불었고요. 한 마리, 한 마리, 그리고 또다시 한 마리가. 자신의 집으로 날아들기 위해 모두 속도를 냈습니다. 우리는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곳으로 가기 위해 훈련을 받는 게 아니거든요. 그곳에서 다시 돌아오기 위해 훈련받는 거죠. 훈련받고, 발목에 등록표 달고 작은 바구니에 실려 멀리멀리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곳으로 도착했고요, 다른 비둘기들과 함께 컨테이너 박스 어둠 속에 갇혀 숨죽이고 기다렸습니다. 빛이 쏟아들어져 올 그 순간. 탕! --- p.29~30 고라니 : 어젯밤. 한 고라니가 어미 고라니로부터 독립하는 날이었다. 물을 마시기 위해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갈 것이다. 일주일 후의 어느 밤. 한 고라니가 새끼 낳을 곳을 찾기 위해 이쪽에서 저쪽으로 길을 건넜다. 어느 곳에서도 반복되어 펼쳐지지 않았어야 할 죽음들. 이것이 끝나면, 당신에게 조금은 그랬던 날이 되어 버릴 그런 날들. 나는 왜 나에게 달려오고 있는 차의 소리를 보지 못했는가. 나는 왜 나에게 달려오고 있는 차의 빛을 듣지 못했는가. 나는 왜 나에게 달려오고 있는 차가, 바로 내 앞까지 왔을 때 그제야 이 차가 계속해서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는가. 순간 멈춘 나는, 나에게 달려오고 있던 그 차 안의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고들 한다. --- p.39 고라니 : 자동차에서 내립니다. 핸들에 한참을 처박혀 있던 고개들 드시고, 숨을 쉬세요. 차 문을 열려고 하는데, 손이 떨려서 문을 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닙니다. 겪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요. 그리고 겪어 봤으니 더 쉽게 그, 이 풍경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겠지요. 헤드라이트의 빛이 가리키는 쪽으로 걸어갑니다. 떨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움켜쥔 덕에 온몸이 떨리고, “나 술을 마신 건가. 아니야. 그럴 리 없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걷고 있는 거지. 저기, 저 연기가 나는 저곳까지 그리 멀지가 않은 거 같은데, 왜 이리 멀며, 분명 늦은 밤, 이 길을 달린 차는 우리밖에 없었는데, 어디선가 나타나는 사람들, 아니, 나타난 게 아니라 원래 있었던 건가, 어둠 속에 잠복해 있었던 사람들인가, 그 사람들 모두 나를 바라보고, 동네 사람들인 건가. 찌그러진 보닛에서 연기 피어오르고.” 걸어가면서 드는 생각은 단 한 문장뿐. “아, 이 순간 내 인생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순간이겠구나.” --- p.60 B : 새들이 하늘을 날고 있어요. 하늘 길을 이탈한 새 중 한 마리가 빛을 따라 혹은 호기심에 당신들의 방 쪽으로 날아들려 하네요. 괜찮아요. 주변 경관의 미감을 위해 아주 투명할 수밖에 없었던 그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미끄러진 건 단한 ‘명’일 뿐이니까요. 처참하게 죽은 새의 사체들 테라스에 쌓여 가고, 유리창에 핏자국이 살짝 묻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어두워서 눈에 띄지 않을 테고, 내일 떠나고 나면 숙소 주인이 열심히 열심히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을 만큼, 그 유리창을 닦을 테니까요. 그리고 당신이 직접 다행히 만질 필요 없는, 쌓여 가는 새들의 사체일 뿐이니. 찬 바닷바람과 새들로부터 방 안의 사람들을 지켜내 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 p.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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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겠죠.”
자유를 빼앗긴 존재들이 일제히 소리내기 시작한다. 독립을 위해 도로를 횡단한 고라니, 평화사절단으로 날아간 비둘기들, 우주로 향한 잡종 개 라이카와 친구들. 모두 길을 떠나 돌아오지 못했다. 온갖 소문과 추측 속에 사건의 진실이 묻히려는 찰나, 잠깐 거기 멈춰선 당신! 목격자인가 방관자인가,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아니면 인간일 뿐인가. [등장인물] A,B, 통역사, 사람1, 사람2, 사람0, 라이카, 벨카와 스트렐카, 화이트테일, 고라니, DJ, 북미멧새, 개 혹은 고라니, 개 혹은 라이카, 개, 부모1, 부모2, 아이, 동네사람1, 동네사람2, 동네사람3, 동네사람4, 동네사람5, 동네사람6, 동네사람7, 동네사람8, 동네사람9, 동네사람10, 클레파, 동네사람, 비둘기1, 비둘기2, 비둘기3 [마주하게 될 것] 죽은 동물을 만나기 위해 타국으로 떠난 사람. 바(bar)에 앉아 경주를 지켜보는 자들. 길거리를 헤매다 우주로 떠난 잡종 개. 5년 만에 돌아와 인터뷰하는 비둘기. 인생에 단 한 번뿐일 풍경을 보기 위해 달려가는 한 가족과 새끼를 낳기 위해 혹은 독립을 위해 길을 건너는 고라니. 개학교에 보내진 개. 작은 집, 울고 있는 비둘기들. 인터내셔널 비둘기. 한밤중 배에서 파도 소리를 바라보는 사람과 그를 바라보는 동물. 동시대 사회적 이슈를 중심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구자혜의 작품을 희곡선으로 만난다. 『로드킬 인 더 씨어터』는 일상에서 종종 보게 되는 로드킬(Road kill)을 소재로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양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자연과 생명을 대상화할 권리가 과연 인간에게 있는가?’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며,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선을 찾아간다. 작가의 말 현실에서 누구나 무엇이 될 수 있듯이 연극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동시에, 존재는 현실에서도 무대에서도 하나로 정체화되지 않기를 주장한다. 이 연극에서 동물들의 죽음은 의도적 은유이자 실체이다. 2021년 가을 구자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