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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정원
오래된 얼룩처럼 소년이 소녀를 만났다 그들의 정원에는 소녀에게 들은 그날의 모상에 관한 이야기와, 허리 잘린 뒷산에서 뽑힌 나무를 함께 옮기던 일, 주검의 턱밑에서 허우적거리던 어린 고양이를 묻은 일, 소녀상, 수면위로 떠오른 배, 개를 죽게 버려둔 노인과 집을 구멍 내던 딱따구리가 등장하거나 혹은, 그곳에 봉인되어 있다. 이런 순간과 왜곡된 기억이(사실 기억은 모두 왜곡된 것이다) 그네 탄 소년과 소녀의 발밑에서 마지막 보게 될 얼굴처럼 떠돈다. 생각과 말과 행위의 겹이 서로 감싸 안고, 상실에 기대고 검은 공기에 밀착되어 불현 듯, 그들의 정원에 묻혀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더 이상 없다. 완벽한 결별 말고는. 처음 맛본 감동과 허무를 마주하여 가물거리는 빛에 젖어, 꿈에 잠긴 채 꿈쩍도 않는다. 구태여 무엇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은 채. 소년, 만나다. 잊고 있었다. 소년이 나고 자란 곳이 섬이었다는 것을... 소년은 이른 아침이면 바다로 향해 난 대문을 열고 근사한 날개를 가진 세상에서 가장 빠른 배를 구경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하얀 포말을 가르며 미끄러지는 모습에서 견디기 힘든 그리움과 공포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육지와 섬을 이어주는 아주 높고 근사한 다리가 있었지만, 소년은 그 다리를 건널 때마다 느낀 현기증과 공포가 있었다. 몇 일간 귓가를 파고드는 바람소리가 이어진다. 끝날지 모르는 소리는 누군가의 탄성으로 바뀌고, 사라져 버리거나, 망각을 불러들인다. 삶에서 끝내 알아내지 못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하나의 상처로 끝나고 아무는 것이 아니라 가슴 한켠에 순간순간 남아있다. 까맣게 타버린 돌, 몸을 가누기 힘든 거센 바람, 높은 너울과 부서지는 하얀 포말, 비릿한 냄새, 까만 바다의 적막, 그리고 돌아오지 않은 사람과 사람들. 소년은 풍경과 만나고 그림자를 따라갈 뿐이었다. 소년에겐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내일이 있다. --- 「작가노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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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까만 바탕 화면에 희미한 윤곽, 선들이 점등한다. 그것은 시선에 마지못해 보여 지다 이내 어둠으로 묻히기에 망막은 이내 조바심을 낸다. 이 희박한 장면은 검정과 흰색, 아니 그것들이 뒤섞여 자아내는 이름 지을 수 없는 중간 톤의 색채를 거느리며 침잠한다. 극도로 절제된 색채는 먹색을 중심으로 해서 몇 가지 제한된 색 안에서 금욕적으로 조율되고 반죽된다. 동양화 전공자로서 먹에 대한 여러 가능성을 시연하는 차원이기도 하고 동시에 마냥 캄캄한 배경에서 불현 듯 포착되는 기억, 장면, 무의식의 이미지를 출몰시키는 그림이기에 그런 색채가 요구되는 듯도 하다. 그러니 이 검은 배경은 우선 작가의 이미지가 배양되어 나오는 마음, 기억의 공간, 무의식의 지층, 이미지의 정원 등인 셈이다. 그림이란 애초에 명확한 것의 재현이라기보다 애매하고 잘 보이지 않고 결코 재현되기 어려운 것을 애써 포착하려 하는 일이자 막막한 ‘그것’을 포착하려는 절박한 시도이기에 저 검은 배경에서 기를 쓰고 나오는 그 무엇이다.
김명진의 그림에는 마석(자연)에 자리한 작업실에서 그림 그리며 사는 일상의 장면이 들어있고 작은 정원에서 키우는 나무들과 보낸 시간, 함께 사는 사람과의 내밀한 심리적 관계,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비극, 유년의 추억과 순간순간 출몰하는 다양한 생각들, 무의식의 지층에 깔려 있는 것들의 출현 등 역시 혼거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을 풍경으로 바라보고 있고 그것은 자신의 정원 안에서 자란난다. 이 ‘눈먼 정원’은 중의적 의미를 거느린다. 하나는 볼 수 없는 것, 보이지 않는 무의식과 기억 등의 탐사와 발굴이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과의 관계에 의한 것인데 우리에게 타자는 결국 미지와 무지의 것이다. 영원히 알 수 없는 타자와의 관계가 삶이고 사랑이라면 그것은 ‘눈먼 정원’에서의 삶일 것이다. 작가는 ‘그것들’을 전통적인 동양화 재료와 수묵작업으로, 그러나 조금은 색다른 방법론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 박영택 / 경기대 교수, 미술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