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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광주에서 태어나 여태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고, ‘광주’라는 지명에 압착되어 있는 우리 현대사의 그 모든 것, 그 빛과 그림자를 화선지에 섬세한 필치로 눌러 놓았다. 그의 대표작이 된 “1980년 5월 21일”은 이제는 유명한 역사의 한 장면이 되었지만, 그 역사가 미쳐 날뛸 때의 끔찍한 아수라장을 부감법으로 내려다보는 한국 현대 수묵화의 한 전형을 완성해 놓은 것이다. 집단발포가 일어나는 그 순간 하성흡은 당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 금남로 3가 가톨릭센터 앞 바로 그 현장에 ‘있었다’.
한창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의, 알리바이가 아닌, 이러한 역사적 실존이 지금까지 그의 작품 전체에 ‘일이관지’하여 때로는 헐떡거리는 숨소리로 때로는 세상의 애잔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탄성의 한숨 같은 것으로 박동치고 있지 않나, 하고 느껴진다. 그의 ‘오월’ 그림들은 근자의 ‘촛불’ 그림들로 뻗어 나가며, 그의 ‘무등산’ 그림들은 ‘남도’ 그림들, ‘관동 8경’과 ‘금강산’ 그림들로 쭉쭉 줄기를 늘려나가며, 그의 ‘역사 인물’ 그림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작업실 일대의 세탁소 아저씨, 곰탕집 아줌마 등을 그린 ‘장동 풍경’으로 호박 줄기처럼 연장되고 있다. 광주 오월에서 불끈 치솟은 그의 수묵 정신의 핏줄은 이렇듯 리좀(Rhisome: 가지가 흙에 닿아서 뿌리로 변하는 지피식물로 비유되는 사유의 번짐과 엉킴을 뜻하는 들뢰즈 용어)처럼 이 땅 곳곳에 뿌리를 내려 번지고 엉키고 있다. 그는 우리 역사에 불현듯 융기한 ‘천 개의 고원’들을 수묵 특유의 번짐과 엉킴을 통해 재역사화再歷史化시키고 있다고나 할까? 내가 평소에 부르는 식으로 말하자면, ‘이 자식’은 그러고 보니 겸재 정선의 진경眞景 미학을 오늘의 현실에서 오롯이 성취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 황지우 / 시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전 총장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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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흡은 민중 작가 선배들로부터 받은 감화, 전통회화의 형식미에 대한 탐구와 재창조 시도, 부단한 문화유산 답사와 땅 밟기, 그리고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정직하고 차분하게 기초를 충실히 다져온 젊은 수묵화가이다. 이제까지는 좋은 작가가 될 소양을 기르고 텃밭을 다져놓은 상태이다. 특히 작년과 금년의 초대전과 개인전을 점검해보면 이제 도약의 새로운 계기를 맞고 있다고 생각된다. 현실에 눈 돌린 주제 의식과 전통회화의 조형 체험을 바탕으로 자기 색깔과 방식 찾기나 용묵운필법用墨運筆法에서 분명히 한 걸음 내디뎠다.
주변을 돌아보면 이만큼 기초가 듬직한 수묵화가를 찾기 힘들다. 더욱이 그와 동세대 작가들이 의식 없이 가볍고 무의미하게 밖의 조류에 허둥대는 풍조에 비교하면 그의 수묵 작업은 정말 값지게 보인다. 또한 그동안 내보인 하성흡의 작품들은 5년 동안 동명동 집의 한편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패기와 뚝심으로 무더위와 냉기를 이겨내며 그린 것이어서 더욱 사랑스럽다. 이 시기를 떠올리면 먼 훗날 누군가가 하성흡의 작품론을 쓸 때나, 아니면 그 자신이 눈물겹고 아름답게 회상할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그 비닐하우스 화실에 머물러 있고 가까운 시일 안에 그곳을 벗어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동안 열심한 200여 점의 크고 작은 작업 결과는 더없이 소중한 것이 될 것이다. 그 가치를 극대화시키키 위해서라도 지금까지보다 더욱 강도 높은 수련을 거쳐야 하고, 앞으로 피눈물은 얼마나 흘려야 할지. - 이태호 / (전)명지대 교수, 미술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