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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s
갯벌에 선 남자 Horse Riding 나는 잘 있다 고송리 가는 길 낮잠 이마도 낙원으로부터 Text 화가의 자화상 신세계는 없다 그저 사람이 있을 뿐 There Is No New World, But Only Life 이것이 최석운이다 해학적 세계의 깊이와 자유로움 자존의 길 개성과 표현 최석운의 해학과 풍자정신 단순하고 명쾌한 자기고백 최석운-심각한 풍자 작가 인터뷰 프로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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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운 특유의 일상-유머-통속-자연스러움-천연스러움-진실-낙천성-인생 긍정의 연쇄는 어디로 이어질까. 그 무엇을 중간에 더 끼워 넣게 될지 모르지만 궁극에는 성스러움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성스러움 역시 우리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희유원소, 황금이 아닌 세슘이나 토륨처럼 조금씩은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이 눈 밝은 화가는 인류사에 수천억 분의 일의 비율로 발현되는 인간의 성스러움 또한 반드시 ‘인간적인 것’으로 포착해 내고야 말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최석운의 달걀’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언제나 변화하고 있다. 그는 예술적 모험 앞에서는 망설이는 법이 거의 없다. 변화를 즐겁게 받아들이고 변화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진통을 기꺼이 인생의 자양분으로 만든다. 그는 끊임없이 공감, 공명을 생산하면서 장거리 종목의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처럼 쭉쭉 나아가고 있다. 올림픽 경기장은 원점에서 가장 먼 곳까지 갔다가 돌아오게 생겼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멈춘다. 하지만 그림은 올림픽 종목이 아니고 그는 최석운이라는 작가, 회화의 인간학자이다. 그의 그림은 보면 볼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 역시 그림 속의 남녀노소, 우수마발과 같은 삶을 살고 살아왔고 화사하고 진진한 한순간을 누릴 것이기에. 그의 그림을 만나면서 나는 인간의 진실과 인간다움의 세목을 훨씬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필시 내 사주팔자에 들어 있을 축복이며 그의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들의 복이리라.
- 성석제 / 소설가 (본문, 「이것이 최석운이다」 중에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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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작가의 그림에는 해학과 풍자, 유머와 위트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그림들도 있었다. 어쩜 해학과 풍자, 유머와 위트에 가려 잘 보이지가 않던 작가의 무의식이 수면 위로 드러나 보이면서 보다 적극적인 형식을 얻는 경우의 그림들일 것이다. 그렇게 작가의 무의식이 보아낸 삶은 공허하거나 죽기 아님 살기다. 해학적인 그림이 설핏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래도 삶은 대개 치열하고(차라리 처절하고), 잘해야 공허하다. 삶의 실상이 꼭 그렇지가 않은가. 너무 비관적인가. 밀란 쿤데라는 느끼는(그러므로 겪는) 사람에게 삶은 비극이고, 보는(그러므로 관조하는) 사람에게 삶은 희극이라고 했다. 이처럼 웃기지도 않은 삶의 실상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만든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삶의 초상이 오롯하다. 마치 보통 사람들의 삶의 연대기를 테마로 한 상황극을 보는 것 같은, 연극적이고 서사적인 부분이 있다. 삶의 실상을 축도해 놓은, 삶의 메타포로 볼만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소시민적인 생활 풍속도로 부를 만한 부분이 있다. 그들의 삶은 비록 대개 치열하고 잘해야 공허하지만, 그래도 그 삶을 향한 작가의 눈빛만큼은 풍자적이고 해학적이다. 유머가 있고 위트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존재론적 연민이 있다. 그 연민이 웃음을 자아내고, 그 웃음이 위로가 되는 그런 힘이, 작가의 그림에는 있다. - 고충환 / 미술평론가 「신세계는 없다, 그저 삶이 있을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