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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께
CHAPTER 1 가끔은 뾰족하게 살아도 괜찮습니다 부동산 아저씨께 무례한 고객님께 전국에 계신 호갱님께 어머님 전상서 나의 오만함을 일깨워준 J에게 피, 땀, 눈물을 흘리는 연습생들에게 라떼를 찾는 선배님들께 헐값에 팔아버린 나의 맥북에게 친구, 아니 친구가 되어가는 중인 H에게 애프터 신청을 받지 못해 속상한 그녀에게 용기를 낸 그녀들에게 편지가 긴 것만 있으란 법은 없으니까 ─ 욱해서 쓴 쪽지 1 편지가 긴 것만 있으란 법은 없으니까 ─ 욱해서 쓴 쪽지 2 CHAPTER 2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차비를 빌려 가신 선생님께 사회 복지사님께 하늘 같은 교수님께 건물주 사장님께 이미지에 갇힌 손님들에게 착각의 늪에 빠진 손님께 주인집 할머니께 추억이 영원할 순 없나 봐, V에게 베스트셀러를 찾는 손님들에게 코스트코 고객님께 언니에게 가난한 예술가 선생님께 편지가 긴 것만 있으란 법은 없으니까 ─ 욱해서 쓴 쪽지 3 편지가 긴 것만 있으란 법은 없으니까 ─ 욱해서 쓴 쪽지 4 CHAPTER 3 삶의 문턱마다 곁에 있던 사람들 복순, 사랑스러운 나의 복순에게 해수 어머님께 존경하는 나의 리더에게 답장을 전하지 못한 손님께 10년을 버텨온 나의 멋진 친구들에게 그리운 삼촌에게 어느 밤, 소녀에게 삶의 문턱마다 나를 살게 한 어른들에게 단단한 나의 토양, 할머니께 그 순간 기적처럼 기프티콘을 보냈던 나의 사랑에게 편지가 긴 것만 있으란 법은 없으니까 ─ 욱해서 쓴 쪽지 5 편지가 긴 것만 있으란 법은 없으니까 ─ 욱해서 쓴 쪽지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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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할머니는 “아껴야 잘 산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가끔은 “아끼면 똥 된다. 쓸 땐 써야 한다”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할머니께 여쭤봤습니다. 할머니에겐 ‘쓸 때’가 도대체 언제냐고요. 그러자 할머니는 “사람 된 도리를 하는 일에는 아끼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 된 도리를 하는 일. 저는 그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축의금이나 부조금, 소중한 사람을 위해 내는 밥값 등이 사람 된 도리를 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은 누군가를 축하하는 일, 위로하는 일, 격려하는 일, 감사하는 일에는 돈을 아끼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저도 할머니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저는 경조사의 프로 참석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 p.37~38 가끔 아들 둔 어머니들이 “장가가면 철들 것 같아서 보내놨더니”라는 말을 하시잖아요? 저는 이 말이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아들이 성인에게 요구되는 역량과 자세를 갖추지 못했다면 양육자로서 그 책임을 일부 가지고 있을 텐데 왜 그 책임을 아들의 아내, 당신들의 며느리에게 떠넘기려고 하는지… 그렇게 무책임한 말이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머님도 혹시 그런 역할을 저에게 바라시는 건가요? --- p.44 아무리 무한 경쟁의 시대고, 어느 분야에 종사하든 살아남는 일이 치열하다지만 연예계는 더 가혹하고 냉정한 것 같아요. 성공의 기준이 명확해서 그 기준에 조금이라도 못 미치면 ‘연습생’ 혹은 ‘무명’이라며 정체성을 지워버리지요. 연습생은 무엇을 연습한다는 말일까요? 데뷔를 연습한다는 말인가요? 성공을 연습한다는 말인가요? 당신들은 매일 실전의 삶을 살고 있는데 선배들은 그 삶을 연습이라 명하며 맥이 풀리게 하지요. --- p.61 모두가 주류가 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저는 주류에 속하지 않으면 마치 실패자가 된 것처럼 사람을 몰아가는 사회가 무섭습니다. 저비용 고효율을 강조하고 생산성만을 중시하는 선배님들의 방식이 버겁습니다. 그 누구도 생산적인 일만 해낼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삽질도 해보고, 맨땅에 헤딩도 해봐야 금싸라기 땅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애초에 비생산적 생명체인 인간에게 생산성만을 기대하는 것은 인간을 기계로 바라보는 시선이 아닐까요? --- p.73~74 기자님들. ‘매춘부’ ‘창녀’ ‘직업여성’ ‘윤락녀’ 그들을 부르는 단어는 다양하게도 존재하는데 그 성을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는 참 없네요? --- p.98 좋아하는 사람은 닮고 싶어집니다. 교수님의 수업이 좋아 닮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건 제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편지는 일종의 고백입니다. 교수님의 수업을 사랑했다는 고백, 단어 하나 때문에 교수님께 실망했다는 고백, 어린 날 성공한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야망의 고백, 그 모든 것이 허사였음을 깨닫고 지금은 그저 제가 좋아하는 것을 매일 보고 듣고 느끼며 살아간다는 고백. --- p.122 누군가는 “이 시대에 책방 일을 하는 것은 독서 문화를 바로 세우려는 사회 운동이나 다름없다”라는 말을 했다더라고요. 그럴 듯한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금은 서글퍼집니다. 내가 사회 운동을 하는 것이라면 자긍심을 가져야 하는데,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 부끄럽고 서글프고 씁쓸합니다. 제가 이 땅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보존하는 문화재 지킴이가 되어버린 걸까요? 책방이란 그저 많은 이들이 일상적으로 누리는 문화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먹고살고자 하는 일에 비장함과 사명감이 덧입혀질 때마다 저는 조금 두렵습니다. Cool하고 Fun한 삶이길 바라는데 왜 이리 뜻대로 되지 않는 걸까요? --- p.131 현실은 잘 보정되고 편집된 순간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흐르는 CCTV 같은 것입니다. 기대보다 높은 만족감을 얻을 때도 있고, 기대에 못 미치는 순간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쌓여 경험이 되고 취향이 되고 지금의 나를 만듭니다. 남이 먼저 경험한 것은 당신의 시간을 아껴줄 순 있겠지만 결코 당신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 p.141 할머니, 젊은이의 삶은 생각보다 복잡해요. 할머니께도 제가 겪지 못한 삶이 있겠지요. 하지만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저에게도 할머니가 겪지 못한 삶이 있어요. 그러니 제 자궁엔 이제 그만 관심 가져주세요. --- p.158 너와 동네를 산책하다가 계란 하나를 사서 집에 돌아가려 해도 너를 안고 들어가면 슈퍼에서 장을 볼 동안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 그렇다고 너를 밖에 묶어둘 수도 없으니 나는 어쩔 수 없이 너를 집에 데려다 놓고 다시 장을 보러 나가곤 해. 너와 가족이 된 후로 최고를 고르는 것보다는 가능한 것을 고르는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어. 너를 통해 나는 필요 이상의 것을 바라는 삶에서 벗어나 조금 더 단정하고 단순한 삶을 선택하게 된 것 같아. --- p.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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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언어에 맞서는 분노의 언어,
세상의 모든 분노유발자들에게 부치는 예의 바른 일침 동네책방 독자들에게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내 속이 다 시원하다” “세상 ‘꼰대’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청량감 200% 사이다 문장들”과 같은 호응을 얻은 독립출판물 《욱해서 쓴 편지》가 김그래 작가의 일러스트와 20여 편의 추가 원고를 더해 새롭게 돌아왔다. 《욱해서 쓴 편지》에는 청년이자 여성으로, 노동하는 개인으로 살아가며 폭력적인 말들과 마주할 때마다 욱해서 쓴 글들이 차곡차곡 담겼다. 저자는 ‘선생님, 잘 지내시나요?’와 같은 친근한 안부 인사로 시작하여 편지를 쓰게 된 정황을 소상히 밝힌 뒤 어느 대목에서 마음 상했는지를 침착하게 설명하고는, 돌연 태도를 바꿔 “그런데 선생님, 말은 바로 하셔야죠!” 하고 외치며 집요한 반격에 나선다. 성실하게 노동하여 모은 보증금이 부동산 시장 앞에서 삽시간에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의 푼돈’으로 전락해버릴 때 느끼는 허무함, 판매원으로 베푼 친절이 손님의 마땅한 권리 혹은 ‘이성적 호감 신호’으로 오독되어 폭력의 구실이 될 때 느끼는 두려움, 남편을 챙기는 건 아내의 몫이라는 시어머니의 문자를 받을 때 드는 당혹감에도 박소예는 무너지거나 불편한 상황을 모른 체하기보다 조목조목 따지고 응수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지켜낸다. 그래서 이 책이 읽는 이의 가려운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이유는 명확하다. 개인의 사적인 일화에서 출발한 이 이야기들은 결국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년으로, 여성으로, 세입자 혹은 직장인으로 부딪히는 공통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이길 순 없어도 세상에 지지 않을 수는 있어! 일상에 끈끈히 밀착된 생활감 넘치는 편지들은 독자가 자신의 얘기처럼 느껴 짠한 눈물을 흘리다가도 곧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흐르도록 두지 않는 저자의 유쾌한 화법 덕에 웃음이 터지게 만든다. 하지만 꼭지마다 읽고 나면 선뜻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하게 하는 묵직한 여운이 예외 없이 남는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월급도 못 받고 영화사에서 일하던 저자가 밥보다 소중한 건 없다는 걸 깨닫고 회사를 뛰쳐나와 영화책방을 열기에 이르렀지만, 책방이라는 생계의 공간 또한 모두가 아무 때나 공짜로 빌려 쓸 수 있는 낭만 대여점처럼 가벼이 여겨졌다. 이상과 현실, 취향과 밥벌이 사이에서 줄타기하던 저자의 문제의식은 결국 생존까지 가닿는다. 이 생존에는 육신의 생존을 넘어 마음의 생존까지 포함된다. 세상의 규범과 질서를 무기로 자신을 휘두르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배곯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신이 선택한 길도 꿋꿋이 사수해내 지지 않으려는 마음은 저자가 편지를 이어나가는 동력이 된다. 누군가의 성공 신화처럼 살지 않아도 나는 내가 마음에 들고,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프롤로그에서 밝히듯 저자가 편지를 쓸 때는 주로 욱해서이다. ‘표준적이고 정상적인’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비주류의 길을 걷는 저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가 폄하당하는 말들을 맞닥뜨린다. 그러나 저자는 그 말들을 잠자코 들어주거나 수긍하는 대신 당신들이 요구하는 욕망은 나의 욕망이 아니라고, 내가 나인 것을 증명하지 않겠다고 단호한 어조로 선언한다. 그리고 어떤 그룹이나 계층에 어울리려 애쓰기보다 나만의 자리를 만드는 삶의 가치를 독자에게 전한다. 박소예 작가에게 편지를 쓰는 행위는 모욕을 당하고 수치심을 경험해도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발화의 결과물이다. 자신의 존재가 남의 입에서 간단히 정의되길 거부하고 스스로 삶의 맥락을 설정하는 이는 결국 자기 삶의 영역을 고수해낸다. 어떤 삶을 선택하든 마땅히 자리해야 할 존엄과 품위를 지키기 위해 세상과 불화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동안 함께 싸우는 이의 존재를 감지하여 외롭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결국 삶은 각자의 모습으로 고달프고 각자의 모습으로 행복한 것이니까” 《욱해서 쓴 편지》가 더욱 다채로운 매력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비판의 대상에서 자신도 빼놓지 않는 박소예 작가 특유의 책임감과, 분노에만 몰두하지 않고 주변을 널리 둘러보며 삶에 머무는 선의를 소중히 여기는 침착한 시선 덕분이다. 저자는 오만한 태도로 타인에게 함부로 동정을 베풀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타인의 상처에 무감한 사람이 되길 경계하고 자신에게 찾아온 사소한 선의에 성실하게 대응하며 그 다정스러운 이름들을 하나하나 호명하고 기억하려 한다. 이토록 두려운 세상에 맞서 또박또박 목소리를 높이고 날을 세우다가도 가까운 존재를 있는 힘껏 사랑하는 박소예의 세계. 《욱해서 쓴 편지》에 이어질 그의 다음 이야기, 또 다음 이야기가 계속해서 기다려지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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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해서 쓴 편지》는 청년 세대에게 뭐라도 맡겨놓은 듯 구는 기성세대를 향한 일침이자 부대끼며 매일을 버티는 모든 생활인의 옆에 서는 글이다. 물음표가 유달리 많은 이 책이 “삶의 문턱마다 나를 살게 한” 사람들을 향해 있기에 더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을 넘어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살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젊은이의 삶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그러니 박소예 작가의 뜻을 경청할 것. 상식과 친절, 근면이 배신당하지 않는 세상은 모두의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 이다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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