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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할머니
2. 나와 거짓말 3.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4. 끝끝내 도스.... 5. 서른 살의 희망과 절망 6. 나는 잔치가 끝났다고 말한 적이 없다 7. 대낮의 햇살 아래 그들을 만나고파 8. 여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9. 단추의 비밀 10. 저 달 좀 보세요 11. 등단소감 12. 통일도 생활이다 13. 나의 바다를 찾아서 14. 내 아침을 도렬다오 15. 박수근, 그 목숨의 뿌리를 찾아서 16. 백야일기 17. 영화, 그리고 시대의 우울 18. 광주는 언제 신파를 극복할 것인가 19. 망각은 없다 20. 아마추어를 위하여 21. 바흐에서 바르톨리까지 22. 예술가의 초상 23. 사라진 세계에 바치는 슬픈 연가 24. 누구든 뒤돌아볼 때는 25. 푸른 하늘을 마실 자유 26. 눈물의 빛 27. 세잔의 회상 28. 숲의 소리들 29.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30. 나를 일으켜세운 한마디 |
Choi Young Mi,崔泳美
최영미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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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영미씨의 두번째 산문집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될 사람에게’(사회평론)가 나왔다.지난해 강원도 강릉으로 훌쩍 떠나 칩거 아닌 칩거를 해온 그가 오랜만에 내민 침착한 수필이다.제목에서 이야기한대로 일기라 해도 무방할만큼 솔직하고 꾸밈없다.대부분 잡지,일간지에 기고한 짧은 글을 다듬었고,박수근의 ‘나목’에 대한 감상에서 영화 ‘꽃잎’에 대한 비평,헬싱키 기행담까지 여러 소재를 두루 가로질렀다.유독 ‘내 아침을 돌려다오’만은 새로 썼는데 내용을 보면 2년만에 내는 산문집에 그 글을 꼭 넣은 이유가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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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언제부터 늙기 시작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잉게보르크 바흐만Ingeborg Bachmann에 의하면 자신의 과거를 뒤돌아보면서부터다. 그의 자전적인 산문집 <삼십세>를 관통해 흐르는 것은 끊임없이, 정처없이 뒤돌아 볼 수밖에 없는 자의 쓸쓸함이다. '어느날 문득 잠에서 깨어나 잔인한 햇빛을 받으며 일종의 고통스러운 압박을 느끼면서 기억해내는 것이다. 지나간 모든 세월을, 경솔하고 심각했던 시절을, 그리고 그 세월 동안 자신이 차지했던 모든 공간을 기억해내는 것이다.'
이 집요함, 잔인하리만치 집요하게 기억을 더듬어 씹고 또 씹는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더 이상 젊다고도, 그렇다고 늙었다고도 할 수 없는 30세라는 저자의 어중간한 나이가 주는 불안정한 에너지에서? 혹은 그가 철학박사학위를 받은 전후 독일의 대표적인 지성이라는데서 비롯된 사유의 힘인가? 이 책의 표제단편인 <삼십세>를 보면 그 답이 나올 듯하다. '이 해에 접어들면서 그는 방황하게 되고 자신에게 지금껏 친구가 있었는지, 자신이 한번이라도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한 줄기 섬광이 그가 지닌 모든 관계, 모든 주변의 형편을, 이별을 조명해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기만당하고 배반당하고 있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누구든 뒤돌아볼 때는 1995년 중앙일보) --- p.1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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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아파트 베란다를 기웃거리던 햇살이 자지러지게 반짝였다. 빛의 폭포...... 실내의 가구들이며 벽에 걸린 그림들이 레이저 폭격을 맞은 듯 각각의 형체들이 윤곽선을 잃고 한데 녹아 하얗게 부서졌다. 어지러웠다. 오후 늦게까지 몽롱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 허우적거렸던 나는 안방 창문에 드리워진 블라인드를 뚫고 쳐들어온 봄빛에 감전되어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 p.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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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다. 내 자신이 얼마나 오래 버틸지.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다만 한 가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겠다는 생각뿐. 나는 지금 민족문학이니 민중문학이니 하는 데 필연적으로 따르게 마련인 어떤 의무감이나 뭐가 되야겠다는 내적인 자기강제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그저, 어중간한 어정쩡한 전망보다는 괜찮은 부정 하나 하고 싶다. 그리고 시 이전에 삶에 대한 고민이 더 깊고 끈질기다는 것. 어떤 이데올로기도 현재 우리를 구원할 수 없으며, 결국 사랑과 연민만이 나 아닌 너를 더듬고 이해할 힘을 준다는 것, 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보낸 십 년 세월을 보상해줄 수도 있다는 것. 이 정도가 지금 내가 자신있게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이다.
--- p.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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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예술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새의 노래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가? 왜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 밤이나 꽃을 완전히 이해하지 않고 사랑할까?'
현대미술전시회에 몰려드는 관람객들에게 피카소가 한 말이다. 최근에 나는 예술과 인생의 관계에 대한 노대가의 정곡을 찌르는 통찰을 되새겨볼 기회가 있었다.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철갈이할 무렵이었다. 옷장 속을 정리하다 구석에 처박힌 낡은 티셔츠 하나가 눈에 띄었다. 잦은 이사에도 버리지 않고 간직해온, 아마도 내가 지닌 옷 중 가장 오래된 것이리라. 누구나 그런 기념품 같은 옷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잘 입어지지도 않아 외출할 때마다 눈만 맞추고 제자리에 모셔두는, 그래서 긴 세월동안 켜켜이 쌓인 먼지와 손때로 마치 버림받은 애인에 가까운 신세로 전락한 옷. 그래도 서랍 속에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와 우리를 스산하게 만드는, 옷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골동품에 가까운 물건이 있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무심코 셔츠르르 접는데 단단한 단추가 손에 잡혔다. 세상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내가 그 셔츠를 처음 사입었을 때가 대학 신입생 시절이었으니, 가만있자, 벌써 십오 년 가까이 됐는데 단추들이 조금도 헐거워지지 않은 채 처음 달렸던 자리에 그대로 완강하게 붙어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동안 빨아도 숱하게 빨았을 텐데, 불과 며칠 전에 산 옷의 단추도 한번 세탁기에 들어갔다 나오면 실이 늘어지거나 심하면 단추가 아예 떨어지는 경우가 태반인데. 내겐 그 낡고 허름한 천에 붙어 있는 단추들이 보석처럼 빛나 보였다. 그리고 어느 예술작품 못지않게 그 물건이 신비로워 보였다. 누가 만들어 박았는지 얼굴도 이름도 모르나 그 옷을 만든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피카소의 지적대로 나 역시 유명하다는 예술작품에는 애써 감동하는 척하며 가까이 있는 생활용품에는 감동은 커녕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라도 단추의 비밀을 이해하며 살아야겠다. --- p.60-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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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을 풀려고 바다로 갔다. 넓고 푸른 바다를 보면 이 모든 게 헛되고 헛되게 여겨질 것 같아서. 부서지는 파도에 모든 걸 맡기고 잊어보려고. 그러나 바다는 내 고민을 받아들이기엔 그날 너무 바빴다. 일요일이라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겨울바다는 내게 아무런 위로의 말도 해주지 않았다. 해맞이 공원의 잔디밭에서 허공을 향해 팔을 크게 휘두르며 잠시 체조를 한 뒤에 발길을 돌렸다.
--- p.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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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남자들에게 그동안 너무 실망했기 때문에, 적어도 한국 남자들에게는 더이상 원하는 게 없다. 정말이다. 내 인생에서 남자를 -이상의 상대로서- 포기한 지 꽤 되었고, 거기에 관해 그다지 유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바이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무심코 셔츠르르 접는데 단단한 단추가 손에 잡혔다. 세상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내가 그 셔츠를 처음 사입었을 때가 대학 신입생 시절이었으니, 가만있자, 벌써 십오 년 가까이 됐는데 단추들이 조금도 헐거워지지 않은 채 처음 달렸던 자리에 그대로 완강하게 붙어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동안 빨아도 숱하게 빨았을 텐데, 불과 며칠 전에 산 옷의 단추도 한번 세탁기에 들어갔다 나오면 실이 늘어지거나 심하면 단추가 아예 떨어지는 경우가 태반인데. --- pp. 55-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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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런데 나는 남자들에게 그동안 너무 실망했기 때문에, 적어도 한국 남자들에게는 더이상 원하는 게 없다. 정말이다. 내 인생에서 남자를 -이상의 상대로서- 포기한 지 꽤 되었고, 거기에 관해 그다지 유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바이다. --- p. 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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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런데 나는 남자들에게 그동안 너무 실망했기 때문에, 적어도 한국 남자들에게는 더이상 원하는 게 없다. 정말이다. 내 인생에서 남자를 -이상의 상대로서- 포기한 지 꽤 되었고, 거기에 관해 그다지 유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바이다. --- p. 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