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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장 아름답게 꽃 필 적에 2장 훌라훌라 3장 강을 건너 4장 아무도 위로해줄 수 없는 저녁 5장 쇠와 살 6장 누구도 해치지 않을 농담 에필로그 작가의 말 (개정판) 참고한 문헌 |
Choi Young Mi,崔泳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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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의 자유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었다(...)이십여 년의 시행착오를 겪고서야 나는 자유를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노는 법을 터득했다.
어째서 생판 남인 남자들이 내게 ‘형’이 되냔 말이다. 나는 여자니까, 나보다 일찍 태어난 남자는 나의 형이 아니라 ‘오빠’가 맞다. 사전적인 정의에도 맞지 않는 야만적인 관계를 내게 강요하는 저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남학생 위주로 돌아가는 대학문화에, 위계질서가 뚜렷한 운동권의 문화에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언어에 아주 민감한 동물이다. 음식이든 책이든 한번 붙들면 뿌리를 뽑을 때까지, 지겨워질 때까지 하나에 골몰했다. 내 인생은 하나의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의 질주였다. 유년기에 극심한 허기를 경험한 자의 특징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망가지지 않고 노는 게 제일 힘들다. 할 일이 없었기에 나는 나를 파괴했다. 랑콤의 토닉 두세르는 불행한 나를 외면하려는 도피의 도구였다. 투쟁의 현장에서 멀어진 나의 죄의식을 혁명의 나라에서 수입한 꽃향기와 방부제가 덮어주었다. 불편하며 부당한 현실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 그녀가 민중을 사랑하는 법을 나는 알고 싶었다. 분노를 표현하는 게 부끄럽다 생각해서인가, 아니면 정말 분노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일까. 분노 없이 혁명에 대한 열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사회주의란 대체 무엇인가. 이웃에 대한, 약자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던가. 내게 사회주의의 출발은 계획경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었다. 이론이 아니라 가슴으로 사회주의에 접근한 이들에게 소련의 몰락은 ‘해석’의 차원을 넘어선 무엇이었다.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상실이었다. 꿈에서 멀어졌고,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도 희미했고, 옆에 짝이 없었고, 현재에 만족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막막함을 공유했기에 우리는 근본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 자리에 모였다. 80년대가 내게 남긴 것은 이념이 아니라 ‘정서’이다. 이념이나 사상은 변할 수 있지만, 정서는 변하지 않는다. 옷을 고르는 취향, 타인을 대하는 태도, 말버릇이나 헤어스타일은 한번 굳어지면 평생을 간다. 작은 것들에 대한 연민, 정의에 대한 갈증, 돈과 악수하지 않는 손, 권력에 굽실거리지 않는 허리를 그 시절은 내게 물려주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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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이미 우리는 5월의 냄새를 맡았다
최영미 장편소설 『청동정원』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쇠붙이로 무장한 전경들이 교정의 푸른 나무들 옆에 서있고, 데모를 하지 않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던 1980년대. 시대가 요구하는 삶을 살기에는 너무 여리고 순진했던 어느 청춘이 80년대를 이십대로 여성으로 살아낸 기억이 이 소설이다. 시대를, 남자를 잘못 만난 꿈 많은 소녀가 격변기에 온몸으로 저항한 가슴시린 이야기. 대학에 입학한 애린은 예쁜 옷과 맛난 음식에 탐닉하느라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다. 어느날 학내시위를 목격하고 광주사태에 대해 알게 되며 애린은 운동권에 포섭된다. 운동권 선배인 동혁을 만나 재학 중에 동거를 시작하고 결혼한 애린은 동혁으로부터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당한 뒤 이혼을 결심한다. 이혼 이후 사회주의 원전 번역팀에 들어가 마르크스의 「자본」을 번역하며 민호를 알게 되는데……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가 등단하기 전인 1988년에 쓰기 시작해 26년이 지나서야 완성한, 싱그러우며 황폐했던 청춘이 아름다운 문장에 담겨있다. 1980년대를 다룬 소설과 영화와 드라마는 많지만 『청동정원』만큼 생생하게 당대 삶의 풍성한 줄기와 이파리들을 보여주는, 역사 속에 묻힌 개인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작품은 없었다.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 만신창이가 되면서도 끝끝내 자기 자신이고자 몸부림쳤던 여자. 녹슨 그러나 여전히 빛을 잃지 않은 청동정원을 지금 이곳에 소환한다. 그때 그 시절을 모르는 젊음도 ‘청동’의 정원을 거닐며 삶의 의미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과 혁명의 불꽃이 지나간 자리에서 돌아보다 “4월에 이미 우리는 5월의 냄새를 맡았다. 전경(戰警)이 상주하는 살벌한 교정에도 봄은 왔다. 라일락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면 우리는 두근두근 어질어질 마음을 어디 두지 못했지.” 최영미의 장편소설 『청동정원』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쇠붙이로 무장한 전경들이 교정의 푸른 나무들 옆에 서있고, 데모를 하지 않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던 1980년대. 시대가 요구하는 삶을 살기에는 너무 여리고 순진했던 어느 청춘이 80년대를 이십대로, 여성으로 살아낸 기억이 이 소설이다. 시대를, 남자를 잘못 만난 꿈 많은 소녀가 격변기에 온몸으로 저항한 가슴시린 이야기. 대학에 입학한 애린은 예쁜 옷과 맛난 음식에 탐닉하느라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다. 바야흐로 ‘서울의 봄’ 대학가에서는 거의 매일 집회가 열렸는데, 남학생들과 어울리기를 어려워하는 애린은 자신을 보는 시선이 거북해 학생식당에 가지 않고, 여학생화장실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다. 짜장면과 파운드케익과 예쁜 옷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던 그녀는 1980년 12월의 어느날 학내시위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아, 자신의 화려한 새옷이 부끄러워 가위로 찢어버린다. 운동권 선배인 동혁을 만나 재학 중에 동거를 시작하고 결혼한 애린은 동혁으로부터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당한 뒤 이혼을 결심한다. 이혼 이후 사회주의 원전 번역팀에 들어가 마르크스의 「자본」을 번역하며 민호를 알게 되는데……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가 등단 전인 1988년에 쓰기 시작해 26년이 지나서야 마침내 완성한, 싱그러우며 황폐했던 청춘이 밀도 높은 아름다운 문장에 담겨 있다. 『청동정원』은 80년대적 삶에 대한 반성이라는 점에서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소설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소설을 위해 수많은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수집한 작가의 꼼꼼하며 예리한 분석 덕에 우리는 80년대 학생운동권의 노선투쟁이라든가 ‘학림’과 ‘무림’의 주도권 다툼이 데모를 하지 말자는 데모로 이어지는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진짜 역사를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소설에는 “자기 소원이 장갑차 한번 타보는 거라 장갑차에 올라가 광주 시내를 한바퀴 돌았다는 소박한 녀석”도 등장한다. 아주 치열한, 진지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젊음의 치기가 발동한 그처럼 애린은 무모하고 대범하며 순진하게 자기 앞의 생을 헤쳐 나간다. 몰래 수녀원 담을 넘어 풀빵과 튀긴 고구마를 사먹고 돌아와 새벽기도를 바치고, 주전부리를 끊지 못해 수녀가 되는 길을 포기하는 그 귀여운 철없음에 독자들은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2013년에 「토닉 두세르」란 이름으로 문예지에 연재했고, 제목을 바꿔 2014년에 초판 발행한 소설을 수정 보완하여 이미출판사에서 개정판을 펴냈다. 오래 전 후배가 선물한 청동으로 만든 벽걸이장식을 보고 「청동정원」이란 시를 썼는데, 소설을 탈고한 뒤에 눈에 들어와 제목으로 삼았다. 쇠붙이로 무장한 전경들이 교정의 푸른 나무들과 겹쳐지는 소설에 어울리는 제목이다. 1980년대를 다룬 허다한 소설과 영화와 드라마가 존재하지만 『청동정원』만큼 생생하게 당대 삶의 풍성한 줄기와 이파리들을 보여주는, 역사 속에 묻힌 개인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작품은 없었다.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 만신창이가 되면서도 끝끝내 자기 자신이고자 몸부림쳤던 여자. 녹슨 그러나 여전히 빛을 잃지 않은 청동정원을 지금 이곳에 소환한다. 그때 그 시절을 모르는 젊음도 ‘청동’의 정원을 거닐며 그 투명하고 차가운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기 바란다. “역사는 집단의 기억, 문학은 개인의 기억을 다룬다. 역사보다는 문학이 더 깊게 시대를 드러낸다. 쇠와 살이 부딪치던 청동시대를 통과하며 어디에 있었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모두 개인이었다. 개인의 기억이 때로 집단의 기억보다 정확하고 진실에 가깝다고 나는 믿는다. 대중과 언론은 맨 앞에 선 사람들만 기억한다. 그러나 뒤에서 이들을 밀어준 사람들이 없었다면 대오는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했을 터.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사람들, 그때 그 시절에는 묻혔던 작은 목소리들을 복원해 또렷이 되살리고 싶었다.”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은 격동의 근현대사를 오롯이 겪어낸, 80년대를 20대로 살아낸 한 사람의 기억이다. 역사(시대)소설이라 할 수도, 주인공 애린의 성장소설로도 볼 수 있으며, 작가 최영미의 자전적 소설의 성격도 짙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여성문학으로 포섭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감히 이 책에 모험소설이라는 라벨을 붙여주고 싶다. 한국에서 쓰인 소설들 중 이토록 멋지고 역동적이고, 눈을 떼기 어려운 모험담을 읽어본 적이 없다. 내가 만난 한국소설들은 시대 앞에서 좌절해버린 개인의 양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담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부로 나는 한국 현대소설에 모험 혹은 탐험 장르가 있다고 선언하고 싶다. 읽으면서 박장대소했던 대목들이 한두 곳이 아니다. 주인공의 무모함과 대범함에, 그리고 무지를 가장한 순진함과 귀여운 철없음에 나의 웃음들을 기꺼이 내주었다. _알라딘 ‘베타별’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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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우리는 그랬다. 숨쉬기도 어려웠던 묵직한 공기 속에서 시대를 익히고 세상을 살았으며 청춘을 펼쳐나갔다.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를 헤엄쳐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이제 돌아보고 있다. 4월의 신록처럼 싱싱했으나 ‘청동정원’에 갇혔던 그 시절 우리의 고뇌는 오늘날에도 유효할까? 최영미 작가는 묻는다. 이 시대는 무슨 색이며, 그런 정원 안에서 당신은 어떤 빛으로 살고 있느냐고. - 이금희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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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한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세상은 터져버릴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뮤리엘 루카이저의 이 시구가 떠올랐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투쟁하던 어둠의 시대, 개인으로 존재하고자 했던 여성이 맞서 싸워야 했던 것은 국가폭력만이 아니었다. 피로 물들었던 운동의 시대는 저물었지만, 책 속에서 작가가 토해낸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성의 목소리로 그 시대를 기록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 윤단우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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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도, 개별성도 지워야 했던 시대에 지워지지 않는 개별성을 안고 살았던 사람들. 책장을 덮으며 “정말 애썼다, 이제 괜찮다”는 말을 건넨다. 경계에 서서 실족과 추락을 거듭하면서도 그 경계를 떠나지 않고 청동정원을 안고 살아준 덕분에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는 깊은 감사도 함께 전한다. - 은수미 (성남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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