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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속도로 사랑하는
고민형
아침달 202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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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달 시집

책소개

목차

1부: 당신은 왜 나를 떠나지 않습니까
모름 모름 모름
초키의 연료
종말론자
테라피
젊은 신부
중국 싫어하는 아이
항의
질문

2부: 재현할 방법 없음
아픈 게 아니라면 개구리는 운다
소원
전통적인 우정
아프리카 사람들은 착해
새와
혼령
물고기가 되는 길
오 분
구름을 나는
이불 장수
아기 취급
오버 더 레인보우
트럭
점 선 면
돌아와 마린다

3부: 내가 말하지 않은 모든 것
향기
아파트
완벽한 아침
프랑스어
지구 한 바퀴
외출
베개 아래
우파루파
전염병

와인 창고
피스톨
나쁜 감정 없음
탈출

4부: 네가 찾고 있던 게 이게 아니라도
살구나무 비행기
도로교통법
명예의 전당
개 그림
결혼식
스톤 에이지
미야오옹
고대 신
관광안내서
미국의 왕

부록
상담가의 신비한 수정 구슬
키스하지 않으면 하차하겠습니다
플라스틱 뚜껑

저자 소개 1

2019년 독립문예지 《베개》, 《무명》, 《펄프》 등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엄청난 속도로 사랑하는』(2022, 아침달)이 있다. 최근작 : 『소스 리스트 Vol.2』,『엄청난 속도로 사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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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204g | 125*190*10mm
ISBN13
9791189467043

책 속으로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름. 세 살 아이처럼 모름. 우리 아버지처럼 모름. 친한 친구처럼 같은 집 같은 담벼락에 매일 노상 방뇨하는 사람처럼 썩은 과일을 골라내 저렴한 가격을 매기는 점원처럼 자기가 떠메고 가는 이가 누구인지 모르는 불어난 강물처럼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키워낸 키워낸 우리 엄마처럼 총알처럼 폭탄의 파편처럼 누구를 죽이고 살리는지 모르고. 제 갈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피뢰침에 꽂히고 마는 번개처럼. 시체처럼 근육의 경련처럼. 나에게 꽃을 던지는 사람들 손뼉을 치는 사람들 침을 뱉는 사람들 내보낸 것이 포물선을 그리며 도착함. 이게 뭐임. 이거 왜 주는 거임. 알 리 없음. 모름. 어깨에 자꾸 부딪힘. 이 시간 지하철, 버스. 부딪히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음. 아래위로 좌우로 흔들림. 솟아오름. 떠밀림. 모름. 모름.
--- 「모름 모름 모름」 중에서

신부님은 특정한 수도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거기서 그는 한 번도 신부였던 적이 없었다고 했다.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신부님은 그가 믿는 종교와 의식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신부님은 올바르게 교육된 복사들, 그러니까 마을에서 가장 엄격한 집안의 아이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는 성경도 처음 읽는 것 같았다. 그는 성경의 몇 구절에 진심으로 탄복했고 우리에게 집으로 돌아가 성경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 「젊은 신부」 중에서

그는 평소보다 말이 없는 대신 맥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우리는 전통에 따라 위로를 원하는 사람에게 숫자를 하나씩 더해가며 맥주를 사주었다. 빌이 한 번에 다섯 잔을 주문해 거의 다 비워냈을 때 우리는 또 한 가지 전통을 떠올렸다. 우리 중 누군가 정신을 잃는다면 16번가 주택지 중 하나에 버려두고 떠난다는 것이었다. 나는 두 번, 빌은 한 번, 잭은 세 번 넘게 버려졌다. 우리는 빌을 적재함에 실었다. 잭이 운전대를 잡았다. 잭은 차를 천천히 몰기 시작했다.
--- 「전통적인 우정」 중에서

미치겠다. 모든 게 엉망이 됐다. 내 생각에 그 일은 어느 젊은 부부에 의해 일어났다. 아마도 잠깐 아이들이 버튼을 가지고 놀았고 다시 직원들에 의해 제지되었던 모양이다. 오 분 동안 주유소에서는 기름 대신 콜라가 나왔다. 신문에는 낙서가 가득했다. 사람들은 주먹으로 서로를 치는 대신 꼬집고 할퀴었다. 낙타의 혹이 하나 더 늘어났고 얼룩말과 기린의 무늬가 섞인 동물이 골목을 걸어 다녔다. 콜라를 넣은 자동차는 잠깐 하늘을 날았다.
--- 「오 분」 중에서

나는 그렉이 그의 파트너들에게 아기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가끔 기저귀를 차고 우유병을 문 채로 금발의 상대에게 안겨 있는 사진을 보냈다. 그렉은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주먹만 한 다이아몬드를 주운 이후로 자기 욕망에 충실하게 살아가기로 맹세했다.

--- 「아기 취급」 중에서

출판사 리뷰

구부러진 이야기를 통한 시적 모험

『엄청난 속도로 사랑하는』을 펼친 독자는 곧장 활자가 빽빽하게 들어찬 산문시가 만들어내는 풍광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 빼곡한 산문시에는 저마다 엉뚱하거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시 「젊은 신부」는 한 마을에 새로 부임한 신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신부는 이전에는 한 번도 신부였던 적이 없었고, 자신이 믿는 종교와 의식에 관해 아는 것 또한 하나도 없다. 도저히 신부라고 부르기 어려운 신부에 관한 요상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흘러가기는 하지만, 그 방향은 예상하기 어렵다.

신부는 술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 새로 온 이들은 신부가 신부인 줄 몰랐고 신부도 자기가 신부인 줄 몰랐다. 미셸은 그곳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다가 결국 신부와 결혼하기로 했다. 신부는 나에게 들러리가 되어주기를 바랐다.
-「젊은 신부」 부분

이러한 능청스러움이 섞인 이야기 속 혼란은 기승전결이 뚜렷한 이야기 형식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독자를 데려다준다. 「새와」라는 시는 ‘새와 미술관’에 다녀왔다는 친구의 말에서부터 출발한다. ‘나’ 또한 새와 미술관에 가고 싶다며, 그 이유를 길게 주절거린다. 그러나 사실 친구가 다녀온 미술관은 새와 미술관이 아니라 세화 미술관이다. 이런 엉뚱한 순간을 지나가며 이야기는 길을 잃지만, 그 방향 상실은 존재하지 않던 장소를 일순간이나마 상상하게 함으로써 독자를 그곳으로 데려간다. 순간적인 오류 속에서 새와 미술관은 반짝이듯이 나타나고 또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숨겨져 있던 미지의 장소를 발견해내고야 마는 시적 모험과도 같다.
이렇듯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과 풍경 들로 만들어진 세상 속의 등장 인물들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어쩌면 시인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계속해서 움직인다. 다른 시민들이 일반적으로 오가는 대로가 아닌 숨겨진 골목길을 통하는 이 움직임은, 익숙한 세상이 미처 감추지 못한 세상의 난잡함과 엉성함을 들춘다. 독자들은 이러한 풍경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불완전성을 목격하게 된다.

미치겠다. 모든 게 엉망이 됐다. 내 생각에 그 일은 어느 젊은 부부에 의해 일어났다. 아마도 잠깐 아이들이 버튼을 가지고 놀았고 다시 직원들에 의해 제지되었던 모양이다. 오 분 동안 주유소에서는 기름 대신 콜라가 나왔다. 신문에는 낙서가 가득했다.
-「오 분」 부분

「오 분」은 주유소에서 기름 대신에 콜라가 나오고, 신문에는 낙서가 가득하고, 총에서 비눗방울 대신에 총알이 발사되는 기이한 세상을 보여준다. 그러고 한 대권주자가 대통령이 되면 다시 그 오 분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하는 사설이 등장한다. ‘나’는 이에 동의하면서도 그에게 표를 던진다. 온갖 사물과 문화와 풍습이 뒤섞인 세계의 부조리한 단면을 드러내는 이러한 이야기들은, 종종 의도된 바와 관계 없이 그 자체로서 비판적 세계의 형상으로 읽힐 가능성이 된다.
그러나 고민형의 시는 한 가지 의미로 환원되기보다는 다양한 결의 생각과 느낌, 의미 등으로 뻗어나가며 쉽사리 정의되기를 거부한다. 그는 언제나 윤리보다는 유머를 택하는 쪽이다. 시 「우파루파」의 화자는 옆 사람과 대한민국의 전 대통령들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흘리는 순간을 상당히 우스꽝스럽게 그려낸다. ‘우파’라는 단어의 말놀음에서 출발했을 듯한 시는 갑자기 시의 제목에 충실해지면서 멕시코도롱뇽 우파루파(아홀로틀)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독자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 생각의 놓침을 통해 일순간 해방감을 맛볼 수 있게 된다. 그러한 복합성이야말로 문학이 마음껏 자랑할 수 있는 고유한 자유로움일 것이다.


추천사: 우연은 필연, 그러므로 순간은 모름 모름 모름!

고민형의 시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것처럼 군다. 의자를 당겨 앉고 귀를 기울이게 한다. 읽게 하기보다는 듣게 한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척하는 포즈, 그런데 이건 다 너스레다. 이야기꾼이었다면 결코 어기지 않았을 이야기 양식들을 주저 없이 위반하는 것을 보라. 고민형은 기승전결을 꾀하거나, 이야기를 거점 삼아 시적 도약을 꾸미지 않는다. 때문에 고민형의 시는 이야기의 취향이 아니라 모험의 운명을 따른다. 시의 혈관을 타고 모험가의 기질이 흘러 다닌다. 우연의 순간이 필연의 결과를 맺는 위치까지 우리를 데려가놓고는, 다시 우연으로 뿔뿔 흩어져버리도록 우리를 낯선 곳에 풀어놓는다. 기대에 묶여 꼭 쥐고 있던 주먹을 풀었을 때, 이토록 상쾌한 손바닥!

시집을 읽다가 어떤 시에 멈추어 “한 단어, 한 단어가 사랑스럽고 너무 많은 비밀을 말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면, 그 또한 고민형이 계획한 장치가 아닐 것이다. 그는 “모름 모름 모름”의 징검돌을 딛고 이미 순간을 벗어나버렸기 때문에. 그러니 우리가 시 속에서 발견한 사랑스러운 비밀들은, 오롯이 그를 제외한 우리들의 것이다. 위성 사진을 통해 낯선 나라의 골목골목까지도 몽땅 들여다볼 수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 아직은 모험가가 필요한 이유다.
-유계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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