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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1장 나이를 재는 소년
2장 잔치가 시작될 무렵
3장 문장을 만나다
4장 기록을 위한, 기록에 의한
5장 도시의 무덤
6장 신기루, 그림자
7장 잔혹한 여행
에필로그

해설 - 푼크툼, 문명에 찍힌 얼굴 (정은경 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200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2006년 제1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푸른 이구아나를 찾습니다』 『헌팅』을 썼고, 소설집으로는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 『그녀의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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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9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450g | 150*210*30mm
ISBN13
9788984317338

책 속으로

시우에게도 삶의 목표라는 게 있다면 바로 이것이었다. 누군가가 아침에 눈을 뜨는 즐거움이 무엇이냐고 물어온다면 서슴지 않고 바로 이 순간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맨발로 자작나무 숲으로 달려갔다. 자작나무에 두 발을 모으고 기대어 서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나이를 쟀다. 머리끝이 머무는 지점에 때 낀 손톱을 눌러 표시를 했다. 나이는 매일 자랐다.
자작나무에 대고 나이를 재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다. 자꾸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는 자작나무를 올려다보다가 자신도 나무처럼 자라는지 궁금해졌다. 시우가 느끼기에 몸은 매일 그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자작나무에 발뒤꿈치를 바싹 붙이고 섰다. 머리끝이 닿는 부분에 대고 손톱으로 표시를 했다. 그 다음 날 같은 방법으로 표시를 했다. 어제와 달라지지 않았다. 그 다음 날도 그 그 다음 날도 매일같이 쟀다. 처음에는 같은 위치에 머물러 있던 표시가 아주 조금씩 그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신기하고 흥분되었다. 자작나무처럼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한편으론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자작나무보다 훌쩍 커버리면, 이 숲에서 시우가 가장 크면 그다음에는 어디다 대고 손톱으로 표시할까 조바심이 일었다. 그리고 알지 못했다. 자작나무에 대고 재는 게, 매일매일 크는 게 ‘키’라는 사실을. 손톱으로 표시할 수 있는 건 나이가 아니라 키란다, 아무도 바로잡아주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키를 재든 나이를 재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비밀을 간직하는 것이었다. 시우도 어느덧 은밀함을 즐기고 싶은 나이가 되었다. --- pp.31~32

한 번도 숲을 벗어난 적이 없는 시우에게 숲만큼 거대하고 대단한 존재는 없었다. 숲이야말로 시우의 전부였다. 움막에 없는 게 숲에는 있었다. 나무가 있고 버들피리가 있고 이슬이 있고 청설모가 있고 열매가 있고 바람이 있고 토끼도 있었다. 시우는 도토리 열매를 주우며 셈을 익혔고, 심심할 때는 길게 늘어진 나뭇가지를 잡고 이쪽 나무에서 저쪽 나무로 옮겨 다녔고, 피곤하면 나무 아래서 잤다. 잠에서 깨어나 배가 고프면 칡뿌리를 캐 우물거렸고 배가 부르면 바위 위에 올라가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면 나뭇잎들이 바람에 일제히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자신을 향해 갈채를 보내는 것 같았다. 시우에게 숲은 없는 게 없는 곳이었다. 모르는 것투성이어도 슬프지 않았다. ‘키’와 ‘나이’ 같은 것을 몰라도 자작나무가 있으니 다행이었다. 그 사실을 린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니 자꾸 골치 아픈 얘기는 그만하라고. --- pp.46~47

사냥은 힘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기 싸움이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읽는 쪽에 승리가 돌아갔다. 노파는 모든 만물에 마음이 있다고 믿었다. 배를 곯는 들짐승은 물론 나무와 바람과 흙과 햇살에도 마음이 머문다고 생각했다. 그것들이 모여 숲의 넉넉한 마음이 생겨났으니 늘 고맙고 미안했다.
사냥은 마음과 마음이 다투는 장이었다.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었다. 지금 시우의 행동은 어수룩하고 방만했다. 토끼는 절대로 그냥 덫에 걸리지 않았다. 덫에 걸리기만을 기다리기 전에 토끼의 예상 경로를 미리 차단하는 게 중요했다. 가만히 앉아 무엇인가, 그것도 펄펄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덫에 걸리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었다. 그들도 제 나름의 생각이 있고 오기가 있다는 걸 인간들은 모르고 있었다. --- p.79

숲 한가운데 오래된 나무가 있었다. 시우가 두 팔을 다섯 번을 벌려야 가까스로 껴안을 수 있는 나무였다. 나무에는 커다랗고 깊은 구멍이 나 있었다. 어린 시우가 들여다본 구멍은 깊고 깜깜했다. 언젠가 그 속에 손을 디밀었다가 무엇인가에 찔린 후로는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시우가 보기에 그 거대한 나무는 하나도 자라지 않는 것 같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그 모습, 그 크기 그대로였다. 할머니는 가끔 고목에 대고 절을 했다.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연신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본 어린 시우는 나무 속에 할아버지가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나무가 할아버지를 잡아먹었거나 저 깊은 구멍 속에 가두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할머니가 주문을 외우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지 않고는 할머니가 그토록 간절할 수 없었다. 그 무시무시한 고목을 뿌리째 뽑아 업고 달리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등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모두 업혀 있는 꼴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점점 더 힘이 들었다. 숨이 찼다. 당장에라도 할머니를 떠받치고 있는 손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움막에 돌아왔을 때 시우는 어둠 속에 서서 자신을 반기는 린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다행히 등에는 할머니만 있었다. 할아버지도 고목도 보이지 않았다. --- pp.87~88

도시는 숲을 여기저기에 품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품을 수 있는 게 그것처럼 보였다. 아침저녁으로, 어느 날은 온종일, 사람들은 등에 자기 덩치보다 큰 짐을 짊어지고 줄지어 걸어갔다. 그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떠들고 자주 크게 웃었다. 시우는 그들이 왜 아침이면 웃으며 숲으로 갔다가 저녁이면 비틀거리며 그곳을 떠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곳에도 자작나무가 있고 토끼가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도시는 시우에게 새로운 언어를 요구했다. 시우가 알거나 지니고 있는 말로는 어떤 대답과 물음도 할 수 없었다. 도시의 언어는 소란스럽고 해괴해서 그 뜻을 예측할 수 없었으며 한없이 솟아나고 무너지는 것들 사이에 기괴한 바위처럼 서 있었다. 시우는 린이 틀어준 텔레비전 속에서 그 현상을 목격했다. 그 기이한 기계가 보여주는 현란함에 차마 눈을 똑바로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들이 지껄이는 말은 폭풍 전야의 숲에 갇힌 바람처럼 난폭하고 소란스러웠다. 생각은 정지된 채 소음 속에 묻혔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것이 적이었다. 눈만 뜨면 알아야 할 것투성이라 어느 때는 눈을 뜨는 일조차 두려웠다. --- p.157

그리움은 곧잘 기억이나 추억이라 할 수도 없는, 희미해서 때론 남루하기까지 한 시간의 흔적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습성이 있었다. 시우는 제이의 숨결을 기억했다. 제이와 함께하던, 그들을 둘러싼 사소한 일상의 공기까지 그리웠다. 특이할 것도 유별날 것도 없는 숟가락질 소리라든가 물 넘기는 소리, 웃을 때마다 손바닥으로 옆 사람을 때리는 버릇,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머리칼 따위가 간절하게 떠올랐다. 눈에 보이는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의도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상대방과의 공유는 그리움의 표상이었다. 시우는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간 사람처럼 굴었다. 노파가 죽었을 때와 다른 느낌의 상실감이었다. 세포 하나하나에, 뼈 마디마디에 절망이 차올랐다. 급기야 몸이 터질듯 슬픔으로 부풀어 올랐다. 맨발로 숲을 달려 노파의 부고를 알렸듯 어딘가로 맹렬하게 달려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토해내야 할 것 같았다.
--- pp.274~275

도시로 온 후 시우는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남몰래 길게 혀를 빼 세상의 맛을 익혔다. 혀끝에 닿는 세상은 녹처럼 비릿하고 먼지처럼 텁텁했다. 책상 밑에 처박힌 상자를 피해 달린 곳, 그 끄트머리에서 만난 것은 바다가 면해 있는 비행장이었다. 그곳에서 처음 본 비행기는 작고 아담했다. 도시처럼 차갑고 냉정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푸른 숲 위를 나는 비행기가 그려졌다. 다행이었다. 만약 거대하고 웅장한 비행기를 만났다면 두 번 다시 그곳으로 차를 몰지 못했을 것이다. 시우는 먼발치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를 한참 바라보다가 돌아서곤 했다. 그런 날은 등 너머의 상자가 말을 걸어왔다. 뭘 망설여. 뭘 두려워하는 거지. --- p.301

천천히 숲 위를 선회했다. 저기 어디 토끼가 숨어 있던 곳. 저기 어디 발꿈치를 붙이고 나이를 재던 곳. 저기 어디 나무 그늘 아래 누워 허공에 낱말을 써대던 곳. 저기 어디 풀피리를 불던 곳. 저기 어디 맨발로 달리던 곳. 저기 어디…… 그리움으로 다져진 길이 있었다. 그곳을 향해 비행기는 낮게 날았다. 그놈을 향해 정다운 구애를 보냈다. 한없이 낮고 정처 없이 부드럽게. 가슴속에서 뜨거운 기류가 비행기와 함께 돌았다. 그곳으로 돌아가. 넌 그곳에서 행복했잖아. 바람을 타고 제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료 탱크는 조종석 아래쪽에 있었다. 천천히 연료 탱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때 기체가 기우뚱하며 한쪽으로 쏠리면서 심하게 흔들렸다. 시우는 두 손으로 조종간을 움켜잡았다. 비행기는 다시 수평을 유지했다. 난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아무것도 알지 못해. 아무것도 보지 않았어. 시우는 조종간을 움켜쥔 채 멀어지는 숲을 외면했다.

--- pp.310~311

줄거리

다큐멘터리 감독 린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린은 오 신부가 들려준 비행기 사고로 죽은 부부 이야기를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 사고 현장으로 헌팅을 떠났다가 우연히 시우를 만난다.
시우는 열네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말 그대로 야생 소년이었다. 매일 자작나무에 달려가 금을 그으며 ‘나이’를 재고, 자작나무 잎으로 이를 닦고, 토끼 사냥을 하고 싶은, 한 번도 숲을 벗어나 본 적 없는 소년. 시우를 따라간 린은 산속 깊이 움막을 짓고 시우와 함께 살고 있는 노파를 만나게 된다. 노파의 두 가지 부탁을 들어주기로 약속하고 린은 다큐멘터리 촬영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파가 죽음으로써 첫 번째 부탁이었던 풍장을 치른다.
노파가 죽은 이후 린은 시우를 데리고 도시로 돌아온다. 시우에게 도시는 모든 것이 너무 눈부시고 혼란스러우며 처음부터 배워야 할 것투성이인 세상이다. 린이 찍은 다큐멘터리 [사냥]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순식간에 시우는 모든 이들의 관심사가 된다. 대중들의 시선을 등에 업고 자연스럽게 영화계에 입문한 시우는 영화 촬영장에서 만난 제이와 사랑에 빠진다. 그와 동시에 린은 시우의 모든 것을 낱낱이 기록하며 시우의 과거를 좇는다.
어느 날, 시우 앞으로 의문의 소포가 배달이 된다. 시우의 유일한 탈출구였던 제이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실종이 되고, 시우는 한 번 더 절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출된 삶을 강요받던 시우는 어떤 선택을 하는데…….

출판사 리뷰

제1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 조영아의 세 번째 장편소설!
문명사회의 욕망을 송곳처럼 찌르는 한 소년의 이야기

기록을 멈추지 않는 카메라, 그 뒤에 숨은 우리의 욕망을 추적하다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는 기사로 접한 두 장의 사진에 있다. 한 산골 소년의 사진과 소녀의 사진이 바로 그것이다. (중략) 소년과 소녀가 번갈아가며 잠을 깨웠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바라보다가 사라졌다. 말소리는 그들이 사라지고 난 뒤에 들렸다. 소년과 소녀는 행복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나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간신히 대꾸했다. 소년과 소녀는 더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내가 한 말이 마음에 걸렸다. 컴퓨터를 켜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실은 말이야……. 만약 그 소년과 소녀가 우리를 만나지 않았다면, 하는 가정에서 이 소설은 출발했다. _작가의 말 중에서 (331쪽)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로 제11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조영아가 오랜만에 세 번째 장편소설 《헌팅》으로 돌아왔다. 이 소설은 산속에서 야생 소년으로 자란 시우가 다큐멘터리 감독 린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작가는 인간이 지닌 기록의 욕망을 샅샅이 파헤치면서 개인의 욕망이 개입하지 않은 순수한 기록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동시에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문명’으로, 불편한 것을 ‘야만’으로 규정하는 세상을 환기시킨다.
《헌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작가는 산골 생활을 하는 소녀를 도시로 데려와 불행해진 실제 사건 기사를 접한 뒤, 문명의 공신인 문자로 ’기록’하는 행위와 그 결과물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들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으며, 그 기록 뒤에 숨은 기록하는 자의 욕망을 파헤치는 이 소설을 썼다.

제목 ‘헌팅Hunting’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사전적 의미의 ‘사냥’과 영상 제작 분야에서 말하는 ‘촬영 장소 물색’이다. 소설은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함축한다. 촬영을 위해 ‘숲’으로 들어간 헌팅의 시도로 다큐멘터리 감독 린은 야생 소년 시우를 만나고, 그후 시우가 도시로 나와 문명에 적응해나가는 일상까지 담은 다큐멘터리를 촬영한다. 소설 안에서 시우가 토끼를 사냥하는 장면은 시우의 성장을 의미함과 동시에, 다큐멘터리라는 명분하에 벌어지는 린의 연출이 가져오는 결과 또한 사전적 의미의 ‘사냥’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그 사냥이 익숙한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향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섬뜩하게 다가온다.
뛰어난 관찰, 섬세한 묘사, 깊이 있는 상상의 힘을 지닌 작가 조영아는 이번 작품에서도 그 힘을 어김없이 발휘한다. 시우와 린이 처음 만난 산속에서의 생활은 영상처럼 생생하게 펼쳐지며, 숲에서 도시로 첫 발을 내디딘 시우의 시선을 따라 익숙하면서도 낯선 도시를 성공적으로 그려낸다.

기록하는 자, 린의 이야기
린은 평소 알고 지내던 오 신부의 제보를 받고 숲으로 향했다. 오 신부는 십여 년 전 경비행기 사고 기사를 보여주며 사고 이면의 사실을 확인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렇게 헌팅은 시작되었다. 설마 했던 깊은 숲에서 노파와 시우를 만난 린의 마음속에는 이미 녹화를 알리는 빨간불이 들어왔다. 스스로 완벽한 헌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깊은 산속에서의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린이 경험하는 야생은 들쥐 고기, 뱀 고기, 토끼 고기를 먹고 산에서 나물을 채취하고 가까운 샘에서 물을 길어오는 것뿐만 아니었다. ‘키’와 ‘나이’의 정의가 뒤바뀌고 ‘맛있다’는 ‘어떤 음식을 먹을 때 들쥐 발톱 따위가 떠오르지 않는다’로, 린이 규정하던 언어의 의미까지 바뀌었다.
모든 것이 환하던 도시와 달리, 시우가 살고 있는 움막에서는 “모든 사물은 그 실루엣만으로도 훌륭히 존재”하며 빛으로 환하게 살펴보는 일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었다. 휴대전화도 텔레비전도 없는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린은 시우처럼 자작나무 숲을 향해 맨발로 달린다. 그 과정에서 온몸으로 들어오는 숲의 기운을 온전히 느낀다. 그리고 이해한다. ‘키’와 ‘나이’의 개념이 바뀌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음을.

얼마쯤 갔을까. 축축하고 불쾌한 느낌이 가시면서 발에 점점 힘이 실렸다.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마침내 린은 달렸다. 그러자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발바닥이 땅에 닿을 때마다 우주가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발바닥을 열고 린의 몸 안으로 들어온 우주는 무수한 세포마다 별을 달았다. 희미하지만 따뜻하고 노란 불이 들어왔다. 총총총 노란 불빛이 몸 구석구석을 비추었다. 린은 희미하지만 따뜻한 노란 불이 되었다. 몸의 문은 발바닥에 있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문은 가장 어둡고 낮은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75~76쪽)

노파의 죽음 이후, 시우를 데리고 도시로 돌아온 린은 숲 생활은 까마득히 잊은 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움직인다. 처음엔 시우의 정체와 존재에 대한 호기심으로 기록을 시작했던 린이었지만, 어느새 그 욕망은 끝없이 커져만 가고 모든 이의 불행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온다.

나이를 재는 소년, 시우의 이야기
매일 아침 맨발로 자작나무 숲을 향해 달리는 시우. 시우는 자작나무에 발꿈치를 대고 ‘나이’를 재는 자신만의 아침 의식이 좋았다. 지천으로 널린 자작나무 잎사귀를 뜯어 이를 닦았다. 평생 숲을 벗어나 본 적 없던 시우는 할머니의 죽음 이후, 이곳을 떠날 때가 왔음을 직감한다.
시우는 린과 함께 도시로 삶을 옮긴다. 도시의 모든 것이 편한 린과 달리, 시우는 눈을 뜨는 게 두려울 만큼 낯설고 위협적인 곳이었다. 린에게 숲 생활이 그러했듯이, 시우에게는 도시가 야만이었다. 린의 다큐멘터리 [사냥]이 인기리에 방영이 된 후, 도시의 대중들은 시우가 호기심과 소비의 대상이 되기를 원했다. 린은 시우를 종이인형처럼 다뤘고, 시종일관 시우에게서 카메라를 떼놓지 않았다. 시우는 린에게 반항도 해보지만, 린을 벗어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린은 시우에게 연기에 필요한 호흡과 발성을 가르쳤다. 예외 없이 이 모든 것은 영상으로 기록되었다. 린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시우가 카메라 주위를 기웃거렸다. 렌즈에 눈을 대고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실내가 고스란히 보였다. 조금씩 발을 떼어 움직였다. 실내가 따라 움직였다. 렌즈 속 세상은 작고 아득했다. 시우는 카메라를 살피다가 멈칫했다. 바로 전 자신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다. 입을 크게 벌려 아, 야, 오, 유를 발음하는 모습이었다. 우스꽝스러웠다. 자신도 모르게 입이 씰룩거렸다. 버튼을 계속 누르자 지난 장면들이 이어졌다. 처음 이곳에 와서 빛 때문에 눈을 뜨지 못하고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장면부터 라면을 허겁지겁 먹는 장면, 이를 닦는 장면 그리고 잠자는 모습까지 다 들어 있었다. 장면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낯설었다. 그리고 뭔지 모르게 무서웠다. 그 두려움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알 수 없었다.(208~209쪽)

린에 의해 만들어진 시우의 삶을 바라보면, 우리의 삶의 모습과 비슷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또한 세상이라는 거대한 세트 안에서 제공되는 자본의 서비스를 소비하며 ‘구성’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이처럼 《헌팅》은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를 시우의 눈을 통해 낯설게 보는 진기한 경험을 제공한다.
한편 대중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시우라는 인물에 열광하다가도 시우가 그 기대감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기만 하면 가차 없는 비판을 퍼붓는다. 작가는 문명인들이 더욱 야만적이고 잔인해질 수 있는 상황을 신랄하게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빌딩 숲 안에서 스마트한 기계로 포박당한 현대인들에게 호기심과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리는 한 소년의 비극적 이야기 앞에서 우리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소설 속 또 하나의 이야기, 박기용과 박승준
《헌팅》은 산속에서 도시로 온 시우의 삶과 린의 다큐멘터리라는 이야기와 더불어 또 하나의 이야기 줄기를 지니고 있다. 바로 문명 바깥에서 자라나 문명 안으로 포섭되어 갇힌 ‘시우’의 뿌리 이야기다. 린은 노파의 부탁으로 시우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글은 시우에게 그의 뿌리를 알려준다.

시우는 나무 상자를 책상 밑에 처박았다. 편지에 대한 충격과 흥분은 좀체 가시지 않았다. 인생이 뿌리째 뽑혀 뜨거운 햇살 아래 내동댕이쳐진 기분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이 모든 게 자신을 끌어내리기 위한 음모라고 생각했다. 그런 일은 종종 벌어졌다. 시우는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글자 하나하나를 칡뿌리 씹듯 질겅질겅 씹었다. 글자를 배우고 문장을 만난 게 한없이 경멸스러웠다. 글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걸 재는 자’라고 일러주던 린의 말이 떠올랐다. 시우는 글을, 문장을 저주했다. 그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원형이 한없이 두렵고 무서웠다. 그리고 의심스러웠다. (299쪽)

감옥을 택하는 것이 유일하게 허용된 자유였던 ‘비전향 장기수’인 할아버지 박기용과 그로 인해 꿈을 빼앗기고 주변으로 쫓겨난 아버지 박승준의 이야기가 시우의 삶 속으로 끼어들게 되고,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질주해가는 시발점이 된다.
정은경 문학평론가는 《헌팅》의 해설에서 이 작품이 “외부와 타자를 용납하지 않는, ‘안’으로만 이루어진 세계”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촘촘히 구획되고 박제화된 우리의 안온한 삶을 물어뜯는 ‘사냥’”을 보여준다고 평한다.

추천평

《헌팅》은 문명사회에 ‘헌팅’당한 산골 소년 ‘시우’의 비극을 그리고 있으나, 역설적으로 그것은 촘촘히 구획되고 박제화된 우리의 안온한 삶을 물어뜯는 ‘사냥’이다. ‘스푸디움(spudium)’의 풍광을 찢고 나온 일종의 ‘푼크툼(punctum)’이고, 문명에 찍힌 우리의 ‘얼굴’인 것이다.
정은경(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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