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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난 야르 1 ~ 28. 질문과 답변 |
Bhagavan Sri Ramana mahar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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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가지 기질로 된 이 거친 몸은 나가 아닙니다. 소리, 촉감, 색깔, 맛과 냄새라는 다섯 감각의 대상들을 파악하는 귀, 피부, 눈, 혀와 코라는 다섯 감각 기관들은 나가 아닙니다. 말하는 입, 이동시키는 발, 붙잡는 손, 배설과 생식의 기관이라는 다섯 행위 기관은 나가 아닙니다. 들이쉬는 등의 다섯 유형의 호흡 행위를 하는 생명력을 주는 공기 즉 쁘라나도 나가 아닙니다. 생각하는 마음조차도 나가 아닙니다. 대상들에 대한 잔여 인상들만 있을 뿐, 아무런 대상도 아무런 기능도 없는 (잠자는 상태의) 무지 또한 나가 아닙니다.
---「1. 나는 누구입니까?」중에서 앞에서 말한 모든 것들을 ‘이것이 아니다’, ‘이것이 아니다’라고 부정한 뒤에 오로지 남아 있는 자각, 그것이 나입니다. ---「2. 나는 이것들 그 어느 것도 아니라면, 나는 누구입니까?」중에서 자각의 고유 성질은 절대적 존재, 절대적 의식, 절대적 희열입니다. ---「3.자각의 고유 성질은 무엇입니까?」중에서 보이는 세상이 사라질 때 보는 자인 나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4.나에 대한 깨달음이 언제 얻어집니까?」중에서 그럴 수는 없습니다. ---「5. (세상을 실재라고 여겨) 세상이 존재하는 동안에도 나를 깨달을 수 있습니까?」중에서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은 밧줄과 뱀의 관계와 같습니다. 환영으로 생긴 뱀이라는 그릇된 지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바탕인 밧줄에 대한 지식이 일어날 수 없듯이 세상이 실재한다는 믿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바탕인 나에 대한 깨달음이 얻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 「6. 왜 그렇습니까?」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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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는 나 탐구에서 일어나는 질문과 답에 주어진 제목이다.
이 질문들은 1902년 슈리 M. 쉬바 쁘라까삼 삘라이에 의해 바가반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에게 놓여졌다. 철학 석사인 슈리 쉬바 쁘라까삼 삘라이는 그 당시에 남 아르꼬뜨 세무서의 징세부에 근무했다. 1902년 띠루반나말라이를 방문하는 동안에 그는 아루나짤라 산의 비룩빡샤 동굴로 가서, 그곳에서 마하리쉬를 만났다. 그는 마하리쉬로부터 영적 안내를 구하였으며 나 탐구와 관련한 문제들에 대한 답을 간청하였다. 바가반께서는 그때 대화를 하지 않았다. 어떤 맹세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말하고 싶은 의도가 없어서 그렇게 했다. 마하리쉬는 그가 물은 질문들에 대하여 답을 적었다. 슈리 쉬바쁘라까삼 삘라이의 회상과 기록에 의하면 13개의 질문과 답들이 바가반에 의하여 그에게 주어졌다. 이 기록은 1923년에 처음으로 (오리지널 따밀지에) 슈리 쉬바쁘라까삼삘라이의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거기에는 어떻게 바가반의 은총이 자신의 의심을 추방하여 삶의 위기로부터 그를 구했는지에 관련한 몇 개의 시도 들어 있었다. 이후 이 책은 여러 번 출간되었다. 어떤 판에서는 13개의 질문과 답이 보이며, 다른 판에서는 28개가 보이기도 한다. 또 다른 판에서는 질문들이 보이지 않으며, 또 다른 판에서는 가르침이 산문 형식으로 재배열되고 있다. 현존해 있는 영어 번역은 산문 형식으로 재배열된 것이다. 이 책에는 28개의 질문과 답들이 있다. 비짜라상그라함(나 탐구)과 함께, 난 야르(나는 누구인가?)는 스승 자신의 말로 된 첫 번째 가르침의 묶음이다. 이 둘은 바가반의 저서 중 유일한 산문 조각들이다. 그것들은 해방으로 가는 직접적인 길인 나 탐구라는 핵심적인 가르침을 설명하고 있다. 탐구가 만들어지는 특별한 모드는 난 야르에서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마음은 생각들로 되어 있다. ‘나’ 생각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첫 번째 생각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탐구를 지속적으로 할 때, 모든 다른 생각들이 파괴되며, 마침내 지고한 비이원의 나만을 남겨놓은 채 ‘나’ 생각 그 자체가 사라진다. 나가 아닌 몸과 마음의 현상과 나와의 거짓 동일시가 끝나고, 그래서 샥샤뜨까라 즉 깨달음이 있다. 물론 탐구의 과정은 쉬운 것이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탐구할 때, 다른 생각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것들을 따라감으로 그것들에 굴복하는 대신에, 그와 반대로 ‘그것들이 누구에게 일어나는가?’하고 물어야 한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극히 경계하고 있어야 한다. 끊임없는 탐구로 마음을 그것의 근원에 머물게 해야 한다. 마음을 바깥으로 방황하게 하여 스스로 창조한 생각의 미로에 길을 잃어서는 안 된다. 호흡의 통제나 신의 형상에 대한 명상과 같은 모든 다른 수련들은 보조적인 수행들로 여겨져야만 한다. 그것들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며 또 일점지향이 되도록 만드는 한 도움이 된다. 집중의 기술을 얻은 마음에게는 나 탐구가 비교적 쉽다. 쉬지 않고 탐구함으로 생각들은 파괴되고 나가 깨달아진다. ‘나’라는 생각조차도 없는, ‘침묵’이라고 언급이 되는 절대적 실재인 나가 깨달아진다. 이것이 실질적으로 난 야르에 있는 바가반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이다. T.M.P, 마하데반 마드라스 대학교 1982. 6.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