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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외 11편
현대문학 201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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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단편선

책소개

목차

키 작은 프리데만 씨
행복에의 의지
토니오 크뢰거
신동
굶주리는 자들 ― 연구 ―
타락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죽음
환멸
어릿광대
루이센
토비아스 민더니켈

저자 소개 2

토마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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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Mann

1875년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곡물상이자 시의회 의원이고, 어머니 율리아는 반은 포르투갈계이고 반은 크레올계인 남부 출신으로, 그는 아버지에게는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토마스 만의 유년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사가 정리되면서 가족들은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토마스 만은
1875년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곡물상이자 시의회 의원이고, 어머니 율리아는 반은 포르투갈계이고 반은 크레올계인 남부 출신으로, 그는 아버지에게는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토마스 만의 유년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사가 정리되면서 가족들은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토마스 만은 일찍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1893년에는 산문 습작을 했으며, 자신이 발간하는 『봄의 폭풍우』지에 글을 기고했다. 토마스 만은 다니던 김나지움을 그만두고 가족이 이미 1년 전에 이주한 뮌헨으로 가서 화재 보험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하지만, 곧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1895년에서 1896년까지 뮌헨 공과대학에서 미학, 예술 문학, 경제 및 역사 강의를 들었다. 그 시절, 김나지움 시절부터 이미 그를 사로잡았던 슈토름, 헤르만 바르, 폴 부르제, 헨리크 입센 등을 탐독하였고, 직접 『짐플리치시무스』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01년 첫 장편소설 『부르덴브르크 가의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이 무렵 단편소설들을 모아 단편집『토니오 크뢰거』(1903)도 발표하였다.

1905년 뮌헨 대학교 수학 교수의 딸인 카타리나(카챠라는 애칭으로 불림) 프링스하임과 결혼하여 3남 3녀가 태어났다. 하지만 토마스 만의 가족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토마스 만의 두 여동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듯이, 아들 클라우스 만이 자살했고, 막내 미하엘 만도 신경안정제 과용으로 의문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탈출하다가 남편을 잃은 모니카 만은 정신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1912녀 폐병 증세가 있어 부인이 다보스 요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문병을 간 토마스 만은 그곳의 분위기와 그곳에 체류하는 손님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느낀 인상에도 매료되었는데, 이런 체험을 글로 쓰기 시작, 점점 방대해져 12년 후에 완성된 것이 『마(魔)의 산』이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창작을 중단하고, 평론집 『비정치적 인간의 성찰』(1918)과 같은 정치 평론을 발표했다. 전쟁 초기 독일 문화와 독일 시민 계층의 와해를 걱정하며 국수주의적 입장을 보이며 형 하인리히 만과 불화를 겪게 되지만, 평론「독일 공화국」(1922)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민 계급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던 중 1929년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1931년 히틀러가 총통에 취임한 이후 나치에 협조하지 않은 작가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1933년 바그너 서거 50주년이 되던 날, 토마스 만은 뮌헨 대학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뇌와 위대성]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을 끝으로 그는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1935년에는 나치 정권에 대해 공개 반박을 하기에 이르렀고, 193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 교수가 되어 나치 타도를 부르짖었으며,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49년 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 강연 청탁으로 16년 만에 독일 땅을 밟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토마스 만은 현실의 공산주의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의 기본 이념인 사회적 평등을 존중했다. 그래서 구동독 정권에 대해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매카시 위원회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다. 이에 환멸을 느낀 토마스 만은 1952년 미국을 떠나 스위스 취리히로 향했다. 1955년 동독 및 서독에서 F.실러 사망 150주년 기념강연을 하고, 고향 도시 뤼베크의 명예시민이 되어 스위스로 돌아왔지만, 혈전증 진단을 받아 8월 12일 8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취리히 근교 킬히베르크 교회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저서로는 『키 작은 프리데만 씨Der kleine Herr』(1897),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Buddenbrooks』(1901), 「트리스탄Tristan」(1903), 「굶주린 사람들Die Hungernden」(1903), 「글라디우스 다이Gladius Dei」(1903), 「토니오 크뢰거」(1903), 「신동Das Wunderkind」(1903), 「벨중족의 혈통」(1905), 「피오렌차Fiorenza」(1906), 「대공 전하」(1909), 「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1912), 「주인과 개Herr und Hund」(1919), 『마의 산Der Zauberberg』(1924), 「무질서와 젊은 날의 고뇌」(1926)등이 있으며, 『요셉과 그의 형제들』(1943)는 1926년에 쓰기 시작해서 1943년에야 비로소 완간되었다.

또한 『바이마르의 로테Lotte in Weimar』(1939), 『파우스트 박사Doktor Faustus』(1947), 『선택받은 사람』(1951), 「속은 여자Die Betrogene」(1953)가 있으며, 1910년부터 쓰기 시작한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Die Bekenntnisse des Hochstaplers Felix Krull』은 1954년 [회상록 제1부]라는 제목이 덧붙여져 출간되었으나, 결국 이 소설은 그의 미완성작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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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쾰른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사람이건 사건이건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이면에 관심이 많고, 환경을 위해 어디까지 현실적인 욕망을 포기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자신을 위하는 길인지 고민하는 제대로 된 이기주의자가 꿈이다.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세상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 『사냥꾼, 목동, 비평가』 , 『의무란 무엇인가』, 『인공 지능의 시대, 인생의 의미』를 포함하여 『1일無식』, 『콘트라바스』, 『승부』, 『어느 독일인의 삶』 ,『9990개의 치즈』,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등
성균관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쾰른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사람이건 사건이건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이면에 관심이 많고, 환경을 위해 어디까지 현실적인 욕망을 포기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자신을 위하는 길인지 고민하는 제대로 된 이기주의자가 꿈이다.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세상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 『사냥꾼, 목동, 비평가』 , 『의무란 무엇인가』, 『인공 지능의 시대, 인생의 의미』를 포함하여 『1일無식』, 『콘트라바스』, 『승부』, 『어느 독일인의 삶』 ,『9990개의 치즈』,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등 1백 권이 넘는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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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11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432쪽 | 550g | 153*224*30mm
ISBN13
9788972756644

책 속으로

왜 나는 이런 별종으로 생겨 먹어서 늘 모든 것과 부딪치고, 선생님들과 사이가 안 좋고, 다른 친구들과 있으면 어색한 것일까? 친구들을 봐! 얼마나 선하고 평범해? 걔들은 선생님을 우습게 여기지도 않고, 시를 쓰지도 않고, 누구나 똑같이 생각하는 것만 생각하고, 누구나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해! 모두들 자신이 지극히 정상이고, 세상 모든 것들과 일치한다고 느껴! 아,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앞으로 어떻게 되려고 이럴까?
---「토니오 크뢰거」 중에서

내가 너희를 잊었을까? 토니오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냐.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 한스 너도, 금발의 잉게 너도! 내가 글을 쓴 것도 너희 때문이야. 나는 박수갈채를 받을 때면 혹시 너희가 그 자리에 없는지 몰래 주위를 살피곤 했어. 한스, 예전에 너희 집 정원 문에서 약속했던 것처럼 『돈 카를로스』를 읽었어? 읽지 마! 너한테 더는 그런 요구를 하지 않겠어. 외로워 눈물을 흘리는 왕이 너하고 무슨 관계가 있겠어? 너는 시와 멜랑콜리 같은 것으로 눈을 흐리고, 바보 같은 꿈에 젖을 필요가 없어…… 아, 너처럼 되고 싶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너처럼 자라고 싶어. 너처럼 성실하고 쾌활하고 소박하고 올바르고, 질서에 잘 따르고, 신이나 세상과도 아무 갈등이 없고, 천진하고 행복한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어! 잉게 너를 아내로 맞아 한스 너 같은 아들을 낳고 싶어. 인식의 저주와 창작의 고통에서 벗어나 지극히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사랑하고 찬양하고 싶어……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거야. 어차피 똑같이 될 테니까. 지금까지 그랬던 대로 똑같이 반복될 뿐이야! 세상에는 올바른 하나의 길을 아예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이들은 필연적으로 잘못된 길로 빠져들 수밖에 없어!
---「토니오 크뢰거」 중에서

“명심하라, 파이드로스여. 아름다움만이 사랑스러운 동시에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는 감각적인 것의 길이고, 예술가를 정신으로 이끄는 길이다. 얘야, 너는 감각을 통해 정신의 길로 들어가려는 사람이 언젠가 진정한 남자의 품위와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판단은 너에게 맡기겠다만, 그게 오히려 정말 위험하고 불쾌한 길이자, 필연적으로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그릇된 죄악의 길이라 생각하느냐? 너도 이제 알아야 한다. 에로스가 길동무가 되고 길을 인도해 주지 않으면 우리 작가들은 결코 미의 길을 걸을 수 없다는 것을. 그래, 우리도 나름의 방식으로 건실한 전사와 영웅이 될 수 있지만, 우린 본질적으로 여자와 같다. 우리에게는 정염이 영혼의 행복이고, 사랑이 영혼의 그리움이기 때문이지. 이게 바로 우리의 기쁨이고 수치다. 이제 알겠느냐? 우리 작가들은 지혜로울 수도, 품위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 작가들은 어쩔 수 없이 사도에 빠지고, 방탕과 감정의 일탈로 흘러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들이 쓰는 대가다운 문체는 모두 거짓이고 허튼짓이고, 우리가 누리는 명성과 존경은 한마디로 소극이고, 우리에 대한 대중의 믿음은 지극히 같잖은 짓이고, 예술로 대중과 아이들을 교육하겠다는 것은 해서는 안 될 무모한 시도다. 태어날 때부터 개선될 수 없는 타락의 성향을 타고난 사람이 어떻게 교육자로 적합하겠느냐? 물론 우리도 그런 타락의 나락을 거부하고 품위를 지키고 싶지만, 아무리 방향을 돌리려 해도 그 나락이 우리를 끌어당긴다. 우리는 분석적인 인식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파이드로스여, 인식에는 품위도 엄정함도 없기 때문이다. 인식은 신조도 형식도 없이 그저 알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고, 타락의 나락에 호의적이다. 아니, 나락 그 자체다. 따라서 우리는 단호하게 인식을 배격한다. 대신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미뿐이다. 달리 말해서 그것은 단순함과 위대함, 새로운 엄격함, 또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과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파이드로스여, 형식과 자유로움은 도취와 탐욕으로 이끌고, 타락의 나락으로 인도하고, 고결한 자까지 끔찍한 감정의 죄악으로 이끈다. 엄정한 아름다움이 극악한 것으로 여기고 배척하는 그런 감정의 죄악으로 말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작가들이다. 우리는 고상하게 위로 올라갈 능력이 없고, 단지 일탈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간다, 파이드로스여. 너는 여기 남아라. 내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거들랑 그때 너도 떠나거라.”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중에서

내가 남들처럼 사회적으로 보탬이 되는 일을 하지 않고 남들과 연을 맺지 않는 삶을 설계한 것은 어쩌면 그런 외적 행복을 현실적으로 포기했음을 의미할지 모른다. 물론 어떤 순간에도 내 삶에 불만을 토로한 적은 없다. 내 삶에 대한 만족감은 흔들려서는 안 되고 의심받아서도 안 된다. 반복건대, 아니 필사적인 심정으로 강조컨대, 나는 행복해지고자 하고 행복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을 업적과 천재성, 고귀함, 사랑스러움으로 여기고, 불행을 추악한 것, 빛을 두려워하는 것, 경멸적인 것, 한마디로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관념은 내 속에 너무 뿌리 깊이 박혀 있어서, 만약 내가 불행하다면 나는 결코 나 자신을 존중할 수 없을 것이다.
---「어릿광대」 중에서

인간은 모두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에만 지나치게 집착하기에 남에 대해서는 진지한 의견을 갖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크게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은 너 스스로 존중하는 만큼 너를 존중한다.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라. 뻔뻔할 정도로 확신을 보여 주고, 양심의 가책 같은 건 버려라. 너를 경멸할 만큼 도덕적인 사람은 없다. 네가 너 자신과 하나 되지 못하고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만족감을 잃으면 그리고 스스로를 경멸하는 모습을 보이면 남들도 당연히 너를 그렇게 대할 것이다. 나는 그 점에서 실패했다.
나는 이제 펜을 던지고 글쓰기를 끝낸다. 역겹고 구역질 난다. 삶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것은 어릿광대에겐 너무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닐까? 두렵다. 내가 이대로 살아가고, 먹고, 자고, 아무 일이나 조금 하고, 그러면서 내가 불행하고 한심한 인간이라는 것에 시나브로 둔감하게 익숙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빌어먹을,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어릿광대로 태어난다는 것이 이런 액운과 불행일지 말이다.

---「어릿광대」 중에서

출판사 리뷰

세계문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세계문학 단편선]

문학 출판의 명가 현대문학이 새로운 시리즈 [세계문학 단편선]을 펴낸다. 이번에 시리즈의 첫 번째 분으로 나온 책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토마스 만, 데이먼 러니언, 대실 해밋의 단편선집이다. 세계문학을 바라보는 장편소설 위주의 관습에서 벗어나 단편소설에 포커스를 맞춘 이 시리즈는 그동안 단편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던 거장들의 주옥같은 작품들과 단편소설이라는 장르의 형성과 발전에 불가결한 대표 단편 작가들을 소개할 것이다. 아울러 지구촌 시대에 걸맞게 여태까지 우리에게는 문학의 변방으로 여겨져 왔던 나라들의 대표적 단편 작가들도 활발히 소개해 단편소설의 발전이 문화의 중심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도처에서 이루어져 왔음을 독자들이 확인할 수 있게 할 것이다. 현대 대중문화의 성장은 전 세계적으로 미스터리, 호러, SF 등 문학 장르의 분화를 촉진했는데 이러한 장르문학의 형성에도 단편소설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한 장르문학의 형성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작가들의 단편 역시 새롭게 조명할 것이다.

21세기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편소설은 그리스 신화가 그러했듯이 삶의 불변하는 단면을 촌철살인의 관찰력과 응축된 예술적 형식으로 꾸준히 생산해 왔다. 작가들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그린 칼로 베어 낸 듯 날카로운 인생의 다양한 단면들은 시공을 초월해 오늘의 우리에게도 깊은 감동을 준다. 새로운 문학적 기법과 실험의 도입을 통해 단편소설은 현재도 계속 진화, 확장되고 있다. 작가의 예술적 열정이 가장 뜨겁게 투영된 다양한 개성의 다채로운 단편들을 통해 문학이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통찰과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는 문학작품은 독자가 앉은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짧아야 한다고 말했다. 바쁜 일상의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세계문학 단편선]은 중심을 잃지 않고 삶과 사회, 나아가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가 될 것이라 믿는다.

독일 문화가 제시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 준 세계문학의 대표자
20세기 초의 가장 위대한 작가, 토마스 만의 걸작 단편들


토마스 만은 독일 문학사상 전환점에 위치한 20세기의 위대한 소설가이자 비평가이다. 그가 작품 활동에 나선 1890년대는 독일에서 낭만주의와 피히테의 철학, 프랑스 혁명의 열정이 그 위력을 상실하고 과학 문명이 급속도록 발전하면서 소위 현대가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만은 독일 문화 전통의 막바지에 선 인물로서, 시와 희곡 중심의 독일 문학적 풍토에서 빈약한 독일 산문문학의 유산을 이어받았지만, 그것을 가꾸고 다듬어 독일 소설을 일약 세계적인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 작가이며, 그를 통해 독일 문학은 집대성되고 반성된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를 거치는 독일 문화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 진정한 독일적인 가치와 문학이 세계인의 가슴에 남을 수 있도록 기여했다. 1929년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카프카, 헤세와 더불어 독일 현대문학의 3대 거장으로 여겨지는데, 평론가 헬무트 코프만은 “세계문학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토마스 만의 작품들이다”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사상적인 깊이, 높은 식견, 연마된 언어 표현, 짜임새 있는 구성 등을 보여 주는 만의 단편들은 서구 부르주아지 문화의 본질을 향해 시종 의문의 시선을 던진다. 그리고 이 서유럽 문화의 불안정성과 붕괴의 위협에 대한 끊임없는 의식은 그 문화의 정신적 업적에 대한 인정과 세심한 관심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중심 주제는 현실과 사고와의 관계, 사회와 예술가와의 관계, 현실과 시대의 복잡성, 정신성의 유혹, 에로스, 죽음 등 그와 관련되는 일련의 문제들을 둘러싸고 계속 다른 형식으로 반복된다.

이 단편선에 수록된 토마스 만의 초기작에 해당하는 열두 편의 작품은 철학자 쇼펜하우어와 니체, 작곡가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깊이 있는 것들로, 역시 가장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주제는 예술성과 시민성의 대립이다. 이 대립은 토마스 만의 태생적 뿌리에서부터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뤼베크 시 재무 담당 장관이었던 아버지는 독일 시민계급의 전통적 도덕률을 엄격히 따르는 전형적인 북부 독일인이었지만, 라틴계의 피가 흐르는 어머니는 도덕이나 세상사에는 관심이 없고 음악을 좋아하는 예술가적 기질의 소유자였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사람이었다.

만의 가장 훌륭한 단편으로 평가받는 「토니오 크뢰거」의 토니오 또한 그러한 인물이다. 시민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내포한 토니오 크뢰거는 끊임없이 보통 사람들의 건강한 세계를 동경한다. 그들은 단정하고 성실하고 명랑하고 도덕적이며, 주어진 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하찮은 것에도 즐거워하고 남들과 어울리는 법을 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렇게 살 수 없는 토니오로서는 그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일반인들은 그를 이질적인 존재로 본다. 그가 자기들과는 다른 세계에 살면서 자신들의 속내를 꿰뚫어 보고 자신들을 경멸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선뜻 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토니오는 늘 일반인들의 세계를 동경해 왔으면서도 정작 그들과 함께 있으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불편해한다. 일반인들의 편협함과 고루함, 속물근성이 속속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토니오가 예술 세계로 쉽게 받아들여진 것도 아니다. 오직 미美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숭배하는 예술가들은 시민적 양심을 가진 그를 감동도 도취도 없는 인간이라 여긴다. 미의 숭배자들은 현실적 인간들을 경멸하고 깔본다. 그러나 토니오는 ‘예술적인 것, 비범한 것, 천재적인 것 속에도 모호하고 수상쩍고 의심스러운 것이 담겨’ 있음을 깨닫는다. 이런 날카로운 지성의 눈을 가진 사람을 미적 허영에 빠진 이들이 고이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어느 세계도 토니오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시민 세계는 그를 ‘체포하려’ 들고, 예술가들은 그를 ‘길을 잘못 든 시민’이라 부르며 경원시한다. 그가 안주할 곳은 없다.

그러나 이내 예술 세계가 반드시 일상과 동떨어진 천재적이고 비범한 것에 국한된 게 아니라 다른 길로도 나아갈 수 있음을 깨닫는다. “작가를 정말 작가답게 만들어 주는 것은 인간적인 것, 살아 있는 것, 평범한 것에 대한 시민적 사랑”이고, “일상의 환희에 대한 동경보다 더 감미롭고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없다”고 토니오는 말한다. 이처럼 삶에서 배제된 채 평범한 삶을 동경하고 꿈꾸는 이는 비단 예술가만이 아니다. 「키 작은 프리데만 씨」의 난쟁이 프리데만, 「굶주리는 자들」의 구걸하는 거지, 「루이센」에서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들 만큼 뚱뚱한 야코비 변호사도 마찬가지이다. 그 밖에 현실의 삶 앞에 허무하게 무너진 예술가의 허영심을 다룬 「어릿광대」, 디오니소스적 예술에 힘없이 무릎 꿇고 만 아폴론적 예술을 다룬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현실과 언어의 채울 수 없는 간극을 그린 「환멸」, 의지와 삶의 문제를 다룬 「행복에의 의지」 등의 단편은 그 각각이 걸작이란 무엇인지를 유감없이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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